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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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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800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2.03.04 08:31
조회
1,706
추천
26
글자
9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6 - 다시 굴러가는 수레바퀴 (13)

DUMMY

" 이렇게 느긋하게 기다려도 되는거냐? "


담벼락에 기대선 사내는 마음에 안든다는 듯, 입을 삐죽였다. 그 직설적이고 유치한 표현에 마르틴 발터는 웃음을 터뜨렸다.


" 푸하하핫, 세상에. 그게 뭐야? 하나도 안 어울리잖아. "


" 시끄러워. 묻는 말에나 대답해. "


퉁명스럽게 다그치는 모습이 꼭 삐진 어린아이 같다. 발터는 다시금 뒤집어지며 웃음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 풉... 크큭, 이러다가 진짜 웃겨죽겠네. 세상에, 그 악명높은 창잡이가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잖아! "


빠직,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은빛 창이 발터의 목에 겨눠졌다.


그것으로 발터의 입을 막은 창잡이는 누가 들었을새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이봐, 내가 여기 있는 건 비밀 아니었어? 쓸데없는 소릴 지껄였다가 누가 듣기라도 한다면 네가 그토록 무서워하는 동지의 피를 봐야할거다. "


" 글쌔? 지금이야 경찰들도 다들 알았을테니 구태여 알릴 것까진 없지만 알려진다고 해서 딱히 입막음을 해야 할 필요는 없...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니까 이건 좀 치워줄래? "


방법이 너무 과격하잖아, 하고 투덜거리며 발터는 목젖을 지그시 누르는 창대를 밀어냈다.


" 네놈이 자꾸 말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니까 그렇잖아. 됐으니까 그 잘난 머리로 뭘 생각하고 있는지 말해 봐. "


그러나 발터는 이 희대의 살인마가 하는 재촉을 듣고도 즉각적으로 대꾸하는 대신 나직히 궁시렁거렸다.


제기랄 처음 봤을때는 자기만 따라오라 하던 놈이 알고보니 싸움밖에 재주가 없는 바보에 의욕만 앞서는 멍청이었을줄이야 누가 알았나. 결국 내가 하나부터 끝까지 다 떠안고...


끝도없이 궁시렁대는 발터를 보며 창잡이는 이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더니 난데없이 휘파람을 불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 점에서만큼은 정말이지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본론을 내지 않는 발터에게 질려버린 창잡이가 다시금 재촉한 것이다. 그제서야 발터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 문제없어. 우리의 전력을 알고 있는 이상, 경찰은 절대로 먼저 도발해오지 않아. 전면전이 되면 자기들 목숨을 보장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이쪽에서 본격적인 폭동을 일으킨다면 마지못해 대응할테지만 지금처럼 구호나 외치면서 협상을 기다린다면 멍청히 대치하면서 지켜보는게 고작이야. "


" 경찰이야 그렇겠지만 군은? "


" 그때는 네가 나서야지. 가급적이면 일어나지 않는 쪽이 좋지만 말이야. "


그렇게되면 시위가 아니라 반란이다. 이미 창잡이가 한패라는 것을 공언해버린 탓에 상관없다고 발뺌할 수도 없으니 좋건 싫건 시를 장악해버려야 했다.


" 난 오히려 그랬으면 좋겠다. 솔직히 내가 있는데 시시하게 시위 같은거나 할 필요가 어디있어? "


" 성급하게 굴지 마. 부수는거야 너 혼자서 모든 걸 해결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키는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 애시당초 시를 장악해봤자 유지할 인력도 없잖아. "


" 윽... "


" 무엇보다 우린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고 일어난 혁명가가 아니야. 어디까지나 사람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일꾼들일 뿐이지. 쓸데없이 일을 키울 필요는 없어. "


그 말에 인상을 찡그린 체, 침묵을 지키던 창잡이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 글쌔. 그런 관점에선 꼭 쓸데없는 발상은 아닐 걸? "


이 세상이 한번 뒤집어지지 않는 한, 절대로 네가 꿈꾸는 날은 오지 않을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창잡이는 아쉬운 듯,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 딱 10년만 오래 살 수 있었더라도... '


그랬더라면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그도 잠시. 이전에 한번 느껴보았던 위험한 기척을 감지한 창잡이는 눈을 부릅뜨며 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 젠장, 오지랖도 넓은 새끼! "


그는 중얼거림과 동시에 모습을 감췄다. 그가 사라진 그늘진 담벼락 아래엔 발터만이 남아 황당한 표정으로 빈 자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경찰들은 아주 신속하게 출동했다. 그들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아침이 되자마자 길을 틀어막고 시위대와 대치했다.


그들의 등장으로 시위대는 크게 동요했으나 정작 시위대와 마주친 경찰들은 인의 바리케이트를 치고 방관할 뿐이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두려움에 눈치를 보던 시위대도 점차 용기를 얻어 더욱 격렬하게 구호를 외치고 시위를 통해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경찰들의 마음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당장 돌격해서 총 몇 발만 쏴갈겨도 흩어질 것들을 가만히 놔둔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찰들 사이에 도는 흉흉한 소문이, 그리고 상사들의 굳은 표정이 그들을 막고 있을 뿐, 명령만 내려진다면 지체없이 달려가 학살극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허나, 명령은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해가 뜨고 정오가 가까워오도록 상사들은 굳은 표정으로 대기만을 지시했을 뿐이다. 그런 그들의 표정이 바뀐 것은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새하얀 소녀가 오면서부터였다.


" 우와, 저거 뭐야? "


" 맙소사, 사람이 저럴 수도 있는건가? "


" 여지까지 본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 몬스터였군. "


그녀의 미모는 기다림에 지친 경찰들에게 좋은 활력소가 되었다. 그들은 금새 낮은 목소리로 품평을 하기 시작했고 이내 인의 장벽은 수근거림으로 가득찼다.


그러한 수근거림은 보다못한 지휘관들이 진정시키려고 나설 무렵, 자연스럽게 그쳤다. 시위대 사이에서 나타난 새빨간 소용돌이를 목격한 순간, 경찰들은 자신들이 왜 멍청히 대기만 하고 있어야 했는지 절절히 깨달았다.


" 차, 창잡이! "


전신을 붉은 기류로 감싸고 나타난 사내의 손에는 길고 인상적인 은빛 창이 들려져 있었다. 이러한 외견을 가진 사내가 세상이 아무리 넓고 광활하더라도 둘이 있을 수는 없었다.


사내, 창잡이는 급격히 동요하는 경찰들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새로이 나타난 새하얀 소녀뿐이었다.


" 그렇게 안봤는데 오지랖 한번 더럽게 넓군. 이런 코딱지만한 도시에 뭐 먹을게 있다고 대가리를 디미는거냐? "


천박하고 거친 말투에 무감정한 목소리가 답했다.


" 이 도시에는 관심 없습니다. 내게 내려진 명령은 당신의 포섭, 혹은 생포. 가능하면 얌전히 따라와준다면 좋겠군요. "


그러는 쪽이 피차간에 좋을테니까, 하고 말을 맺는 소녀를 보며 창잡이는 이를 갈았다.


" 퇫, 얼빠진 공작 나리가 아직도 꿈에서 깨질 못한 모양이군. 난 누구 밑에도 들어가지 않아. 하물며 증오하는 귀족의 개가 될 것 같나? "


" 그럴 리야 없겠지요. 하지만 당신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명령을 받았고, 그것을 수행할 뿐이니까요. "


무기질 같은 푸른 눈을 태워버릴 듯한 강렬한 눈빛으로 마주보던 창잡이는 창을 다잡았다.


" 네놈과 이야기를 해봤자 소용없겠군. 마지막 경고다. 여기서 꺼져라. 그렇잖으면 험한 꼴을 보게 될거다. "


" 포섭 실패. 전투에 들어갑니다. "


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햐안 소녀의 양손에는 어느새 티없이 새하얀 한 쌍의 장검이 들려져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고 이내 질풍같이 내달려 서로를 향해 태산같이 무거운 일격을 교환했다.



***



" 지진? "


어디선가 굉음이 터지자 온 도시가 흔들거렸다. 일찍이 지진과 인연이 없었던 아르모어는 순간,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다행히 지진은 금새 멎었다.


" 깜짝이야. 이 동내도 지진 같은게 있기는 있구나. "


그는 식은땀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금이야말로 인생의 전환점. 일생일대의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다.


아르모어는 망설이지 않았다.


고민은 이미 충분히 했다. 그 댓가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앞으로 두번 다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도망칠 수는 없었다.


" 이미 충분히 도망쳤어... "


맞서 싸워야 할 위기가 몇 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방관자였다.


단 한번도 불행에 정면으로 맞선 적이 없었다.


언제나 멍청히 구경만 하다가 찾아온 불행에 괴로워했다.


" 이제 구경꾼 노릇은 질렸어. "


그는 선택했다.


이번에야말로 구경만 하고 있지 않겠다고.


이제는 방관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직접 불행에 맞서겠다고.


이번에야말로 중심에 서겠다고.


그렇게 맹세했다.




" 내가 주인공이다. "


그래, 지금이야말로.


나는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


작가의말

퍽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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