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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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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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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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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3.07.0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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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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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글자
12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7 - 지옥 (end)

DUMMY

" 풉, 푸흐흡... 푸하하하하하하하핫!!!! "


클루니 사령관은 별안간 웃기 시작했다. 크게 웃었다. 미친듯이 웃었다. 곁에서 수년간 보좌해온 베르가조차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을만큼 크게 웃었다. 그러다 거의 숨이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겨우 겨우 웃음을 멈췄다가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르모어를 보더니 다시 한번 배를 잡고 한참동안이나 끅끅댔다.


곁에서 지켜보던 베르가가 이거 위험한거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할때서야 겨우 몸을 추스린 사령관은 가뿐 숨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몇번 하고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 후아! 그래, 자네 말마따나 사령관은 군을 이끌어 승리를 만들어내는게 임무지. "


" 알면 이 지겨운 농담 따먹기는 그만하고 얼른 지시나 내려. 졸린다. "


" 이놈이... 사령관님의 면전이다! 말을 가려라! "


여전히 삐딱한데다 반말을 찍찍 내갈기는 아르모어의 태도에 베르가가 언성을 높였지만 뜻밖에도 클루니 사령관이 손을 들어 재지시켰다.


" 그쯤해두게. "


" 하지만 사령관님! "


베르가가 황당하다는 듯이 돌아보자 사령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그렇게 호들갑 떨지 말게 베르가. 어차피 자네가 무슨 짓을 해도 저 치가 다시 예의를 차릴 일은 없을게야. 목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도 반말을 지껄일걸. 그렇지 않나? "


" 흥. "


사령관은 코웃음으로 반응하는 건방진 죄수병을 보고 잠시 미소지었다가 말을 이었다.


" 자, 그럼 사령관답게 승리를 위해 주어진 패를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해보도록 하지. 베르가. "


" 옛. "


" 그에게 좋은 음식을 주고 사흘간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해라. "


" 알겠습니다. "


그 명령에 대해 아르모어가 무어라 한소리를 하려던 찰나, 클루니 사령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가로막았다.


" 사흘 뒤, 자네의 가치에 대해 시험해보겠네. 그 동안 자네의 가치를 보여주는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뭐든지 신청하게. 필요하다면 기간트라도 구해오도록 하지. 모쪼록 자네가 쓸모 있는 패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게나. 오늘 이 재미없는 늙은이와 놀아준다고 수고했네. 가서 푹 쉬게. "


그리고는 창문을 향해 돌아앉으며 무언의 축객령을 내렸다.



***



" 그래, 잘 데려다 줬는가? "


" 예. "


" 수고했네. 자네도 앉지. "


" 실례하겠습니다.


클루니 사령관은 돌아온 베르가에게 찻물을 홀짝이며 자리를 권했다. 테이블 위에는 아르모어를 위해 준비했던 다과들이 정성스레 놓여져 있었다. 사령관은 말없이 클로에가 따라준 홍차만을 바라보고 있는 베르가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 자네가 보기엔 어떻던가? "


"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크게 쓸 인재는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


" 너무 건방지니까? "


" 아닙니다. "


베르가는 냉정한 표정으로 즉답했다. 빙글빙글 웃으며 놀리듯이 물었던 클루니 사령관은 뜻밖의 답변에 호오, 하고 작은 감탄을 터뜨리더니 한층 즐거워보이는 얼굴로 물었다.


" 그럼 왜 그런 평가를 내렸나? "


" 그에게는 삶의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


" 삶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


" 그렇습니다. "


이미 충분히 생각해두었던 질문인 듯,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답변에 사령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 반응에 베르가는 ' 최소한 꽝은 아니구나. ' 하고 마음 속 한편으로 안심하며 설명을 풀어놓았다.


" 죄수병이란 본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용병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충분히 큰 전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바라지 않았으며, 심지어 보장된 출세길을 제 발로 걷어찼습니다. 이는 처음부터 계약상의 보상이 아닌, 자신만의 목적을 가지고 입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 타 세력에서 보낸 스파이란 말인가? "


나름대로 비밀리에 움직인 일이지만 수천명의 죄수가 움직이는 일인 만큼 완벽히 은폐할 수는 없다. 타 세력에서 움직임을 파악하고 죄수 속에 스파이를 박아넣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베르가는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사령관님께 오만불손하게 구는 모습을 보고 스파이는 아니라는걸 깨달았습니다. 그의 목적은 의심할 여지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


" 일리는 있군. "


스파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기처럼 존재감을 지우던지 아니면 절대적인 믿음을 주어야지 결코 미운털이 박혀서는 안된다. 나쁜 의미로 주목을 받게 되면 행동의 폭이 좁아지고 위험만 증폭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최고 지휘관에게 미운 털이 박힌다는건 사실상 자폭이나 다름없다.


" 하지만 그것만으로 삶의 의지가 없다고 단정할 순 없잖나. "


스파이가 아니라는 근거라면 모를까, 삶의 의지와 결부시키기엔 너무 미약한 근거다. 분명히 사령관에게 밉보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지 않은 일이지만 인간이란 언제나 냉철한 동물이 아니어서 가끔은 감정에 휩쓸려 자충수를 두기도 하는 법이다.


" 물론입니다. 그것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요. "


" 자신있게 말하는 걸 보니 자네 나름의 근거가 있겠지. 한번 말해보게. "


" 네. 보고서에도 첨부되어 있던 사실입니다만, 그 죄수병은 원래 무바라크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평범한 소시민이었다고 하더군요. "


" 무바라크라면 그 이상한 사건이 일어난 도시 말인가? "


" 그렇습니다. "


사령관은 작년 즈음에 보았던 신문 기사를 떠올렸다. 어느날 갑자기 난데없이 하늘에서 불타는 드래곤이 나타나 날뛰다가 사라졌다는 내용으로 그야말로 전설에나 나올 법한 황당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실제로 도시가 파괴되고 수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했으며 동일한 내용의 증언이 사방에서 쏟아졌기 때문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던 사실이기도 했다.


" 그 사건 때문에 충격을 받아 미쳐버렸다더군요.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에 틀어박혀 들어오는 인간은 무조건 쏘아 죽였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총 12명을 사살했고 본가의 개입으로 시정을 회복한 이후,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


여기까지 말한 베르가는 사령관의 눈치를 한번 살폈다. 클루니 사령관은 여전히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놀라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방금 전까지 한 방에 있던 병사가 미치광이였다는 사실에도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처음 듣는 이야기마냥 묻고는 있지만 역시나 사령관은 보고서의 마지막 장까지 꼼꼼히 읽어봤던 모양이다. ' 그렇다면 쓸데없이 긴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 ' 그렇게 판단한 베르가는 잔가지를 생략했다.


" 저는 그가 자신을 굳이 죄수라 칭한 것을 보고 여전히 그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자 화를 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자기 스스로를 벌하려는 의도에서 입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령관님께 무례하게 군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자신을 괴롭히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 목적이므로 어떻게 꼬이더라도 상관없을테니까요. "


" 아하, 그렇군. "


사령관은 빙그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반응이라면 최소한 낙제는 아니다. 그렇게 판단한 베르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하지만 사령관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또다시 물어왔다.


" 헌데 그런 인물을 크게 쓸 수가 없다는건 어째서인가? "


베르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질문 공세에 피곤함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고 준비해둔 답을 말했다.


" 첫째로 제어하기가 힘듭니다. 살아가려는 의지가 없으니 부와 지위에 흔들리지 않으며 스스로를 벌하는 것이 목적이니 체벌 역시 효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또한 독신이므로 지켜야 할 가족도 없습니다. 이처럼 바라는 것도 없고 두려워하는 것도 없으며 지켜야 할 것도 없는 인물을 마음대로 부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둘째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이란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스스로를 벌하는 것이지 임무의 성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필시 쓸데없는 위험을 자초하여 희생을 키우고 나아가 결국에는 일을 망치고야 말 것입니다. "


" 흐음. "


사령관은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미소짓는 와중에도 약간 경직된 느낌. 점수로 환산한다면 아마도 70점 정도. 합격과 불합격 사이에서 간당간당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다. 베르가가 자신의 실책이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보는 사이 사령관은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 자네가 나라면 이런 인물을 어떻게 쓰겠나? "


" 저는... "


소신껏 말할까? 아니면 사령관의 의도를 유추하는게 나을까? 잠시 망설이던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령관의 눈초리가 점점 딱딱해져간다는 것을 느끼곤 결단을 내렸다.


" 저라면 그를 선전용으로 사용하고 제대시키겠습니다. 죄수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군직을 부여하는 것보다 거액의 포상금과 함께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주는 쪽이 효과가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곁에 두고 일을 맡기기엔 너무나 불안정한 인물인 탓이기도 합니다. "


" 그렇군. 자네의 생각은 잘 알겠네. "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사령관은 어린아이의 실수를 보는 것처럼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결국은 불합격인 것이다. 자연히 베르가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별 것 아닌 소소한 시험이라고 해도 사령관을 계속 실망시킨다면 후진은 하지 않을 지언정, 전진도 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꿈이 점점 멀어져간다는 생각에 베르가는 우울했다. 그런 기색을 읽었는지 사령관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자네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네. 일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현 상황에서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배제하는 것은 결코 나쁜 판단이 아니야. 단지 한마디 충고해주고 싶은 것은 결론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것일세. 자네는 너무 단정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더군. 하지만, "


그렇게 말한 사령관은 앞에 놓여진 다과 중에서 말랑말랑한 붉은 색 젤리 하나를 집어들고 말을 이었다.


" 사람이란 이 젤리와도 같은거라네. "


그는 손가락을 놀려 사각형의 젤리를 둥그런 모양으로 뭉쳐보이며 말했다.


" 바깥에서 힘을 가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존재지. 설령 각진 인물이라도 자극을 주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둥글둥글해질 수 있는 것이야. 그러니 조금 더 유연한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게나. 비록 현재의 모습이 사각형이라고 해서 영원히 사각형인 것은 아니라네. "


" .....명심하겠습니다. "


그렇게 답하면서도 베르가는 자신의 평가가 틀렸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젤리처럼 압력에 맞춰 자신을 바꿔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아무리 압력을 넣어도 변하지 않는 벽돌 같은 사람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가 보기에 그 죄수병은 틀림없는 후자였다. ' 돌맹이를 노랗게 칠한다고 금이 되나. ' 그런 베르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클루니 사령관은 흡족한 표정을 짓고는 찻잔을 기울였다.


***


작가의말

옛날엔 앉은 자리에서 몇편씩도 쓸 수 있었죠.

 

어떻게 그런게 가능했을까요?

 

정말 미스테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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