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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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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799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3.01.20 22:08
조회
1,665
추천
25
글자
8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7 - 지옥 (10)

DUMMY

퍼엉

귀청이 떨어질 듯한 폭음과 함께 억압에서 풀려난 푸른색 입자가 사방을 뒤덮는다. 폭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섬광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잔잔한 푸른색 입자는 자신을 누르고 있던 힘이 사라지자 무서운 속도로 흩어지며 앞을 막아서는 모든 물체를 무자비하게 때려부쉈다.


" ...!!! "


아름답고 잔혹한 입자들의 파도 속에 누군가의 소리가 들린 것도 같다. 순식간에 흘러가버린 짧고 미약한 소리는 폭음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붕대로 눈을 가린 살인마는 그것이 비명소리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달리 나올 소리가 없으니 딱히 틀린 추측은 아니리라.


순식간에 묻혀버린 비명처럼 푸른 입자의 파도도 순식간에 끝이 났다. 폭발과 함께 완전히 자유를 찾은 푸른 입자는 한순간의 질주가 끝나자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공기중에 녹아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푸른 입자가 휩쓸고 지나간 참상 뿐. 문자 그대로 상체가 너덜너덜해진 세 사내들의 시신이 흉물스러운 몰골을 여과없이 들어낸 체, 중력에 이끌려 힘없이 쓰러졌다.


살인마, 아르모어 폰 피르쉬어는 동기들의 시체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본래부터 넓지도 않은 천막 안에 시체만 일곱, 그것도 곱게 죽은놈은 하나도 없고 죄다 토막나거나 구멍이 숭숭 뚫려서 사방팔방에 흩뿌려져 있으니 보고만 있어도 구토가 나올만큼 처참한 광경이다. 그러나 이 시체들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아도 이상하지 않을 참상을 보고 느낀 감정은 혐오감이나 죄책감이 아닌 막막함이었다.


" 이걸 어떻게 치운담? "


피로 질척거리는 바닥, 사방팔방 흩어진 대량의 육편. 청소하는 입장에선 눈앞이 캄캄해지는 난장판이다. 더군다나 도와줄 사람도 없다. 오직 혼자서, 이 난장판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살인을 꺼리지 않는 사나이라도 썩어가는 시체와 함께 생활할 배짱은 없다.


" 쯧, 한놈쯤은 살아남길 바랬는데. "


아르모어는 상체가 걸레짝이 되어 쓰러진 동기들의 시신을 불만스럽게 노려보았다. 고참병들이야 애당초 살려줄 생각이 없었지만, 신병들이야 자신들이 처신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살아날 길을 주었다. 그에게 복종하기만 했다면, 아니. 그를 적대하지만 않았더라도 최소한 흠집을 잔뜩 내둔 불안정한 7마기 탄환을 격발시킬 일은 없었을 것이고 첫 전투에 나설때까지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골치 아픈 오물들을 치우는 일은 그들에게 떠넘길 수 있었을텐데.


' 벌써 죽어버린건 어쩔 수 없지. '


불평도 잠시. 사내는 몸을 일으킨다. 사내의 모습에 가려져 있던 손바닥만한 마법진이 허상처럼 스러진다. 동시에 그의 주변과 천막 내부를 감싸던 무형의 막이 산산히 부서지며 사라진다. 곧이어 천막 이곳저곳에서 금속제의 작은 물체가 떨어졌다. 텅 비어버린 7마기 탄환. 능력이 떨어지는 마법사가 역량 이상의 신비를 구현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의 부산물. 이제는 쓸모없어진 폐품에 잠깐 시선을 주었던 사내는 이내 허리를 펴며 시급한 현안으로 관심을 돌렸다.


' 시체는 뭐, 똥통에 처넣으면 되겠지. 어차피 여기저기서 죽여대는 모양이니 대놓고 옮겨도 딱히 부자연스럽진 않을거야. 폭발한 소총은 아무데서나 훔쳐오면 그만이고 역시 문제는 피인데... 그냥 다른 천막 탈취하면 안되나? '


아르모어가 보기에 23분대 천막은 이미 글렀다. 7명이나 되는 시체에서 흘러나온 질척질척한 피바다를 무슨 수로 치운단 말인가? 청소하기보다는 빈 천막을 차지하는게 훨씬 합리적이었다. 문제는 그의 무력으로 정면 승부를 펼쳐서 분대 하나를 치운다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탈취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기습을 걸어야하니 천막 안의 상대를 공격할 공산이 크고 그렇게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 진짜 골치아프네. "


생각하면 할수록 의욕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치우지 않을 수도 없다. 밤밤중 싸늘한 시체랑 같이 잘 수는 없지 않은가? 또 기껏 편하게 지내려고 학살을 벌였는데 소총이 파손된 것을 꼬투리잡혀 피곤한 꼴을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당장 처리가 가능한 시체와 소총 정도는 해결해둬야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시체를 주섬주섬 챙기던 중, 바깥에서 커다란 종소리가 들렸다. 묵직함과 진중함 따윈 어디 팔아먹은, 그저 시끄럽기만 할 뿐인 소음이 죄수대를 뒤덮는다.


낮선 소리에 살인마는 여왕의 눈을 활성화시켰다. 무슨 신호인지 설명해줄 고참은 모두 죽여버렸으므로 주변의 행동을 보고 상황을 파악해야했다. 이내 주변 천막에서 오가는 대화를 '읽은' 그는 시체를 팽개치고 옷이 온통 피로 물든 몰골로 터벅터벅 천막 밖으로 나섰다. 다른 천막에서도 병사들이 슬렁슬렁 기어나왔다. 그들은 아르모어의 몰골을 보고서도 특별히 신경쓰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동료의 시체를 옮기느라 피투성이가 된 병사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사회에선 마주치기만해도 비명을 지를 끔찍한 몰골도 여기서는 평범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 기묘한 환경의 덕으로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를 파고든 살인마는


'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밥이나 먹고 생각하자. '


아무 생각도 없었다.


***


홀로 남은 주인이 돌맹이처럼 딱딱한 빵 한쪼가리를 얻어먹으러 나선 사이, 텅 비어있는 23분대 막사를 찾은 이가 있었다. 이미 죄수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듯, 여느 고참병들처럼 구질구질한 외모의 사내는 흘러내린 청록색 앞머리를 연신 치워대며 천막의 문을 열었다.


" 어이, 이제 그만하고 빵 뜯으러 가지. 멍청히 있다간 똥같은 빵이나마 못..... 이게 다 뭐야? "


천막 안에 어지러이 흩어진 시신들을 발견한 청년의 표정에 난처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뿐이다. 하다못해 주변에 알릴 생각조차 없어보인다. 사람의 신체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 치고는 비정상적으로 침착한 반응이었다.


" 이 자식, 또 저질러버린건가. 저번 회의때 그렇게나 주의를 줬는데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지. 하다못해 전장에 나가서 저지르란 말이야. "


이런일이 한두번이 아닌 듯, 청년은 지긋지긋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방 안에 가득차있던 피와 시체들이 허공의 한 점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내 모든 오물들이 사라지고 말끔한 천막의 바닥과 주인을 잃은 옷들만이 남았다.


" 자, 이제 압축하기만 하면... 응? 어? 어어어? "


사람 일곱의 시체를 피 한방울 남김없이 공처럼 뭉친 청년의 눈에 뜻밖의 물체가 보였다.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 물체. 이 피바다를 만들었을 사내의 머리가 시체들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깜짝 놀란 청년의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허공에 떠있던 고기공이 바닥에 맥없이 떨어져 기껏 말끔해진 천막 바닥을 다시 한번 어지럽혔다.


철푸덕.


시체가 바닥에 부딛치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청년은 시신더미를 허공 위에 펼쳐놓았다. 일곱이나 되는 사람을 아무렇게나 토막쳐버린 바람에 뭐가 누구의 몸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들었지만 시체들의 사인을 분석하기엔 충분했다. 잘려진 단면과 구멍나고 찢어진 파편들을 면밀히 살펴본 청년은 이번에는 천막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내 군데군데 떨어진 텅 빈 탄피와 약실이 터져버린 소총 세정을 확인한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모든 시체와 피를 허공의 한 점에 압축시켜 주먹만한 덩어리로 만들어 회수하곤 지체없이 어디론가 가버렸다.




작가의말

현실이 바빠서 좀 늦었습니다.

연초부터 난데없이 집구하랴 돈구하랴 이사가랴 난리도 아니었네요.

앞으로도 자주 올리기는 힘들 것 같지만 최소한 월간지는 면해보도록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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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7 - 지옥 (10) +3 13.01.20 1,666 2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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