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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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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791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2.12.27 22:50
조회
1,613
추천
33
글자
6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7 - 지옥 (9)

DUMMY

피, 피, 피.


본래부터 넓지 않은 천막 안은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보기만해도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지는 것 같았다. 악취와 피비린내가 범벅이 된 방 한가운대서 시체 위에 걸터앉아 망자의 머리를 공삼아 놀고 있는 사내의 모습은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어 하룬은 자신이 눈을 뜨고 악몽을 꾸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 뭐야, 너 뿐이냐? "


몽상적인 성향의 화가가 그려놓은 듯한 현실 속의 환상은 살인마가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산산히 부서졌다. 귓가를 때리는 차가운 목소리가 패닉에 빠져 있던 하룬의 정신을 깨운다. 자신이 그림을 감상하는 방관자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현실의 당사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한 하룬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솟았다.


" 바, 밖에 둘이 더 있습니다. "


하룬의 목소리는 지극히 공손했다. 얕보이면 안된다는 결심은 온데간데없고 밉보이면 안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매웠다. 그것은 단순히 사내가 만들었을 참혹한 시체들을 목격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동물로서의 본능이 절대 맞서지 말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사내는 하룬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나운 맹수였다. 하룬을 말을 들은 사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이더니 천막 밖의 두 사내를 목청 높여 불렀다.


" 이봐, 동기들! 눈치 그만보고 들어오지 그래? 계집애도 아니고 뭘 그렇게 낮을 가리나? "


그 말에 밖에서 문을 살짝 젖혀놓고 천막 안의 상황을 옅보던 엘리엇의 몸이 움찔했다. 그러나 이내 위험하진 않다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힘에 자신을 가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당당하게 천막의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가 살인마의 맞은편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의 뒤를 따라 붉은 수염 또한 속내를 알 수 없는 무심한 얼굴로 들어와 거리낌 없이 시체 사이에 앉았다.


모두가 자리를 잡자 붕대로 눈을 가린 살인마는 가지고 놀던 시체의 머리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장난기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 많이들 놀랬나? "


" 아니라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


살인마와 마주앉은 엘리엇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발치에 뒹굴고 있던 망자의 손을 집어들고 살인마의 눈앞에서 흔들어보이며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앞으로 1년은 살아야 할 숙소가 첫날부터 쓰레기장이 되어 있는데 안놀라게 생겼나? "


" 하지만 죽은 쓰레기가 살아있는 쓰레기보다는 훨씬 낫지. 안 그래? "


" 부정하진 않겠어. "


살인마의 대꾸에 엘리엇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참이랍시고 무슨 영주나 된 것처럼 군림하려 드는 꼴사나운 놈들이 사라져준 것은 그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아니, 엘리엇 뿐만 아니라 23분대의 신병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자고로 족쇄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이니까.


" 하지만 우리가 좋다고 그냥 넘어갈만한 일은 아니지. "


하극상은 곧 죽음이다.

교관들이 경고한지 아직 한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화려하게 일을 저질러버렸다는건 교관의 권위, 나아가 남방군의 명령계통을 무시한 처사였다. 평범한 군대라도 사형을 선고할만한 일이 병사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죄수대에서 벌어졌으니 잔혹한 후폭풍이 몰아닥칠 것은 불보듯 뻔했다. 그 점을 지적하자 살인마는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다같이 혜택을 봤으면 뒷감당도 다같이 해야하지 않겠어? "


" 누가 너더러 해달라고 그랬냐? 제멋대로 일을 쳤으면 뒷감당도 혼자 해야지. 안 그래? "


쯧쯧쯧, 살인마는 혀를 차며 검지손가락을 까딱거렸다.


" 내가 너희만 빠져나가게 내버려둘 것 같아? "


이곳에서 누군가를 곤경에서 구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남을 끌여들여 함께 망하는 것은 새끼손가락으로 코딱지를 파내는 것만큼이나 간단하다. 그저 모두가 함께 공모해서 일을 저질렀다고 한마디만 해도 장교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23분대원들을 모두 처형해버릴 것이다. 죄수대가 운영되는 꼴을봐도 그러고도 남을 작자들이었다.


" 자, 이제 어떻할래? "


물귀신처럼 모두를 끌고들어갈 것이라 공언한 살인마는 구석에 몰린 희생자들이 내놓은 답을 기다렸다. 엘리엇은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없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틀림없이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주제에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느낌. 무슨 짓을 해도 결국 자기 손바닥 안이라는 듯한 자신감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적개심을 부채질한다.


어떻하면 저 짜증나는 미소를 뭉개버릴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너무 간단해서 바보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세 사람의 생각이 겹쳐지는 순간, 마치 약속했던 것처럼 셋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서로의 눈빛에서 모두의 생각이 하나로 모아졌다는 걸 깨달은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떨어져 있던 소총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철컥!


가장 먼저 무기를 잡은 것은 붉은 수염이었다. 애당초 천막에 들어올때부터 주변을 주의깊게 살폈던 그는, 바닥에 흩어진 시체들 사이에서 소총을 발견하고 능청스럽게 그 앞에 앉아 자신의 몸으로 소총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이 바뀌는 순간, 번개같이 소총을 들고 일어나 살인마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 흘흘, 자네 나름대로 생각은 많이 했던 모양이네만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구먼. 결국 자네만 입다물고 있으면 아무 문제도 없지 않나. "


뒤이어 천막의 왼쪽 기둥 밑에 뒹굴던 소총을 집어든 엘리엇과 벽 한켠에 세워져 있던 소총을 확보한 하룬의 총구가 살인마를 향해 겨눠졌다. 이해관계의 일치가 만들어낸 포위망이었다. 삼면에서 포위당한 살인마는 고개를 들어 천천히 좌우를 둘러보았다. 무심한 붉은 수염의 얼굴과 약간 흥분한 듯, 붉게 상기된 엘리엇의 표정, 마지막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면서도 필사적으로 총을 겨누고 있는 하룬의 모습이 차례로 들어왔다. 그리고 살인마가 무어라고 말하려는 순간, 무심한 폭음이 막사를 뒤흔들었다.



***




작가의말

안 선생님. 고퀼 소설을 쓰고 싶어요.

하지마. 포기하면 편해.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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