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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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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2,996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2.05.28 22:23
조회
1,790
추천
38
글자
7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7 - 지옥 (7)

DUMMY

" 이봐, 거기 붕대 감은 형씨! "


천막으로 걸어가던 아르모어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 혼자야? "


얼핏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는 천진난만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생전 처음 보는 낮선 청년이었다.


이미 죄수대 배치된지 오래된 듯, 그의 몰골은 여느 죄수대원과 다를 바 없었다.


씻지 않아 땟국물이 질질 흐르고 쌔까맣게 썩은 이빨이 즐비한 입에서는 썩은내가 나며 머리는 만년 새집에 거의 속이 비쳐보일 정도로 낡고 너덜너덜거리는 누더기를 몸에 걸친, 그러나 눈빛만큼은 눈부실만큼 형형한 그런 사나이였다.


' 이 녀석, 강하군. '


여왕의 눈에 비친 그는 단순히 눈만 똘망똘망한 허수아비가 아니었다.


수련을 시작한 시기가 늦은 탓인지 보유 마나량은 적었지만 어디까지나 기사와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일 뿐, 일반인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으며 순수한 육체의 단련도는 여간한 기사와 비교해도 꿀릴 것이 없었다.


' 지금의 나와 비교해도 두세단계는 위다. '


" 문제라도 있나? "


상대의 실력을 알았지만 아르모어의 대꾸는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 가시돋힌 대답에 청년은 웃는 낮으로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 아니, 현명한 선택이야. 어차피 뭉쳐봤자 얼마 가지도 못하거든. 차라리 처음부터 친해지지 않으면 최소한 뜻밖의 배신은 당하지 않으니까 피차간에 속편하지. "


' 불확실한 이야기를 단언한다라... '


아르모어는 그 말에 담긴 속뜻을 파악하고 피식 웃었다.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맹이처럼 청년의 존재가 그의 잿빛 마음에 호기심이란 파문을 일으켰다.


"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 "


" 호오. "


아르모어의 태도가 바뀐 것을 인지한 청년은 뜻밖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이전보다 한층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좋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형씨, 우리 환영대에 들어오지 않겠어? "


" 환영대? "


필시 정식 부대는 아닐 것이다. 그의 생각대로 청년은 악동처럼 후후후, 하고 웃더니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환영 같은 부대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지. 어때, 괜찮지 않아? "


" 구려. "


" .....아, 그래. "


아르모어의 숨김없는 평가에 청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그가 생각한 이름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내 원래대로 돌아온 청년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 여튼, 이름에서부터 짐작했겠지만 우린 정식으로 인정된 부대는 아니야. 뭐, 인정받긴 커녕, 들키면 큰일나는 처지지만. "


" 끼리끼리 모여서 탈출이라도 생각하는가보군. "


" 그래, 그거야. 그러니까 들키는 날에는 큰... "


아무렇지도 않게 핵심을 짚어버린 아르모어의 말에 뒤늦게 반응한 청년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 .....어떻게 알았어? "


자기 입으로 들키면 큰일이라고 했던 주제에 경계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경계하기는 커녕, 호의 가득한 그의 눈빛엔 호기심과 기대감이 감돌았다.


" 이런데 던져졌다면 뻔한 이야기 아닌가? "


아르모어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 풋, 듣고보니 그렇네. "


청년은 그를 따라 주변을 한번 돌아보고는 가벼운 실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금 제의했다.


" 형씨도 여기 있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여기서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기한을 체워서 나갈 수는 없어. 나가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지. 뒈져서 시체가 되던가, 아니면 도망치던가. "


" 아, 그래. "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들은 아르모어는 흥미를 접고 몸을 돌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몰라도 죽음에 대해서 별다른 거부감도 없고 삶에 대한 별다른 집착도 없는 아르모어에게 있어서 죄수대는 굳이 탈출할만큼 나쁜 곳은 아니었다.


" 열심히 해봐. 난 관심없으니 갈란다. "


" 어? 거절하는거야? "


" 그래. "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는 거절에 청년은 아르모어의 앞길을 막아서며 빙긋 웃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와 달리 그 눈빛은 더없이 싸늘했다.


" 그렇다면 곱게 보내줄 수는 없겠는 걸. 미안하지만 이쪽도 목이 걸려있어서 말이야. "


" 죽이기라도 할 셈인가? "


그렇게 묻는 아르모어의 태도는 담담했다. 상대의 실력을 알면서도 두려워하는 기색 따윈 전혀 없다. 그 모습을 면밀히 살피던 청년은 가볍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설마. 우린 그렇게 야만적인 인종이 아니야. 그냥 성대를 약간 도려낼 뿐이라고. "


" 아, 그러셔. "


청년의 말도 안되는 궤변에 피곤한 표정을 지어보인 아르모어는 손발을 가볍게 풀어주면서 도발적으로 답했다.


" 할테면 해봐. "


마치 귀찮은 꼬마를 상대해주는 듯한 태도. 청년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체,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며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러나 아르모어의 표정에선 여전히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미소짓는 와중에도 비수처럼 날카롭게 번뜩이던 청년의 눈빛이 차츰 빛을 잃고 사그라들었다.


" 나 참, 끝까지 표정하나 안바뀌네. "


청년은 김빠진 듯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 농담이야. 그저 남에게 떠벌리지만 않으면 충분해. 그 정도는 약속해 줄 수 있겠지? "


" 상관없다만, 믿을 수 있겠나? "


비꼬는 듯한 반문에 청년은 어께를 으쓱해보였다.


" 그렇게까지 사람을 못 믿어서야 아무것도 못하지. 그리고 형씨는 아무리봐도 입이 가벼운 족속은 아닌 것 같거든. "


" 사실은 수다쟁이일지도 모르는데? "


" 그럼 사람을 잘못본 내 안목을 탓해야지 어쩌겠어. "


시원털털한 대답에 아르모어가 오히려 김빠진 표정으로 청년을 지나쳤다. 완전한 무방비 상태였지만 청년은 그냥 곱게 보내주었다. 둘의 거리가 충분히 멀어지자 묵묵히 아르모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청년이 별안간 손을 흔들며 외쳤다.


" 어이, 형씨. 마지막으로 좋은 정보를 알려주지. "


목숨이 오고가는 곳에서 정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드물다. 그러나 아르모어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내의 뒷모습에 청년은 혀를 내두르고는 뒷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 '놈들은 우릴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거 굉장히 유용한 정보니까 꼭 기억해두라고! "


그제야 아르모어의 발걸음이 멈췄다. 잠시 그 자리에 멈춰있던 그는 여전히 청년을 돌아보지 않은 체, 앞으로 나아가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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