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9)
아이는 캄캄한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모든 비참함을 가려주는 자애로운 어둠. 어머니의 품속처럼 따스한 장막 속을 기분 좋게 거닐던 그에게 시리도록 차가운 빛이 쏟아진다. 어린아이는 피부를 스쳐가는 낮선 찬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따스한 밤은 사라지고 차가운 해가 떠오른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아이는 앞으로 나아간다. 낮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 아이를 앞으로 이끈다.
빠아앙~!
귀청이 떨어져나갈 듯한 굉음을 내며 기차가 등 뒤를 지나간다. 어찌나 길고 긴 기차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소년은 끝없이 이어지는 열차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흥미를 잃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앞길에 사무치도록 그리운 콘크리트의 숲이 펼쳐진다.
크고 따스한 손에 이끌려 학교의 문을 두드린 소년은 그리운 냄새를 풍기는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한걸음에 계절이 바뀌고 한걸음에 사람이 바뀌고 한걸음에 복도가 바뀌고 한걸음에 해가 바뀌어 마침내 복도의 끝에 다다랐을 때에는 소년은 사라지고 청년이 남았다.
촤아악!
언젠가 들어본 파도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청년이 문득 돌아보니 복도는 사라지고 망망대해가 펼쳐져있다. 앞을 돌아보니 정겨운 복도는 사라지고 잔인한 햇살이 넘실대는 계곡이 펼쳐졌다. 발목을 적시는 따스한 계곡물에 피내음이 섞여있다. 따스하고 정겨운 색을 두른 얼음계곡을 지나 망자의 뼈가 흩뿌려진 사막을 넘어 경멸의 눈빛으로 가득찬 세상 속에 던져진 청년은 작고 더러운 도시 앞에 다다라 어른이 되었다.
화르륵...
냉엄하게 타오르는 불꽃이 사내를 떠민다. 추악한 죄의 무게가 어께를 짓누른다.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원혼들을 이끌고 사내는 마침내 시체로 쌓아올린 성벽 위에 다다랐다. 모순이 가득한 세상에서 누군가가 지쳐버린 사내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자 어린아이인 자신이 그곳에 있었다. 사내의 어께 위에 새하얀 손이 내려앉는다. 돌아보니 시리도록 푸른 빛을 두른 노인이 있었다.
쿠쿵.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무너지며 빛과 어둠만이 남았다. 소년의 뒤로 끝없는 어둠이 펼쳐지고 노인의 뒤로 찬란한 빛이 펼쳐졌다. 두 사람은 동시에 사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같이 가자.
말 한마디 없어도 사내는 알 수 있었다. 빛과 어둠의 갈림길에서, 소년과 노인의 사이에서 사내는 소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한히 이어진 어둠이 입을 벌린 괴물의 아가리처럼 느껴진다. 겁을 먹은 사내는 황급히 노인의 손을 잡았다. 여기서 지체하고 있으면 큰일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의 차가운 손을 붙잡자 시리도록 차가운 빛이 쏟아져들어와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찬란한 빛에 밀려 사라져가는 소년과 어둠을 보던 사내의 눈에서 어째서인지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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