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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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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3,125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6.04.08 19:52
조회
422
추천
7
글자
7쪽

61화

DUMMY

" 정말 사장님이었구나! 앞머리가 없어서 빨리 눈치 못챘어. "


요안나는 반색하며 아르모어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가게에서 일했던 시간들은 여전히 그녀 안에서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아르모어는 팔을 잡아당겨 요안나를 일으켜주면서 " 앞머리? "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자신의 옛 모습을 기억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 아, 맞아. 그때는 눈 때문에 앞머리를 길렀었지. "


" 어? 못생겨서 아니... 읍! "


긴장이 너무 풀려버린 탓일까, 자기도 모르게 속에 든 말이 흘러나와버렸다. 요안나는 뒤늦게 실책을 깨닫고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분위기는 뒤집어진 뒤였다.


" 해치워. "


아르모어의 초록빛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가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면서 냉엄하게 명령하자 어느새 다가온 엘리가 그녀를 바닥에 무릎꿇리고 애냐는 망나니가 술을 뿌리는 것처럼 " 푸우~!" 하고, 하얀 칼날에 나오지도 않는 침을 뿌려댔다.


" 으아악! 농담, 농담이었어요 사장님! "


후회가 가득한 요안나의 비명소리가 들어줄 사람도 없는 사막에 널리널리 울려퍼졌다.


***


" 우리집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아니지, 집이라기보단 작업장에 가까운건가? "


" 그게 햇갈릴 문제야? "


아르모어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하자 요안나는 어처구니 없어하면서 딴지를 걸었다. 출입구를 제외한 모든 벽면에 들어차 있는 책장들과 책장에 빽빽하게 꽃혀 있는 것도 모자라 방바닥 여기저기에 탑처럼 쌓여 있는 서적들, 그리고 방 한가운데에 놓인 길쭉한 사각형 책상과 무언가 어려운 것들이 잔뜩 쓰여져있는 종이와 필기구, 의자 3개가 건물 안에 있는 물건의 전부였다.


" 생필품이 하나도 없는데 집일 리가 없잖아. "


" 아, 듣고보니 그렇군. 멍청한 소리였어. "


아르모어는 순순히 인정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세상 아무 고민도 없는 사람처럼 속편한 얼굴로 웃으면서 자리를 권했다.


" 앉지. 계속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뭣하니. "


요안나는 출입구를 등진 자리에, 아르모어는 그녀의 맞은편에, 엘리는 그의 왼편에 의자를 바짝 당겨붙여 앉았다. 애냐는 언제라도 뒷통수를 칠 수 있도록 요안나의 뒤에 섰다가 아르모어에게 한소리 듣고 기가 푹 죽은 채, 주인의 오른편에 섰다.


" 모처럼 귀한 손님이 왔는데 내줄게 아무것도 없네. 미안해. "


" 그런거 기대도 안해. 이런 세상인걸. "


먹을게 없어서 괴물을 잡아먹고, 그것조차 없으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이다. 자기 피붙이한테도 쉽게 나눠줄 수 없는 식량을 손님 접대한다고 내놓는다는건 말도 되지 않았다.


' 어라? 그러고보니 다들 뭘 먹고 사는거지? '


하얀 꼬마는 『열쇠』니까 그렇다고 쳐도 아르모어와 그 딸은 먹어야 살 수 있을텐데 음식을 먹은 흔적이나 식량이 있을만한 장소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 딱히 야위지도 않았고 혈색도 좋은걸보면 잘 먹고 사는 것 같은데... '


" 요안나는 왜 이런 곳에서 어슬렁대고 있었던거야? "


" 어? 아, 응. "


그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려했지만 아르모어가 선수를 쳐버렸다. 허를 찔린 그녀는 잠시 당황했지만 딱히 숨길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기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 아무도 살아서 나온 사람이 없는 곳이라길래 한번 가보고 싶었어. 미지의 땅, 두근거리잖아! "


" 모험심이라... 그 얌전한 꼬맹이가 이런 왈가닥 아가씨로 크다니 참, 세상 살고 볼 일이야. "


" 괜찮잖아! 코딱지만 마을에 갇혀서 평생 남자 궁둥이나 닦아주다가 죽는 것보단 훨씬 낫지 뭐. "


" 표현도 굉장히 과격해졌고... "


" 그러는 사장님이야말로 이런데서 뭘 하는거야? "


마치 불량 소녀가 되어버린 자식을 보는 듯한 시선에 요안나는 골을 내면서 반격했다. 아르모어는 주변에 굴러다니는 종이를 하나 펼쳐보이면서 시원스럽게 답했다.


" 뭐, 보다시피 마법을 연구하고 있었지. "


" 엑, 사장님이 마법을? "


" 거 실례네, 내가 마법 연구하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냐? "


" 그치만 식당 주인이 마법을 어떻게 배워. "


" 반대다, 반대. 식당 주인이 마법사가 된게 아니라 마법사가 식당을 차렸던거라고. "


" 진짜!? "


" 뭐, 마법으로 빵 벌어먹고 살기엔 한참 모자란 반푼이었지만. "


" 아빠, 지금도 마법은 잼병이잖아. "


푸욱!


옛 추억을 더듬으며 미소짓는 아르모어의 가슴에 악의 없는 비수가 깊숙히 파고들었다. 그의 충실한 종복이어야 할 애냐는 주인을 변호해주기는 커녕, 십분 공감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여댔다.

웃는 얼굴을 유지하려 애쓰면서도 이를 악물고 몸을 부들부들 떠는 아르모어의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러웠지만 더 내버려뒀다간 영 좋지 않은 일이 생길거라는걸 직감한 요안나는 서둘러 화재를 바꾸었다.


" 그나저나 사장님도 응큼한 구석이 있었네. "


" 응큼? "


" 저렇게 커다란 딸을 숨겨놓고 있었잖아. 솔직히 말해봐, 무바라크에서 장사할 시절에 이미 있었던 애지? "


" 흐음... 그렇지, 그 때에도 있었지. "


잠시 생각하던 아르모어가 긍정하자 요안나는 그것 보라는 듯, 놀리듯이 말했다.


"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딱봐도 16살은 넘긴 것 같았는걸. 애까지 낳은 아저씨가 총각 행세하고 다녔으니 응큼하다고 할 밖에. 어휴, 응큼한 아저씨. 그때 같이 일하던 언니들이 알았으면 기절했을거야. "


" 하하하하하하. "


아르모어로선 꽤 억울한 누명이었지만 그는 유쾌하게 웃어넘겼다. 그리고는 웃음기가 남았지만 진지한 얼굴로 축객령을 내렸다.


"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어. 잠깐이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고. 하지만 더는 안돼. 나도 입장이라는게 있거든. 이제 요안나도 다 컸으니까 이해하지? 좀 쌀쌀맞은 이야기지만, 이제 그만 돌아가도록 해. "


" 응, 그럴게. "


거부권은 없었다. 거부할 생각도 없었다. 요안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아르모어와의 재회는 반가웠지만 결국은 16년 전의 얇팍한 인연일 뿐, 현재의 입장을 저버릴만큼 강력한 유대는 피차간에 없었다. 괜히 뻗대다가 사막의 모래알이 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 요안나. "


" 응? "


막 출입문을 열려던 요안나는 손잡이를 놓고 고개를 돌렸다. 아르모어는 선의가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 사는게 너무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와. 그때는 고통없이 끝내줄게. "


그게 무슨 재수없는 소리야, 하고 불평하려던 그녀는 자신이 거대한 호수 앞에 서 있다는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엘로얀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그 호수를, 옛날 그 자리에 있었던 도시의 이름을 따서 무바라크 호수라고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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