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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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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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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41,677

작성
16.04.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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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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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3화

DUMMY

요안나는 호숫가에 앉은 채, 멍하니 찰랑이는 수면을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없어보이는 얼굴과 달리, 그녀의 머릿속은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걱정이 걱정을 낳고 있을 뿐, 생산성있는 생각은 조금도 떠오르지 않는다.


" 어떻게 하지... "


먹을 것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광대한 호수 속에도 생명체는 일절 감지되지 않았다. 아직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테지만, 어차피 그것도 길지 않을게 뻔하다. 최상위의 포식자인 그녀조차 먹을게 없어서 골골대는데 다른 생명체라고 다를게 뭐 있겠는가. 결국은 모두가 서서히 굶어죽어갈 것이다.

사실, 답이 없지는 않다. 저 떠벌이 창이 주장하는대로 『소원의 열쇠』라는게 정말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물건이라면 이 재앙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손에 넣으려면 다른 『기사』들을 모두 해치우지 않으면 안된다.


" 상상도 못하겠는데... "


그것은 곧 아르모어와 그가 거느린 『기사』를 이겨야 한다는걸 의미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요안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 괴물같은 딸까지는 『기사』를 타고 덤빈다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르지만 거기에 『기사』가 하나 더 달라붙고, 항마력 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녀를 예비 동작도 없이 나라 몇 개가 들어갈 거리 너머로 날려버리는 마법사가 합세한다면 도저히 이기는 상황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물론, 무력으로 쟁탈전에서 승리하는 것 말고도 길은 있다. 요는, 다섯 『기사』 중 하나만 살아남으면 되는 것이다. 딱히 『기사』의 소유자가 죽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즉, 『기사』의 소유자들이 동의하기만 한다면 『기사』 4기를 자괴시켜버리고 간단히 『소원의 열쇠』를 손에 넣는게 가능했다.

『기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어지간한 일은 모두 이룰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니만큼 평상시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겠지만 모두가 답답한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 하지만 다른 『기사』들은 몰라도 사장님이 과연 거기에 동의해줄까? '


아르모어는 그녀의 『기사』를 강탈하지도, 그렇다고 포섭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는건 『소원의 열쇠』 자체에 별 관심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관점을 바꿔보면 특별히 바라는 소원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과연 『소원의 열쇠』를 위해 자기 『기사』를 희생시키는데 찬성할 것인가?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 실례합니다. "


그때, 고민의 루프 속에 빠져있던 요안나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존재 자체는 감지하고 있었지만 그게 말을 걸어올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에 그녀는 조금 놀랐다.

왜냐하면, 그것에게선 생명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감지했을 때부터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도 있고 해서 기껏해야 커다란 돌맹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눈으로 확인해보니 멀쩡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 뭐야? "


[인형이로군. 수준을 보아하니 요즘 것은 아닌 것 같고, 우리 시대의 제품 같은데?]


요안나는 '그것'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여지껏 잠자코 있던 떠버리 창에게서 나왔다. 그런가, 인형인가. 그러고보면 아르모어의 곁에 있던 『열쇠』도 인간 형태였다. 옛 시대에는 저런 인형들이 흔하게 쓰였던걸까?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적어도 지금 시대에 수천년 전의 인형을 굴리는 사람은 결코 흔치 않다는 것이다. 자연히 경계심이 고개를 쳐든다.


" 은기사의 소유자, 맞으시죠? "


묻고는 있지만 질문은 커녕, 확인조차도 아니다. 겉치례를 떼고 보면 ' 여~ 은기사~! ' 하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오는 느낌? 그래, 대충 그런 느낌에 가깝다. 이쪽은 저쪽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는데 저놈은 이쪽을 아주 잘 안다는 듯이 지껄여오는 것이다. 불쾌하다. 요안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 그러는 넌 누군데? "


순간적으로 뭔 소리야, 하고 발뺌해볼까도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귀찮고 무의미한 시간 낭비가 될 뿐이다. 그러니까 역공을 취한다. 나랑 이야기하고 싶으면 네 정체도 까놓고 이야기하라고 윽박지른다.


" 이거 실례. 제 이름은 테오도르, 현재 적기사의 소유자입니다. 아, 참고로 지금은 인형을 통해서 당신과 이야기하고 있는거니까 착각하진 말아주십시오. 진짜 저는 이거보다 훨씬 잘생겼답니다? "


알게 뭐야. 요안나는 심퉁한 표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적기사의 소유자란 말을 머릿속의 메모장에 착실하게 적어둔다. 비록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뭐, 그건 지금 시점에선 어쩔 수 없는거니까. 당장은 나오는대로 정보를 쌓아두는게 최선이다.


" 그래서? 그 잘나신 적기사 님이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


그러니까 우선은 직설적으로 한번 물어본다. 속내야 어떨지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표면적인 용건 정도는 있을 것이다. 기대했던 반응이 아닌지 인형은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곧 재수없는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 제안이 있습니다. "


" 말해봐. "


" 당신도 아시다시피 지금 세계는 큰 재앙에 직면해 있습니다. 인간이든, 이종족이든, 심지어 괴물들조차도 먹을게 없어서 죽어가고 있죠. 이대로 재앙이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이 세상은 아무것도 살지 않는 불모지로 변해버리고 말겁니다.

이런 세상에서, 무슨 소원인들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 물론 그런 멸망한 세상을 꿈꾸는 미치광이라면 이야기는 또 모르겠지만요. 설마, 당신도 그런 부류는 아니겠죠? 부디 아니기를 빕니다. 지금 있는 미친놈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이니까요. "


요안나는 이 작자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방금 전까지 그녀가 고민하던 방법 중 하나였다.


" 실례, 이야기가 잠깐 엉뚱한 곳으로 새버렸군요. 본론으로 되돌리자면, 우리들은 『소원의 열쇠』를 사용하여 이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려놓고자 합니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이런 세상에서는 다른 소원을 이루어봤자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당신도 같은 것을 바라고 계신다면, 무익한 싸움을 벌일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겠습니까? "


" 나쁘지 않은 제안이네. "


애시당초 자신도 생각하던 일이다. 거절할 이유는 없다. 인형의 얼굴이 조금 풀어지면서 은은한 미소가 걸린다.


" 그게 진심이라면 말이지. "


적기사 본인의 입으로 말했다시피 세상에는 미친 작자들이 언제나 존재한다. 저렇게 말하는 본인부터가 사실은 세상이 멸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는 미친 놈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요안나가 손에 쥐고 있는 패는 은기사 하나 뿐. 그것을 내어주고 나면 그녀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한 장의 패로, 최대한의 성과를 올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중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다.


" 물론, 우리들은 진심입니다. 어떻게 해야 믿어주시겠습니까? "


" 간단해. 내가 『소원의 열쇠』를 얻게 해줘. 비는 소원이 똑같다면 상관없잖아? "


『소원의 열쇠』를 얻을 수 있는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기사』다. 그것이 은기사라면 배신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 그건 좀 곤란하군요. "


그러나, 요안나를 믿지 못하는건 저들도 마찬가지. 선선히 칼자루를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던져본건 저쪽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반응을 볼 수 있다면 그를 통해 상대방의 형편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 실례지만, 당신이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아직은 당신을 믿지 못합니다. 보통 이런 때에는 계약 마법을 애용합니다만, 유감스럽게도 『기사』를 속박할만큼 강력한 계약 마법은 들어본 적이 없군요. 지금은 그저 믿어달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


요안나는 기다렸지만 인형의 입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설마 싶었지만, 아무래도 정말로 그냥 믿어달라는 것 외엔 대안이 없는 모양이었다. 말도 안돼.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나온다. 상식적으로 이런 얼렁뚱땅인 제안에 넘어갈 놈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는가? 머리가 좀 이상한 놈이라면 또 모를까.


" 못 믿겠다면? "


이런 상식 이하의 녀석, 썩 꺼지라고 일갈하며 궁둥이를 걷어차주고 싶었지만 아직 저쪽의 형편을 짐작할만한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거부 의사를 표하면서도, 아직 교섭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인상을 남기고 기다린다.


" 이틀 뒤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주십시오. 그때까지 좋은 방법을 찾아내신다면 가급적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틀 뒤에도 마음이 변치 않으신다면, 정말 유감스럽지만 불필요한 싸움을 벌일 수 밖에요. "


" 아주 자신만만하네? "


인형은 선전포고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진다는 생각은 눈꼽만치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어째서?


『기사』와 『기사』의 싸움에 절대는 없다. 부분적으로는 강약이 나뉠지 몰라도 결국, 능력치의 총합은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 『기사』를 만든 사람들도 바보는 아닌 만큼, 아무리 괴이한 배분값을 가진 『기사』라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있다. 그런데도 승패를 장담할 수 있다는건...


" 당신을 얕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은기사의 강함에 대해서는 저도 제법 알고 있지요. 하지만 3 : 1이라는 전력차를 극복할만큼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 ...! "


요안나는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저 놈은 지금 전 세계에 다섯 밖에 없는 『기사』 중 셋이 이미 손을 잡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허세일까, 진짜일까?


진짜라면 그녀도 배신의 위험을 감수하고 손을 잡아야했다. 제 아무리 대단한 은기사라도 3 : 1이라면 도저히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짓말이라면? 섣불리 손을 잡았다가 제 발로 함정에 들어가는 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적, 백, 흑이 손을 잡았다고? "


인형은 무슨 소리를 햐나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말했다.


"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와 뜻을 함께 하는건 흑기사와 청기사입니다. 백기사는 동지는 커녕, 반드시 말살해야 할 주적이죠. "


아르모어가 거느리고 있던 『기사』의 『열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색 일색의 소녀였다. 『열쇠』의 색상은 『기사』의 색상을 따라가므로 백기사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아르모어는 요안나가 『기사』를 소유한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권유를 하지 않았으므로 저들과 한 패일 리가 없다. 따라서, 백기사가 동료라는걸 긍정한다면 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인형은 함정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신경쓰이는 말을 지껄였다. 요안나는 마음 속 저울이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어지는걸 느끼며 말했다.


" 그 이야기, 자세하게 말해봐.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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