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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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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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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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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41,677

작성
16.07.01 13:42
조회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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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3쪽

72화

DUMMY

구구구구궁...


폭발이 잦아들고 거대한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과장 조금 보태서 시골 영주의 성 하나쯤은 가뿐히 들어갈 것 같다.

그런 대폭발의 중심부에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껏해야 먼지처럼 흩날리는 조그마한 육편이나 옷 조각 따위가 고작이었다.


휘이이잉...


공기 중으로 녹아내리듯, 서서히 흩어지고 있던 마나 입자들이 아르모어의 의지에 붙잡혀 끌려갔다. 방금전의 대폭발을 일으켰던 마나 중 약 60% 가량이 고스란히 회수됐다.


" 젠...장...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버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 밖에 없었다. 달리 뭘 할 수 있겠는가? 놈에게 접근할 재주도, 적의 마법을 막아낼 능력도, 하다못해 피할 능력조차 없다는게 지금 명백하게 증명이 됐는데.


' 델핀씨와 이네스씨가 당했는데... 이대로라면 나랑 비센나도 당할게 뻔한데... '


그런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신이 이렇게나 무력하게 느껴지는건 처음이었다.

바보처럼 멍하니 놈의 주변에 모여드는 푸른 입자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뒤를 돌아본다. 비센나는 일어서 있었지만 여전히 정상은 아닌 듯,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끝이다.


알버트의 머릿속에 그 절망적인 결론이 깊숙히 새겨졌다. 테오도르는 어디까지 날려갔는지 알 수가 없고 쌍둥이들은 죽었다. 비센나도 정상이 아니고 자신은 무용지물. 하다못해 우리편 『기사』들에게 이 상황을 전할 방법조차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멸을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콰아아!


아르모어는 모든걸 포기한 알버트를 향해 오른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주변을 맴돌던 마나들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몰려왔다.

부채꼴 형상으로 퍼져가는 특성상, 방금 전의 마나 구체보다 위력은 약할테지만 단언하건데 자신의 역량으로 버틸 수 있는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시야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마나 파도를 피할 기동성은 당연히 없었다.


죽는다.


죽을 수 밖에 없다. 그 사실을 직감한 알버트는 힘없이 검을 늘어트리고 눈을 감았다. 그 동안 살아왔던 시간들이 차례차례 스쳐지나간다. 정말이지 과분한 인생이다. 이런 비천하고 한심한 놈이 누리기에는 지나치게 행복한 삶이었다.


콰르르르릉...


대지를 휩쓸어버린 마나의 파도가 서서히 옅어져간다. 지나치게 퍼져버린 마나 입자들은 마치 허공에 녹아들듯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 .....? "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등 뒤가 묘하게 따뜻하고 부드럽다. 알버트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팔뚝까지 떨어져나간 누군가의 팔이, 그의 어께 뒷편에서 뻗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 ! "


기겁해서 돌아보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비센나가 그의 어께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그제서야 알버트는 상황을 이해했다. 위기의 순간, 아직 정상도 아닌 몸을 이끌고 달려온 비센나가 전력을 다해 그를 보호해준 것이었다.


" 후...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우리 꼬마. "


" 어? "


그러나 깊은 숨을 내쉰 그녀는 오히려 알버트에게 감사를 표했다. 알버트가 영문을 몰라 얼빠진 표정을 짓자 비센나는 남은 오른손으로 그의 목에 걸린, AMF가 부여된 목걸이를 들어올리며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었다.


" 정확히는 우리 시누이 덕이려나? "


그랬다. 비센나가 아무리 대단하다고해도 『기사』가 아닌 이상, 즉석에서 만들어낸 방어 마법으로 방금 전의 공격을 막는건 불가능했다. AMF가 위력을 99% 줄여주었기에 겨우 팔 하나 정도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치이이이익...


비센나는 오른손으로 작은 불꽃을 피워올리더니 피가 뚝뚝 떨어지는 왼팔의 상처를 지져버렸다. 어찌나 참을성이 좋은지 자기 살이 타는데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도리어 지켜보는 알버트가 기겁하여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곧 피가 멎자, 그녀는 불꽃을 치우고 오른팔을 슬쩍 휘둘렀다. 그러자 오른쪽 소매 안에서 단검이 불쑥 튀어나와 오른손에 잡혔다.


" 자, 이제 머리도 슬슬 돌아가는 것 같으니 다시 한번 가볼까? "


" 잠깐만! 그 상태로 싸울 셈이야? "


깜짝 놀란 알버트가 그녀를 제지했다. 턱을 강타당한 충격은 그럭저럭 지나간 것 같았지만 체내 마력을 과도하게 쏟아부은 탓인지 온몸의 피부가 하얗게 질렸고 왼팔이 떨어져나간데다 단면을 불로 지지기까지 했다. 1분 1초라도 빨리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할 판국에 싸움은 무슨놈의 싸움이란 말인가? 그러나 비센나는 씩 웃으면서,


" 당연하지. "


하고,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 위... "


" 어차피 여기서 못 이기면 다 끝이야. "


" ..... "


만류하려던 알버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다음 기회가 영원히 없을 수도 있다는걸 그 역시 잘 아는 까닭이다.

이번에 싸울 수 있었던 것도 몇 번의 우연과 놈의 방심이 겹쳐서 일어난 요행일 뿐이었다. 놈이 도망치고자 마음먹는다면 전 세계가 추적해도 잡을 수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국가 규모의 거리를 이동해버리는 놈을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인가?

설령, 백만번 양보해서 놈과 또다시 싸울 수 있게 되더라도 지금보다 쉬울거란 보장은 없었다. 도리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던 놈에게 사냥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든 여기서 놈의 목을 끊어놓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 게다가 지금은 도망치는게 더 힘들 것 같거...든! "


비센나는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알버트의 몸을 옆에서 힘껏 들이받았다. 그의 몸이 옆으로 튕겨져나가고 그 직후, 그가 서 있던 자리에 길쭉한 얼음창이 틀어박혔다.


쿠쾅!


얼음창은 지면과 닿자마자 폭발하여 사방으로 파편을 튀겨댔다. 날카로운 파편이 무방비한 알버트를 덮쳤다. AMF의 보호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전신에 파편을 뒤집어쓰고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 그의 귓가에 비센나의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 일어나! 싸워! 전... "


비센나의 말은 그 뒤로도 몇 마디인가 더 이어졌지만 연달아 터져나온 폭음에 묻혀 알버트의 귀에는 닿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될 것은 없었다. 사실 그녀의 말 따위는 애시당초 필요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파편을 뒤집어쓴 시점에서 실감했다.

죽음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을,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아직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을.


***


하늘에서 길쭉한 얼음창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그 죽음의 비를 한 줄기 질풍이 아슬아슬하게 따돌리며 빠져나갔다. 등 뒤에서 폭음이 연달아 터져나오고 날카로운 파편이 거머리처럼 끈질기게 따라온다.


" 큭... "


폭발의 충격이 장기를 뒤흔든다. 뱃속부터 골통까지 징징 울려대는게 참을 수 없이 불쾌하다. 곧이어 머리가 멍해지고 현실감이 옅어져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느껴진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비센나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여기서 정신줄을 놓으면 파편에 벌집이 되어 죽을 뿐이다.


" 꺼져! "


체내의 마력을 순간적으로 방출한다. 그러자 집요하게 따라붙던 파편들이 반발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빠르고, 편리하지만 효율은 바닥을 긴다. 체내의 마나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렇잖아도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이 흡혈귀도 걱정할만큼 창백해졌다. 달리는 속도가 줄어들고 숨이 더 빨리 차오른다.


아직 적과의 거리는 30M도 더 남아있다.


몸 상태가 최상이라면 한달음에 뛰어넘을 거리지만 지금은 바다 저편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 짧은 단검이 닿을 거리까지 다가가는 동안 마법이 수십발은 더 날아올테지. 그 고난의 길을 뚫고 적의 앞까지 도달한다 한들, 과연 적을 쓰러트릴 힘이 남아있기는 할까?

그럼에도 엘프족의 대전사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렇기는 커녕, 호전성이 넘쳐흐르는 얼굴로 비극의 가시밭길을 호쾌하게 가로지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용감해서? 아니다. 싸움에 미쳐서?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역시 아니었다. 그저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면 죽는다. 도망쳐도 죽는다. 그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같이 죽음으로 연결되어있었다.

내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이겨서 적의 목을 따는 길 뿐. 그러니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길일지라도 필사적으로 메달리는 것이다.


쾅! 쿠쾅! 슈슈슈슉... 쾅쾅...


얼음창이 억수같이 쏟아지고 얼음 가시가 쉴새없이 솟아나온다. 그야말로 천지가 적이다. 시야의 9할 이상이 얼음, 빈 공간은 1할도 채 되지 않았다.

엘프의 대전사는 그 바늘구멍을 귀신같이 비집고 나아갔다. 잠깐이라도 멈추면 그대로 끝나는 죽음의 질주가 펼쳐진다.

상하좌우 전방위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흘려보내며 나아가는 그 모습은 이미 묘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뛰고, 비틀고, 젖히고, 때로는 구르면서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녀가 적의 이목을 끄는 동안, 조용히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던 알버트가 잠시나마 자신의 처지를 잊고 멍하니 바라보았을 만큼 그 움직임은 현란했다.


" 아! "


그러나 아무리 날렵한 몸을 가지고 있어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땅에서 솟아나는 가시들을 모두 피하는건 무리였던 모양이다. 낮게 뛰어올라 가시를 피한 비센나가 딱 착지하려는 지점에 날카로운 얼음 가시들이 머리를 삐쭉 내민다.


퓨슈슉!


" 윽....! "


알버트는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고함을 지르지도, 발을 멈추지도 않았다. 그저 이를 아플 정도로 악물고 달리는 다리에 힘을 더했을 뿐이었다.

분노와 슬픔, 무력한 자신에 대한 경멸로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었지만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비센나가 목숨을 버려가며 줄여준 거리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는 없다. 그 마음이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승화되어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감정의 홍수를 억지로 짓눌렀다.


폭발하는 것은, 복수를 마친 다음이다.


콰앙!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억누르던 알버트의 고막을 폭음이 뒤흔들었다. 들킨건가? 아니, 그런 것치고는 영 엉뚱한 방향에서 들려왔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폭음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 아! "


다시 한번 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먼젓번의 것과 달리 기쁨과 반가움이 뒤섞인 탄성이었다.


촤르르르륵!


위기의 순간, 비센나는 오른손의 단검을 던져 전방에 솟아난 가시를 맞췄다. 가시에 박힌 단검의 검신이 푸른 빛을 내며 고정된다. 그리고 소매 속에 숨겨둔 기계에 마력을 불어넣어 단검과 이어진 줄을 빠르게 잡아당겼다.


쉬익!


그녀의 몸이 줄을 따라 빠르게 날아가며 바닥에서 솟구친 얼음 가시들을 피해낸다. 놈은 새로운 착지 지점에 또다시 가시를 만들었지만 이미 주의하고 있던 비센나는 줄을 잡고 공중에서 몸을 비틀었다. 기세좋게 솟아오른 가시들은 애꿏은 허공만 가르고 지나갔다. 무사히 바닥에 내려선 비센나는 단검의 고정을 풀고 달려나갔다. 이제 적과 그녀의 거리는 7m도 채 남지 않았다.


우웅!


아르모어의 몸 주변에 새파란 마나 덩어리가 수십개나 떠올랐다. 겉보기엔 상당히 화려한 기술로 보였지만 실상은 더 이상 마법으로 정제할 여유가 없어 되는대로 주변의 마나를 뭉쳐놓은 것에 불과했다.

알버트라면 모를까, 그 자신도 마법을 사용하는 비센나가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희망을 발견한 그녀의 눈동자에 의욕이 차오른다.


쾅! 콰쾅! 부우웅!


수십개의 마나 덩어리가 그녀를 노리고 날아든다. 단순히 직선으로 날아오는게 아니라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한 궤도를 그리며 날아온다. 마나 덩어리가 지나간 길에는 마치 유성의 꼬리처럼 새파란 궤적이 남아 시선을 더욱 혼란시켰다.

그러나 수십에 달하는 숫자도, 현란한 움직임도, 궤적의 눈속임마저도 엘프의 대전사를 막아서기엔 역부족이었다.

달리고, 피하고, 구르고, 때로는 뛰어넘어가면서 비센나는 착실하게 거리를 좁혀갔다. 이제 두 사람의 거리는 말 그대로 지척이다. 공격 가능한 거리까지, 앞으로 두 걸음.


투콰앙!


더 이상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아르모어는 남은 구체들을 비센나의 정면에 모아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강력한 충격파가 전방으로 퍼져나가고 시퍼런 마나 입자들이 연기처럼 뿜어져나와 시야를 가렸다. 그 사이 아르모어는 미련없이 등을 보이고 뒤쪽으로 전력질주했다.


" 으아아아아아! "


그 앞을, 조용히 그의 배후까지 달려온 알버트가 괴성을 내지르며 막아섰다.


작가의말

메인탱이 없으니까 딜러가 회피탱으로 각성.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47 로비호도
    작성일
    16.07.01 17:51
    No. 1

    너무 처절 한듯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스마우그
    작성일
    16.07.04 23:25
    No. 2

    군대갔다가 정말 오랜만에 왔는데 아직 연재중이라 기쁩니다. 허헣ㅎ 저번에 다섯기사 이야기말고 다른 소설 소재가 뭐였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평범 끝나고 두가지 후보중에.... 그게 기대되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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