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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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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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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2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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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82화

DUMMY

선택을 강요당한 바티용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과연 이 싸움은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테오도르의 말이 사실이라면 승산은 없었다. 단순한 개죽음이다. 설령, 능력의 비용이 50%고 흡수율이 20%라 치더라도 청기사가 파괴한 『기사』의 수는 백, 청, 적의 3기이므로 110%의 성능이 되어버린다. 물론, 미치지 않은 이상에야 그렇게까지 이득이 없는 능력을 채용할 이유가 없으므로 실제 흡수율은 훨씬 더 높을 것이다.


' 왕자의 추측이 틀렸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 '


은기사의 능력은 잘 모르겠지만 백기사의 능력을 사용한 것은 바티용 자신의 눈으로 분명히 확인했다. 또 후작이 조종하던 때와 비교해서 청기사의 성능이 갑자기 올라간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청기사의 능력이 파괴된 『기사』의 능력을 흡수하는 것이라는 추측은 설득력이 있었다.


" 바티용 경. "


갈등하는 그에게 테오도르가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그는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한 얼굴로 설득을 시도했다.


" 청기사가 소원을 이루더라도 보셰트의 앞날은 충분히 밝을거라 생각해. 재앙이 끝난다고 해서 모든게 갑자기 제자리로 돌아가는건 아니잖아. 부족하지만 공중도시에서 계속 식량을 공급받아온 본국과 그 최소한의 식량도 확보하지 못했던 외국의 상황은 천지차이야. "


" 그렇게 말씀하시니 마음이 조금 놓이는군요. 제... "


" 그러나. "


테오도르는 ' 제가 사라지더라도... ' 하고 말하려던 바티용의 말을 끊어버리고 설득을 계속했다.


" 외국보다는 낫다고 하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진 것 역시 사실이야. 오히려 지방 귀족들이 완전히 몰락해버린 외국과 달리 본국의 지방 귀족들은 미약하나마 세력을 유지하고 있어서 더 위험하지. 이대로 재앙이 끝나고, 중앙이 통제하지 못하는 채로 시간이 흘러버린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어?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경이 필요해. 경과 같은 충신들이 중앙을 휘어잡고 형님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어야 비로소 지방을 통제하고 보셰트가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어. 그러니 부탁하건데, 이런 승산없는 싸움에 소중한 목숨을 내던지지 마. "


바티용은 그의 눈빛, 그의 목소리, 그의 모든 것에서 거짓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왕자는 진심으로 주군을 위해, 나라를 위해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렇기에 기사는 감격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 이 보잘것 없는 자를 그토록 높이 평가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허나, 소신은... "


콰드득!


" 뭐, 어차피 거절할 줄 알았어. 목이 달아나도 안 바뀌는 그 고집이 어디 가겠어? "


정중하게 거절의 뜻을 밝히려던 바티용은 갑자기 시야가 기울어지자 크게 당황했다. 그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흑기사와의 동조가 끊어지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곧이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약간의 충격이 느껴지고, 무언가가 기체를 붙잡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 뭐, 무, 무슨!? "


뿌드드드득!


그리고, 흑기사의 흉갑이 강제로 열리며 모래 바람과 함께 조종석 내부로 빛이 쏟아져들어왔다. 갑자기 사방이 밝아진 탓에 바티용은 눈이 부셔 얼굴을 가렸다. 이윽고 눈이 빛에 익숙해지고, 그의 감각도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너무나 당혹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 무슨... "


흑기사의 머리가, 팔이, 다리가 모래 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단면이 매우 깔끔한 것이 예리한 무언가로 단숨에 절단당한 듯 보였다. 그리고 허공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기간트의 팔이 찌그러진 흑기사의 흉갑을 쥐고 있었다.


" 설마!? "


바티용은 그 기간트의 팔이 붉은 갑주로 감싸여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허공에서 팔만 덜렁 나타나는 괴상한 모습이나 순식간에 흑기사를 해체헤버린 위력, 그리고 붉은 색.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만한 기간트는 테오도르가 보유한 적기사 밖에 없었다.


" 어째서... 아니, 어떻게!? "


조종석을 파괴하지 않고 기체만 망가트린 것을 보면 그 의도는 명백하다. 그러나 적기사는 과도한 능력의 대가로 전투력을 상실한 실패작이 아니었던가? 아예 전력으로조차 계산할 수 없다고, 백기사와의 결전에서조차 꺼내지 않은 결함품이 어떻게 흑기사를 순식간에 조각낼 수 있단 말인가!


" 멋진 표정이야, 바티용 경. 사진기를 가져오지 않은게 그렇게 유감스러울 수가 없군. 아아, 혹시 오해할까봐 먼저 말해두겠는데 나는 경을 속인 적이 없어. 적기사는 분명히 총 능력치의 90% 이상을 능력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투자했고, 기체 성능에는 10% 밖에 투자하지 않은 약골 기체가 맞아. "


" 하지만...! "


" 정답은 ' 능력에 투자한 능력치를 다시 기체 성능으로 되돌리는 능력 ' 과 ' 기체의 모든 성능을 양 팔과 무기에 집중하는 능력 ' 이야. "


바티용은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렇다. 적기사는 성능이 형편없는 대신 '능력을 만들어내는 능력' 이라는 어처구니 없이 범용성이 높은 능력을 손에 넣었다. 당연히 저런 능력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야 했다.


' 왕자님을... 너무 믿었어... '


테오도르가 말한 ' 자신의 역량 밖의 능력은 만들 수 없다. ' , ' 자신의 역량은 하잘것 없다. ' 는 말 두 마디에 현혹되어 적기사는 전력 밖이라고 경솔하게 결론을 내려버렸다.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다고 믿었으니까.


" 너무 나쁘게 생각하진 마. 난 그저 이렇게 해서라도 쓸데없이 경의 목숨이 허비되는걸 막고 싶었을 뿐이야. "


" .....감사... 합니다... "


바티용은 고개를 떨군 채, 왕자에게 감사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 달리 뭘 어쩌겠는가? 흑기사를 잃은 시점에서 그의 선택권은 사라졌다. 그저 패배자답게, 승자의 뜻에 굴복할 뿐. 동료에게 배신당해 이빨과 발톱이 뽑힌 가련한 맹수에게 사냥꾼은 냉혹하게 말했다.


" 이야기는 끝났나? 그럼 어서 꺼지시지. 그 고철 덩어리와 함께 뭉개지기 싫으면 말이야. 젠장, 더럽게 밍기적거리는군. 그냥 가만히 있어라. 내가 치우고 말지. "


" 윽! "


청기사의 손가락이 흑기사의 조종석 안으로 들어와 바티용의 허리를 잡아챘다. 그리고 고정장치 채로 우악스럽게 그를 뽑아내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그 난폭한 행동에 혀를 찬 테오도르는 적기사의 팔을 소환해 날아가는 바티용을 받아냈다.


쿠웅!


곧이어 주인을 잃은 흑기사의 몸통 위로 우악스러운 도끼날이 떨어져내렸다. 이미 장갑을 보호하는 방어 마법이 꺼진 탓인지 몸통은 두부처럼 저항없이 갈라졌다. 이렇게 흑기사를 끝장낸 청기사는 마지막 『기사』의 소유자인 테오도르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 자, 이제 네 차례다. 어쩔테냐? 순순히 『기사』를 포기할테냐? 아니면 그 다양한 능력들을 믿고 한번 덤벼볼테냐? "


테오도르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설마, 그럴거면 흑기사와 같이 덤볐겠지. 얌전히 포기할테니 안심해. 다만, 능력을 잃기 전에 해둬야 할 일이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줘. 뭐, 그것조차 싫다면 덤벼도 상관은 없지만, 그때는 세계를 무대로 한 숨바꼭질을 각오해야 할걸. 적기사의 능력을 얻어 본 너라면 이게 빈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


" 흥. "


그의 협박에 알버트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더 이상 뭐라하지는 않았다. 테오도르는 그에 만족한 듯, 싱긋 웃어보이고는 적기사로 받아내었던 바티용을 자기 곁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초능력을 발휘해 그의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는 그의 어께에 손을 얹고 마지막 말을 전했다.


" 몸은 괜찮은 것 같네. 다행이야. 조금 갑작스럽긴 하지만 이제 형님 곁으로 보내줄게. 사실 『소원의 열쇠』가 작동하는걸 같이 봤으면 싶지만, 적기사가 없어지면 여기서 돌아갈 길이 막막해서 말이야. "


" 저야 괜찮습니다만... 왕자님은 어떻게 하시구요? "


" 나 혼자라면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그보다 돌아가면 형님에게 재앙이 끝났다는 것과 매번 식량을 전달하던 곳에 남은 식량을 다 놓아둘테니 나라를 위해 요긴하게 잘 써달라고 이야기나 전해줘. "


" 알겠습니다. "


바티용은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답과 동시에 자신의 몸이 산산히 분해되어 어디론가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기겁했다. 그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이미 목이 사라진 다음이었다. 곧이어 의식이 끊기고...


" 아악! "


다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는 보셰트의 왕성, 팔라우 궁의 낮익은 정원 한복판에서 비명을 지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


" 자, 그럼 할일도 다 했겠다 이만 끝내지. "


바티용을 공간이동시킨 테오도르는 어딘가 후련한 얼굴로 기지개를 쭈욱 펴고는 적기사를 소환했다. 곧 붉은 갑주를 입은 금속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기사』와 차이점이라곤 색깔 밖에 없는, 그야말로 공장에서 찍어낸 양산품이란 느낌의 기체다.

청기사는 도끼를 든 채, 그 주인에게 버림받은 기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테오도르에게 물었다.


" 어째서 날 죽이지 않았지? "


" 응? "


" 기억을 되찾은건 네가 먼저였다. 마음만 먹었으면 날 해치우는건 간단했을텐데. "


" 아... 그거 말이야? "


바른대로 실토하자면 테오도르는 기억을 되찾고 자신의 급한 문제들을 해결하자마자 알레크로 날아가 복수를 했다.

알버트의 부모를 죽이고, 본래 그가 손에 넣었어야 할 청기사를 그의 누나에게 넘어가게끔 손을 썼으며 그녀를 이용해먹다 버릴 계획을 착실하게 준비했다.

또한 본인은 납치해서 기억을 조작한 뒤, 비천한 고아로 만들어서 거리의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신세로 전락시켰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그가 가장 사랑하던 사람들, 애인과 누나를 서로 죽이게 만들게끔 판을 짜기도 했다.

그냥 상황이 꼬여서 잘 안풀렸고, 그 뒤로 백기사가 본래의 역사에서 벗어난 행보를 보이면서 전력을 하나라도 더 손에 쥐고 있기 위해 살려두었을 따름이다.


" 나는 내 과오를 되돌리고 싶었어. 내가 저질렀던 잘못들을 없던 걸로 하고 싶었지. 그래서 복수할 수 없었던거야. 네 배신이 지워지지 않았다는건, 곧 내가 저지른 과오들도 없어지지 않았다는거니까. "


그러나 이제와서 굳이 진실을 말해봤자 쓸데없이 원수 하나를 만들 뿐이다. 테오도르는 적당히 그럴듯한 이유를 생각하여 대답했다.


" .....그런가. "


무언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는지, 알버트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청기사를 움직여 도끼를 들어올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렇다면 나도 미안하다고는 하지 않겠다. 너에게도, 그 기사에게도. "


그리고는 도끼를 내리쳐 적기사를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깔끔하게 반으로 갈랐다. 동시에 테오도르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더니 그의 몸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맥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 뭐야? "


알버트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는지, 그는 놀란 얼굴로 빛나기 시작한 청기사에서 내려와 쓰러진 테오도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 우악스러운 팔힘으로 목을 잡아뽑았다. 그러자 피처럼 붉은, 그러나 물처럼 묽은 액체가 쏟아져나왔다.


" 이건... 인형이잖아! "


그랬다. 지금까지 줄곳 테오도르라고 믿어왔던 그것은 다름아닌 고대 기술로 만들어진 정교한 인형이었다. 그제서야 알버트는 그가 왜 쌍둥이가 보이지 않는데도 아무런 동요가 없었던 것인지 깨달았다.


" 젠장, 약삭빠른 놈 같으니. "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혀를 내두르면서 망가진 인형을 내팽겨쳤다. 그리고는 손을 흔들어 인형의 피를 툭툭 털어내면서 피식 웃었다.


" 잘 살아라, 망할 놈아. "


그리고 『소원의 열쇠』로 변모하기 시작한 청기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다시 한번 승자의 자리를 쟁취한 사내를 환영하듯, 『열쇠』는 찬란한 빛을 내뿜어 그를 집어삼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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