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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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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3,221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4.05.10 17:28
조회
1,196
추천
28
글자
9쪽

하얀 기사 이야기 Ep.0 - 이야기의 시작 (end)

DUMMY

도시 저편에서 갑작스럽게 솟아난 빛의 기둥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곧이어 귀가 터져나갈 듯한 굉음과 눈이 멀어버릴 듯한 섬광이 천지를 가득 매웠다.


" 크으윽! "


" 이건 또 뭐야!? "


굉음과 섬광의 뒤를 이어 제자리에 서 있기조차 힘들만큼 강력한 폭풍과 지진이 사람들을 덮쳤다. 그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바닥에 바싹 달라붙은 채, 재앙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몇 초 후,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대지가 안정을 되찾자 사람들은 하나 둘씩 일어나 갑작스러운 재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소란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꼿꼿히 서 있었던 한 사람, 백기사 클로디아 폰 아데발트는 하얀 입자로 변해 흩어져가는 자신의 갑옷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 공녀님, 괜찮으십니까? "


클로디아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지만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는걸 감지한 로한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공녀는 말없이 돌아서더니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괜찮아, 문제없어. 그보다 남은 사람들을 추슬러서 도시 밖으로 빠져나가는게 급선무야. 어영부영 시간을 낭비했다가 흩어져있던 괴물들이 다시 뭉치기라도 하면 이번에야말로 전멸할지도 몰라. "


" .....예. "


말은 문제없다고 하지만 뭔가 문제가 생긴게 틀림없다. 그것도 타인에게 알려져서는 곤란한 문제가. 그 사실을 깨달은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직 듣지 못한 공녀의 답을 듣고 싶었지만 역시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판단한 로한은 능숙하게 자신의 욕구를 찍어누르고 그녀의 충복으로 돌아와 잔존 병력을 수습하여 하객들을 인솔하기 시작했다. 하객들도 빨리 도시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과 안전을 위해선 뭉쳐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데 동의했으므로 순순히 병사들의 인솔에 따라 행렬을 이루었다.


" 저게 뭐야? "


" 고양...이? "


" 무슨 놈의 고양이가 저렇게 커? "


그러나 행렬은 얼마가지 못하고 멈춰섰다. 길 반대편에서 거의 송아지만한 검은 고양이 한마리가 나타나 사람처럼 두 발로 선 채 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묘하게 귀여운 외모 때문인지 사람들은 호기심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고양이의 오른쪽 앞발에 꼬치처럼 꿰여져 있는 시체를 발견하곤 이내 표정을 굳혔다.




털썩.


" 엘...린? "


고양이가 내던진 시체의 얼굴을 알아본 클로디아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백기사의 다섯 날개 중 하나이자 그녀가 구원을 요청하라고 따로 보냈던 엘린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 거짓말. "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엘린이, 비행능력과 가속능력을 보유한 초능력자가, 다섯 날개 중에서도 가장 생명력이 질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멀쩡하게 살아돌아왔던 그 엘린이 고양이의 발톱에 꼬치처럼 꿰여 죽었다. 죽어버렸다.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되버렸다.


" 그럴 리가 없어! "


현실을 부정하며 달려나가려던 클로디아를 제치고 레이라 루스가 질풍처럼 달려나갔다. 감히 자신의 전우를 죽인 괴물을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죽이기 위해 질주하던 그녀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가속한다. 분노한 이안 루스가 마법으로 서포트한 것이다.


촤르르르륵!


" !? "


눈 깜짝할 사이에 고양이 괴물의 앞까지 도달한 레이라는 살의를 가득 담아 주먹을 휘둘렀다. 두터운 철판도 일격에 뚫어버리는 살인펀치가 방어할 틈도 주지 않고 쏘아져나간다. 그러나, 그녀의 주먹은 고양이의 왼쪽 눈 앞에서 멈춰섰다. 증오스러운 노란 안구에서 불과 40m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붙잡혀 조금도 나아가질 못했다. 레이라가 주먹을 휘두르기 위해 멈춰선 찰나의 순간, 바닥에서 솟아오른 쇠사슬이 그녀의 몸을 철저하게 구속했던 것이다.


" 나가! 나가! 나가란 말이야! 왜 안되는건데!? "


적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포박당한 아내의 모습에 이안 루스는 다급히 보호의 장벽을 펼쳤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마법에 구현되질 않았다. 주변의 마나 농도는 정상, 안티 매직 필드가 펼쳐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마법이 구현되지 않는다면 레이라를 구속한 쇠사슬에 특이한 능력이 있다고 밖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 젠장, 레이라! "


이안은 답답한 마음에 마법을 집어치우고 직접 달려나갔다. 자신의 육탄전 능력이 일반인 이하라는 사실 따윈 떠오르지도 않았다.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는 앞 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덤벼들었다. 그러나, 레이라를 아끼는 것은 그 만이 아니다. 보통의 소년처럼 달려가는 그를 세 줄기의 돌풍이 추월했다.


" 이안, 레이라는 우리한테 맡기고 서포트를! "


클로디아, 로한, 마우론.


일당백의 용사들이 전우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긴 클로디아의 지시에 자신의 역할을 상기한 이안은 그 자리에서 멈춰서 재빠르게 마법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 마법이 발동되는 일은 없었다.


촤르르르륵!


또다시 바닥에서 솟아나온 쇠사슬이 피할 겨를도 주지 않고 전사들을 속박했다. 달려들던 백기사와 그 심복들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하객들까지 남김없이 포박했다.


" 이게 대체... 뭐야...!? "


묶이기는 커녕, 몸에 닿는 순간부터 전신의 기운이 빠져나간다. 무기력한 상태로 쇠사슬에 포박당하니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다. 완전히 무력화된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있을 때, 거대 고양이의 뒷편에서 한 사내가 터벅터벅 걸어나왔다.


키이잉...


사내의 오른손에 들린 검에서 불길한 붉은 빛이 뿜어져나왔다. 마법사들은 그 검이야말로 이 정체불명의 쇠사슬들을 구현한 범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걸 알았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들은 이미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무력화된 상태였다. 원인을 알아봤자 제거할 수단이 없는 것이다.


" ...... "


사내의 입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흘러나온다. 레이라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거라 생각하고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이내 괴한의 시선이 엉뚱한 곳에 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마법을 통해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 같다. 유쾌한 듯이 누군가와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누던 사내는 거대한 고양이를 향해 무어라 말을 건내더니 서서히 검을 들어올렸다.


" ....! "


촤악!


날카로운 칼날이 레이라의 고운 목을 자비심 없이 갈라놓는다. 수많은 전장에서 전설을 남겨온 투사의 최후치곤 지나칠 정도로 시시한 죽음이었다. 빛이 꺼져가는 망자의 눈동자에 한순간 살인자의 눈동자가 비쳐보였다. 그 광물과도 같이 괴상한 눈동자에서 엿보이는 감정은, 그저 귀찮음 뿐이었다.


" !!!!!!!! "


레이라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사람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동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녀의 남편인 이안 루스일 것이다. 그의 마음속은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분노로 가득 차, 거의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이었지만 격렬한 정신과 반대로 쇠사슬에 구속당한 육체는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그저 쉴새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만이 그의 시간이 멈추지 않았음을 대변해주고 있을 뿐이다.


촤악! 촤악!


레이라에게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로한과 마우론의 머리가 차례로 떨어진다. 역전의 용사에 걸맞는 최후의 전투 따윈 허락되지 않는다. 비명한번 질러보지 못한 채, 도살장의 가축처럼 무력하게 살해당할 뿐이다. 눈 앞에서 소중한 부하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던 클로디아의 몸이 분노로 떨린다. 격렬한 분노에 백기사의 힘이 반응한 것인지 쇠사슬이 빼앗아갔던 기운이 되돌아왔다.


철그럭.


" 크윽! "


물론, 그렇다곤 해서 몸을 포박한 쇠사슬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힘을 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만 클로디아의 힘으로는 쇠사슬의 구속을 벗어날 수 없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원한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 뿐이었다.


" 네놈은... 누구냐...? 대체 누구길래,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거냐!? 대답해라! "


원망과 증오와 절망이 뒤섞인 감정의 덩어리가 소리라는 형태로 퍼져나간다. 그 피를 토하는 듯한 질문을 받은 사내의 입술이 서서히 열린다. 그러나,


촤악!


대답보다 먼저 칼날이 떨어져내린다. 부하들의 피로 물든 칼날이 하얀 기사의 목을 가르고 지나간다.


구원은 없다.


기적은 없다.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와 치열한 격전 끝에 복수를 이뤄내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그토록 위명이 자자했던 백기사, 클로디아 폰 아데발트의 최후도 그녀가 살아 생전에 숱하게 베었던 잡병들의 최후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살아있는 전설에 종지부를 찍은 사내는 클로디아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 싫어. "


하고, 정말 귀찮다는 듯한 얼굴로 짧막하게 대답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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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기사 이야기 Ep.0 - 이야기의 시작 (end) +5 14.05.10 1,197 2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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