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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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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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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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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2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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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하얀 기사 이야기 Ep.0 - 이야기의 시작 (2)

DUMMY

불과 열흘 전만해도 시체가 길거리에 굴러다니던 도시 무바라크는 처참한 참사의 흔적을 털어내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귀빈들을 맞이하느라 몸살을 앓고 있었다. 거리마다 귀족을 태운 마차가 넘쳐나고 수행원들과 호위 기사들로 광장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전부 엘로얀 최고의 명문가, 아데발트 공작가와 발디스 공작가의 결합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하객들이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지방의 이름없는 하위 귀족들은 기껏 먼 길을 떠나와놓고 자리가 없어서 결혼식장에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였다. 결혼식은 무려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신전에서 치러졌는데도 말이다!


그처럼 바글바글하게 몰려든 하객들을 보호하고 도시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아데발트 가문은 무려 1500명의 정예병을 투입했다.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하객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하는 것은 주최측의 체면을 크게 손상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명예를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는 귀족들의 습성을 생각하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임무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막중한 임무를 짊어진 총 책임자이자, 백기사의 심복으로 유명한 ' 백기사의 다섯 날개 ' 의 일익, 로한 키벨린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비처럼 쏟아붇는 포탄 속을 태연하게 걸어다녔다던 소문과 달리 그의 시선은 마치 겁을 먹은 아이처럼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시선과 마주친 거구의 사내는 피식 웃더니 로한의 어께를 가볍게 두드리며 격려했다.


" 거 형님답지않게 뭘 쫄아붙어 있는거요? 까짓거 꼬여봤자 죽기밖에 더 하우? 어차피 내놓고 다니는 목숨인데 날아간들 대수로울 것도 없잖소. 그러니 궁상떨지 말고 평소처럼 화끈하게 저질러 봅시다. 그게 우리 전문 아니요? "


로한과 마찬가지로 다섯 날개의 일익이자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 마우론 탈렉의 익살 섞인 격려에 석상처럼 경직되어있던 사내의 표정이 약간 펴진다. 뒤이어 얌전한 인상의 소년과 온화한 인상의 여인이 거들었다.


" 탈렉의 말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언제 이것저것 따져보면서 싸웠습니까? "


" 맞아요. 무작정 부딛쳐보는거야말로 우리다운 일이에요. "


다섯 날개의 일익이자 동료 중, 유일한 기혼자인 이안 루스와 레이라 루스의 격려가 끝나기 무섭게 로한의 목에 스스럼없이 팔을 휘감은 소녀, 백기사의 마지막 날개인 엘린은 그 거칠고 대담한 행동과 어울리지 않게 얌전하고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주세요. 우리는 당...신 편...이니까. "


동료들의 격려를 한몸에 받은 로한의 눈동자에 두려움의 빛이 사라졌다. 결행 직전까지도 갈대처럼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고 각오를 다진 얼굴로 동료들을, 자신의 바보짓에 어울려 준 1500명의 공범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주사위를 던진 것이다.


" 좋아, 가자! "


병사들이 터준 길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들의 발걸음엔 조금의 망설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찾아볼 수 있는 거라곤 전장을 휩쓸고 다니던 역전의 용사들의 위풍당당한 행진 뿐이다. 마침내 한창 결혼식이 진행중인 신전 안에까지 도달한 로한은 이내 자신이 기가막힌 타이밍에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 신부, 클로디아는 신랑, 로지아스 폰 발디스의 아내로서 평생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까? "


" 잠깐! "


결혼식의 핵심, 신랑과 신부가 영원의 언약을 맺기 직전에 돌입한 것이다. 아직도 상황을 알지 못하는 대주교의 엄숙한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로한의 다급한 목소리가 신성한 결혼의 예식을 망쳐놓았다. 워낙 식장이 큰데다가 사람으로 바글바글 했던 탓에 입구 주변의 소란으로 그쳤던 다섯 날개 맴버들의 난입이 모두의 주목을 받는 순간이었다.


" 로한 키벨린!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지금 네놈이 무슨 짓을 저지른건지 알고는 있는건가! "


가신이 주군의 결혼식에 난입하여 진행을 방해하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폭거에 내부 호위를 책임지고 있던 아데발트 가문의 전투 마법사 스커드 드 멜자드가 노기 가득한 얼굴로 일갈했다. 상대가 클로디아의 심복들만 아니었더라도 말보다 마법이 먼저 날아갔을만큼 그의 분노는 격렬한 것이었다. 그러나 로한은 이 늙은 마법사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주군이자 연모의 대상인 클로디아 폰 아데발트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 감히 공녀님의 혼사를 가로막은 무례, 죽음으로서 갚겠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한 가지만 대답해주십시오. 공녀님께선 정말로 이 결혼을 바라시는겁니까? 진정으로 발디스 가문의 공자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을만큼 사랑하시는겁니까? "


이 뜻밖의 이벤트를 바라보는 하객들의 시선은 놀랍게도 '불쾌함'이 아니라 '흥미로움'이었다. 물론, 거대한 모욕을 당한거나 마찬가지인 아데발트 가문의 귀빈들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격분한 모습이었지만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하객들, 심지어 신랑의 가문인 발디스 공작가의 귀빈들마저도 흥미진진한 눈으로 신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이 자리에서 진심으로 두 가문의 결합을 환영하는 하객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 동안 엘로얀의 정치판은 아데발트 가문과 발디스 가문이 서로 대립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대립의 양 극단이었던 두 거대 가문이 결혼을 매개로 연합한다면 국왕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절대 권력이 탄생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환영할만큼 머리가 텅텅 비어있는 하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놈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결혼식을 망치려 들고 있으니 싫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내심 공녀가 수많은 애정극의 신부처럼 결혼식을 파토내고 사랑의 도피라도 떠나주길 바랬다.


" 나는... "


신전 안의 모든 시선을 한몸에 받은 공녀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첫마디에 담긴 깊은 고민을 읽어낸 사람들의 기대감이 더욱 높아진다. 베일 아래로 쉴새없이 흔들리던 여인의 눈동자가 세상에서 가장 긴 수 초간의 방황을 마치고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 나는...! "


" 힘들게 대답할 필요없어. "


공녀의 대답이 흘러나오려는 순간, 입구에서 들려온 우렁찬 목소리가 대답을 가로막았다. 대담하기 짝이 없는 결혼식 난입을 계획한 백기사의 다섯 날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제 2의 난입자를 향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검은 머리의 사내는 여유로운 태도로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그 기묘한 눈을 만인의 앞에 당당하게 내놓았다.


" 누구냐! "


마치 광물과도 같은 무기질의 눈동자와 마추진 다섯 날개의 맴버들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며 일제히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수많은 전투를 거치며 발달한 그들의 직감이 머릿속에서 쉴새없이 위험 경보를 울려댔다. 강적, 과거 그들을 몇 번이나 궁지로 몰았던 괴물 같은 적들조차도 이처럼 위험한 느낌을 주진 않았다. 어쩌면 오늘 여기서 뼈를 묻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긴장하던 다섯 맴버의 뒷편에서 낮익은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비키세요. 당신들이 감당할 상대가 아니에요. "


뚜벅뚜벅


무표정한 얼굴로 신부의 곁을 지키고 서 있던 소녀가 그렇게 말하며 기계처럼 정확한 보폭으로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무기조차 들고 있지 않은 소녀가 역전의 용사들에게 건내기에는 참으로 부적절한 말이었지만 누구하나 반박하지 않고 순순히 좌우로 비켜섰다. 소녀와 괴한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다섯 날개의 맴버들이 물러서자 소녀와 괴한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 다시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새로운 주인 후보님. 고작 열흘만에 몰라보게 달라지셨네요. 잠들어있던 힘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신 모양이죠? 게다가 소생의 나뭇가지까지 제거해버리다니, 점점 더 당신의 능력에 빠져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힘에 취하신게 아닙니까? 아니면 힘을 얻기 위해 지능을 포기해버리신겁니까? 고작 그 정도의 능력으로 정면돌파를 선택하다니, 자신감 과잉도 정도가 심하시군요. 유감입니다, 실망입니다. 암습이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는데 자만심 때문에 망쳐버리시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모처럼 찾아낸 전도유망한 주인님 후보를 제 손으로 뭉개버려야 하다니 슬퍼서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기분입니다. "


말과는 달리 소녀의 표정은 전혀 유감스러워보이지 않았다. 눈물은 커녕, 감정의 조각조차 찾아볼 수 없는 눈동자에 티 하나 없는 새하얀 칼날이 비쳐보인다. 손바닥에서 검을 뽑아낸 검을 들고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소녀를 보며 괴한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가볍게 바닥을 굴렀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막대한 마력이 흘러나오며 신전의 벽면을 뒤덮었다.


화르르륵!


멀쩡한 벽과 천장에서 별안간 시퍼런 불이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벽과 천장이 '증발'해버렸다. 졸지에 야외로 나와버린 하객들의 시야에 사라진 벽면만큼이나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크르르륵...


괴물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엘로얀의 국민들에겐 문헌으로만 들어왔던 각양각색의 괴물들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하객들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곧이어 백기사의 다섯 날개 중에서도 가장 넓은 시야를 가진 레이라 루스의 입에서 절망적인 숫자가 흘러나왔다.


" 대충 보기에도 최소한 3천 이상...이에요. "


바깥에서 신전을 지키던 정예병들은 이미 갈가리 찢겨진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괴물들의 이빨과 널브러진 병사들의 시체를 번갈아본 로한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들이 결혼식 도중에 난입했던 것은 불과 5분 전의 일이다. 아무리 숫적 열세가 있었다곤 하나, 아무리 괴물을 상대한 경험이 없었다곤 하나, 1500명이나 되는 정예병들이 불과 5분만에 소리없이 전멸한다는건 상식을 한참 벗어나는 일이었다.


" 자만심이 뭐 어쨌다고? "


" 죄송합니다, 제 착각이었던 것 같군요. "


상식을 국 끓여먹은 부조리의 화신이 비웃자 인형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사과하고는 현 주인을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 아가씨, 지금 상태론 안될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인형, 애냐의 전투능력은 의심할 바 없이 톱클래스다. 전 세계를 통틀어 그녀와 1:1로 대적할 수 있는 생물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3천의 괴물들 때문이 아니다. 방금 전, 신전을 증발시켜버렸던 푸른 불꽃을 통해 괴한의 마법적 기량이 깊이를 측량할 수 없을만큼 깊고 심오하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토록 마법 문명이 발달했던 고대의 마법사들 중에서도 이 사내만큼 고등한 마법을 구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뭐냐고 정말. "


인형의 질문을 받은 신부는 불쾌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몇달 전부터 공들여 준비한, 비록 내적 갈등이 심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손꼽아 기대했던 결혼식이 엉망진창이 되버린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받는 처지가 되다니, 여자의 행복을 짓밟는 것도 정도가 있다.


파앙!


클로디아의 오른발이 거칠게 바닥을 구르자 바닥에서 솟아오른 새하얀 입자가 신부의 드레스를 뒤덮었다. 이윽고 그녀의 몸을 감쌌던 입자들이 사라지자 엘로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몇 일이고 철야를 감행해가며 디자인한 순백의 웨딩 드레스 대신 투박하고 육중한 백색 갑옷이 빈 자리를 채웠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장을 마친 공녀는 얌전한 신부의 탈을 벗어던지고 전장을 종횡무진하던 시절로 돌아와 패기넘치는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 애냐! "


" 예. "


" 한도까지 밀어줄테니 3분 안에 책임지고 치워버려. "


" 그건 아무래도 무리... "


" 까라면 까! "


주인의 터무니없는 억지에 가볍게 한숨을 내쉰 인형은 그때까지도 여유만만한 얼굴로 기다려주던 괴한을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 보시다시피 이런 처지라 적당히 어울려드릴 순 없겠네요. 처음부터 전력으로 나갈테니 방심하다 당하지 말아주세요. "


" 글쌔, 아무리 방심해도 너한테 당할 것 같진 않은데? "


" 어쨌거나 전 경고 했습니다. "


기껏 경고해줘도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상대를 보고 다시 한번 가벼운 한숨을 내쉰 애냐는 어디선가 솟아난 햐안 쌍검을 거머쥐고 자세를 잡았다.


" 그럼, 갑니다! "


콰앙!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애냐의 푸른 눈동자가 백색으로 물들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한순간에 마력치가 터무니없이 폭증한 것이다. 단순히 출력만 바보처럼 올라간게 아니라 신체의 내구도 또한 넘쳐나는 힘을 감당할 수 있게끔 강화됐다. 대체 뭘로 만들었길래 저런 일이 가능한걸까? 그가 내심 감탄하며 꼭 한번 뜯어서 조사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닥에 크레이터가 생기며 인형의 몸체가 포탄처럼 쏘아져나갔다.


쿠웅!


양 팔을 교차시켜 휘두른 쌍검이 사내의 목을 향해 날아든다. 특별한 기교도 뭣도 없다. 검술을 갓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조차 간단히 따라할 수 있는 단순한 동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터무니없이 빠른 속도가, 상식을 초월한 거력이 조악한 참격을 필살의 기술로 바꿔놓는다. 사람은 커녕, 두터운 철갑으로 뒤덮힌 기간트조차 간단히 베어버릴 수 있는 그 일격은 사내가 내뻗은 오른손에서 뿜어져나온 우윳빛 장벽에 가로막혔다.


쿠구구구구... 쾅! 쾅! 쾅!


그러나 보호막을 부수지 못했다고 해서 그 막대한 운동 에너지가 어디가는건 아니다. 힘을 감당하지 못한 바닥이 갈려나가며 괴한의 몸뚱어리가 보호막째로 날아가버렸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사내의 뒤에 있다가 휘말린 괴물 백여마리의 몸뚱어리가 장난감처럼 뜯겨져 나갔다. 그들의 신체 강도가 강철에 필적한다는걸 감안하면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러고도 기세가 죽지 않은 사내의 몸은 진행경로에 있던 건물을 셋이나 부숴먹고서야 간신히 멈춰섰다. 그 2초 남짓한 짧은 시간 사이, 공중으로 도약한 인형은 하객들을 포위한 괴물들을 향해 새하얀 칼날을 억수처럼 쏟아부었다.


키에에에엑!


꾸웍! 쿠웍!


쿠아아아악!


사방에서 괴물들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오고 칼날에 꿰뚫린 괴물들의 몸뚱어리가 맥없이 쓰러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3천의 괴물들을 정리해버린 인형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다시 한번 초월적인 속도로 도약해, 막 정지한 사내의 머리를 노리고 쌍검을 내리쳤다.


쿠웅!


어찌나 세게 후려갈겼는지 블록 하나가 통째로 주저앉는다. 마치 작은 운석 하나가 내려꽃힌 듯한 모습이었다. 거의 2미터 아래로 내려박힌 사내가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공격의 반발력으로 하늘 높이 떠오른 인형이 양 팔을 내뻗으며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기술을 시전했다.


콰드드드득!


애냐의 양팔에서부터 길고 뾰족한 백색의 나뭇가지가 한도끝도없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르게 뻗어나갔던지 멀리서 보기에는 허공에서 백색 기둥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압도적인 무력에 매료당한 사람들은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무너진 건물 너머로 그 장관을 지켜보다가 벼락처럼 고막에 내리꽃힌 공녀의 고함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 로한, 뭘 얼빠진 면상으로 멍청히 서 있는거야!? 이틈에 얼른 남은 병력 수습해서 하객들을 대피시켜! 엘린, 어버버 거리면서 시간낭비하지 말고 가서 현재 상황 확인해! "


" 예, 옛! "


" 아...알겠...어요. "


그녀의 지시에 정신을 차린 로한은 신전 내부를 지키던 병사들을 인솔하여 하객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초능력을 사용해 하늘 높이 날아오른 엘린은 비보를 들고 내려왔다.


" 온 도시가... 괴물... 투성이... 도와줄...곳이 없어요. 게다가... 여기로 괴물...들이... 또... 몰려...와요. "


" 칫, 귀찮게 됐네. 숫자는? "


" 잘은...모르겠지만... 거의... 500마리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


그녀의 말을 들은 클로디아는 애냐 쪽을 살펴보았다. 거리가 꽤나 멀어졌지만 간간히 폭음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아직도 승부를 내지 못한 것 같았다. 풀파워를 내고도 쉽사리 이길 수 없는 괴물이 상대라면 애냐도 다른 곳에 신경쓸 여유가 없을 것이다.


" 어쩔 수 없어. 자력으로 해결 할 수 밖에. "


얼핏 듣기엔 민간인들을 동원해 전투를 치르겠다는 정신나간 발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녀의 생각은 충분히 현실성이 있었다. 비록 통일된 지휘체계를 갖추진 않았지만 결혼식창에 입장한 고위 귀족들의 호위들은 하나하나가 정식 기사. 일반병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고급 전력이다. 여기에 전투 마법사들의 후방지원과 신관들의 서포트가 더해지면 승산은 충분했다.


" 엘린. 넌 이대로 가서 재주껏 본가에 지원군을 요청해. 로한, 마우린! 잔존 병력과 함께 하객들을 지켜. 멜자드! 마법사들은 이미 다 파악해뒀겠지? 싸울 수 있는 놈들을 긁어모아서 적습에 대비해. 이안은 내 곁에서 레이나를 서포트, 레이나는 전황을 파악하면서 위험한 곳이 보이면 즉시즉시 지원해! "


" 옛! "


대답과 동시에 길 저편에서 한 무리의 괴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일사분란한 지휘체계와 약간의 시간만 있었다면 간단하게 해결했을 일을 어렵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밀려온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오는 각양각색의 괴물들을 노려보던 공녀의 입에서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작가의말

되지도 않는 퀼리티 신경쓰면 보름에 3천자도 힘든 놈이

 

생각없이 내질러버리니까 하루만에 8천자가 나오네요.

 

신기하네.

 

어차피 발퀼이니 그냥 질러버리자~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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