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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님의 서재입니다.

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드라마

스프링쿨러
작품등록일 :
2023.05.10 12:44
최근연재일 :
2023.07.11 18:35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467
추천수 :
28
글자수 :
421,635

작성
23.05.2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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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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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7화. 그녀의 이야기.

DUMMY

27화. 그녀의 이야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나는 예전만큼 밝지 않는 시각에 미간을 좁혀 엔지패션 매장에서 성큼 다가오는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멀었던 거리가 좁혀질수록 여자의 얼굴은 또렷해지고 내 발걸음은 느려지다 멈춰 섰다.


“네가 여길 어떻게?”


이 몸의 친구인 이름 모를 여자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비틀어 날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친구는 백화점 유니폼을 입고 어깨까지 내려온 단발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종지 누나로부터 들은 이유는 설마 했던 염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바 구했어. 백화점에서 우리 실적 좋다고 지원해 줬지 뭐야!”

“아참, 내 정신 좀 보게. 나 오늘 휴무지! 그럼 누나 전 다시 잠이나 자러.”

“얘는 너 휴무 내일이잖아.”

“오늘로 바꿀게요!”

“안돼! 주말엔 당분간 서로 안 쉬기로 했잖아.”


피하고 피했는데 결국 마주하고 말았다. 그리고 도망칠 곳도 없었다.

나는 기억에도 없는 친구를 좁은 사각 바운더리에서 하루 종일 그리고 기약 없는 날까지 부대낄 처지에 놓였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도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고 갈 곳 잃은 눈동자는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여지고 그녀의 발끝만 보게 되었다.


“니 내 이름은 아나?”

“명찰이 없어서.”

“니 자꾸 나 밀어내면 나는 우짜면 좋노!”

“그···. 그게 아니라.”

“진짜 너무한 거 아이가? 아무리 기억에 없다케도 그렇치 니가 나한테 이럴 순 없다.”

“미 미 미안해. 나도 연락하려고 했었는데.”

“됐다 고마 치아라. 듣고 싶지 않다. 진짜 서운하데이. 암만 다 잊었어도 우째 니가! 하 속에서 천불이나 밥이 목구녕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녕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살았다 아이가!”

“잘 먹은 얼굴인데, 아무튼 미안. 그리고 나 때문에 여기 온 거라면 돌아가도 돼. 내가 오늘 시간 비워 놓을게.”

“니를 우애 믿고? 그리고 혜진오빠야가 알바비 많이 준다캤다. 마침 구하고 있던 참이고.”

“그 새끼는···”

“와? 나 보기 싫나?”

“그게 아니라 간만에 잘한 짓 같아서.”


토커 이 자식 결국 일을 벌이고 말았구나!

연락처는 받았지만 망설여져 연락하지 못했고 그는 그녀의 독촉에 못 이겨 결국 실토하고 말았나 보다. 그래도 그렇지 언질이라도 줬어야지!

나는 뚜렷한 이유도 모른체 절교 당한 그녀의 슬픔은 등한시하고 새로운 혼란을 야기시킨 놈에게 속으로 욕지기를 퍼부어주었다.


“오늘 일 끝나고, 고마 집에 드 가자!”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 개점 준비해야 해서.”

“아랐따. 니도 뭔가 생각이 있지 않겠나! 기억이 안나도 얼굴 보면 뭔가 떠오를지 모르니까 쪼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데이!”

“알았어. 알았으니까. 우선 면포 먼저 걷어 내자.”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면포를 벗기는데도, 개점 음악이 흐르는데도, 손님을 응대하는데도, 머릿속에는 빠져나갈 궁리만 가득 찼지 해결할 의지는 1도 없었다. 그리고 준비 없이 맞이한 탓에 딱히 묘안도 떠오르지 않았다.

뭘 알아야 계획이란 걸 짜 볼 텐데, 생각은 겉돌며 그녀를 피하기도 급급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은 주말과 더불어 대대적인 세일 기간이라는 사실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대화할 겨를 없이 시간은 잘 흘렀다. 게다가 교육은 시니어인 종지누나가 담당해 부디 칠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알바를 처음 해본 게 아니었던지 옷 개는 법도 곧 잘 따라했다.

일 머리가 없어 교육을 떠넘기면 어쩌나 마음 졸였는데 덕분에 점심때까지 대화 없이 보낼 수 있었다. 그러다 8층 문화센터에서 열린 가수 유진의 팬 사인회 때문에 한차례 위기를 맞았다.

연예인 얼굴 한번 보겠다며 8층으로 몰려 한산해진 매장, 피할 이유도 만들기 버거웠던 참인데 난처해졌다.

못 들은 척 피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더는 못할 짓이었다. 그러다 번뜩, 이곳을 벗어날 방법을 떠올렸다.

위기는 곧 기회, 탈출할 계획은 완벽했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지만 생각이란 걸 하려면 그녀가 없고 차분하게 생각 할 장소가 필요했다. 그리고 계획한 곳은 더 할 나위 없이 조건에 부합되는 장소였다.


“누나, 내가 유진 광 팬인 거 알아요? 몰라요?”

“글쎄다?”

“그런 제가 사인 한 장 못 받으면 억울해서 잠이 오겠어요? 안 오겠어요?”

“글쎄다?”

“당연히 누나를 원망하며 울다 잠이 들겠죠. 이튼날은 피곤에 절어 일도 못 할 것이고, 밥도 못 먹어 병 걸린 닭 마냥 골골거리다 손님도 놓칠 테고, 매출은 떨어지고, 누나는 실망하고, 그렇게 우리 사이 멀어지고.”

“가! 가! 가!”

“고마워요. 누나. 평생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마음 약한 보라누나는 생각데로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허락도 받았겠다 매장을 벗어 날 일만 남았는데, 친구는 딴지를 걸어 도피작전에 제동을 걸었다.


“가스나 니 진짜 유진이한테 싸인 받을기가?”

“어 평소에 존경하고, 사랑하고, 흠모했어. 오늘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아이다. 그라지 마라. 니 그 여자 징그럽게 싫다 안 했나?”

“취향이 변했어!”

“니를 우야면 좋노. 진짜 아무것도 기억 안나나?”

“네 이름도 모르는데 뭘!”

“그래도 가면 안 될 낀데.”

“몰라 좋은 걸 어떡해! 누나 나 이 옷 잠깐 입고 갔다 올게요!”

“야야야!”


이 해방감을 느끼고 싶었다.

얼마나 답답하던지, 이제야 숨 쉬는 것 같고 피가 돌아 머리도 맑아졌다.

예고도 없이 등장한 친구 때문에 숨 가빴던 하루에 틈이 생긴 것이다.

이왕이면 직원이란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마네킹에게 입히려던 코트도 입고 사인회 장으로 나섰다.

기어이 따라붙은 친구가 말렸지만 발길은 쉬 멈추지 않았다.

그녀를 무시하고 도착한 문화센터, 로비에는 가득 인파가 줄지어 있다.

줄이 어찌나 긴지 근무 시간 안에 사인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은 길지 않았다.

시계를 자꾸 확인하는 매니저의 행동으로 보아 잘 못 했다가는 아무것도 못 하고 돌아갈 판이었기 때문이다.

늦을 세라 대열에 합류해 줄을 섰다. 그랬더니 매니저는 날 마지막으로 제지하며 줄을 끊었다.


‘휴! 다행이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사인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근무지를 이탈하기 위한 핑계는 알리바이를 잃었을 것이다.

차례가 돌아오려면 적어도 한시간.

위기를 타개할 계획을 세우기엔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나는 앞사람의 보폭에 맞춰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 못 본 척 해달라 해볼까?’

‘지금 너무 행복하니 날 잊어 달라 해볼까?’


충분치 않았다.

돌아 가고 싶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길 없고 행복이란 두리뭉실한 표현으로 가족애를 지워 버리기엔 빈약했다.

애타게 찾을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완벽한 입막음이 필요했다.

마주할 용기가 없을뿐더러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변명을 하려면 적어도 그녀가 처한 현실을 알아야 했다.

친구라면 순순히 알려줄 테고, 더는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점점 더 빈번히 이 몸의 지인들과 마주칠 것이고 기억을 잃었다는 핑계만으로 돌아오지 않는 연유를 납득시키지 못할 테니까.

차라리 이번 위기를 기회삼아 완벽한 탈출구를 만들어야 겠다.

손목을 그은 이유도 듣고 집에 무슨 우환이 있는지도 알아야 겠다.

마냥 밀어내지만 말고 친구에게 물어 알아야 겠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귀신이 성불하는 것처럼 그녀의 아픔을 치유해 주면 나도 내 몸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생각대로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녀석은 사라지고 나는 돌아가는 걸까? 아니면 나는 사라지고 녀석은 완벽해지는 걸까?

어떤 것이든 바라지 않는다. 어떤 것이든 되어선 안 된다.

차라리 지금처럼 내가 쭉 이 몸의 주인이 되어야 비극적인 상황이 그나마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고 나도 지키고 싶은 게 생겼다.

이 몸의 주인에겐 평생을 넘어 다음 생까지 미안할 일이지만 지금 이대로 유지하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몰입하는 동안 줄은 짧아져 내 차례까지 왔다.

유진이란 가수는 매너도 좋게 앞의 엉덩이골이 보이는 뚱뚱한 남자와의 포옹을 끝으로 날 맞이해 주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미소가 차가워 보였다.

날 주시하는 시선 처리가 기우가 아니었던지 냉담한 음성에는 적개심이 서려 있었다.

우리는 일면식이 있는 건 물론이고 달갑지 않은 사이가 분명했다.


“생각이 바뀌셨나요? 제 안티 팬 클럽 초대 회장님께서 사인을 다 청하시고, 오래 살고 볼 일이네요.”

“제가 그랬을리가요.”

“사인받으러 오신 게 아니라면 무슨 볼일이죠? 할말은 다 하신 거로 아는데. 더 따질 게 남으셨나?”

“설마 제가 키보드 워리어가 돼 그쪽을 괴롭혔다는 말인가요?”

“따지러 온 건 아니다? 역시 재밌는 분이셔. 그럼 어떤 짓궂은 장난을 준비하셨길래 여기까지 몸소 행차하신 거죠?”


‘이건 또 뭔 일이야?’


조용히 생각하려 다 뜻하지 않게 새로운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이 여자는 발이 얼마나 넓은지 행적은 연예계까지 닿아 있었다.

재벌을 알고 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친구의 걱정을 뿌리친 조금전이 후회스럽다.

뭘 알아야 대처할 텐데. 나는 새로운 난관에 마른침만 삼켜졌다.


“해산 오빠는 잘 지내나요?”

“전 해진밖에 몰라서.”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그러네. 미련도 없고 사실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땐 제가 너무 어렸던 거 같아요. 마음이 편치 않네요.”

“우선 사인 먼저, 그리고 그렇게 말해 주시니 저도 사과할게요. 미안합니다.”


사실 뭘 미안해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안티팬 초대 회장이었다면 이유가 어찌 되었건 상처를 줬을 건 분명하다.

내가 벌인 일이 아니지만, 몸을 차지하고 있으니 감내해야 할 치부였다.


“사과까지야. 미안해지게. 안 본 사이 성질이 많이 죽었네요.”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얼마나 모나게 살았던지. 그럼 피차 마음의 짐은 없는 거로?”

“손해일 텐데. 그래 준다면 저야 고맙죠.”

“좀 실례되는 질문이긴 한데, 그쪽이 제 게 무슨 잘못을 하셨나요?”

“잊었다니 고맙네요. 좀 마음이 쓰였는데. 신인의 치기와 욕심이었어요. 힘드셨을 텐데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자자, 사인회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유진씨 마지막 인사해 주시죠.”


‘아이씨, 명란젓같이 생긴 새끼가.’


나는 타산이 맞지 않는 과거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앗아간 명란젓같이 생긴 매니저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티브이에서 보았던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해 왔다.


“기회가 되면 바로잡아 볼게요.”

“아니, 그러니까···.”

“유진 씨 마지막 멘트. 다음 스케줄 30분 전입니다.”

“힘내세요. 그럼 이만.”


악수를 끝으로 대화를 이을 수 없었다.

힘내라는 그녀의 마지막 말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봉착한 문제가 한둘이 아닌데 처음 만난 그녀를 통해 새로운 문제도 마주하게 되었다.

몰랐다면 모르겠는데 안 이상 자꾸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문제는 심란한 머릿속을 헤집어 더욱 비틀어 꼬아 버렸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이 몸의 주인은 무슨 일을 겪었길래 도망치고 손목을 그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과 어떤 문제가 얽혀 있는지.

처음으로 이 몸의 과거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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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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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2화. 그의 이야기. 23.06.11 21 0 12쪽
42 41화. 그녀의 이야기. 23.06.10 19 0 13쪽
41 40화. 그의 이야기. +2 23.06.09 19 0 12쪽
40 39화. 그녀의 이야기. 23.06.08 18 0 11쪽
39 38화. 그의 이야기. 23.06.07 16 0 14쪽
38 37화. 그녀의 이야기. +2 23.06.06 27 1 15쪽
37 36화. 그의 이야기. 23.06.05 16 0 14쪽
36 35화. 그녀의 이야기. 23.06.04 18 0 14쪽
35 34화. 그의 이야기. 23.06.03 19 0 13쪽
34 33화. 그녀의 이야기. 23.06.02 17 0 14쪽
33 32화. 그의 이야기. 23.06.01 18 0 12쪽
32 31화. 그녀의 이야기. 23.05.31 17 0 13쪽
31 30화. 그의 이야기. 23.05.30 20 0 14쪽
30 29화. 그녀의 이야기. 23.05.29 20 0 14쪽
29 28화. 그의 이야기. 23.05.28 16 0 13쪽
» 27화. 그녀의 이야기. 23.05.27 17 0 12쪽
27 26화. 그의 이야기. 23.05.26 18 0 13쪽
26 25화. 그녀의 이야기. 23.05.25 18 0 12쪽
25 24화. 그의 이야기. 23.05.24 20 0 12쪽
24 23화. 그녀의 이야기. 23.05.23 20 0 14쪽
23 22화. 그의 이야기. 23.05.22 23 0 12쪽
22 21화. 그녀의 이야기. +2 23.05.21 24 0 13쪽
21 20화. 그의 이야기. 23.05.20 23 0 13쪽
20 19화. 그녀의 이야기. 23.05.19 26 0 12쪽
19 18화. 그의 이야기. 23.05.18 22 0 12쪽
18 17화. 그녀의 이야기. 23.05.17 25 0 14쪽
17 16화. 그의 이야기. 23.05.16 24 0 15쪽
16 15화. 그녀의 이야기. 23.05.15 27 0 12쪽
15 14화. 그의 이야기. 23.05.15 28 0 12쪽
14 13화. 그녀의 이야기. 23.05.14 3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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