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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님의 서재입니다.

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드라마

스프링쿨러
작품등록일 :
2023.05.10 12:44
최근연재일 :
2023.07.11 18:35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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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0
추천수 :
28
글자수 :
421,635

작성
23.05.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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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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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2화. 그의 이야기.

DUMMY

22화. 그의 이야기.



왜 자꾸 그때 기억이 떠오르는 거지?


“나대지 마라 가슴아. 걔는 아니다. 다른 이는 몰라도 걔는 절대 아니다.”


나는 DVD방에서 꽃순이와의 기억을 지워 내려 부정하며 털어냈다.

오랜만에 여자와 단둘이 있어서 착각한 거라고, 숨소리가 가까워 잠시 이성을 상실한 거라고, 떠오를 때마다 세차게 뛰는 가슴을 억지로 뿌리쳤다.


‘깨작깨작 정말 맛없게도 밥을 먹는구나.’

‘눈곱 봐라.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

‘어라, 코에 건더기 나온다. 밥 먹을 때 예의 없게 정말 하는 짓 하고는.’


나는 설마하니 그녀에게 다른 감정을 품을까? 그녀의 단점을 낱낱이 찾아냈다.

그날의 기억은 그녀의 조작에 말려 착각하게 된 거라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부풀려 그녀를 밀어내 보았다.

다행히 그녀는 단점이 차고 넘쳤다.

선머슴도 이성 앞에선 쑥스러워 망설이는 행동을 그녀는 거침없이 하며 잠시 품었던 착각을 차근차근 덜어 내주었다.


“하아암. 어제 잠을 설쳤더니 죽겠네.”

“시스터, 미안한데 기지개는 켜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기지개를 켜든 건담 대가리를 치든 네가 무슨 상관인데?”

“커허헉. 건담은 제발 네 입에서 오르락 내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무릇 여자란 겨털 관리를 해야 하는 법. 너의 겨드랑이의 샤프심이 나의 시선을 어지럼 피우는구나!”

“넌 겨털 밀어?”

“아니, 하지만 여자는 민소매 입고 보통 그러지 않지.”

“너도 안 하는 걸 왜 나에게 강요해? 난 그런 거 몰라.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나는 지금 효도를 하고 있는 거라고.”

“참으로 고급 진 개소리이구나! 지금 샤프심이란 소리는 그간 수없이 깎여 고통받았다는 반증. 네 그 말은 어불성설이다.”

“그렇군. 네 말에는 일리가 있다. 그럼 나도 건담에게 불효를 강요할 수밖에.”

“내 헛소리가 너무 길었구나. 자 그만하고 밥이나 들지.”


형의 지적에 내 눈은 그녀의 겨드랑이로 향했다.

그녀의 단점을 찾고 있는 나에겐 그보다 더 좋은 먹잇감은 없었다. 그런데 왜 정말 그녀답다며 미소 짓게 되는 걸까?

우리를 가족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그녀에게 겨드랑이털을 미는 행위는 불필요한 칼로리 낭비로 여겨져 보였다. 그래서 수긍하고 말았다.

밥상 머리에서 해서는 안 될 추잡한 짓이었음에도.

두 형제와 달리 내겐 전혀 혐오스럽지 않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어떤 것이든 물고 늘어져 이 못된 감정을 어서 빨리 털어내야 한다.

그녀는 이런 나를 도와주려 일부러 한쪽 팔을 들어 올려 시선을 끌어 주었다.


“이쪽에 페티쉬가 있는 모양이지?”

“고맙다. 쭉 그러고 있어 줘!”

“뭐 야, 싱겁게.”

“워메, 징한그 팔 안내리냐? 밥맛이 뚝뚝 떨어져 브러야.”

“잘만 처먹으면서 무슨.”

“내 저븐질이 안보이냐? 니 냄새나는 겨털 땜시 내 저븐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잖냐.”

“꽃순이 이 가시나, 오빠들 좀 그만 괴롭혀.”


엄마의 등 짝 스매싱에 꽃순이의 추잡한 기행은 막을 내렸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완벽히 그녀를 밀어낼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시간은 많고 그녀 성격상 곧 완벽한 이유를 만들어줄 테니 조급하진 않았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해도 30여 분은 이동해야 했기에 서둘러 집을 나서야 했다.

출근 시간 지옥철을 피해 버스를 애용하는 편이지만 버스 도착시각은 일정하지 않아 마음은 급하기만 했다. 그러다 누군가가 내쪽을 주시하는 눈길을 느꼈다.

잘못 본 건가 싶었지만, 혹시 어제 만난 꽃순이 친구일 수도 있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친구는 커녕 아는 얼굴도 없었다.


“뭐해! 늦었어.”

“어, 가!”

“우리 지각하면 지각비 내야 한단 말이야.”

“가 간다고.”


애써 이상함을 삼키고 발길을 재촉했다.

아침부터 헛 생각하다 잘 못 본거라고 하지만 알게 되었다.

그 시선이 무엇이었는지.

주시했던 시선이 불길하다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근무한 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정보통인 흑형을 통해 시선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너희 동거한다며?”

“나? 누구랑?”

“소문이 파다해! 꽃순이, 질척거려서 싫다더니 어떻게 나까지 속일 수 있냐?”

“그게 아니라.”

“아니긴, 좀 그렇다. 우리가 남도 아니고.”

“남은 맞고, 하여튼 상상하는 그런 거 아니야.”

“몰라 그건 모르겠고. 꽃순이 얼굴 아는 사람이 한둘이냐? 좀 조심하지 그랬냐!”


넓은 서울 바닥이지만 이곳은 역시 좁았다.

아침에 우리를 봤던 이는 백화점에 다니는 사람이었고 우리는 그 사람을 모르기에 모른 척해달라 말할 여지도 없었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시점이 생각보다 빨랐다.

나야 남자이니 상관은 없었으나 꽃순이가 걱정된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심리 상태를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가족에게까지 밝히기 꺼리는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노릇이었다.


“들었어?”

“참 소문 빨라.”

“상관없어?”

“거짓말도 아니고 이참에 결혼한다고 해 놓을까? 이상한 헛소문 도는 것보다 나으니까!”

“너 무슨 여자가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콩닥콩닥 콩닥콩닥.’


찐따의 습성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여자 손만 잡은 거로 2세까지 상상했던 고등학생 때처럼 그 짧은 순간, 그녀와의 미래를 그리게 되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인데, 나는 그만 그녀의 장난 섞인 프러포즈에 정신 줄을 놓고 말았다.


“뭐해?”

“어어?”

“뭐하냐고 몇 번을 불렀는데. 손님 왔다고.”


난 미친 게 분명하다.

미치지 않고서 그녀와 결혼을 상상하다니.

밀어내기 바빴던 그녀를, 고작 그 한마디에 가슴 떨려 하다니.

나는 아침을 잘 못 먹은 거라며 뇌출혈이 다른 착시를 일으킨 거라며 감정을 완곡히 부정했다. 하지만 시선은 지나는 손님이 아닌 꽃순이만 자꾸 따라다녔다.

그녀를 밀어낼 생각을 떠올려야 하는데 결혼이란 단어에 홀린 가슴은 자꾸만 그녀와의 미래를 그렸다.

그녀는 그냥 생각 없이 뱉은 말인데 나는 왜 이리도 설레하는지.

나는 우리의 기묘한 동거가 발각된 사실도 까맣게 잊고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막 손자까지 보고 임종을 눈앞에 두고 있던 상상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부서져 흩어졌다.

나의 불쾌한 상상에 경종을 울리며 그녀가 눈을 흘기자 나는 가까스로 그녀라는 늪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 마음이 이토록 갈대같이 쉬웠던가.

고작 DVD 한 편 본 것뿐인데, 내 몸과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콩닥콩닥 콩닥콩닥.’


이쯤 되면 인정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스토커도 나를 좋아했던 것도 아닌 걸 알기에. 늦기 전에 멈춰야 했다.

그전에 이 마음이 진심인지 확인 먼저 하고.

나는 멋대로 날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돌아서 날 오롯이 노려보았다.


‘쿵쾅쿵쾅 쿵쾅쿵쾅.’


안돼. 안돼. 안돼.

정녕 사랑이란 감정을 품게 된 거라고? 이건 아니야!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신 나간 사람 마냥 머리를 저어 그녀를 털어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녀가 다가온다. 나의 불순한 시선을 단죄하러 그리고 불결한 마음을 응징하러.

눈을 질끈 감은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마지막 기회라며 눈을 번쩍 떴다.


‘삐이이이이익.’


“아이 깜짝이야.”

“내 겨드랑이만 뚫어지게 보길래. 자세히 보여주려 했지.”

“고맙다. 지금 내겐 이게 포상이야.”

“어쭈구리, 진짜 겨드랑이 패티쉬라도 있는 거야? 뭐야? 그건 나도 이제야 알았네.”


진심 고마웠다.

그녀의 터널 속 겨드랑이의 수줍게 고개 내민 검은 줄기들은 날뛰던 심장에 임종을 선사해 주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이 마음은 잠시 분위기에 취해 착각에 빠졌으며 곧 그녀의 도움으로 제자리를 찾게 될 거라고.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가슴에 손을 올려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온 심장에 만족스러워 미소를 피워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그곳엔 막강한 처방 약이 아닌 다른 이의 얼굴이 드리워져 있었다.


“오빠 뭐해?”

“어, 꽃순아.”

“나야. 나. 유정이.”

“아 미안. 딴생각 좀 하느라.”


나는 이 가슴이 누구로 인해 다시 뛰는지 의아해하며 샤넬을 맞이했다.

잠잠했던 심장은 여자만 보면 발발거리는 싸구려가 된 듯 종이연처럼 펄럭이며 주인을 실망시켰다.


“오빠 그 소문이 사실이였구나! 헛소문인 줄 알았더니.”

“어, 사정이 있어서.”

“어쩐지, 요새 좋아 보이더라니.”

“그런 관계는 아니고 가족이야.”

“가족? 오빠가 여동생이 있었나? 성도 달랐던 것 같은데.”

“그런데 왜?”

“구두 좀 보려고 매장에서 신을 편한 거로.”

“내가 몇 개 골라 줄게.”


많고 많은 구두 매장 중 왜 하필 내가 있는 매장으로 온 건지.

우리 사이가 그다지 유쾌하게 끝난 거로 보이진 않는데, 그녀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구두 판매원이고 그녀는 손님.

점장에게 할당 받은 물량을 채우려면 부단히 구두를 권해야 했다.

나는 편한 구두 몇 개를 골라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 발에 신겨 주었다.


“내가 신을게. 나에게까지 그러지 않아도 돼!”

“버릇이 돼서, 부담스러웠어?”

“여전하구나.

“뭐가?”

“아니, 오빠만큼 배려 깊은 남자가 있었나 싶어서.”


이건 또 무슨 말인지.

헤어진 사이에 잡담을 나누는 상황도 이상했지만, 뜬금없는 칭찬도 낯설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이번엔 행복회로가 작동하지 않아서 나는 구두 판매에 전념할 수 있었다.


“직원 DC 고마워.”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볼이 불편하면 늘리는 기계 있으니까 맡기고 가고.”

“아냐 편해.”

“그래, 그럼 잘 신어.”


나는 마지막까지 손님으로 그녀에게 최선을 다하고 물건을 인계했다. 그러다 쇼핑백을 쥔 손이 서로 맞닿게 되었다.

그녀는 쇼핑백을 내려놓는 내 손길을 잡더니 제 쪽으로 성큼 잡아 끌었다. 그러자 우리는 한 뼘 남짓 가까워지게 되었다.

배 아프다며 화장실 간 캐셔 누나도 없고 짱 박힌 점장은 당연히 없고 옆 매장의 흑형은 유심히 보고 있지만, 그 외에는 우리를 주시하는 시선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오싹한 기분에 그녀의 시선을 피해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미안한데 나 사실 확인하러 왔어!”

“확인?”

“오빠에게 동거녀가 있다기에 일이 손에 안 잡혀서.”

“왜?”

“그러게 웃기지. 그런데 알려 줄 수 없을까? 무슨 사이인지?”

“아까 말한 그대로야. 사정이 있어서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

“치, 그래 오빠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나 갈게!”


이제 와서 미련이라도 남는 걸까?

그녀는 오해를 사기 충분할 여지가 남는 말을 많이도 했다. 하지만 그녀와 이별이 기억나지 않아 여지의 의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 좋게 헤어진 게 아니었던가?’


헤어진 이유는 흑형도 모른다.

질질 짜면서도 나는 말을 아꼈고 덕분에 우리 둘 사이의 과거는 그녀 밖에 모른다.

묻기엔 다소 황당하고 모르고 계속 평소처럼 대하기엔 찜찜하다. 그래서 이도 저도 못 하고 망설여 졌다.

그녀의 모습이 꽃순이를 지나쳐 계단으로 향하는데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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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2화. 그의 이야기. 23.06.11 21 0 12쪽
42 41화. 그녀의 이야기. 23.06.10 19 0 13쪽
41 40화. 그의 이야기. +2 23.06.09 19 0 12쪽
40 39화. 그녀의 이야기. 23.06.08 18 0 11쪽
39 38화. 그의 이야기. 23.06.07 16 0 14쪽
38 37화. 그녀의 이야기. +2 23.06.06 27 1 15쪽
37 36화. 그의 이야기. 23.06.05 16 0 14쪽
36 35화. 그녀의 이야기. 23.06.04 18 0 14쪽
35 34화. 그의 이야기. 23.06.03 19 0 13쪽
34 33화. 그녀의 이야기. 23.06.02 17 0 14쪽
33 32화. 그의 이야기. 23.06.01 18 0 12쪽
32 31화. 그녀의 이야기. 23.05.31 17 0 13쪽
31 30화. 그의 이야기. 23.05.30 20 0 14쪽
30 29화. 그녀의 이야기. 23.05.29 20 0 14쪽
29 28화. 그의 이야기. 23.05.28 16 0 13쪽
28 27화. 그녀의 이야기. 23.05.27 17 0 12쪽
27 26화. 그의 이야기. 23.05.26 19 0 13쪽
26 25화. 그녀의 이야기. 23.05.25 18 0 12쪽
25 24화. 그의 이야기. 23.05.24 20 0 12쪽
24 23화. 그녀의 이야기. 23.05.23 20 0 14쪽
» 22화. 그의 이야기. 23.05.22 24 0 12쪽
22 21화. 그녀의 이야기. +2 23.05.21 24 0 13쪽
21 20화. 그의 이야기. 23.05.20 23 0 13쪽
20 19화. 그녀의 이야기. 23.05.19 26 0 12쪽
19 18화. 그의 이야기. 23.05.18 22 0 12쪽
18 17화. 그녀의 이야기. 23.05.17 25 0 14쪽
17 16화. 그의 이야기. 23.05.16 25 0 15쪽
16 15화. 그녀의 이야기. 23.05.15 27 0 12쪽
15 14화. 그의 이야기. 23.05.15 28 0 12쪽
14 13화. 그녀의 이야기. 23.05.14 3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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