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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님의 서재입니다.

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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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작품등록일 :
2023.05.10 12:44
최근연재일 :
2023.07.11 18:35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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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2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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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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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5화. 그녀의 이야기.

DUMMY

25화. 그녀의 이야기.



요새 바빠져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잘 모르겠다.

신입 지점장이 포부를 밝힐 때만 해도 이상만 높은 헛소리라 여겼는데 통 안 보이는 동안 지점을 살리기 위해 꽤 정성을 쏟은 모양이다.

그의 거침없는 개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됐다.

거액을 투자해 마네킹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액세서리를 다는 건 예사고 은은한 조명을 적재적소에 배치에 이따금 매장을 지나는 고객의 눈길을 유도했다.

고객들은 현란한 발광체에 눈길을 사로잡혀 한 번이라도 제품을 눈에 담게 되었고 굳게 닫힌 지갑은 충동적인 욕구에 빗장을 열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무척 고단한 하루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토커, 개자식 마음에 안 드는 쌍놈의 자식.’


나는 투덜대면서도 한 번에 몰린 손님을 응대하려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녀석이 우리 매장에 더 정성을 기울인 탓에 사람이 사람을 부르며 다른 매장보다 2배는 바빴다.

고작 이딴 편법에 현혹돼 눈길을 사로잡히다니, 나는 넋이 빠져 몰아친 손님이 헤집어 놓은 옷가지를 정리할 생각도 못 하고 이젠 지쳐 천장만 바라보게 되었다.


“많이 바빠 보인다.”

“어, 피똥 쌀 것 같아.”

“참 힘든 것도 더럽게 표현하네.”

“진짜로 요새 통 참았더니 피똥 쌀 것 같긴 해!”

“혼자만 짐작해 줄 래?”

“네가 물었잖아!”

“그건 그렇고 혹시···. 아니다.”


또 저런다.

가짜 녀석은 오줌 마려운 강아지 마냥 자꾸 무슨 말을 하려다 망설이고 안으로 삼켰다.

토커를 만나고 난 이후부터 계속 저 모양인 것 보니 둘이 밀담을 주고받은 게 확실한데 말을 안해 주니 알 도리는 없다.

나는 녀석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한이 있어도 알아내려 했지만, 반짝이의 마수에 걸린 손님들이 들이 닥치는 통에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 많고 많은 매장 중 게다가 인지도도 그리 높지 않은 우리 브랜드를 오는지.

전국에 엔지 패션 동호회라도 생긴게 아닌가 할 정도로 엘리베이터만 내리면 조건 반사적으로 발길은 우리 매장을 향했다.


“누나 죽을 것 같아요. 이거 정리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어쩌겠니. 네가 노오오오력 하는 수밖에. 나는 매출이 늘어 신나는데.”

“어련 하겠수. 나는 판매수당 같은 거 안 주나요? 내가 제일 열심히 일하는데.”

“얘는 왜 없겠어. 내가 맛난 거 많이 사주지 당연히.”

“뭘 바라겠습니까.”

“손님 오신다. 자리 잡아라!”


왜 손님 많은 매장은 하나같이 풀 죽어 신경질적인지 그리고 가식적인 웃음도 없이 퀭해 있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친절을 업으로 여기며 살진 않았지만, 나름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던 나조차도 반복되는 물음과 요구에 점점 기계적으로 옷가지를 건네게 되었다.


“저 좀 쉬었다 올게요.”

“얘는 지금 가긴 어디를 가!”

“여기다 지릴까요? 피똥 좀 보시겠어요?”

“어머, 어서 다녀와! 너 없으면 나 혼자 감당 못 해!”

“이쯤 되면 알바를 한 명 더 뽑아야 하지 않을까요?”

“본사에 요청은 넣어 놨어! 그런데 아마 이번 달은 힘들 것 같아 집계가 말에 되니까. 조금만 더 참자.”

“우리 조금씩 보태서 한 명 고용합시다.”

“얘는 우리가 돈 벌로 왔지 봉사하러 왔냐?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다녀와!”

“네, 소자 다녀오겠나이다.”


쳇바퀴 도는 대화를 포기하고 조금이라도 더 쉬기 위해 느그적 몸을 옮겼다.

어차피 변기에 앉아 봐야 깡깡 한 돌덩이는 자태를 보이지 않을 테고,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해 지하 창고로 몸을 옮겼다.

한숨을 푹푹 쉬며 직원 휴게실에 들어서자 그곳엔 나처럼 피곤함에 찌든 이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회색빛으로 산화해 엎어져 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외진 곳에 박스를 깔고 기대 앉았다. 그리고 꼬불쳐 놨던 캔디 하나를 입에 넣었다.

달큼 시큼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자 힘들어 단내가 나던 입이 개운 해지며 식욕이 돋아났다.

점심때, 안 먹고 짱 박히려 했는데 입맛이 돌며 머슴 밥을 먹게 생겼다.

사탕을 입속에서 요리조리 돌리고 있는데 언제 따라붙었는지 오줌 마려운 똥강아지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그리고 부쩍 친해진 김에 무리한 요구를 청해 왔다.


“나도 줘!”

“없어.”

“치사하게 이럴래?”

“이거라도 먹던가. 어!”


나는 혀에 반 토막 난 사탕을 올리고 쭉 빼서 가져갈 테면 가져가 보라 눈을 치켜 떴다. 그런데 이쪽으로 부쩍 내성이 생긴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들더니 자기 입으로 직행시켰다.


“이런 미친.”

“뭐? 먹으라며. 너랑 나랑 찌게 떠먹으며 침이 섞일 대로 섞였는데, 이 정도쯤 이야.”

“나 간질 있어! 몰랐냐?”

‘어푸푸푸푸. 카아악.’


참 지답게 오두방정을 떤다.

내가 전염병이 있으면 이미 집안을 휩쓸고도 남았는데 그리고 간질이 전염되던가?

나만큼이나 무식한 녀석에게 저절로 눈이 흘겨졌다.


“이거 받아! 이거 주려 왔어. 집에서 주기엔 좀 그래서.”

“시계?”

“사람들이 자꾸 물어보잖아.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데.”

“나도 마침 하나 장만하려 했는데, 고맙다. 취향은 구리지만.”

“꼭 말을 해도. 비싼 건 아니니까 막 써도 돼! 그러니 벗지 말고 써.”

“어이쿠 누구는 샤넬 백을 안겨주고 나에겐 고작 싸구려 시계냐?”

“이게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안 쓸 거면 내놔!”

“성의를 어떻게 매몰차게 거절할 수 있다냐. 그런데 가방은 찾았어?”

“역시 너였구나! 너 아니면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이 없지.”

“그러니까. 받았냐고?”

“오늘 저녁에 보자고 하더라. 미안하다며 밥 한끼 대접하고 싶다고.”

“미친,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야! 왜 네가 열을 내. 너 설마 날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냐?”

“미친,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녀석은 내 반응에 뾰로통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남자 새끼가 그러는 모습이 탐탐치 않았지만 선물도 받았겠다 뒤통수를 후리려던 손을 회수해 한번 킵 해 주었다.


“나 진심으로 묻는 거니까 똑바로 말해줘.”

“진심으로 묻지 않아도 늘 똑바로 말 했어.”

“말 장난하지 말고, 혹시 내게 아무 감정 없어?”


이게 진짜 밥 잘 쳐드시고 뭐 하는 짓인지.

최근에 겪었던 가장 황당한 물음이라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잠깐만 내가 좀 확인할 게 있어서. 그대로 있어 봐!”

“한번 씨부려 봐. 들어 줄게.”

“이렇게 다가가면 마음이 좀 들 썩 이려나?

“얼씨구?”

“얼굴을 들이밀면 감정이 피어나려나?”

“절씨구?”

“숨소리가 가까워지면 애틋해지려나?”

“지랄, 염병 맞으려고 네가 발광을 하는구나!”

“아무 느낌 없어?”

“당연히 있지!”

“혹시?”

“맞아, 살인 충동.”


녀석은 무얼 원했던 걸까?

그간 내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던 이유가 고작 관심을 얻기 위한 수작이었던 걸까?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고 녀석은 날 사랑할 수 없게 만들어 줬는데, 이 얼굴은 모든 걸 초월해 이성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모양이다.

우린 절대 이뤄질 수 없는 형제보다 진한 사이.

설마, 행여나, 감히 그 따위 감정을 갖지 못하도록 확실히 선을 그어야 했다.


“나 레즈비언이야. 그러니 꿈 깨!”

“누가 너 좋데? 얘는 김칫국물을 사발로 마시고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시원스레 한 대답과 달리 뒷 목을 주무르는 행동엔 아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의심스러워 부족 했던 경고에 살을 붙이려는데, 라아칸이 패거리를 끌고 오는 통에 삼켜야 했다.

나는 타이밍을 놓친 김에 그들을 피해 구석진 틈바구니로 몸을 구겨 넣었다. 그러자 녀석도 캥기는게 있는지 따라 들어 왔다.

기둥과 박스사이 몸이 밀착되자 오가는 숨이 서로를 향해 뿜어졌다.

우리 사이엔 두 뼘 남짓한 공간이 존재했는데 왠지 밀착한 듯 열이 나고 몸이 달아올랐다.

야릇한 감정에 눈이 번쩍 뜨이고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이 느낌을 정상적인 관계로 설명할 수 없어 손은 축축히 젖어 갔다.

과거에도 있었던 느낌 같아서 마음이 요동쳤다.

나가려 했다.

더 있다 가는 착각이 아니다 생각할 지 몰라서.

녀석과 같은 불순한 생각을 하고 싶진 않아 나가려 했다. 하지만 녀석이 당기는 통에 나가는 건 고사 그만 안기고 말았다.


‘이이이 미친놈이.’


방금 전의 경고를 무시한 녀석에게 톡톡한 대가를 치러주려 하였다. 하지만 입술에 손가락을 붙이고 조용히 하라 하자 숨도 쉬지 못하고 그의 뜻에 따르게 되었다.


“라이칸 저 새끼 뭔가 흉계를 꾸미고 있어!”

“뭐 뭔데?”

“쉿! 가만히 좀 있어 봐.”


내 귀엔 하나도 들리지 않는 말소리가 그는 왜 그리도 잘 들리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녀석의 가슴에 이마를 대고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을 수 없었다.

이마를 타고 들려오는 심장 고동 소리와 뒤질 세라 따라붙는 다른 심장 고동 소리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창고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적응되고 피어오른 먼지가 가라앉을 때, 녀석이 선물해준 시계 초침 소리가 선명해지며 아득했던 정신에서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뭐···. 뭐라는데?”

“누군가를 욕하는 것 같은데. 잘 안 들려서.”

“들리는 척 집중하던 건 뭔데?”

“내가 그랬던가?”

“수능, 듣기 평가 때 보다 열심히 듣더니만.”

“어, 처음엔 그랬지. 주어에 토커가 나오고 주의력이 산만해져 버렸지만.”

“갔어?”

“갔어!”

“그럼 나가 이 새끼야.”


나는 괜스레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차 잠시 가졌던 아찔한 상황을 털어냈다. 그리고 땀을 닦으며 지금 얼굴이 빨개진 이유는 부대껴 더워진 것뿐이라며 애매한 감정에 확실한 설명을 덧붙였다.

녀석도 민망했던 모양인지 셔츠를 펄럭여 공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는 별것도 아닌데 짜증이라며 서둘러 곁을 벗어났다.

녀석이 사라지자 갑자기 발이 달달 떨리고 눈동자가 갈팡질팡 허공을 맴돌았다.

잠시 느꼈던 감정이 말도 안 되고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입술을 깨물어 정신을 일깨웠다.


‘이러면 장르가 뭐야? 셀프 러브?”


아무리 예전 삶이 만족스럽고 찐따 같은 모습 그대로가 좋았다지만 이건 아니다.

녀석은 헷갈릴 수 있고 손만 잡아도 결혼을 넘어 2세까지 상상할 수 있다지만 나는 그러면 안된다.

비록 여자의 몸이 되었고 여자의 호르몬이 차고 넘쳐 생리도 하지만 절대로 이건 아니었다.

우리는 과거 하나였고 자가 분리한 플라나리아처럼 두 개의 몸 하나의 인격인 까닭에 절대 있어서도 상상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머리를 휙휙 저어 말도 안 되는 잡념을 털어내고 매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걸으며 이 상황을 타개할 묘안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고민도 잠시, 생각을 더 이을 수 없었다.

매장은 365일 중 대부분을 세일하건만 오늘이 마지막 쇼핑인 것처럼 자아를 상실한 손님들로 미어 터져서.

당장 힘든 시간을 이겨 내기도 벅차 겨를이 없었다.

주말 중 가장 바쁜 시간이라지만 유독 우리 매장이 강세를 보였다.

어디 시장 바닥 자판 떼기도 아니고 보라 누나도 반쯤 포기하고 도난은 없는지만 살피고 있다.

나도 그녀 따라 상품의 이동을 눈에 담았다.


“은하야, 매장 지키고 있어라. 창고 좀 다녀와야겠다.”

“제가 갔다 올 게요.”

“아니, 아니, 아니. 넌 맥아리가 없어서 안 돼 내가 다녀올게.”

“그러니까 한 명 쉴 때만이라도 알바 쓰자니까.”

“내일 내가 쉬거든. 다음주부터 쓰자.”

“내일은?”

“나 갔다 올 게.”


저 아지매가 돈독이 올랐나? 자기 돈 나갈 것도 아닌데 왜 저리 좀스럽게 구는지.

나는 기가 차 아까 무슨 생각을 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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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2화. 그의 이야기. 23.06.11 21 0 12쪽
42 41화. 그녀의 이야기. 23.06.10 19 0 13쪽
41 40화. 그의 이야기. +2 23.06.09 18 0 12쪽
40 39화. 그녀의 이야기. 23.06.08 18 0 11쪽
39 38화. 그의 이야기. 23.06.07 15 0 14쪽
38 37화. 그녀의 이야기. +2 23.06.06 27 1 15쪽
37 36화. 그의 이야기. 23.06.05 16 0 14쪽
36 35화. 그녀의 이야기. 23.06.04 17 0 14쪽
35 34화. 그의 이야기. 23.06.03 18 0 13쪽
34 33화. 그녀의 이야기. 23.06.02 16 0 14쪽
33 32화. 그의 이야기. 23.06.01 17 0 12쪽
32 31화. 그녀의 이야기. 23.05.31 16 0 13쪽
31 30화. 그의 이야기. 23.05.30 19 0 14쪽
30 29화. 그녀의 이야기. 23.05.29 20 0 14쪽
29 28화. 그의 이야기. 23.05.28 16 0 13쪽
28 27화. 그녀의 이야기. 23.05.27 16 0 12쪽
27 26화. 그의 이야기. 23.05.26 18 0 13쪽
» 25화. 그녀의 이야기. 23.05.25 18 0 12쪽
25 24화. 그의 이야기. 23.05.24 20 0 12쪽
24 23화. 그녀의 이야기. 23.05.23 20 0 14쪽
23 22화. 그의 이야기. 23.05.22 23 0 12쪽
22 21화. 그녀의 이야기. +2 23.05.21 24 0 13쪽
21 20화. 그의 이야기. 23.05.20 23 0 13쪽
20 19화. 그녀의 이야기. 23.05.19 26 0 12쪽
19 18화. 그의 이야기. 23.05.18 22 0 12쪽
18 17화. 그녀의 이야기. 23.05.17 25 0 14쪽
17 16화. 그의 이야기. 23.05.16 24 0 15쪽
16 15화. 그녀의 이야기. 23.05.15 27 0 12쪽
15 14화. 그의 이야기. 23.05.15 28 0 12쪽
14 13화. 그녀의 이야기. 23.05.14 3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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