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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숑의 서재입니다

스타 작가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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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숑
작품등록일 :
2017.06.2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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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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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7.1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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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isode 4. 설정에 먹히지 마라 (2)

DUMMY

잠시 후,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소설 속에 들어와 있었다.

알코올의 후끈한 감각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여기 들어올 때마다 제일 고역인 게 바로 이 술이다. 나중에 숙취로 또 엄청 고생하겠네.


[당신의 성실함에 별들이 100 더스트를 지불합니다.]


시작이 좋다. 아무렴 성실 연재는 작가의 기본 소양이지.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구치소의 삭막한 배경이다.

천천히 주변을 살펴본다.

벽을 만져 보기도 하고, 철창의 허술한 부분을 찾기도 하면서.


“탈출은 힘들게야. 포기하게.”


흠칫 놀라 돌아보자 거지 차림의 중년인이 나를 보고 있었다.

아마 나와 함께 갇힌 잡범 중 하나인 듯했다.

어······ 근데 잠깐.

이 사람 내가 아는 누굴 닮았는데.


“성국이?”

“응? 그게 무슨 말인가?”

“······죄송합니다. 사람을 착각했습니다.


젠장, 이 대사는 알아서 잘 편집되겠지?

부탁한다, 별들.

참고로 성국이는 내 대학 동기의 이름이다.

이 사내가 성국이를 닮은 것은······ 뭐, 내 무의식의 기묘한 우연이겠지.


“하하, 그랬군. 내가 흔한 인상은 아닌데 말이지.”

“······예, 그렇죠.”

“아, 통성명부터 하지. 내 이름은 비렐일세.”

“란스입니다.”


자세히 보니 사내는 성국이보단 늙은 편이었다. 내 무의식은 성국이 녀석을 싫어하는 건가?


“아까 경비대장한테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더군. 솔제니친을 그렇게까지 구워삶은 것은 아마 자네가 처음일 거야.”

“뭐, 그래 봤자 설득엔 실패했습니다만.”

“후우, 젊은 나이에 정말 안 됐어. 하필이면 아르메니아의 구치소에 갇히다니.”


쯧쯧, 하고 혀를 차며 비렐이 나를 본다. 이보쇼, 당신도 나랑 같이 갇혔거든?


“이곳의 구치소는 형량이 높기로 악명 높지. 잡범들도 재판 과정도 없이 10년형 때리는 건 일쑤고.”


이딴 곳에서 10년이나 갇혀 있었다간 난 현실에서도 소설에서도 말라 죽겠지. 끔찍하다.


“보아하니 도적인 듯한데, 최소 20년 확정이구만. 가엾게도 자넨 청춘을 감옥에서······.”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저런 말이 나오면, 아마 이쯤에서.


[소수의 별들이 이야기의 전개에 실망―]


“아뇨, 저 지금 나갈 건데요. 아버지가 곧 구해주실 겁니다.”


[―하려다가 멈칫합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별이란 놈들도 참 빡빡하구만.


“흠, 뒷배가 있는 모양이지? 하지만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안 될 텐데? 보아하니 고위 귀족의 자제는 아니신 것 같고······ 혹시 부친이 거상이신가?”

“찢어지게 가난하십니다만.”

“하하, 그도 그렇지. 부자가 도적질을 할 리가. 그럼 대체 어떻게 탈출할 셈인가?”

“그게, 제 아버지가 좀 강한 분이시거든요.”


비렐이 껄껄 웃었다.


“하하! 힘으로 구치소를 탈출하겠다고? 진심인가? 아르메니아 자경단 악명이 얼마나 자자한지 모르는 모양이군. 혹시 자네 아버지 직업이 소드 마스터라도 되시나?”

“음······ 그냥 동네 경비원 하시는데요.”

“그런데 대체 어떻게······?”

“마침 저기 오시네요.”


그리고 구치소의 철문이 열렸다.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이야, 저 대문호의 얼굴이 이렇게 반갑게 느껴지는 날이 올 줄이야.


“······란스 필그림, 석방이다.”


전투력 측정불가의 괴물. 경비대장 솔제니친이 그곳에 있었다.


*


······분명 구치소에서 풀려난 건 맞는데, 왜 발걸음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혹시 못 알아들은 사람이 있을까봐 말해주는 거지만, 당신 생각이 맞다.

그러니까, 내 앞에서 터덜터덜 걷는 저 경비대장이 내 아버지가 맞단 얘기다.

뭐? 그게 말이 되냐고?

말이 되지 왜 안 돼.

내가 그렇게 설정을 바꿨는데.

물론 나도 이게 될 줄은 몰랐다.

재벌도 안 되고, 소드마스터의 아들도 안 되고, 거상의 아들도 안 되는데, 경비대장의 아들은 가능하다니.


가출한 아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솔제니친.

자신의 구해줄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 나.


상황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기에 바꿀 수 있는 설정이었다.

······어, 그건 그렇고, 왜 이번엔 별들의 메시지가 안 뜨지?


[상당수의 별들이 당신의 이야기에 크게 감탄합니다!]

[상당수의 별들이 당신에게 5000 더스트를 지불합니다.]

[거성 중 하나가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개연성의 별이 당신에게 4000 더스트를 선물하였습니다.]


······와우.

순간 무슨 렉이라도 걸린 줄 알았다. 메시지가 늦게 뜬 건 어쩌면 수신된 메시지가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별들의 앞에 ‘상당수의’라는 수사가 붙은 것도 처음이다.

‘개연성의 별’이라는 이름도 처음 보는데······ 젠장, 처음 보는 것들뿐이네.

어쨌든 덕분에 한방에 9000에 달하는 더스트를 모았다.

섣부르지만 인기 작가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감사합니다, 독자······ 아니, 별님들.


[극소수의 별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당신을 싫어합니다.]

[300 더스트가 차감되었습니다.]


······역시 모두 좋은 놈들만 있는 건 아니었군. 도로 가져 갈 거면 왜 준건지 모르겠다. 기왕 가져가는 김에 이유라도 좀 알려 주지.

앞서 걷던 경비대장 솔제니친의 거대한 등이 멈춰선 것은 그때였다.


“란스.”

“예.”


나도 모르게 긴장한 목소리가 나왔다. 하긴, 저 무시무시한 등짝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긴장할 수밖에 없을 거다.


“내가 너를 석방시켜주는 건 네가 내 아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잘 알고 있겠지?”


아들, 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좀 묘해진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솔제니친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경비대장 솔제니친 필그림]

종합 전투력 : 14000~?????(아직 당신의 상상력으로는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설정이 바뀌어서 그런가, 본래는 표기되지 않던 성씨도 생겼다. 내 아버지니까, 당연히 나와 같은 성씨를 가지게 되는 거겠지.


“알고 있습니다.”

“네가 석방되는 건, 그저 네가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뿐이야.”


솔제니친은 여전히 내 얼굴을 보지 않은 채로 말했다.

이거, 얼굴이 점점 더 간지럽다.

아무리 소설 속의 인물이라고 해도, 누군가와 가족이 된다는 기분은 낯설었다.


난 원래 아버지가 없으니까.


내가 아는 ‘가족’은 본가에 있는 엄마와, 동생 태훈이 뿐이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한 번도 내 삶에 나타난 적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단지, 너에게 하나 물어볼 것이 있다.”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솔제니친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머릿속으로 복잡한 기억들이 밀려든 것은 그 순간이었다.

수많은 솔제니친의 잔상들이 내 안에서 말을 걸고 있었다.


‘란스야, 강해져야 한다.’

‘란스야, 검을 배워야 한다.’

‘란스야,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그것은 ‘란스 필그림’의 기억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란스의 역사.

······내가 만들어 낸 역사.


‘싫어, 그만해!’

‘아버진 늘 강요만 할 뿐이야.’

‘날 제발 내버려 둬.’


기억 속에서 란스가 내뱉은 빤한 대사들이 나를 괴롭혔다.

마음 깊은 곳이 욱신거리며 아파온다. 상처 받은 솔제니친의 표정이 보인다.


거친 사막에서 태어난 솔제니친.


젊은 시절 아내를 여의고, 홀로 아이를 키운 솔제니친.

누구에게도 아이를 기르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아이에게 끝내 다정할 줄 몰랐던 솔제니친.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증오했던 철없는 아들, 나 란스 필그림.


‘잘 있어, 아버지.’


우습게도, 내가 만든 말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경고! 당신의 ‘상상력’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젠장, 이건 그냥 소설 속 캐릭터라고. 내가 만든, 아니 내 무의식이 만든 ‘아버지’라는 판타지란 말이다.


“그때 그 말, 진심이었느냐?”


강철 같은 얼굴 위에 오직 눈꼬리만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순간 나는 그가 무엇을 묻는 것인지 깨달았다.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은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아들이 가출한 건 당신 때문이 아닙니다.


갑자기 모든 게 이해가 된다.

그렇구나.

어쩌면, 그랬기에.

바로 내가 이 사람의 아들이 되는 것을, 별들이 그토록 좋아했던 것이구나.


이 남자, 솔제니친은 그때 구원 받았던 것이다.


그저 당장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내뱉은 나의 싸구려 ‘궤변 스킬’에.

아니, 적어도 그땐 구원 받지 못했더라도, 설정이 바뀌면서 나의 궤변은 그에게 하나의 구원으로 바뀐 것이다. 가엾게도.

나는 눈을 감았다.

‘진짜’ 란스라면 이때 어떻게 말했을까?

잘 모르겠다.

‘아버지’라는 존재에겐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걸까?

역시 잘 모르겠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궤변 스킬이 발동합니다.]


오직 거짓말뿐이다.


“진심이었습니다.”

“······나를 용서해주는 거냐?”


거짓이라도 좋다.

어차피 이곳은 소설이니까.

그것으로 한 인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그런, 것이냐······.”


아, 정말 낯간지럽네.

표정을 감추기 위해 얼굴을 숙인 채 우락부락한 근육을 더욱 키우는 솔제니친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정말 이상하다. 하지만 저게 저 남자가 아들을 사랑하는 방식이겠지.

나는 애써 머쓱하니 웃는다.

그래, 잠깐이지만 아버지가 생기는 것도 괜찮을지 몰라.


[소수의 별들이 당신의 이야기에 감동을 느낍니다.]

[400 더스트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더스트도 받으면 더 좋고.


“고맙다, 아들아.”


두터운 손이 내 어깨를 감싼다. 내 어깨를 다 덮고도 남을 만큼 큼지막한 손이다.

이게 아버지의 손이구나, 싶다.

그 무섭던 대문호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럼 오늘부터, 다시 수련이겠구나.”

“······예?”

“이제 화해도 했으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화해는 했지. 그런데 그거랑 수련이랑 뭔 상관이야?


“내가 너를 꼭 아르메니아 최강의, 아니 대륙 최강의 경비병으로 만들어 주마.”


그건 또 뭔 헛소리······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몰려오는 기억들이 있었다.


‘나는 경비병이 되기 싫다고요―!’


······아 맞아. 란스는 원래 경비병이 되기 싫어서 도망갔다는 설정이었지. 내가 짜 넣은 설정인데 잊고 있었다. 젠장, 별 수 없나.


“당연히 해야죠. 열심히 수련하겠습니다, 아버지.”


마침 앞으로의 전개도 막막했는데,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물론 이 소설 제목은 『역대급 최강의 경비병』이 아니기 때문에 진짜 경비병이 될 생각은 없다.

다만 검술을 배워서 나쁠 건 없으니까. 솔제니친은 강하니까 훌륭한 스승이 되어줄 거고.

그렇게 스킬도 좀 배우고 강해지다 보면 별들도 ‘당신의 의지에 감탄했습니다!’ 따위의 메시지를 날려대며 더스트를 퍼줄 것이다.

그러다 적당히 약한 악인도 몇 명 처치해주면서 사이다를 살살 뿌려주면 별들은 탄산으로 아주 녹아버리겠지.

하하, 나도 이제 노련한 웹 소설 작가가 된 거 같은데?

이러다가 금방 조회수 2만 5천 찍는 거 아니야?


“그럼 가죠, 아버지.”

“그러자꾸나.”


아무튼, 그렇게 나는 새로 생긴 아버지를 따라 새로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여기가 정말 우리 집이에요?”


태연하게 정문을 열고 들어가는 아버지를 보던 내가 의심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후후, 오랜만에 와서 반가운 게냐?”


반가운 정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내 눈앞에는 지금 대저택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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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pisode 4. 설정에 먹히지 마라 (3) +50 17.07.19 9,769 274 11쪽
» Episode 4. 설정에 먹히지 마라 (2) +21 17.07.17 4,685 253 12쪽
20 Episode 4. 설정에 먹히지 마라 (1) +17 17.07.16 5,102 228 11쪽
19 Episode 3. 사건을 만들어라 (8) +21 17.07.15 4,898 233 14쪽
18 Episode 3. 사건을 만들어라 (7) +19 17.07.14 5,087 216 16쪽
17 Episode 3. 사건을 만들어라 (6) +22 17.07.13 4,965 245 8쪽
16 Episode 3. 사건을 만들어라 (5) +26 17.07.13 4,851 235 8쪽
15 Episode 3. 사건을 만들어라 (4) +31 17.07.12 5,279 251 9쪽
14 Episode 3. 사건을 만들어라 (3) +39 17.07.11 5,688 250 12쪽
13 Episode 3. 사건을 만들어라 (2) +76 17.07.10 6,020 265 14쪽
12 Episode 3. 사건을 만들어라 (1) +27 17.07.09 6,519 242 14쪽
11 Episode 2. 주인공이 되어라 (6) +38 17.07.08 6,588 320 10쪽
10 Episode 2. 주인공이 되어라 (5) +33 17.07.07 6,784 315 12쪽
9 Episode 2. 주인공이 되어라 (4) +14 17.07.07 8,066 269 11쪽
8 Episode 2. 주인공이 되어라 (3) +29 17.07.06 7,004 297 8쪽
7 Episode 2. 주인공이 되어라 (2) +22 17.07.06 7,827 279 10쪽
6 Episode 2. 주인공이 되어라 (1) +28 17.07.05 9,658 277 9쪽
5 Episode 1. 재벌집 10서클 소드마스터의 회귀 (4) +16 17.07.05 9,762 281 12쪽
4 Episode 1. 재벌집 10서클 소드마스터의 회귀 (3) +26 17.07.05 12,275 317 9쪽
3 Episode 1. 재벌집 10서클 소드마스터의 회귀 (2) +31 17.07.05 12,144 319 10쪽
2 Episode 1. 재벌집 10서클 소드마스터의 회귀 (1) +55 17.07.05 17,770 367 10쪽
1 Prologue. 24억 짜리 노하우 +54 17.07.05 30,373 40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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