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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숑의 서재입니다

스타 작가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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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숑
작품등록일 :
2017.06.2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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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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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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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7.0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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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Episode 1. 재벌집 10서클 소드마스터의 회귀 (4)

DUMMY

남의 원고를 훔친다.

예전 같았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후우······.”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원고를 읽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집 앞 편의점에 소주를 사러 나섰다.

그런데 젠장, 하필 나가는 길에 싫은 사람과 마주쳤다.

가슴께까지 올라오는 몸빼 바지에 빗자루를 들고 있을 뿐인데, 사람이 저렇게 강해 보일 수가 있는 건가.


“학생, 이번 달 월세 밀렸어. 알지?”


복도를 청소하던 집주인 아줌마였다.


“예, 죄송합니다.”

“학생이 착하게 생겨서 봐주는 거야.”


착하게 생기길 잘했다.


“그래. 구직 활동은 잘 되고? 혹시 요즘도 그 소설인가 뭔가 쓰고 있어?”

“······.”

“아휴, 우리 딸도 이번에 대기업 취직했는데. 그래! 학생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학생 올해 나이가 몇 살이었지?”


괜히 대거리를 했다가 이야기만 길어질 것 같아서 나는 꾸벅 고개만 숙이고 지나쳤다.


“죄송합니다. 금방 갚겠습니다.”


뒤에서 쯧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불행에는 많은 문장이 필요하지 않다는 지은유의 말이 옳다.

누가 소설에다가 ‘집주인이 오늘도 한 마디를 했다’라는 한 문장만 넣더라도, 나는 서러움에 눈물을 줄줄 흘릴 것이다.


“1600원입니다.”


소주 반병을 내리 마시며 걸어 돌아왔다.

다행히 오는 길에는 아줌마가 보이지 않아서, 나는 별 탈 없이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새삼 방의 정경이 다르게 보인다.


화장실도, 세탁기도 없는 3평 남짓 고시원 크기의 자취방.

여름옷과 겨울옷을 합쳐도 열 벌이 채 넘지 않는 살림에, 입구에 수북이 쌓여 있는 컵라면 용기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8년 된 고물 노트북······ 젠장. 여기까지만 하자. 불행이 너무 기니까.


“얼마나 잘 썼나 한 번 보기라도 하자고.”


혼잣말과 함께 남은 소주 반병을 빈속에 흘려 넣고 유찬영의 원고를 펼쳤다.


「익숙한 정경에 낯설지 않은 풍경. 틀림없다. 사막도시 아르메니아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주변을 둘러보던 페힐트 룬이 경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긴 어디지? 난 분명 죽었는데? 설마?”」


어째서 웹 소설의 첫 대사는 늘 이딴 식으로 시작하는 거지?

뭐, 클리셰니까 그냥 넘어가자.

마냥 읽기만 하면 섭섭하니까 받은 원고를 워드 프로세서에 필사하기로 한다.

유찬영의 문체도 익히고, 감각도 배울 겸 겸사겸사.


한 장, 두 장. 세 장.


알코올 때문에 현기증이 돌았지만, 페이지는 잘 넘어갔다.

막히는 곳도 없고, 고구마로 속을 썩이는 구석도 없다.

적절할 때 터지는 사이다에는 속이 다 시원할 정도다.

과연 유찬영이랄까.

하지만 뭔가 아쉬운 구석이 없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이거 그냥 회귀자가 깽판 치는 얘기잖아?”


질투심에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그런 얘기였다.

물론 회귀자만 나오는 건 아니었다. 트렌드를 잘 아는 유명 작가답게 온갖 것이 다 있었다.

이세계에, 마왕에, 소드마스터에, 재벌에, 회귀자에, 시스템에, 심지어 귀환자까지······.

맞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대체 내 소설이랑 다른 게 뭐야?”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아냐, 유찬영이 쓴 글이잖아.

내가 뭔가 놓친 거겠지.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자.

원고를 다시 펼쳤다.

읽고, 또 읽고.

그렇게 두 시간 쯤 지났을까.

마침내 결론이 나왔다.


······진짜로 모르겠다.


아무리 읽어도 알 수가 없었다.

소재도 흡사하고, 문장이나 사건 구성도 대동소이하다. 딱히 인물이 더 매력적이지도 않다.

그런데도 이건 10만 명이 읽었고, 내건 10명이 읽었다는 것.

그것뿐이다.


대체 왜?


벌컥벌컥 넘긴 소주에 식도가 쓰라렸다. 헛웃음이 나온다.

유명 작가에게서 배운다?

말은 좋다.

하지만 대체 뭘 배우란 말이냐?

아무리 봐도 차이가 없는데.

······아니, 생각해보니 마냥 그렇지 않군. 유찬영과 나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하나 있지. 바로


유찬영은 유명하고.

나는 유명하지 않다는 것.


갑자기 모든 것이 해결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것이 인지부조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폭발하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래, 이건 결국 그런 문제다.


유찬영 같은 사람은 똥을 싸도 유명해지고 나 같은 건 죽어도 신문 기사에 실리지 않으니까.

유찬영이 회귀자나 소드마스터를 쓰면 뜨고, 내가 쓰면······.

그 순간, 머릿속에서 뚝― 하고 뭔가가 끊어졌다.

백스페이스를 누른다. 기껏 옮겨 적은 유찬영의 문장들이 지워지고 있었다.


“개 같은 회귀!”


한 문장을 지우고.


“개 같은 재벌!”


또 한 문장을 지우고.


“개 같은 소드마스터!”


다시 한 문장을 지웠다.

그렇게 문장을 지울 때마다 묘한 쾌감과 함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가 분출되고 있었다.


모두 엿이나 먹으라지.


나는 유찬영의 프롤로그를 내 마음대로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설정도 고치고, 세계관도 내 마음대로 바꾸고.

하는 김에 주인공도 바꿔 버렸다.


미래를 아는 회귀자에서, 그 회귀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엑스트라 A로.


어차피 연재도 안 될 거, 뭐 어떻게 고치든 무슨 상관이겠느냐는 생각이었다.

회귀자? 흐흣, 흐흐흣. 회귀자는 다 뒈져라!

나는 내가 쓴 새로운 프롤로그를 읽으며 한참이나 낄낄댔다.

이것 봐라 이것 봐. 독자들 보면 완전 암 걸릴 이야기야.


그리고 나는 잠들었다.


대체 언제 잠들었는지도 알지 못할 만큼 조용한 잠이었다.

그러나 그 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미리 알았더라면, 정말 암 걸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나는 결코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



*



“아, 이 인간 또 글 안 올렸네.”


드래곤 매니지먼트의 사무실.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김명훈 팀장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모니터에 출력된 작품은 『탑 소드 마스터의 회귀』.

마지막 연재일은 2월 17일.

그리고 오늘은 2월 24일이었다. 옆에서 모니터를 같이 들여다보던 편집자 차진희가 웃었다.


“푸하핫! 그 작가 또 연중했어요?”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어. 왜 이걸 몰랐지?”

“이걸로 벌써 열 번째네요. 이만하면 신기록인데.”


씩씩거리던 김명훈이 쓰러지듯 의자 뒤로 기댔다.


“······전화기까지 꺼 놓은 거 봐라. 돌겠네. 이거 또 집까지 찾아가야 되나?”

“팀장님이 이해하세요. 정신병력 있는 작가라잖아요.”

“작가는 개나 소나 다 정신 병력이 있다는 게 문제지. 변명도 어디 한두 번이야?”


그러자 차진희가 씁쓸하게 웃으며 자기 모니터를 가리켰다.


“요즘 유행인데요 뭘.”


차진희의 모니터를 본 김명훈의 안색이 굳어졌다.


“뭐야? 『어딘가 비범한 회귀』? 그것도 연중이야?”

“네, 삼일 째 글이 안 올라오고 있어요. 그래도 연중 공지는 썼네요. ‘죄송합니다 여러분. 제가 사실 잠깐 이계에 다녀와야 해서······’ 변명 하나는 창의적이네요. 이럴 여력 있으면 글 한편 더 쓰겠다 그냥.”

“이 친구들이 요새 돈을 날로 처먹으려고 하네. 유찬영이 이후로 배가 불렀다 이거지?”


김명훈이 자신의 주먹을 으드득 꺾었다.


“이래서 덜 컸을 때 잘 조져 놔야 돼. 신인 때부터 고분고분하게 교육을 시켜놔야 연중 같은 건 엄두도 못 내지.”

“요새 괜찮은 신인들 없나요? 아, 그러고 보니 ‘헤츨링 프로젝트’ 아직도 진행 중이지 않아요?”

“진행 중이야. 흐음, 아직 마감이 좀 남긴 했는데······ 간만에 전화나 한 번 걸어볼까? 지금쯤 탱자탱자 놀고 있을 테니 서서히 숨통을 조여 줘야지.”

“와하, 이럴 때 보면 팀장님 정말 악마 같아요.”

“악마 같은 편집자가 진짜 좋은 편집자야.”


김명훈 팀장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스마트폰을 들고 사내 프린트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김명훈의 눈에 파지함에 들어 있던 불량 인쇄물이 들어왔다.


“어? 이거 유찬영 작가 건데? 누가 인쇄한 거야?”


때마침 고개를 든 것은 옆 파티션에 있던 지은유였다.


“그거 제가 이 작가님한테 맡겼어요.”

“이 작가? 이학현?”

“네.”

“이 작품 내가 벌써 구대성 작가한테 맡겼는데?”


그 태연자약한 목소리에 지은유의 표정이 굳어졌다.


“언제요?”

“지난주에.”

“······지난주 회의에서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요?”

“음, 보고를 깜빡했나 보네. 하하.”


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둘 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서늘한 한기가 돌고 있다.


“순서상 내가 먼저야. 지은유씨가 양보하지?”

“참고로 저는 한 시간 전에 정식으로 기안 올렸어요.”


지은유의 모니터를 확인한 김명훈의 표정이 굳어졌다. 서류는 그새 대표까지 결재가 넘어가 있었다.


“취소하면 되지. 마우스 이리 줘봐.”

“싫은데요.”

“왜 이래 지은유? 내가 구대성 작가 얼마나 아끼는지 몰라서 그래?”

“저도 제 작가 아낄 줄은 알거든요.”


김명훈의 입가에 웃음이 감돌았다.


“그래. 지은유 씨도 작가가 있겠지. 누가 순문학도 아니랄까봐 반년 동안 아무 성과도 못 내고 프로젝트비만 축내고 있지만 말이야.”

“말씀 함부로 하지 마시죠.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모르긴 왜 몰라. 이학현이랑 구대성이 비교가 된다고 생각해? 구대성이 지금은 좀 부진해도 종이 책 시장에서는 A급 작가였어. 조금만 손보면 금방 빛날 보석이란 말이야.”

“A급? 그건 팀장님 취향이시겠죠. 솔직히 그 작가 책 재미없던데요? 그런 아재 취향, 종이 책 시장에서나 먹혔지, 지금은 안 먹혀요.”


편집부의 몇몇 직원들이 ‘저 사람들 또 시작이네’라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은유 씨.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는 거야.”

“일에는 절차라는 것도 있죠, 김 팀장님.”


편집부에서 김명훈과 지은유가 싸우는 일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이번 사안은 심상치가 않았다.

하필이면 편집장도 자리를 비운 상황.

직원들이 눈치만 보며 서로 등을 떠미는 사이, 전장에 뛰어든 것은 뜻밖에도 신입사원 차진희였다.


“우와! 잠깐만요! 그럼 지금 유찬영 원고를 두 사람이 같이 고치고 있다는 거예요?”


시기적절하게 난입한 차진희의 등장에 김명훈과 지은유가 반쯤 벌어졌던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잘 됐네요! 이학현 작가는 순문학파고, 구대성 작가는 정통 장르 작가니까. 두 사람이 공동 저자가 되면 더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와, 이거 진짜 꿈에 그리던 조합인데!”

“······.”

“이학현과 구대성!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화합! 자자, 우리 팀장님 진정하시고. 지 대리님도 조금 릴렉스하세요. 우리 다 잘 해보자고 이러는 건데. 여러분, 그쵸?”


주변의 직원들도 이때다 싶어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거 차진희 씨 말이 맞네.”

“김 팀장, 지 대리. 우리 좋게 좋게 갑시다. 좋게 좋게!”


여론이 그렇다 보니 일을 크게 만들기도 난처해졌다. 먼저 두 손을 든 것은 김명훈 쪽이었다.


“하아, 그래. 뭐······ 아직 연재 시작한 것도 아니니까.”

“그럼요, 그럼요.”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 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래도 두 사람을 공동 저자로 선정할 수는 없어. 그런 선례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 계약하는 건 오직 한 사람뿐이야.”


김명훈의 덤덤한 목소리가 사무실에 또 다시 정적을 몰고 왔다. 지은유가 고개를 들었다. 김명훈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은유 씨, 우리 내기 한 판할까?”

“무슨 내기요?”

“순문학 대 장르 문학.”

“······네?”

“이학현 대 구대성. 한 판 붙어 보자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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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pisode 3. 사건을 만들어라 (6) +22 17.07.13 4,965 24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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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pisode 3. 사건을 만들어라 (4) +31 17.07.12 5,279 251 9쪽
14 Episode 3. 사건을 만들어라 (3) +39 17.07.11 5,688 250 12쪽
13 Episode 3. 사건을 만들어라 (2) +76 17.07.10 6,020 265 14쪽
12 Episode 3. 사건을 만들어라 (1) +27 17.07.09 6,519 24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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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pisode 2. 주인공이 되어라 (2) +22 17.07.06 7,828 279 10쪽
6 Episode 2. 주인공이 되어라 (1) +28 17.07.05 9,659 277 9쪽
» Episode 1. 재벌집 10서클 소드마스터의 회귀 (4) +16 17.07.05 9,764 281 12쪽
4 Episode 1. 재벌집 10서클 소드마스터의 회귀 (3) +26 17.07.05 12,277 317 9쪽
3 Episode 1. 재벌집 10서클 소드마스터의 회귀 (2) +31 17.07.05 12,145 319 10쪽
2 Episode 1. 재벌집 10서클 소드마스터의 회귀 (1) +55 17.07.05 17,772 367 10쪽
1 Prologue. 24억 짜리 노하우 +54 17.07.05 30,377 40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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