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2)
이진우가 능력을 숨기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보가 노출된다는 건 그만큼 공략의 여지를 내준다는 것이고, 메가코프란 존재들은 그 실낱같은 여지조차 헤집을 수 있는 현대의 괴물들이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저들 모두를 쓰러뜨리는 건 무리다.'
판단을 굳힌 이진우가 독귀를 움직였다.
'최선의 선택은 가능한 한 많은 전력을 깎아내는 것.'
다시 한 번 폭쇄를 사용하면서 거리를 좁히려 한다.
그러나 이번엔, 후방에 자리 잡고 있던 주술사가 대응했다.
【가시넝쿨Thorn Vine】
말라 비틀어진 고목이 대지를 타고 기어와 독귀의 발 아래에서 솟구쳤다.
콰직!
날카로운 가시가 솟구친 넝쿨이 독귀의 전신을 옭아맨다.
'역시 주술사가 맞았다.'
주술사는 근본적으로 마법 계통의 각성자다.
주술 또한 마법의 아류에 불과하다.
마법과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마법에 필요한 '서클'을 생성하는 대신 외부 매개체를 이용해 술식을 구현한다는 것.
빈말로라도 효율적이라 할 수 없는 방식이기에 주술사는 흑마법사들보다도 숫자가 적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허를 찌르는 기괴성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양분 흡수Nutrient Absorption】
다음 주술이 연계된다.
독귀의 몸을 에워싼 가시넝쿨이 그의 내공을 빨아먹기 시작했다.
내공이 없으면 응당 무공을 사용할 수 없고, 무공을 사용할 수 없는 무인은 튼튼한 일반인에 불과하다.
즉. 독귀를 내공 없는 깡통으로 만든 후 제압해버리겠다는 판단!
물론 독귀는 이러 식의 공격에 어느 정도 저항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내공은 시혈독인에 의해 독성을 띠고 있지 않은가.
파사사사삭!
독귀의 몸을 감쌌던 가시넝쿨이 독성에 의해 시들기 시작했다.
"한 번에 2할 정도. 허, 역시 까다로워."
독귀가 망가진 가시넝쿨에서 탈출하고, 방패 요원과 두 명의 근거리 요원이 따라붙는다.
원거리 요원들은 저격 준비를. 주술사 요원은 후방에서 다시 한 번 주술을 장전한다.
"다섯 번은 반복해야겠구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원거리 요원들의 방해를 감당하면서 방패 요원과 근거리 요원들을 뚫어낼 각이 보이질 않는데, 저쪽은 독귀를 제압할 수단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긴장감과 두려움이 심장을 긁적거리고, 머리 한 켠이 새하얗게 물들어 이성은 장님이 되어간다.
그러나 어쩐지───
그런 와중에도 독귀는 확실한 상승감을 느꼈다.
본래 무공(武功)이라는 것은,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탄생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무인(武人)은 죽음이 턱 아래까지 쫓아온 상황에서도 실낱같은 가능성을 뚫고 나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독귀는, 폭쇄결이란 무공을 익혔음에도 진정한 무인이라곤 할 순 없었다.
자고로 강자란 단순히 큰 힘을 가진 자를 의미하는 게 아닌, 끝까지 살아남는 자이기 때문이다.
무적과 분신이라는 특징을 지닌 독귀는 강자일 수밖에 없었으며, 그가 휘두르는 폭쇄결은 약자의 무공이 아닌 강자의 폭거에 불과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독귀의 전투는, 스스로가 무적이라는 사실을 십분 활용해 무차별적인 자살 테러를 벌이기만 했으니 말 다했지.
...그러나 본체가 공략당해 죽을 수 있다는 위험성을 체감한 지금.
독귀가 비로소 무인으로 우화했다.
끼익!
독귀가 몸을 수그린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언제나와 같은 전투태세.
그에 맞서 방패 요원이 거대한 진압방패를 들어 올린다.
그는 5성 무인인 만큼, 4성 경지인 독귀에겐 절대 뚫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또 이거냐? 학습능력이─"
폭쇄를 사용한 독귀가 뛰쳐나갔다.
방패 요원은 아까처럼 독귀를 정면으로 제압하려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이 충돌하기 직전, 독귀가 변주를 줬다.
【폭쇄爆碎】
역방향으로 폭쇄를 사용해 강제로 돌진을 멈춰 세워버린 것이다.
방패 요원은 제가 내세운 방패에 의해 시야가 가려진 상황.
【이연二連】
독귀는 그 틈에 폭쇄를 두 번 연속으로 사용해, 방패 요원을 우회하려 했다.
"어딜!"
그런 독귀를 도끼를 든 근접 요원이 가로막는다.
"단순하네."
검을 든 요원도 함께다.
애초에 탱커를 우회해 원거리 딜러를 치는 건 정석적인 판단인 만큼, 그런 사태를 대비해 방패 요원 말고도 두 사람이 독귀 공략에 차출된 것이다.
홱!
도끼가 독귀의 가슴팍을 노리고 휘둘러진다.
거리를 벌리려는 일격.
서걱!
검은, 독귀의 진행 방향을 가로막는다.
접근을 배제하며 상대의 힘을 이용해 베어내는 일격이다.
그러나, 독귀의 판단은 기괴했다.
【폭쇄爆碎】
발을 높게 쳐올리며, 양 날개뼈에 폭쇄를 사용했다.
그대로 독귀의 몸이 아래쪽으로 꺾였다.
발이 힘껏 대지를 밟는다.
제 몸에 폭쇄를 사용하면서까지 내리친 진각(震脚).
그 대처에 의해, 애먼 도끼가 허공을 가른다.
독귀의 발에 검이 짓밟혔다.
"어?"
검을 든 근접 요원이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래, 아까보단 낫군. 도핑제를 말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어쩐지, 독귀는 제라드가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도는 걸 느꼈다.
-'폭쇄의 본질은 '빠른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닌 '지정한 방향으로 빠른 속도를 내는 것.' 그렇게, 계속 변주를 줘라.'
저도 모르게 독귀의 입꼬리가 찢어졌다.
'대충 알겠다.'
검을 든 근접 요원을 구하기 위해 화살이 쏘아진다.
잠깐 따돌렸던 방패 요원 역시 다시금 등 뒤에서 독귀를 제압할 준비를 한다.
화살은 독귀가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고, 방패 요원에겐 시선조차 닿지 않았으나, 독귀는 괴상한 일을 해냈다.
음속의 수 배로 날아오는 화살을 붙잡는다.
화살에 담긴 거력에 독귀의 몸이 확 꺾인다.
그러나 독귀는 그 거력에 저항하지 않는다.
가볍게 방향만을 조절할 뿐.
독귀가 화살을 역수로 쥔 채, 화살의 힘에 폭쇄의 힘까지 더했다.
처음 발사된 것보다 더욱 강해진 화살이 독귀를 데리고 날아갔다.
목적지는 방패 요원의 방패 위.
콰직!
막대한 충격량에 방패 요원이 잔뜩 뒷걸음질친다.
독귀는 그 충격을 역이용해, 다시 한 번 반대쪽으로 튀어 나간다.
이걸로, 가장 까다로운 방패 요원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폭운爆雲】
널리 알려지지 않은 폭운의 효과 중 하나였다.
폭운은 내공 일부를 체외로 흩뿌리는 만큼, 발산된 내공을 통해 기감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독귀가 두 근접 요원을 뚫고, 주술사 요원에게 다가가려 한다.
드디어 건한의 깃털들에게 공포감이 맴돌았다.
"이익!"
검이 짓밟혔던 요원이 이번엔 당하지 않겠다는 듯, 수세로 일관한다.
도끼를 쥔 요원 역시 마찬가지다.
본래, 독귀는 여기서 다시 발목이 붙잡혀야 했겠지.
독귀가 무적이라고 한들 어디까지나 경지는 4성 무인.
마찬가지로 4성 무인이 둘이나 있으면, 단숨에 뚫어내는 건 불가능하니까.
-'아쉽긴 하군. 폭쇄결의 진가는 제4식부터 나타나거늘.'
허나, 독귀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폭쇄결爆碎訣】
그동안 많이 연습했다.
실패의 연속이었고, 여태껏 성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어쩐지 확신이 들었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고.
【제사식第四式】
독귀가 양손을 합장하듯 모았다.
두 손 위를 두른 권기가 중심을 향해 수렴하기 시작했다.
압축.
압축.
또, 압축.
독귀가 합장을 풀었다.
평행을 이룬 그의 수인(手印) 사이엔, 어느새 권기로 이루어진 녹색 구슬이 떠올라 있었다.
유형화된 기를 압축해 파괴력을 높이는 폭쇄결의 제4초!
【폭렴爆斂】
머지않아 폭렴이 터져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앙!
압축되었던 구슬이 폭발하며 유형화된 기 조각을 사방에 흩뿌렸다.
폭발에 노출된 두 근접 요원이 눈을 까뒤집은 채 절명했다.
즉사는 면했으나 그들에게 있어 결코 다행이라고 할 순 없었다.
"꺼헉...!"
당연히, 독귀의 폭렴은 독성을 품고 있었으니까.
"이런, 씹!"
이어지는 번개 마탄이 독귀의 몸을 굳힌다.
그 틈을 타 방패 요원이 다시 한 번 자리를 잡고 주술사 요원이 주술을 쏘아내려 한다.
그에 맞서 독귀가 다시 한 번 합장했다.
【폭쇄爆碎】
합장한 채, 다리에 폭쇄를 써 주술사 요원 앞을 가로막은 방패 요원을 향해 다가갔다.
방패 요원은 방패로 전신을 가렸다가, 뒤늦게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이를테면 이건 심리전이자 이지선다 문제였다.
'설마...!'
독귀는 민첩하다.
비록 그가 5성 무인이라고 한들, 속도에 특화되지는 않은 만큼 혼자선 그를 놓칠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 근접 요원을 동원했던 거다.
그리고 지금은 두 근접 요원이 폭렴에 의해 나가 떨어져버린 상황.
즉, 이렇게 스스로 시야를 가려버리면?
독귀를 놓칠지도 모른다!
그럼 끝이다.
독귀를 제압하기 위한 핵심인, 주술사를 잃을 테니까.
끼익!
뒤늦게 방어를 푼 방패 요원이 독귀를 쫓을 준비를 했다.
다만, 그는 이지선다에서 정답을 고르지 못했다.
어느새 독귀는 폭렴을 준비한 채, 그의 품속에 파고들어 와 있었으니까.
【폭렴爆斂】
폭렴이 방패 요원을 덮쳤다.
***
무인들 중엔 자신의 내공이 특정한 속성을 띠고 있는 경우가 존재한다.
독귀의 내공이 독 성질을 띠는 것처럼, 이지아의 내공은 냉기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익힌 천빙심결(天氷心訣)의 초식을 통해 단숨에 유화를 제압해버린 것이다.
일반적인 각성자라면 얼음에 파묻혀, 그대로 동사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의 공격.
그러나 유화는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2서클SecondCirlce】
【광염학파狂炎學派】
【미친 불狂炎】
거대한 얼음 기둥에 갇힌 채 미친 불을 캐스팅했다.
유화의 전신을 뒤덮은 미친 불이 그를 둘러싼 주변 얼음에 엉겨붙기 시작한다.
물론, 순식간에 미친 불이 이지아의 얼음을 녹여버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유화와 이지아 사이엔 그만한 격차가 존재해기 때문이다.
...허나, 조금씩 얼음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얼음은 물이 됐고, 물은 순식간에 수증기로 변해 팽창했다.
부피가 족히 수천 배로 커졌다.
그러나 여전히 수증기는 얼음 사이에 둘러 싸여 있기에, 빠져나갈 길을 잃고 내부 압력을 높였다.
그런 경험을 해봤을지 모르겠다.
압력 밥솥에 밥을 짓다, 밥솥이 폭발한 경험.
이게 바로 그 경우와 같은 원리였다.
'수증기 폭발.'
머지않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버섯구름과 함께 유화를 가뒀던 빙벽이 터져나갔다.
"...이런."
폭발에 휩쓸린 이지아가 눈썹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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