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1)
난데없는 깃털의 습격.
비슷한 일은 JW타워 앞에서도 일어났다.
건한그룹 산하 자회사, 건한보안의 부대원들과 본사의 깃털들이 건물을 둘러쌌다.
“진우 님.”
“보스, 이게 대체...!”
그 광경을 바라보며 이진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호넷. 지금 당장 작동시킬 준비해.”
끊어진 줄로만 알았던 악연의 끈이, 비로소 목을 졸라왔다.
***
처음 임무를 받았을 때, 이지아가 느낀 감정은 따분함이었다.
【임무: 건한캐피탈 조사】
그도 그럴게. 흔하디흔한 임무 양식 중 하나여서 그렇다.
건한은 전형적인 문어발 기업이다.
자회사 개수만 수백을 넘어 수천에 달한다.
소형 자회사 중엔 건한캐피탈처럼 ‘이런 곳도 있었나?’ 싶은 곳이 수두룩하다.
명색이 자회사인데도 감사(監査) 한 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정도면 말 다했지.
딱히 너희들이 망하든 흥하든 신경 끌 테니, 너희도 알아서 선만 지키라는 식이다.
당연히 그런 소형 자회사들이 뜬금없이 터져나가는 경우도 잦았다.
이지아는 이번 일도 그런 임무의 일환인 줄로만 알았더랬다.
허나, 건한캐피탈을 파다 보니 묘한 부분이 있었다.
우선 건한캐피탈의 성장을 촉진시킨 JW타워.
그 존재에 대한 보고가 축소됐다.
이진우의 존재가 누락된 건 기본에 JW타워의 방어력 역시 저평가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지아조차 건한캐피탈의 전 대표, 정갑형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으니 말 다했지.
진실이 본사에 전달될 뻔한 적도 있었으나, 이영준이라는 본사 출신 직원 하나가 건한캐피탈의 새 대표로 취임하며 다시금 사건을 은폐하기도 했다.
‘이것 참.’
여하튼, 정갑형을 통해 이지아가 얻게 된 정보는 이러했다.
JW타워는 이진우라는 남자의 S랭크 이능에 의해 유지된다.
그의 이능은 자신의 영역에 피해 면역 부여하고, 영역 내부에서 자신 또한 피해 면역을 얻는 것.
지금까진 건한캐피탈에서 이진우와 JW타워를 관리했으나, 독귀와 유화라는 존재의 개입에 의해 JW타워를 강탈당해 버렸다.
여기서 기이한 건, 저 독귀와 유화 역시 이진우의 피해 면역 효과를 갖추고 있다는 점일까?
저들이 이진우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은 명백하다.
그러나 대체 어떤 원리로 피해 면역 효과를 독귀와 유화에게 적용해줄 수 있는지는 불명이다.
‘이진우가 재각성을 통한 버프를 공유할 수 있는 이능 획득했나? 아니면 특수한 아티팩트?’
예측은 의미가 없었다.
대충이나마 예상이 가능한 무공 계통이나 마법 계통과 달리, 워낙 기오막측한 능력이 수두룩한 게 바로 이능 계통의 각성자들 아닌가.
아티팩트 역시 종류가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최근 몇 달간, 이지아는 독귀와 유화에 대한 관찰에 집중했다.
어차피 JW타워를 탈환하고 이진우를 확보하면 자연스레 진실에 닿게 될 것이었으므로.
그리고 적당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독귀, 유화, JW타워. 그들이 무적이 이진우의 이능에서 비롯된다는 건 확실하다. 정갑형이 전달한 자료의 특징과 일치해.'
그걸 정면으로 부숴버리는 일은, 사실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무적이라고 해도 결국은 S랭크 이능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쪽도 S랭크의 공격계 이능을 동원한다면?
혹은 S랭크 공격계 이능에 준하는 공격을 휘두를 수 있는, 무인이나 마법사를 동원한다면?
서로 동격(同格)인 만큼 그들의 충돌은 소모전의 양상을 띨 테고, 소모전이 강요된다면 언젠가 JW타워를 박살 내는 것도 가능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인 대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게 가능하려면 8성 무인이나 8서클 마법사는 되어야 할 텐데, 그들은 건한그룹의 회장이 아닌 이상에야 직접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거물들이었으니까.
그나마 S랭크 공격계 이능 각성자라면 적당한 인선이 떠오르지만───
그 또한 최연소 날개 내정자로 알려진 만큼, 이지아가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보고를 보냈는데도 묵묵부답인 걸 보니, 상층부도 그 남자도 이번 일엔 관심이 없나 보지.
‘그래도.’
공략이 불가능한 건 결코 아니다.
이 정도의 정보가 쌓인 만큼, 그녀라면 어렵지 않게 이번 임무를 해결할 수 있었다.
부하 팀원들에게 출동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그녀가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질끈 묶었다.
***
【깃털】
건한캐피탈도, 건한보안도, 건한전자도, 건한화약도, 그외 수천 개에 달하는 건한의 자회사가 아닌─── 그저 건한.
흔히 본사라고 불리는 초거대기업의 엘리트 요원이다.
그들은 품은 깃털의 숫자에 따라 일깃과 이깃, 그리고 삼깃의 직책으로 나누어져 있다.
역할은 건한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배제하는 것이며, 그들의 검이 향하는 대상은 내부와 외부를 가리지 않는다.
일반인은 엮일 일조차 없는 【날개】를 제외하면, 현실적으로 만날 수 있는 건한그룹의 저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
그런데 지금. 그 깃털들이 독귀와 유화, 심지어 본체까지 찾아왔다.
‘유화는 버린다.’
이진우는 일단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불행 중 다행인 포인트는, 본체를 노린 이들은 아직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
결국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은 독귀와 유화 쪽인데, 까놓고 지금의 유화가 세 개짜리 깃털을 이겨낼 가능성은 전무했다.
그러니 자동화 기능을 최대한 활용해 삼깃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리고 독귀를 직접 조종함으로써, 독귀를 노린 깃털들을 배제한다.
'여차하면, 세컨드 하우스로 도망칠 준비를 해야겠지.'
애초에 홀몸인 유화와 달리, 독귀는 라케인의 가족을 무사히 모셔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은가?
독귀 쪽과 달리, 유화 쪽을 자동화로 돌리는 게 효율이 좋기도 했다.
몸을 움직이며 실시간 전투를 벌여야 하는 독귀와 달리, 마법사인 유화는 마법사 특유의 정적인 턴제 전투를 벌였으니.
“당황하지 마라, 작전대로 움직인다!”
이진우가 독귀의 성대를 통해 힘껏 외쳤다.
“달라진 건 없어. 레드 마피아가 깃털로 바뀌었을 뿐이다!”
다행히, 레드 마피아와 충돌하는 사태를 대비해 미리 작전을 짜 놨다.
혹시 모를 사태가 발생하면 독귀에게 뒤를 맡긴 뒤, 해결사들은 라케인의 가족과 함께 도망가기로 한 거다.
독귀의 눈이 이은채로부터 파견된 해결사들에게 닿는다.
“...따라오시죠.”
해결사들이 눈을 빛내더니, 라케인의 가족들을 데리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독귀가 전투 준비를 마친 건 그때였다.
【폭운爆雲】
몸을 수그린다.
양손에 권기를 두른다.
꽉꽉 압축된 용수철이라도 된 양, 독귀는 폭운까지 활성화한 채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준비를 했다.
‘숫자는 총 여섯. 이깃 요원이 둘, 일깃 요원이 넷이다.’
어쩌면, 이번 사태야말로 그동안의 성장을 증명할 기회일지도 몰랐다.
【폭쇄爆碎】
양 다리에 폭쇄까지 사용하면서 독귀가 거리를 찢어발겼다.
목표는 가장 전면에 자리잡은 이깃 요원.
풀 플레이트 아머와 거대한 타워 실드까지 갖추고 있다만, 일단은 저놈을 처리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콰앙───!
허나, 독귀가 달려들기가 무섭게 대처가 이루어졌다.
‘여섯이 아니라 일곱.’
저격수를 배치한 건지 어딘가로부터 총탄이 날아온 탓이다.
‘아니, 여덟인가.’
그리고 한 박자 늦게 화살 한 발까지 따라붙었다.
사실, 본래 원거리 저격류의 공격은 독귀에게 있어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설령 대구경 탄환을 눈알에 얻어맞아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 게 독귀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독귀는 굳이 회피동작을 취하지 않고 방패 요원을 향해 내달렸다.
허나, 괴상한 일이 이어진다.
파직!
먼저 도달한 총탄이 터져나갔다.
‘마탄!?’
뇌전학파의 마법이 인챈팅된 탄환이 독귀의 배를 때렸다.
즉시 전기가 퍼져나가 독귀의 전신을 수놓는다.
피부나 근육이 탄다거나 장기가 손상을 입는다거나.
데미지 자체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전 상태에 면역이 아니라는 게 문제가 됐다.
“큭?”
순간적으로 근육이 굳는다.
뛰쳐나가던 몸이 통제로부터 벗어났다.
그 상태에서 유형화된 기를 품은 화살이 독귀의 어깨를 때렸다.
일부러 뭉툭한 화살촉을 사용한 결과, 유형화된 기에 의해 관통력이 아닌 타격력과 저지력이 최대한 극대화된 화살이었다.
쾅!
달려가던 독귀가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
그리고 그런 독귀를 방패 요원이 어렵지 않게 가로막았다.
가볍게 흘려내고, 반대쪽에 쥔 메이스로 카운터.
독귀가 곧바로 바닥을 뒹굴었다.
그런 독귀를 방패 요원이 방패를 내세운 채 따라붙는다.
독귀는 반격하려고 하지만, 각각 검과 도끼를 든 일깃 요원들이 방패 요원의 허점을 막아선다.
남은 이깃 요원 중 하나는, 주술사인가?
정체도 모를 동물의 손을 하늘 높이 흔들어대고 있다.
‘이건.’
확신할 순 없으나, 일깃 요원의 경우 4레벨. 이깃 요원의 경우 5레벨로 추정되는 상태.
그것만 해도 상황은 충분히 좋지 않았다.
‘날 공략하려 하고 있다.’
더 최악인 건, 저들이 ‘홈 스위트 홈’을 공략하고 있다는 것.
오싹!
등골을 칼로 긁어내는 듯한 소름에, 독귀는 일순 몸을 떨었다.
***
자동화 기능의 성능은, 그러했다.
적절한 지능을 갖춘 AI같달까.
모바일 게임에서 제공하는 자동 사냥 정도의 효율성. 딱 그 정도였다.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으신가 보군요.”
스릉, 하고.
이지아가 레이피어를 꺼내 들었다.
레이피어로부터 냉기가 뿜어져 나와 가슴의 세 깃털을 적셨다.
“그것도 나름대로 좋지요.”
그녀는 레이피어의 검첨을 땅에 가져다 댔다.
가볍게 긁듯, 원거리에서 유화를 향해 검을 올려 벴다.
이어지는 결과는 불가해(不可解)적이었다.
【만빙滿氷】
쓰나미가 얼어붙은 채 다가오면 이런 느낌일까.
아니면, 북극이나 남극의 빙산이 충돌하면 이러할까.
바닥에서 솟구친 얼음의 파도가, 유화를 향해 다가왔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그럭저럭 무협풍의 모습을 갖추고 있던 일대가 모조리 얼음에 뒤덮인다.
유화 역시 단숨에 얼음에 깔려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 여기저기가 모조리 얼음 천지.
살을 에는 듯한 냉기가 피부에 와 닿는다.
홈 스위트 홈의 무적 효과에 의해 고통스럽진 않아도, 그뿐.
몸의 절반이 이미 얼음 더미에 파묻혀버렸다.
고작 검짓 한 번이었으나, 광염렬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위력!
여전히 언데드 라이즈의 효과가 적용되고 있는데도, 바닥이 온통 얼음에 뒤덮여버린 탓에 언데드가 공급될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2서클SecondCirlce】
【광염학파狂炎學派】
다행히 유화는 그럴듯한 판단을 해냈다.
【미친 불狂炎】
가장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미친 불을 캐스팅했다.
샛노란 불이 유화 주변의 얼음에 엉겨붙었다.
슬금슬금 얼음을 녹여대며 얼음에 파묻혔던 유화를 구해낸다.
“역시, 한 번으로는 안 끝나겠군요.”
하지만 본질적으로 무인과 마법사의 싸움은 이런 식이다.
마법사가 마법 하나를 캐스팅할 때, 무인은 마법사에게 접근해 수십 번 검격을 쏟아내는 게 가능한 것이다.
“두 번은 어떨까요?”
여유롭게 움직인 티가 훤히 나는데도, 어느새 이지아는 유화의 등 뒤에 서 있다.
툭.
그리고 한 번 더 레이피어를 튕겼다.
반대쪽에서 솟구친 빙벽이 그대로 유화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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