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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묘익천(熊猫溺泉)

백수건달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억우
작품등록일 :
2014.02.22 16:59
최근연재일 :
2015.05.2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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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2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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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三.

DUMMY

三.


“아무래도 내가 갈 때가 된 듯하다.”

“걱정 마요 영감님, 배울 건 다 배웠잖아요.”

“…배울 건 다 배웠지. 그런데 너 정말로…….”

“안빈낙도, 무위도식! 절대 타협 불가!”

“…….”


* * *


상인이 세상을 보는 눈은 독특하다.

그들에게 있어 세상이란 금과 은이 지배하는 마굴이다.

아수라장 같은 마굴에서 남보다 빨리, 남보다 더, 남보다 잘 세상을 지배하는 금과 은을 발밑으로 깔고 앉아 그 위에 군림하는 것.

그것이 상인의 도리고 상인이 가야할 길이다.

그리고 그 길에 너무도 충실한 한 남자가 있다.

남자에게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남들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끔 하는 비상한 머리.

설사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라도 실행할 수 있는 냉정한 심성.

지치고 힘들 때 자신을 보듬어주는 따스한 가정.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여준 필생의 대적.

마지막으로 하늘이 내려준 천운의 시기까지.

부모가 남겨준 미천한 재산을 바탕으로 남들이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상술을 펼쳐 돈을 긁어모았다. 대적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그를 거꾸러뜨리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가졌다. 황위의 계승으로 불거진 천도 계획이 무산되고, 그 와중에 황제의 자리가 채 이년이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바뀌고 만다.

어느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혼란의 시기가 오리라 예측했다. 허나 그만은 치세가 이어져 천하는 안정되리라 생각했고 그의 생각은 적중하여 말 그대로 금은보화의 산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어느 때부터인가 중인들은 남자를 이렇게 불렀다.

본인의 이름처럼 황금으로 산을 쌓았다 하여 금적산(金積山).

황금의 위에 군림한다 하여 금백(金伯).

북경 전체 상권의 칠 할, 강북 일대 상권의 삼 할을 한손에 움켜쥐었으며 천하의 상권은 어떻게 해서든 직간접적으로 그와 연결이 되어있다 할 정도.

손꼽히는 거상 가운데서도 단연 제일로 불리는 남자.

바로 북경 교가장의 바깥양반, 교운봉, 학, 영 삼형제의 아버지.

교적산 대인을 일컬음이다.


어린 시절에도 어렴풋이 생각했고, 또 나름대로 머리가 굵은 지금도 확연하게 느끼고 있는 거지만 아버지 교적산 대인은 정말 타고난 상인이다. 교운영은 이러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가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 소진봉 여사는 아버지 교적산 대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만일 동정호(洞庭湖)에 꿀벌 한 마리가 빠져 죽는 걸 목격한다면, 바로 얼굴에 철판 깔고 동정호 호수를 꿀물이라고 외치며 팔 양반이 너희 아버지 교적산 대인이라고.

어릴 때야 “에이, 그게 무슨 말이야.” 하며 깔깔대고 말았던 교운영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에게 조부모가 되시는 분들이 교적산 대인에게 남겨준 건, 망하기 일보직전에 빚만 가득한 작은 포목점 한 채였다. 맨땅이 아니라 오히려 깊숙한 구덩이 속에서부터 시작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오년 만에 그 작은 포목점을 북경에서 제일로 손꼽히는 상회로 키워내었고, 불혹의 나이에는 결국 천하 상계의 정점에 서서 군림한 것이 그의 아버지 교적산 대인이란 남자다.

여하튼 그런 아버지니까.

귀여운 막둥이고 칠년 만에 돌아온 불쌍한 막내아들이고 뭐고…….

집에만 처박혀 게으름 피우는 날건달 놈 꼴 뵈기 싫을 거란 사실 정도는 일찌감치 깨달았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으니 교운영이 지금 이 모양 이 꼴일 테다.

“엄마… 보고 싶어…….”


* * *


하루가 참 단조롭다.

헌데 그 단조로운 하루가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교운영은 내면에 숨겨진 또 다른 능력을 깨닫고 전율했다. 하루 종일 침상에 누워 데굴거리는데도 전혀 지겹지가 않다니!

하루 열두 시진 가운데 여덟 시진을 자는데도 잠이 계속 오다니!

“아니, 이럴 수가!”

교운영은 경악했다.

알고 보니 그의 머리카락은 참깨에서 돋아난 털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째서 머리카락을 짜면 걸쭉한 기름기가 뚝뚝 묻어나는지 그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폭풍 날건달의 풍모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기름으로 떡 진 머리, 거뭇거뭇하게 자란 수염에 눈곱이 잔뜩 끼어서 제대로 떠지지가 않는 눈.

다리 밑 상거지 꼴이 아닐 수 없다.

방 한 켠 처박힌 동경(銅鏡)에 슬쩍 얼굴을 비추어본다.

“이거 내가 봐도 좀 그렇네.”

언뜻 가려운 곳을 벅벅 긁어보니 손톱 밑에 새까맣게 때가 끼었다.

말을 정정해야 한다.

거지꼴이 아니라 그냥 거지다.

교운영은 가만히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벌써 열흘이 훌쩍 더 지났다.

“…윽.”

이래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나보다. 밤낮을 대중없이 빈둥대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간 교운영 그에게 하루가 간다는 걸 가장 잘 알려준 양반이 바로 시도 때도 없이 그를 달달 볶던 큰형, 교운봉이다. 그런데 그런 교운봉이 모종의 일로 인하여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니, 시간이 가는지 마는지 교운영이 알 리가 없다.

밥이야 때 되면 시비들이 들고 와.

밥 먹고 배부르면 침상에 드러누워.

침상에 드러누워 자다 배고프면 또 밥이 와.

“너무 늘어지는 느낌인데…….”

사람이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렇게 그저 할 일 없는 잉여인간마냥 있으니 몸이 오뉴월 좌판의 장과 마냥 축 늘어지는 게 느껴진다.

확실히 반동이란 게 무섭다.

칠년.

날짜로 꼽으면 약 이천육백일.

해와 달이 이천 육백 번이나 자리를 바꾸는 시간.

풍족한 삶에 젖어 있던 연약한 부잣집 열두 살 여린 소년이 강철처럼 정련(精鍊)된 기간이다.

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결국 언젠가 부터는 스스로가 단련이 된다는 느낌이 좋아 열심히 매달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저 아찔하다.

지났으니 추억이지 사실 그때 그 순간만큼은 지옥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교운영의 모습이 이렇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지난 칠년 동안 시쳇말로 ‘빡세게’ 살았던 교운영이다. 그러다 갑자기 몸 편하고 마음 편한 집으로 돌아왔다.

비유하자면 헐렁한 바지를 허리끈으로 꽉 조였다가 갑작스레 풀어버린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되면 당연한 말이지만 바지는 아래로 흘러내리고 긴장했던 복부에 힘이 빠지며 축 늘어진다.

지금 교운영의 상태가 바로 바지는 흘러내렸고, 배는 축 늘어진 꼴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되었으면 다시 바지춤을 치켜 올리고 한껏 허리끈을 잡아 묶어야 하는데, 축 늘어진 배를 다시 단단한 근육 덩어리로 조여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하고 있다는 거다.

물론 생각이야 넘쳐난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잉여인간처럼 노닥대는 것, 지겹다.

머리로는 이제 충분하다는 걸, 이제 그만 침상을 박차고 뛰어나갈 때가 되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미 늘어질 대로 늘어진 몸뚱이는 이대로가 좋지 않으냐고 말한다.

안빈낙도, 무위도식.

말이 좋아 안빈낙도요 무위도식이지 사실 알고 보면 비겁한 자기변명에 헛소리일 뿐이다.

“등신…….”

짧게 자조하듯 내뱉는 말조차 목구멍 안으로 잠기며 흩어진다.

교운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구제불능이다.

사실 모두가 다 핑계다.

머리는 어쩌고 몸뚱이는 어쩌고, 말만 번지르르하지 무엇이든 실제로 해야겠다는 의지는 지나가는 남경충 더듬이만큼도 없다. 내뱉으면 변명, 삼키면 자기 위안.

영감을 떠나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며 품었던 화두가 자꾸만 그를 괴롭힌다.

“진짜 난 대체 뭘 해야 하나? 뭘 할 수 있을까?”

교운봉이 말한 것처럼 강호로 나서려니 그냥 싫다.

무공은 배웠지만 그렇다고 무공 배운 이들 모두가 강호인은 아니다.

더군다나 영감도 죽기 전 교운영에게 굳이 강호에 나서 이름을 떨친다는, 영감 식 표현으로는 ‘개부랄’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었다. 물론 부탁 같지 않은 부탁이야 하나 하긴 했지만, 끝끝내 안빈낙도 무위도식 절대 타협 불가를 외치던 교운영의 서슬 퍼런 기세에 굳이 들어주지 않아도 좋다는 사족을 붙인 건 영감이다.

여담이지만, 그럼 도대체 왜 자신을 납치해서 이런 개고생을 시켰냐고 물었다가 회광반조의 일권을 얻어맞은 교운영이다.

아무튼 그러하니 큰형을 도와 강호에 이름을 날린다 따위의 선택지는 애초에 교운영에게 있어 논외의 것이다.

그러면 작은형 교운학을 따라 관부에 진출해 그를 돕느냐.

이건 더더욱 말도 안 된다.

차라리 교운봉을 따르면 따랐지 교운학은 절대로 피하고 싶은 게 교운영의 생각이다.

일단 학문이라는 것 자체가 그와는 상성이 안 맞는 더러, 거기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떻게 교운학을 도울 수 있을 지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아니, 교운학이 누구에게 도움을 구한다는 생각 자체가 영 아니었는데다, 교운영 그 자체가 교운학과 같이 있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이것 역시 논외.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건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겨 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상에 더욱 몸을 깊숙이 파묻는 것뿐이다.

교운영이 생각하기에 어차피 부모님도 딱히 그에게 기대를 건다거나 혹은 무언가를 하길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해야 할 일도 없고, 해야 할 일이 뭔지도 모르겠고, 집안의 기대도 없다.

“그래도 사람 꼴로 있으려면 세안이라도 해야 하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 여전히 침상에 달라붙어 있다.

나른한 얼굴로 다시 수마에 빠져드는 교운영은 몰랐다.

그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버지의 호출이 내려온 건 그로부터 딱 하루 뒤라는 사실을.


작가의말

하루에 한 편 정도라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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