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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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
“영감님. 이게 뭐에요?”
“잡기(雜技).”
“…….”
* * *
북경 교가장(橋家莊)의 주인은 하북제일상(河北第一商)으로 손꼽히는 북경 제일의 상인, 교적산 대인이다. 무려 북경 전체의 칠 할에 달하는 상권을 점유 중이며, 이를 강북 일대로 넓히면 삼 할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일개 상회의 주인이 좌지우지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숫자. 허나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교적산 대인의 능력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교적산 대인은 북경 교가장의 주인일지언정 지배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교가장의 지배자일까?
강호에 위명이 자자한 강북오대검수의 일인, 장남 북경일검 교운봉?
온 관인들이 벌벌 떠는 대쪽 같은 기상의 도찰원 좌부도어사, 차남 교운학?
아니다.
일컬어 상계의 제왕이라 불리는 교적산 대인도, 강북오대검수로 손꼽히는 북경일검 교운봉도, 서른의 젊은 나이에 도찰원 좌부도어사로 재임 중인 교운학도, 그 어느 누구도 감히 교가장의 지배자로 자처하지는 못한다.
물론 칠년 간 사라졌던 교가장의 삼남 또한 집안의 귀염둥이라면 귀염둥이지, 지배자라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명실상부 북경 교가장의 대소사를 한손에 쥐고 뒤흔드는 지배자.
교적산 대인의 영원한 반려이며 교운봉, 교운학 형제의 천적.
아울러 막내 교운영의 영원한 우군.
그렇다, 북경 교가장의 진정한 지배자는.
바로 교가장의 안방마님, 소진봉 여사 되시겠다!
소진봉 여사 나이 스물, 장남 교운봉이 태어났다.
이후 오년 뒤 차남 교운학이 태어났다.
그리고 꼬박 십일 년의 시간이 흐르고, 소진봉 여사 나이 서른여섯에 뒤늦게 늦둥이를 보게 되었다. 서른여섯이란 나이에 출산을 감행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소진봉 여사는 노산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끝내 뱃속의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늦둥이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 아이가 바로 막내, 교운영이다.
어렵게 얻은 늦둥이를 소진봉은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
이미 장남과 차남이 장성하여 각기 강호와 관부에서 입신양명한 터다. 때문에 그저 귀여운 막내는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만 자라나길 그녀는 빌고 또 빌었다.
허나 그녀, 소진봉의 바람은 교운영이 열두 살이 되던 해 깨지고 말았다. 별안간 장원의 담을 뛰어넘은 이름모를 노인과, 노인의 옆구리에 끼여 그대로 납치당한 교운영 때문이다.
노인이 교운영을 납치하며 외쳤던 십년의 기한,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한 줌 의미 없는 공수표에 불과한 것이었다.
교운봉은 종종 칠년 전을 회상할 때가 있었다.
그토록 건강하던 소진봉이 끝내 자리에 몸져눕고, 하루 종일 그 빌어먹을 납치범을 저주하던 모습.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간신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교운영이 없던 지난 시간 동안 소진봉이 겪었던 마음고생은 그 누구도 감히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교운영이 칠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소진봉은 눈물을 콸콸 쏟아내다 끝끝내 실신하기까지 하여 교운봉이 그 두터운 손으로 북경 제일의 의원을 납치하다시피 하게끔 할 정도였다.
공수표에 불과하다 하나 어쨌든 약속한 십년의 세월, 그 세월을 그저 마음 졸이며 기다려야 한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빨리 교운영이 돌아왔으니 아마 소진봉의 심정은 기쁨 그 자체였을 것이다.
북경 제일의 거상 가문, 교가장을 쥐고 흔드는 안방마님 소진봉 여사는 귀한 막내아들이 돌아온 날을 시작으로 무려 사흘이나 잔치판을 벌였다. 그에 신난 건 다리 밑 거지패들과 잔치판만 찾아다니는 일 없는 한량들이었고, 가계부를 기록하며 마음이 찢어진 건 교가장의 주인 교적산 대인이었다.
아마 세상 모두가 적이 되어도 당신만은 나를 믿어주시리라.
교운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훗날 교운영은 이런 고백을 했다.
사실 집에 돌아와 어머니를 처음 껴안을 때 진정으로 집에 돌아왔음을 느꼈었다고.
* * *
“야, 임마! 교운영!”
교운봉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며 교운영은 살짝 두려움을 느꼈다. 살면서 큰형이 저렇게 제대로 폭발한 모습은 사실 처음 본다. 예상보다 더한 박력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으아, 저놈의 성질머리! 곰에서 여우로 바뀌었나 싶었는데!’
곰은 어찌됐든 여전히 곰인 법이다.
“아, 내가 뭘 잘못했다고!”
불곰처럼 으르렁대는 교운봉을 피해 교운영은 고함을 빽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그래도 범인에 준하는 상식과 서른다섯 먹은 성인이 갖추어야 할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혀 있다면 적당히 난동을 부리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올시다.
교운봉의 칠 척 거구가 부드럽게 밀려오며 교운영을 좇았다.
대놓고 성질을 부리는 모습과 다르게 부드럽고 안정적인 자세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교운봉이 무당산에 십년 간 있으며 그의 아버지 교적산 대인이 무당파에 갖다 바친 금괴만 열 관이다. 금괴 열 관이면 금자가 천 냥이다.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릴 액수가 아닐 수 없다.
단순 계산으로 교운봉이 십년 동안 무당에서 무공 익히며 바친 돈이, 관부의 최고위 관리들 근 수십 년 치 녹봉과 맞먹는다.
확실히 무당파는 받은 돈값을 했는 것 같다.
교운봉의 거구가 교운영의 동세를 선점하며 막아섰다.
교운영은 문득 영감이 무당에 대해 말해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무당의 근간은 심유(深幽)함이다. 짜증나는 말코들이지. 부드러움 속의 부드러움을 찾고, 흐름 속의 흐름을 찾는다는 개소리를 실제로 해낸다.”
기억 속의 말처럼 교운봉은 깊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최소한의 결을 따라 흐르는 기세가 심유 그 자체다.
꼭 커다란 몽실 구름이 바람 따라 흐르면 저런 모양일까.
무당 일절 제운종(濟雲踪)의 보법이다.
별 다른 내력의 움직임 없이, 최소한의 보법 운용으로 보여주는 교운봉의 모습은 교운영이 혀를 내두르기 충분했다.
과연 북경일검(北京一劍)이다.
교운봉은 성격이 밝고 호탕하여 허풍도 세고 자화자찬하기를 즐기긴 하지만, 그 실력 자체는 매우 뛰어난 편이다.
예전의 교운영이 그러한 사실을 그저 아련하게 들려오는 풍문에서 믿음 반, 의심 반으로 알고 있었다면, 지금은 그 스스로 느끼는 큰형의 모습에서 그것을 유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교운봉을 일러 북경일검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는 강북오대검수의 일좌인 무당신룡(武當神龍)이라고 하기도 한다.
강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정의 고수이고, 북경에서 첫째가는 검객이며, 아울러 무당이 배출한 신룡이다.
실없이 호탕하고, 허풍 세고, 생긴 건 곰에, 잔머리 굴리기 좋아하는 이 양반은 사실 정말 대단한 남자인 것이다.
교운봉의 육중한 덩치가 이미 교운영의 퇴로를 막아섰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도.
이렇게 내력조차 제대로 운기하지 않은 몸짓에 맥없이 잡힐 정도면 지난 칠년의 시간이 아깝다!
교운영은 지체 없이 바닥을 걷어차 뛰어 올랐다.
고련 끝에 두 다리를 탄탄하게 덮은 근육이 매섭게 부풀며 교운영의 몸을 육척 이상 허공으로 띄워 주었다. 굳이 내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쯤은 가벼운 일이다.
말 그대로 둥실 떠오르는 기분 좋은 감각을 느끼며 교운영은 단숨에 교운봉의 머리 위를 타넘었다. 월담이 아닌 월신(越身)이다.
부지불식간에 교운봉은 메마른 신음성을 터트렸다.
그가 당황하여 시선을 위로 올렸을 때 교운영은 이미 바닥에 착지하여 다람쥐처럼 문밖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엄마! 운봉 형님이 아침부터 나 괴롭혀!”
교운영의 외침은 온 장원을 짜랑짜랑하게 울렸다.
동시에 방 안에서 화들짝 놀란 교운봉의 괴성이 터졌다.
“으악! 교운영, 야 이 자식아! 그건 반칙이야!”
교운영의 구원 요청에 대한 소진봉 여사의 대응은 민첩했다.
“교! 운! 봉!”
폭풍 같은 대갈성이 터져 나왔다.
“너 또 운영이 괴롭히고 있니!”
마치 줄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교운봉의 거구가 그대로 멈춰 섰다. 나쁜 짓을 하다 웃어른에게 걸린 아이처럼 그의 얼굴은 봐주기 민망할 정도로 검게 썩어들었다.
웃기는 말이지만, 북경일검 무당신룡 교운봉 대협은 세상에서 어머니를 가장 무서워한다. 사실 그만 무서워하는 건 아니고 그 냉철한 얼음덩어리 도찰원 좌부도어사 교운학 나리도 그렇다. 이유는 별 게 아니다. 호탕하고 따사로운 성격의 소진봉 여사는, 자식 훈육에서만큼은 부군 교적산 대인 뺨치도록 차가웠기 때문이다. 물론 교운영이야 평생 어머니에게서 성난 말 한 마디조차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귀여운 늦둥이 막내 입장. 교운봉과 교운학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성격이 성격인지라 교운봉은 매일 같이 소진봉 여사가 내린 사랑을 만끽하곤 했었다. 성품 자체가 어머니를 닮아 호탕하고 감정적인 그인지라 냉철하고 이성적인 교운학에 비해 어머니의 꾸중을 들을 기회가 월등히 많았던 것이다.
월등히 많았다?
아니다.
압도적이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여 교가장에는 종종 이런 농담이 흐르곤 했다.
교운봉을 잡으려면 애먼 사마련 마두들을 찾을 것 없이 그저 소진봉 여사를 데려오면 끝이라고.
교운영의 방에서 안채로 통하는 복도로 소진봉 여사의 그림자가 어른댔다.
“윽!”
시커멓게 썩은 얼굴의 교운봉이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아까와 달리 전신전력을 쏟은 훌륭한 제운종의 일보였다. 무당의 현묘함이 성난 어머니를 피해 펼쳐지는 광경이다.
“운봉 형님, 어디 가!”
“출근!”
다급한 교운봉의 외침에 교운영은 피식 웃었다.
“지부장이라서 출근 안 해도 괜찮다며!”
“…….”
교운봉의 답은 없었다. 그저 담을 타고 지붕을 밟아 사라지는 그의 옷자락 나부끼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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