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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묘익천(熊猫溺泉)

백수건달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억우
작품등록일 :
2014.02.22 16:59
최근연재일 :
2015.05.2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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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1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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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一.

DUMMY

“에, 그러니까…….”

“아이고 이거 오랜만이오, 양 대주!”

상 노대의 말 중간을 비집고 구칠이 끼어들었다. 상 노대의 성난 눈초리가 그를 훑었지만 구칠은 개의치 않았다.

갑작스런 사태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양진충의 눈빛이 조금 더 날카롭게 빛났다. 다짜고짜 산길에 일장을 날려 길을 막은 중년 사내를 밀어내고 나선 이가 낯익은 자였기 때문이었다.

“연칠대(連七對)? 연칠대 구 채주가 맞소?”

“기억하시는구려, 양 대주! 으하하, 작년에 보고 한 일 년 만이지요?”

구칠의 얼굴에 벌쭉 웃음보가 피었다. 양진충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와 구칠은 이런 식으로 웃으며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니었다. 구칠이 말한 작년의 만남도 사실 칼부림과 피보라가 피어나는 험악한 만남이지 않았던가.

연칠대 구칠.

녹림삼십육채 중 팔중채(八衆寨)의 채주로 일곱 쌍의 단도 총 열 네 자루를 기가 막히게 써서 연칠대라 불리는 남자. 주로 사천 일대를 기반으로 그 자신과 수하 일곱, 이름과 걸맞게 여덟 명이서 소규모로 돌아다니며 강도짓을 벌이는 악명 높은 도적 두목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째서 소주 곤산 인근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그것도 자랑하던 단도 열 네 자루는 어디에다 팔아먹고 녹 슨 박도 한 자루만 덜렁 든 채로?

양진충의 시선이 가만히 눈앞의 구칠 주변을 훑었다.

구칠과 그 뒤의 일곱 명은 확실히 작년의 일도 있고 하여 낯이 익었다. 하지만 구칠의 앞에 서서 잔뜩 찌푸린 얼굴로 구칠을 쏘아보는 대머리 중년 사내는 잘 모르겠다.

양진충은 그래서 기억을 되짚었다.

분명 올해 초 들어 구칠과 관련된 소문을 들은 기억이 있다.

기억을 되짚느라 양진충이 뜸을 들이는 사이, 상 노대가 인상을 구기며 구칠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구칠아. 너 아는 놈이냐?”

구칠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옆구리를 매만지며 답했다.

‘아, 빌어먹을. 그냥 물어보면 되지 또 저 무식한 손가락질로 찌르고 지랄이야.’

쌍욕이 흐르는 속마음과 달리 입은 공손했다.

“예, 부두목. 저기 저 사람은 북경 교가장의…….”

눈이 휘둥그레 떠진 상 노대가 구칠의 말을 잘라 먹었다.

“북경 교가장? 그 북경의 황금추… 아니지, 금적산 대인의 그 교가장? 이야, 두목이 돈 냄새 난다고 할 때 무슨 헛소린가 싶었는데! 이거 진짜네! 돈 냄새가 풀풀 난다, 풀풀 나! 이게 웬 날로 먹는 전병이냐!”

“어, 부두목. 그게… 억!”

막 뭐라고 입을 여는 구칠의 옆구리에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푹 찌른 상 노대는 성큼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상 노대의 만면에 미소가 흘렀다. 그냥 손님인줄 알았는데 상상 외의 거물이 걸렸다.

미소 짓는 상 노대의 뒤로 금강일지선(金剛一指禪)의 일격에 옆구리를 찔린 구칠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교가장의 손님이신 줄은 미처 몰라 뵀습니다. 으하하하핫.”

손바닥을 썩썩 비비는 상 노대의 모습에 양진충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구칠과 관련된 소문을 기억해낸 탓이었다.

‘그래, 올 한 해 녹림 총표파자를 받들게 된 게 팔중채였다고 그랬어. 허. 이거 참 산 넘어 산이로군.’

가뜩이나 역발산 왕시운 문제로 머리가 무거운데 이제는 또 뜬금없이 천하에 이름 높은 도적 무리들의 수괴, 유령불이라는 암초가 나타났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한 바가 없지는 않았지만, 이건 너무 일렀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일까. 상 노대가 굽실대며 말을 이었고 양진충은 안도할 수 있었다.

“이것 참 원래는 저희 두목께서 모셔야 급이 맞을 손님들인데 지금 그 양반이 잠시 출타 중이신지라 본 노대가 이렇게 손님맞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려.”

‘지금 유령불은 없다, 이거군.’

양진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에 이름 높은 녹림의 부표파자(副鏢把子), 독두불(禿頭佛) 상 노대께서 이렇게 환대하여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소.”

하지만 지금 당장 유령불이 이 자리에 없다 하더라도 눈앞의 이 사내 자체로도 골치 아픈 상황이기는 했다.

녹림의 부표파자, 독두불 상진걸.

겉은 사십대를 갓 넘긴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환갑이 넘은 노인이었고 그래서 중인들은 그를 대체로 노대라고 칭했다. 본래는 무파 소림이 자랑하는 무승(武僧)이며, 실제로 칠십이절예(七十二絶藝)의 열두 가지를 수습한 누구나 차대 소림의 방장으로 손꼽았던 기재 중의 기재였다. 허나 지금은 당대 소림이 공적으로 선포한 두 파계승 중 하나였고, 더불어 그 사형뻘이 되는 유령불과 의기투합하여 근 이십 년에 가깝게 녹림을 경영하고 있다.

독두불이란 이름값과 비교하면 이전 그들과 부딪쳤던 철골잔심 조규는 어린 애나 마찬가지였다.

양진충이 자신을 알아보았기 때문일까, 상 노대의 만면에 번져 있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뭐 사실 여기서 중언부언 더 해 봐야 사족이지 않겠습니까. 그쪽이나 우리나 어떻게 보면 다 같은 상계(商界)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말이 길어 봤자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고 그러니 우리 철저히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합시다. 물론 상도덕에 입각한 접근이겠습니다만.”

다 같은 상계 종사. 양진충의 얼굴이 소태를 씹은 듯 구겨졌다. 그래, 상인들 등 처먹는 것도 상계의 일이라면 일이겠지. 허나 대놓고 그런 심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상 노대의 눈알이 가진 바 공력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야음을 뚫고 새하얗게 빛났다.

“깔끔하게, 가진 거 절반. 참 합리적인 장사 아닙니까? 하하하!”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교운영이 끼어든 것이 딱 그때쯤이었다. 상 노대가 가진 거 절반을 내놓으라고 말할 때쯤.

가만히 마차 지붕에 배 깔고 누워 돌아가는 꼴을 보던 교운영이 불쑥 입을 열었다. 상당히 나른하고, 또 살짝 불퉁한 기색이 엿보이는 말투였다.

“진충 아저씨, 저것들은 또 뭐 하는 분들이신지?”

상 노대가 움찔했다. 그가 인지도 못하고 있던 마차 지붕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으니 움찔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뭐지? 저기 사람이 있었나?’

하지만 상 노대는 잠깐 자신이 손님맞이에 집중해 교운영의 기척을 놓친 것뿐이라고 자기합리화를 시도했다. 약간의 찝찝함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가만히 마차 지붕 위를 살펴보니 상당히 앳된 얼굴의 청년이었다. 교가장의 일행 가운데 유일하게 당당한 얼굴로 마차에 배 깔고 있는 걸 보면 필시 중요한 인물임이 분명할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상 노대는 청년의 건방진 말투를 무시하고 만면에 친절한 웃음을 유지했다.

“아, 공자의 질문은 내가 답해드리지. 중인들이 우리를 부르길 산중호걸(山中豪傑)이라 한다네. 특히 우리 같은 경우엔 상도덕에 충실한 그야말로 모범적인 상인들의 친구라고 할 수 있지. 험한 산길을 개척하여 지나가는 가객들에게 편의도 도모하고, 또 그 와중에 가객들의 무거운 짐도 좀 가볍게 덜어드리는…….”

칼 같은 한 마디가 상 노대의 현란한 어구를 잘랐다.

“그러니까 산도적이네.”

상 노대는 순간 턱 하고 말문이 막혀 잠깐 혀를 씹었다.

그의 눈 꼬리가 푸르르 떨렸다.

하지만 애써 참고 칭찬 아닌 칭찬을 내뱉는다.

“야, 어린놈이 아주 직설적이구나. 크게 될 놈이야.”

이미 반질반질한 대머리 좌우로 난 상처가 꿈틀거리는 걸 보면 제법 화가 난 모양인데, 그래도 용케 참아내는 기색이다. 과연 스스로 상도덕을 아는 모범적인 산중호걸이라 자부할 만 했다.

하지만 이내 이어진 교운영의 외침에 상 노대의 머릿속에 상도덕이고 나발이고 모든 것이 깔끔하게 지워졌다.

“진충 아저씨, 어제부터 그렇게 죽어라 여기까지 왔는데 뭐 저런 것들하고 시간 낭비할 필요 있어? 날 밝기 전에 소주 도착해야 한다며. 저런 것들은 얼른 치우고 가자.”

발끈한 상 노대의 발작 같은 외침이 뒤따랐다.

“간다고? 그래, 가라! 구칠아, 손님 가신단다. 그러니 얼른 보내드려라! 지옥으로! 가시는 길 손 무거우니 짐이란 짐은 모조리 다 수거하고!”


외침은 발작적이었고 움직임은 재빨랐다.

상 노대의 전신에 금빛의 서광이 터졌다. 서광은 이제 연푸르게 번지기 시작한 주변의 어둠 사이에서 유난히 거세게 타올랐다.

어울리지 않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기운이 넘실거리고, 그대로 금빛의 잔영을 그리며 상 노대의 몸이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명색이 과거 소림의 일대 제자였다는 상 노대다.

그가 그려내는 몸짓 하나하나가 불문(佛門) 무학의 진수였다.

단전에서 단숨에 기운을 끌어 올린 것은 금강나한기공(金剛羅漢氣功)의 수법, 금빛의 잔영 은은하게 남기며 허공으로 뛰어 오른 발놀림은 불영선하보(佛影仙霞步), 손마디를 표자권(豹子拳)으로 말아 쥐어 내뻗는 오른손은 열석인(裂石印)이요, 이글대는 기운을 그대로 내려치는 왼손은 처음 교가장의 일행을 저지할 때 내뻗었던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이다.

내력을 끌어 올리고 몸을 뒤집어 날아오르며 오른손과 왼손을 내뻗는 단순한 동작 안에 소림이 자랑하는 칠십이절예의 네 가지가 녹아들었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그 몸놀림 안에 극한에 다다른 초식의 비결이 묻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상 노대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였다.

마차 지붕에서 여전히 천지 모르고 있는 버르장머리 없는 어린 놈!

채 다른 이들이 반응할 새도 없이 상 노대의 신형은 마차를 덮쳤다. 성난 상 노대의 눈과 교운영의 눈이 마주쳤다.

틀림없이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어야 했는데…….

‘웃어?’

상 노대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금빛 서광이 비추는 교운영의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이런 얼굴, 상 노대는 익숙했다. 그러니까 그가 두목으로 모시는 놈팡이가 지루하다고 투덜대다 별안간 재미있는 일을 찾았을 때 지금 이런 얼굴을 하곤 했었다.

그래서 상 노대의 본능이 외쳤다.

위험하다고.

하지만 이미 내지른 손을 거두기는 늦었다.


“바람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느냐? 바람을 피해 달릴 수 있느냐? 풍마(風魔)의 발걸음은 만물을 희롱하니[風魔步以萬物爲弄], 이를.”

“풍마보(風魔步)라 이름 짓겠다! 맞죠?”

“…….”


표자권으로 내지른 열석인은 인중을 파고들었다.

내리친 대력금강장은 오른쪽 어깻죽지를 갈랐다.

하지만 상 노대의 안색은 기괴하게 구겨졌다.

‘손맛이 없다! 뭐냐, 이건!’

마치 허공에 손을 휘저은 것 마냥 아무 느낌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 노대의 양손이 파고든 교운영의 신형이 마치 허깨비처럼 스르륵 흩어졌다. 아니, 흩어지려 하다 별안간 하나로 합치며 올곧은 일관의 정권이 상 노대의 배와 가슴을 세차게 두들겼다.

“쿠억!”

외마디 신음성과 함께 상 노대의 몸뚱이가 날아든 속도만큼 빠르게 원래 있던 자리로 처박혀 들어갔다.

상 노대가 금빛 서광을 틔우며 몸을 날리고, 이내 원래의 자리로 맥없이 처박힌 것은 불과 한 호흡 사이 일어난 짧은 일이었다.

막 상 노대를 따라 손에 쥔 병기를 치켜들고 달려들려 자세를 잡던 구칠과 그의 일곱 수하들도, 그래서 말에서 내려 수세를 취하고자 했던 양진충과 금교대원들도, 별안간 휙휙 날아갔다 날아온 상 노대의 모습에 그 모습 그대로 굳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냥 금빛으로 뭐가 번쩍 했는데 사람이 토악질을 하며 흙바닥을 구르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 테다.

“커억! 우웨엑, 켁!”

침묵이 가득한 장내에 오로지 상 노대 홀로 배를 부여잡고 정돈 되지 않은 호흡으로 토악질을 해대며 이리저리 몸을 굴러댄다. 교운영이 내지른 두 차례의 일관이 허파를 후려쳐 호흡을 곤란케 하고 위장을 꼬아 토악질을 일으킨 탓이었다.

문득 양진충과 구칠의 눈이 마주쳤다. 구칠의 박도가 슬그머니 등 뒤로 돌아가고, 그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헤헤, 양 대주. 그냥 가시죠. 제발.”

슬쩍 미소를 지으며 양진충이 대꾸했다.

“지옥으로?”

“거 참 농담도 참 살벌하게 하십니다, 그려.”


* * *


“갔냐?”

“예.”

상 노대는 구칠의 대답에 아무 말 없이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까지 토악질의 흔적이 묻은 입가를 소매로 쓱 닦으며, 이제는 별조차 희미해지는 하늘을 그저 바라만 봤다.

“저기, 괜찮으십니까. 부두목.”

슬그머니 물어보는 구칠의 물음에 상 노대는 그저 손짓으로 물러가라는 시늉만 할뿐이다. 평소 같으면 버럭 악을 쓰며 발로 걷어차던 아니면 주먹질을 하던 할 양반이 이리 힘없이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고소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구칠은 속으로 낄낄 웃다가 별안간 배를 쓰다듬으며 인상을 구겼다.

한 시진 가까이 지났는데도 아직 배가 얼얼하다.

“참 지독한 놈이야.”

구칠은 문득 교가장의 그 이름 모를 어린놈을 떠올렸다.

교운영은 순순히 가지 않았다. 시간 낭비를 하게 만든 죗값을 치루라며 구칠과 구칠의 일곱 수하 모두에게 공평하게 한 대씩 주먹을 선사하고 갔다. 그냥 겉보기에는 어린애 정권지르기나 매한가지인 그 주먹이 어찌나 맵던지.

그나마 나름 녹림에 몇 없는 상승의 고수인 구칠 정도 되니까 견뎠지, 이미 구칠의 수하 일곱은 두들겨 맞자마자 기절해서 그냥 산길에 내버려두고 온 상태였다.

그들도 구칠과 같이 배를 맞았는데 기절하다 못해 기절한 와중에도 토악질을 멈추질 않아 차마 건드릴 수가 없었다. 구칠도 똑같이 이틀 전에 먹은 것까지 깔끔하게 입 밖으로 올렸지만 그래도 그는 기절은 하지 않았다. 내심 뿌듯함까지 들 정도였다.

“그럼 저는 먼저 잠자리에 들겠습니다요.”

여전히 상 노대는 대답이 없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구칠은 초옥 안으로 사라졌다.

구칠이 자리를 피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상 노대는 뱃속 깊이 끌어 올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追前浪)이랬나…….”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쫓는다.

강호의 생리를 이처럼 잘 설명한 말이 또 있을까.

하지만 정작 앞 물결이 된 입장에서 썩 달갑지도 않은 말이기도 했다.

처음 소림의 문하로 무공에 입문하여 근 오십 년이다. 이제 그의 나이 환갑. 강호에 이름도 제법 알려져 하남을 제외하면 어딜 가나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오늘 같은 일은 처음이다.

그토록 위풍당당하게 전심전력으로 패 죽이고자 날았는데 고작 주먹질 두 방을 못 견디고 토악질에 바닥을 구르다니!

물론 이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 첫 패배는 아니었다. 당장 소림의 승려 시절에만 하더라도 숱하게 패배의 쓴맛을 보았고, 파계를 저지르고 녹림에 투신해서도 많은 패배 끝에 이 자리까지 아등바등 기어 올라오지 않았던가.

당장 가깝게는 학승 출신 주제에 자기가 제 사형이라 우기는 금노저 그 인간에게도 처참하게 털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패배와 방금 전 어린놈에게 당한 치욕은 차원이 달랐다.

“그래도 두목한테는 손이라도 몇 번 써보고 당했지 이런 식은 아니었단 말이다!”

괜히 치솟는 울분에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그저 초옥 안에서 구칠이 화들짝 놀라는 기척 정도나 느낄까.

그렇게 상 노대는 한참을 우울하게 밤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계명성이 새벽하늘을 슬쩍 밝힐 때쯤이 돼서야 상 노대는 어느 정도 마음을 풀고 잠을 청하기 위해 초옥 안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이 풀린 계기는 별 게 아니었다.

강호는 원래 이렇다는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사실.

생각해보면 그 또한 당대의 이름난 절정 고수를 제압하고 처음 그 이름을 날렸다. 그가 꺾은 전대의 고수 역시 울분을 토하며 한갓 애송이에게 당한 패배를 인정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깊은 한숨에 진한 회한을 담아 날려버렸을 것이다. 지금의 상 노대처럼.

“제길, 그놈 진짜 크게 되겠네. 크게 되겠어.”

그래서 상 노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여전히 얼얼한 배와 가슴팍을 쓰다듬으며 잠을 청하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두목한테 일단 보고는 해야겠지? 별로 말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하나하나 말하면 분명히 놀려먹으려고 환장을 할 거고, 그렇다고 얼렁뚱땅 넘겼다 들키면 또 그 유령 같은 짓거리로 날 엿 먹일 테니. 진짜 인생 더럽게 꼬인다, 꼬여!”


작가의말

4월 말로 휴가 날짜가 잡혔습니다. 앞으로 40여 일이 남았군요. 휴가를 가면 놀기 바빠서 글을 못 쓸 거 같으니 그때까지 부지런히 달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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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八. +16 14.03.06 35,890 1,021 14쪽
19 八. +17 14.03.05 35,283 1,035 16쪽
18 七. +17 14.03.04 35,295 1,032 16쪽
17 七. +12 14.03.03 34,711 953 14쪽
16 七. +12 14.03.02 36,199 999 12쪽
15 六. +13 14.03.01 36,175 1,005 16쪽
14 六. +9 14.02.28 37,016 1,066 12쪽
13 五. +8 14.02.27 37,082 977 11쪽
12 五. +14 14.02.26 38,098 1,005 12쪽
11 五. +17 14.02.25 39,568 1,018 12쪽
10 四. +7 14.02.25 39,804 1,078 12쪽
9 四. +11 14.02.24 41,670 1,134 13쪽
8 三. +10 14.02.23 40,886 1,117 11쪽
7 三. +8 14.02.23 41,399 1,096 14쪽
6 三. +11 14.02.23 43,171 1,126 10쪽
5 二. +13 14.02.22 45,377 1,153 16쪽
4 二. +11 14.02.22 47,106 1,288 10쪽
3 一. +19 14.02.22 52,190 1,270 15쪽
2 一. +18 14.02.22 59,617 1,374 13쪽
1 序. +24 14.02.22 64,490 1,569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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