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
七.
“너,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백수다!”
“…뭐라고?”
“그런데 내 가족 건드리는 것들한테는 건달이 되지.”
* * *
“도대체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 온 거지? 천진이라니!”
부끄러움으로 확 달아오른 얼굴, 정신없이 뇌신보로 내달려도 한번 끓어 오른 열기가 식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머릿속에 악지영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아주 천하의 멍청하고 한심한 작자를 보고 있다는 표정을 전혀 숨김없이 드러내던 그 얼굴이라니.
“자기는 입도 험하고 사람도 막 두들겨 패는 주제에!”
애써 투덜거리며 무시해 보지만, 교운영은 안다.
그 입 험한 소저에게 자신은 멍청이로 낙인 찍혔으리라는 사실을. 교운영은 그것이 불쾌하고 왠지 모르게 약이 올랐다.
분명 정남향으로 향했는데 어느 순간 길이 동쪽으로 꺾인 걸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어쩐지 어제 해가 넘어가는 방향이 뒤통수 쪽이라더니.
그래서 교운영은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지 못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왔던 길을 거슬러 계속 달렸다.
어제만 하더라도 즐겁게, 유유자적 거닐었던 산길이 오늘은 쓸데없이 길고 구불구불하게만 느껴졌다.
동녘에서부터 천천히 정점을 향해 오르는 태양?
쓸데없이 햇살만 뜨겁다!
아침 이슬 잔뜩 머금은 오전의 상쾌한 공기?
축축해서 기분 나쁘다!
나뭇잎을 스치다 교운영의 몸을 휘감는 신선한 바람?
달리는 데 거추장스럽다!
교운영은 연신 쨍알쨍알 투덜대며 뇌신보를 운용했다.
그가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빠른 쾌속이 두 다리에 구현되었다.
굽이진 산길을 일일이 달리기 싫어 몸을 띄워 나뭇가지를 박차고 뛰어 올랐다. 운종보와 뇌신보가 어우러진 교운영의 신형은 비조(飛鳥)처럼 허공을 찢었다. 한 걸음에 십여 장의 거리가 접히고 발끝 발끝마다 그 강한 반탄력에 나뭇가지 따위가 후두둑 부서져 내렸다.
그 놀라운 속도는 그가 지난 하루 동안 지나왔던 삼백 리 이상의 거리를 불과 한 시진도 되지 않아 되짚을 수 있었다.
마침내 저 멀리 교운영이 처음 길을 잘못 들어선 갈림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오! 저기네!”
새처럼 튀어 오른 그의 신형이 부드럽게 관도 위로 내려섰다.
비록 땀에 좀 젖은 모습이긴 했지만, 교운영의 얼굴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팔팔한 모습이었다.
아마 강호에서 경신 공부로 이름을 제법 날린 이들이라면 분명 지금 교운영의 모습에 깜짝 놀랄 것이 분명하다. 인간이 불과 한 시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삼백여 리를 주파한 것도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거의 전력질주에 가까울 정도로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땀에 조금 젖은 채,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기세등등하게 갈림길에 내려선 교운영이 양손으로 머리를 헤집으며 고함을 내질렀다.
“왜 표지판 하나 없어가지고는! 사람을!”
어제와 달리 갈림길 주변 가득한 행인들은 그런 교운영을 보곤 미친놈 쳐다보듯 힐끔댈 뿐, 딱히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까지 달려오는 꼴을 보아 하니 무공을 익힌 강호인인 것 같은데, 괜히 한 마디 했다가 손해 보는 건 자신들 뿐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니까.
한참을 저 혼자 성질을 부리던 교운영의 신형이 이내 어제와는 다른 길로 쏜살처럼 튀어 나갔다. 튀어 나가는 와중에도 그의 입은 쉬지를 않았다.
“이건! 관부의! 직무! 유기야아아아!”
“허, 참.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리도 지랄이누?”
그런 교운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느 중년인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남긴 한 마디가 갈림길 위를 떠돌았다. 그야말로 교운영이 듣지 못해 다행인 한 마디가.
양진충의 안색은 무거웠다.
결국 패주에서도 교운영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우선은 휴식을 위해 적당한 객잔에 짐을 풀었지만, 과연 이렇게 쉬고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래서 양진충은 고민했다.
계속 소주로 향하며 교운영의 흔적을 뒤좇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북경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것인가.
북경에서 패주까지 반나절에 걸쳐 강행군을 하며 왔는데도 교운영의 흔적을 찾지 못했으니 이제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양진충은 머리 한쪽을 진하게 누르는 편두통의 조짐을 느끼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사실 어제 교가장을 출발하기 전, 양진충과 휘하의 금교대는 교적산 대인의 명령에 따라 교운영을 보필하기 위하여 마차와 말을 준비해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들이 모셔야 할 어린 공자는 가족들에게 인사 하나 덜렁 남기고 그대로 교가장을 나서 버렸다.
분명히 무언가 의사 전달에 있어 혼선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일이 이런 식으로 꼬일 리가 없었다.
어찌되었든 교운영은 홀로 길을 떠나 버렸고, 그런 그를 찾아 보필해야 하는 것은 금교대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교적산 대인의 명령이다.
“가장 최선은 우선 장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 보는 것인데…….”
하지만 그렇게 북경으로 돌아가면 교적산 대인에게 대체 뭐라고 설명을 할까.
양진충의 손가락이 두툼한 고민의 무게를 안고 가만히 탁자를 두드렸다.
“일단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결정해야겠구나.”
아무리 그가 금교대의 수장이라 하나 혼자 섣부르게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양진충은 조용히 방을 나서 수하들이 기다리고 있을 객잔의 아래층으로 향했다.
객잔의 일층에는 아직 피로가 덜 풀린 듯 피곤한 얼굴의 금교대 대원들이 가볍게 조식을 들고 있었다.
“대주, 오셨습니까.”
내려오는 양진충을 알아본 대원들이 인사를 건넸다.
“음. 간밤에는 잘 쉬었느냐.”
“어느 정도 피로는 풀린 것 같습니다만, 뭐…….”
“하긴 전력으로 경신을 펼쳐 반나절을 달렸는데, 고작해야 두세 시진으로 풀릴 피로는 아니지. 하하.”
머리를 긁적이며 답하는 대원을 향해 가볍게 웃은 양진충이 준비된 자신의 자리에 착석했다. 기다렸다는 듯 주방 근처에 서있던 소년 점원이 단화초반(蛋花炒飯)과 만두 서너 개를 양진충의 자리로 날랐다.
하지만 양진충은 수저를 들 생각도 없이 그저 묵묵히 눈앞의 샛노란 단화초반과 만두를 바라만 본다.
“대주, 어제 저녁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는데 조금이라도 드시지요.”
보다 못한 대원들이 재촉하자 그제야 수저를 들고 음식을 뒤적이지만, 그것도 한두 술 남짓.
곧 들고 있던 수저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양진충은 가만히 수하들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양진충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너희들의 의견을 구하고 하는 게 있다.”
“말씀하시지요, 대주.”
“어제 하루 종일 북경에서 이곳 패주까지 강행군을 해가며 삼공자의 흔적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계속 소주 방향으로 남하하며 삼공자의 흔적을 찾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단 북경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삼공자의 행로를 되짚는 것이다. 나는 후자가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만 너희들의 생각 또한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의견이 있는 자는 기탄없이 말해주기 바란다.”
이내 좌중은 시끄럽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금교대의 대원들은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에 조금의 주저함이 없었고,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굽힘없이 서로의 의견을 타진했다.
지켜보던 양진충 또한 대원들의 의견에 동조하고, 때로는 반대하며 서로의 의견을 하나로 모았다.
“…좋다. 이제 어느 정도 결론이 나왔구나.”
마침내 의견의 취합이 끝나고, 결론이 나왔다.
양진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는 계속 소주로 향하며 삼공자의 흔적을 찾도록 하겠다. 어제보다 더 힘든 강행군일 수도 있으니 체력 관리에 유념하고, 어서들 남은 조반들 들고 출발하도록 하지.”
“하하, 대주를 제외하고 저희들은 전부 든든하게 조식을 취했습니다. 어서 남은 식사나 마저 하시지요. 안 그러시면 대주께서 멀쩡한 음식 남기고 다닌다고 사모님께 일러바칠 겁니다.”
“아, 그런가? 하하, 사모님이 화내시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지. 이거 얼른 먹어치우고 서둘러 출발해야 되겠는데.”
어느 누군가의 장난스런 말에, 양진충은 껄껄 웃으며 이제는 식어 기름기가 번들한 단화초반에 숟가락을 찔러 넣었다. 교가장의 사모, 소진봉이 싫어하는 일 중 하나가 멀쩡한 음식 남기거나 투정하는 것이다. 교가장에 투신한 지 이미 이십여 년이 다 되어 가는 금교대의 일원 가운데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서둘러 남은 단화초반과 만두를 먹어 치우는 양진충의 모습은, 어쩐지 다소 후련한 듯 했다.
조식을 모두 마치고, 어제 하루 동안 후줄근하게 구겨진 의관을 다시 제대로 정제한 금교대의 대원들은 출발을 앞서 몇 가지 준비들을 하기 시작했다.
교가장의 흑의단들은 기본적으로 교가장의 행사 가운데에 무력이 필요한 일이면 어디든지 투입된다.
교가장의 경비 일은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며, 십여 종에 달하는 교가장의 업종 가운데 무력이 필요한 일, 특히 물품의 운송이 중요한 일 등에 중점적으로 동원되고 있다.
때문에 다른 많은 상가가 산하에 표국(鏢局)을 운용하고 있거나 혹은 사업적 관계에 따른 계약에 따라 전담 표국 같은 것을 두고 있는데 반해, 교가장은 산하의 업종에도 표국의 존재는 없었고 딱히 관계를 맺고 있는 업체도 없었다.
그래서 금교대의 준비는 마치 표국의 표사들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미리 객잔의 점주에게 주문한 건량을 받아 몸 이곳저곳에 보관한다. 주로 손이 가기 편한 위치, 가슴팍에 있는 호주머니라던가 그런 곳에 보관을 하는데 이는 이동하는 와중에 짬짬이 열량 보급을 하기 위해서다.
늘 휴대하고 다니는 가죽 끈으로 무복의 소맷자락과 바지를 묶어 고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말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이지만 나풀대는 소맷자락을 이렇게 묶어 고정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찰나의 시간을 아끼는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소지하는 병장기를 언제든 손이 뻗는 곳에 차면 모든 준비는 끝난다. 대체적으로 허리춤 부근에 어슷 매고는 하는데, 저마다의 습관이 다르고 무공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이는 등에 울러 매기도 하고 팔뚝에 감아 묶어두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하나의 공통점이 있으니, 적어도 이동하는 와중에 불편함이 느끼지 않을 위치라는 것이다.
휘하 대원들의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양진충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출발하자.”
“복명.”
하지만 그들 금교대는 그들이 뜻한 대로 출발할 수 없었다. 좋은 뜻을 가진 이는 오지 않고 온 자는 좋은 뜻을 품지 않는다[善者不來 來者不善]라 하였던가.
양진충은 오래된 불가의 경구를 되삼키며 쓴 미소를 지었다. 뜻하지 않은 암초가 눈앞에 나타난 터다.
막 객잔을 나서 출발하려는 금교대의 눈앞에 별안간 등장한 이들.
저마다 차라리 대놓고 벗는 게 나을 정도로 허름한 옷가지 따위를 걸쳐 상반신을 드러냈다. 찢어진 옷가지 사이 드러나는 상반신에서는 온갖 기이한 그림들로 빼곡하게 문신을 새겨 넣은 거구의 근육질 사내들이다.
차마 가슴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 옷 때문에 당당히 드러낸 우락부락한 복근에 특이하게도 역(力) 자를 초서(草書)로 흘려 쓴 문신이 인상적인 그들은 이미 산동, 나아가 황해를 끼고 있는 하북, 강소, 절강 등에서 무척이나 유명한 작자들이기도 했다.
물론 상당히 패악한 쪽으로.
일컬어 역사방(力士幇), 어느 날 황해를 건너 강호에 그 모습을 드러낸 한 괴인을 중심으로 시작해, 어느 순간 산동 일대의 패권을 두고 전통적인 산동의 패주 산동악가와 맞붙을 만큼 저력을 키워 당대에 삼교구문(三敎九門)을 위협할 만큼 사파의 세력권 내에서 이름값을 떨치는 이들이다.
무엇보다 위협적인 것은 외문 기공으로 절정의 경지를 열어 천하에 이름 높은 한 존재다.
- 작가의말
그뉵그뉵.
원래 두 편으로 나눌까 했는데 그냥 쓴김에 올립니다.
Commen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