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전운
우리 한민족의 조상은 과연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흑인 일까요?
35. 전운
“참, 이란에서 8년 전에 TV드라마 `주몽`을 방영했는데 시청률이 60%나 됐다면서요? 말 타고 달리며 칼 싸움 하는 거 나오니까, 자기들 낙타 타고 달리며 칼 싸움하던 기억이 나서 좋아했나 봐요. 그죠? 호호.”
바-붐 여사장 세희가 술 마시고 안주 먹는 와중에도 양념거리로 손님들한테서 들은 얘기를 꺼낸다. 한 달에 이틀밖에 안 쉬면서, 국내의 그 K-드라마 방영시간인 밤에는 업소에 나와 있었을 텐데 주몽을 제대로 보기는 했는지 모르겠다.
“언니 사장님, 주몽은 암 것도 아니에요! 그 보다 2년 전에 방송한 `대장금`이는 시청률이 86%나 됐다던데요! 윤 차장님 언니, 진짜 엄청나지요? 이란사람들 임금님 수라상 보고 뿅 갔나 봐요. 히히.”
영란이 제가 대장금에 무수리로라도 출연했던 것처럼 좋아하며, 지은에게 칭찬받고 싶어 호응을 유도하는 눈짓을 보낸다.
“그러게, 이란 무슬림도 드라마는 좋아하는가 보네. 만날 엎드려서 알라 신한테 절만 하는 줄 알았더니. 호호.”
지은이도 모처럼만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온 영란에게 웃으면서 화답해준다.
“이번에 여왕벌님 다녀와서 혹시 `태후`가 방영되면 이란사람들 시청률 90% 넘기는 거 아닌가? 호호.”
세희가 남자들 관심을 지은에게 뺏길세라 지금 중국에서 한류열풍을 일으키는 K-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끄집어 낸다.
“그러게. 이제 이란에도 한류 붐이 일겠는데! 거꾸로 우리나라에는 히잡 붐 이는 거 아니야? 붐붐.”
지은이 손가락을 권총처럼 만들어 세희를 향해 발사한다.
“남자들 턱수염 안 깎고 돌아다닐까 봐 걱정된다 얘! 호호.”
세희가 면도를 안 해서 약간 가무잡잡한 문도의 턱을 흘깃 쳐다보고 웃는다.
중동 붐이 일어나기는 할 모양이다.
“아-참, 이번 여왕벌님 이란 방문 때 테헤란 한국문화주간 행사를 하는데, K-드라마 `장영실`을 밀라드타워 시네마홀에서 상영한다고 하데. 장영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학자인데. 키키.”
맥주 마시며 K-드라마 얘기로 와글거리던 여자들이 훈제칠면조 큰 조각을 우물거려 먹느라고 잠잠해진 동안에, 물리화학박사 근상이 뒤늦게 뒷북 치는 소리를 하고 있다.
“박사오빠야가 나 말고 장영실이를 더 좋아해요? 영실이가 과학자에요? 예뻐요? 히힝. 장영실이는 뭐 개발했는데요?”
영란이도 장영실은 잘 알면서 일부러 근상이 덜 민망하게 장단을 맞춰준다.
“응, 장영실이는 세종대왕 때 관청 노비출신의 천민신분이면서 측우기랑,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 그러고 휴대용 해시계인 `앙부일구`, 또.. 천문관측대 `혼천의`를 발명한 남자 과학자야. 나중에는 세종대왕님 신임을 받아서 종3품 벼슬까지 지낸 인물이지.”
“노비출신이면 나, 주영란이처럼 공부도 못 했을 텐데, 어떻게 그런 걸 발명했대요?”
“음.. 장영실의 부친은 원래 중국 원나라 사람인데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조선으로 망명해서 귀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조선인 신분으로 귀화시켜준 걸 보면, 원나라에서 벼슬깨나 했던 사람으로 추측돼요. 그 정도면 양반은 아니라도 양인 신분은 주어졌을 텐데, 장영실의 모친이 부산 동래현 관기 즉, 관청의 노비인 기생이어서 장영실은 태어나면서부터 천민이 되었다는 구만. 그러니까 머리는 아버지 닮아서 꽤나 좋았을 거란 뜻이지.”
세희와 지은이가 근상에게 시선을 보내고 관심을 가지자 근상이 차근차근 장영실의 미스터리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어머나, 부친이 양인이라도 모친이 기생이면 아들은 천민이 되는 거에요?”
세희가 놀라는 척 반응을 보이며 바-붐 단골손님인 최 박사님 대접을 해준다.
“그렇지! 부모 중 어느 한 쪽이 천민이면 자식도 천민이 되는 게 그 당시 조선 태종(이방원)대의 신분제도였어요. 홍길동이도 마찬가지로 양반인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했잖아요? 하하.”
“아~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그 많은 걸 발명한 과학자가 됐대요? 박사오빠!”
매니저 영란이 여사장 세희에게서 마이크를 뺏어온다.
“응, 장영실이가 어릴 때 틈틈이 동래현 병기창고에 들어가서 낡고 못 쓰게 된 병장기를 손질하면서 천재적인 자질을 발휘했대. 그래서 남양 부사 윤사웅의 추천으로 한양에 올라와 궁중에서 일하게 된 거지. 그러다가 세종 3년인 1421년에 윤사웅과 함께 북경에 가서 동양최대의 천문대인 관성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는 구만. 아마 그래서 해와 달,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더 갖게 된 거 같아.”
“아하, 그래서 장영실이 해시계를 만들 수 있었군요. 그런데 물시계는 장영실이가 이 세상에서 맨 처음 만든 거에요?”
이번엔 세희가 마이크를 잽싸게 도로 뺏어간다.
“그렇지 않아요. 장영실은 15세기 사람인데, 12세기 초에 송나라 과학자 `소송`이라는 사람이 물레바퀴로 돌아가는 거대한 자동물시계를 발명했는데, 장치가 너무 복잡해서 기술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결국 그가 죽은 뒤에 그 물시계는 몇 가지 사료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말았대요. 하하.”
“그러면, 장영실이는 그 소송이라는 송나라 과학자의 물시계를 모방해서 조선형 물시계를 만든 건가 보네요. 호호.”
“음.. 세종대왕님이 일찍이 자동 물시계에 관심을 두고 정인지와 정초를 명나라에 보내서 관련자료를 수집해오게 했어요. 거기에는 `소송`의 물시계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물시계 자료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장영실이 그것을 바탕으로 `자격루`라는 새로운 물시계를 만들어냈던 겁니다.”
“이슬람의 물시계라고요? 어머, 이슬람이 중동지역 사막에 있는 나라인데, 물시계를 다 만들었고 그 자료가 중국에 있었다고요? 설마 요!”
지은이 깜짝 놀라며 반론을 제기한다.
“음.. 우리가 걸프전으로 기억하는 걸프만은 예전 이름이 페르시아만이에요. 페르시아만을 서쪽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북쪽의 이라크, 동쪽의 이란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라크 내륙에서 흘러내리는 두 개의 큰 강인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이 페르시아만으로 흘러 들지요. 이 두 개의 강 유역에 우리가 잘아는 페르시아문명이 기원전 BC 600년경부터 발달해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 기원후 AD 600년경에 `무함마드(모하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했고, 무함마드 사후에 후계자인 이슬람교 1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가 페르샤문명의 마지막 왕조인 `사산조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이슬람제국을 세운 거에요. 지금의 이란 땅이 바로 그 이슬람문화의 발상지이고요.”
물리화학박사인 근상이 역사에도 해박한 지식이 있는 모양이다. 하기야, 그 정도는 돼야 박사 소리 제대로 듣지!
“아~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네요. 이슬람이 이란 땅에 있던 페르샤문명을 무너뜨린 후에 그 문명사회의 시대에 앞선 물건인 물시계가 무역을 통해서 동쪽에 있는 중국에 전달이 된 모양이군요.”
“음.. 그 이슬람물시계는 12~13세기경에 아랍인에 의해 발명된 건데, 마침 그 무렵에 중국대륙을 차지하고 있던 몽골이 서쪽으로 진격해와서 이슬람제국을 멸망시키고 이란을 정복했으니까, 이슬람물시계는 정복자인 중국 수중에 전리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간 거겠죠. 하하.”
이슬람물시계는 페르시아문명의 유산이 아니고 6~7백년 뒤에 이슬람제국의 아라비아인이 발명한 제품이라는 얘기다.
“어머, 그러면 지금 이란에 사는 아랍인들 선조는 대단한 사람들이었네요? 그 이슬람물시계는 대체 어떻게 만들었길래 장영실이도 커닝을 했을까요? 호호.”
뉴젠 기획실 차장인 윤지은과 연구소 소장인 최근상이 아주 죽이 맞아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다.
“그 이슬람물시계도 두레박처럼 생긴 물통에 일정한 시간 동안 떨어지는 물방울을 모아 물통을 다 채우면 쏟아 부으며 시간을 알려주는 건 마찬가진데, 톱니바퀴 대신 복잡한 장치로 만든 통로를 따라 쇠구슬을 굴려서 종이나 북을 치고 시간을 알린다는 점에서 그 전의 송나라 `소송`의 물시계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자동물시계에요. 무거운 쇠로 만든 공을 굴렸다는 것은 뉴턴이 17세기에 발견한 중력의 법칙을 아랍인은 12~13세기에 이미 알고 물시계의 경종장치에 적용했다는 뜻이라서 그 당시로는 아주 획기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는 겁니다.”
“야~ 우리 최 박사 얘기 듣고 보니까, 이란사람들 턱수염 덥수룩하게 나고 호전적인 테러단체이슬람국가 IS 닮은 줄 알았더니 머리도 제법 있는 친구들인가 보네. 크크.”
근상이 자기가 제일 좋아한다는 장영실을 설명한답시고 족보부터 시작해서 이슬람물시계까지 장황하게 읊어대는 동안 지겹고 아니꼬워서 참기 힘들었던 문도가, 이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지은이와 아주 대화놀이를 하고 있자, 꺼실꺼실한 턱수염을 만지며 도전적인 시선으로 근상을 노려보고 웃는다.
더 이상 내 여자와 놀아나면 가만 안 두겠다는 표정이다.
“그 테러단체 IS란 놈들이 시리아 북부와 이라크 동부를 차지하고 창설한 자기들 나라이름을 하필 이슬람국가 Islamic State 라고 지어서 이니셜이 IS가 되어버렸잖아. 그래서 그냥 IS라고 말하면 괜히 관계도 없는 이슬람 사람들 전체가 떠오른단 말씀이야. 키키. 내가 말한 이슬람물시계를 발명한 이란 땅에 살던 사람들은 이슬람종교를 믿는 아랍인이지 고 사장이 말하는 이슬람국가 IS 테러단체 아랍인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돼요! 킥킥.”
근상이가 문도 너는 중동관련 얘기할 때는 이슬람이나 IS의 말 뜻부터 알고 나서 나불거리면 좋겠다는 뜻을 전한다.
“그래 인마, 이슬람이면 이슬람교 믿는 아랍인 말하는 거고, IS는 테러단체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 아랍인은 이란에도 살고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사는데, 같은 종족이면서 서로 시아파다 수니파다 하면서 파벌다툼 하는 거잖아! 크크.”
이슬람교를 믿는 이스람교도를 무슬림이라고 부른다.
솔직히 문도는 중동 모래사막에 있는 나라의 국민들은 모두 다 낙타 타고 다니는 아랍인인 줄로 알고, 이슬람이니 무슬림이니 비슷비슷한데다가 시아파, 수니파에 대해서는 복잡해서 설명을 들어도 금세 까먹고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아마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사람이 아니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 일 게다. 정보의 홍수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이 시대에 내 하는 일에 관련된 것만 들여다봐도 골 때리는데, 그딴 거 알아서 뭐에 써먹게 공부해? 괜히 골치만 아프지!
*** ***
사우디아라비아 국방장관실.
벽면 높이 녹색바탕에 흰색으로 아랍어와 칼이 그려진 사우디 국기가 걸려있다.
“이번 개각에 보건장관께서 아예 석유장관자리를 맡아주셔야 되겠습니다.”
머리에 하얀 바탕의 연홍색 체크무늬가 있는 카피예 kuffiyeh 를 뒤집어 쓴 국방장관이 나직하면서도 또렷한 음성으로 말을 꺼낸다.
통통한 얼굴에 볼과 턱을 온통 뒤덮은 새까만 구레나룻과 콧수염으로 보아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귀족 풍의 외모로 온 몸이 자신감으로 넘쳐난다.
“아, 이번에 개각을 단행하시는 군요! `이브라힘` 석유장관은 20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켜온 분인데, 부왕께서 윤허는 하신 겁니까?”
국방장관 앞에 예의를 갖추면서도 별 부담 없는 자세로 앉아있는 보건장관은 나이가 50대 후반은 되어 보이고 역시 귀족 풍인 얼굴에는 화색이 돈다.
“부왕께 재가는 다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중앙은행 총재와 무역투자부장관도 교체할 겁니다. 앞으로 이란과 정면 승부를 겨루려면, 우리 왕실에서 정권을 제대로 잡고 전쟁자금을 철저히 준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부왕? 그러면 이 새파랗게 젊어 보이는 사우디 국방장관이 `살만` 사우디국왕의 아들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예, 물론 그래야지요. 미국마저 우리와 거리를 두고 물러서서 방관하는 마당에, 러시아와 손을 잡은 이란을 치려면 우선 우리 수니파국가부터 동맹을 공고히 해야지요. 참, 이번에 사우스-코리아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하게 되면 이란과 노스-코리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노스-코리아는 이미 이란과는 등 돌린 사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비밀리에 노스-코리아 김정은 위원장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으니까 좀 더 지켜봐 주십시오.”
국방장관이 육중한 몸을 약간 거만하게 움직이며 얼굴에 자신감을 보인다.
“아, 예! 역시 우리 부왕세자께서는 외교정치력이 대단하십니다. 허허. 아, 참. 예멘전선은 어떻습니까?”
만족한 웃음을 짓던 예비 석유장관(에너지-산업광물장관)인 56살 `칼리드 알 팔리흐` 보건장관이 금세 정색을 하며 염려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음.. 미국이 돌아서는 바람에 다른 연합군 국가들도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어서, 지금은 우리가 좀 밀리고 있습니다. 조만간 이슬람국가(IS)를 내세워서 대대적인 공습을 가할 생각입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부왕세자(제2왕위계승자)가 수염 난 31살의 두터운 입술을 꾹 다물며 굳은 의지를 나타낸다.
예멘전선이라고?
이란과 러시아가 손을 잡았다고?
사우디가 북한 김정은이와 비밀리에 접촉을 한다고?
이거 뭔가 전운이 감돈다!
이 소설은 판타지가 아닙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닥쳐 올 사실을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의 가까운 미래를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Commen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