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북진 (5) - 초전박살
우리 한민족의 조상은 과연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흑인 일까요?
29. 북진 (5) – 초전박살
“문도야 나는 여기 지나갈 때는 괜히 서글퍼진다.”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를 서쪽으로 비켜 우회하기 시작하면서 머뭇거리던 정훈이 침울한 음성으로 탄식처럼 내뱉는다.
“왜? 영종도에 와본 적이 있어?”
“응, 와본 게 아니고 1년간 살았어.”
“뭐? 1년간 살다니! 너랑 나는 초등학교 동창인데 언제 영종도에 와서 1년간이나 살았다는 거야?”
초등학교시절 이후에 한번도 떨어져 있어본 적이 없는 문도가 무슨 소린가 싶어 의아해한다.
“입학 전 5살 때 엄마랑 할아버지랑 여기 영종도 서쪽 끝에 있는 삼목도 삼목초등학교 관사에서 살았어. 엄마가 양호교사 순위고시에 합격해서 첫 발령을 여기로 받아왔었거든. 삼목도가 도서 오지로 분류되어 있어서 1년만 근무하면 경기도 내에서는 어디든 원하는 학교로 전근 갈 수 있었대. 우리가 왔을 때는 마침 삼목도와 영종도 사이 개펄 위로 둑길을 쌓아 올려 만든 도로가 막 개통되어 버스가 다녔어.”
긴 사연을 얘기할까 말까 망설이더니 이제는 괜찮겠지 싶은 표정으로 정훈이 말문을 연다.
“아, 그랬더나? 나는 몰랐네. 내가 너 만났을 때는 어머니가 수원에 있는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어서 계속 수원에 있은 줄 알았지. 그러면, 1년동안.. 아버지 혼자 오산 집에서 사셨겠네?”
정훈의 아버지 직장이 있던 오산은 수원 바로 밑에 있는 소도시다. 정훈이 5살일 때는 읍소재지였다.
손으로 계속 비행중인 드론을 조종하던 문도가 힐끔 곁눈질로 정훈을 쳐다보고 눈치를 살핀다.
“응, 아버지 혼자 일주일간 오산에 계시다가 토요일 밤에 삼목도에 오셔서 하룻밤 주무시고 뒷날 점심 잡수고 돌아가셨어. 다음 주에는 우리가 역 코스로 오산 가서 하룻밤 자고 돌아왔지.”
문도가 아버지를 먼저 말하자 안심한 듯, 그러나 신경 써서 얘기하는 정훈의 얼굴에 그 시절의 어려움과 아쉬움이 비쳐 보인다.
“야, 그랬구나. 완전히 일주일에 한번씩 상봉하는 이산가족이 되었었구나. 고생 많았겠는데! 그때 여기 영종도 끝자락까지 오고 가려면 차랑, 배랑 여러 번 갈아탔을 거 아니야.”
그 당시 대중교통 수준이 대충 기억나는 문도가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응, 오산서 수원까지 시외버스로 와서 인천 연안부두까지 오는 버스로 갈아 타고, 연안부두에서 배타고 영종도 동쪽 끝 부두에 내려서 다시 버스 타고 섬을 꾸불꾸불 한 시간 돌아서 서쪽 끝 삼목도에 도착했지.
그때는 토요일이 반공일이니까 아버지가 점심 때인 1시쯤에 오산서 출발하면 연안부두 마지막 배 5시 30분에 겨우 맞춰 도착했어. 조금만 늦으면 연안부두 여인숙에서 자고 다음날 일요일 아침 첫배로 들어와야 되는데, 삼목도에 도착하면 9시쯤이라 얼굴 마주보고 앉아 두세 시간 얘기하다가 얼른 점심만 잡수고 곧바로 출발해 가셨지.
1년동안 서너 번 그랬는데, 내 기억에는 내가 헤어지기 싫다고 떼쓰고 울어서 울먹이는 엄마한테 야단맞고 할아버지 뒤에 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나.”
문도의 표정을 힐끔거려 살피며 조곤조곤 얘기하는 정훈의 목소리가 항상 자신감에 넘쳐서 활기차던 그 목소리가 아니다.
“야, 너 어릴 때인데 그럼, 1주일만에 만난 아빠를 두세 시간 만에 보내는데 떼쓰고 안 우냐? 나 같으면 땅바닥에 뒹굴고 야단법석을 떨었겠다. 히히.”
5살, 한창 재롱부리던 어린 마음에 아빠와 이별하는 슬픔이 오죽했겠나 싶어 동감하면서 위로하는 문도의 눈에 보일 듯 말 듯 불빛에 반짝거리는 물기가 비친다.
그런데 억지로 웃는 문도의 웃음 속에 정훈이보다 더한 슬픔이 배어 나오는 것을 정훈은 금세 눈치챈다.
“미안해, 문도야 내가 괜히 쓸데없이 아버지에 관한 옛 얘기를 한 것 같다. 너 안 괜찮지? 미안해!”
“아니야, 인마! 나 지금은 다 큰 어른이야. 그 정도 얘기로 울먹이지 않아. 괜찮아, 염려 마라 심통. 크핫하!~”
갑자기 문도의 드론 BB1이 속도를 높이며 앞으로 질주해 나간다.
“나 잡아 봐~라!”
고함을 지르며 드론 조종기를 만지작거리는 문도의 굵은 손가락놀림이 눈에 띄게 무디어 진다. 조종에 집중해야 할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얌마, 그 따위로 조종하다가는 영종도 앞바다에 꼬라박기 십상이다. 어디 이 형님 비행솜씨 좀 배워볼래? 히히, 히 얏호!~”
삼목도 비가를 읊조리고 들으며 훌쩍이기 직전의 분위기에 빠졌던 두 친구는 갑자기 한밤중 칠흑 같은 어둠 속 하늘에서 드론을 쏜살같이 날리며 고함을 질러댄다.
문도는 고등학교 3학년 초에 어머니의 시신이 신축공사장 시멘트 속에서 발견된 채 돌아가시고, 건축업자이던 아버지는 범인으로 잡혀서 오랜 수감생활을 하게 된 슬프고도 비참한 사연이 있다.
그래서 문도는 고교 3학년 시절을 정훈의 집에서 함께 숙식하며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작은 아버지만 있는 문도는 자기 치부까지 다 아는 정훈이가 이 세상에서 친 형제와 마찬가지인 유일한 피붙이나 다름없다.
세상 사람들 누구나 슬프고 애잔한 사연을 한 두 가지는 지니고 있을 것이다.
정훈이처럼 슬픔도 아닌, 복이 넘쳐서 간직한 어릴 적 서글펐던 기억도 있을 것이고 문도처럼, 우리 사회에 한 두 번이나 있을까 말까 한 엄청난 아픈 상처를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슬픔은 커 보이고 남의 아픔은 작아 보이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 중에는 나보다 훨씬 더한 어릴 적 아픈 추억과 참을 수 없는 쓰라린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나만의 서글픈 사연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스스로를 옭아매고 감정을 증폭시킨 반항심으로 당연한 듯 나쁜 길로 접어들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이해 받을 수 없는 옹졸한 인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져 쓰잘머리 없는 세설을 늘어놓는 동안 두 드론은 어느새 강화도 북쪽 끝에 있는 `강화 평화 전망대` 상공에 다다랐다. 밤 12시가 다되어 간다.
“정훈아 여기야! 정확한 도강지점은 그 사람들도 모르고 있대. 오늘밤에 남한의 지원단체 `우리민족` 이 보낸 안내원이 와서 자세히 알려주나 봐.”
앞장서서 인도해온 문도가 자랑스럽게 으스댄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서 서해로 빠져나가는 길목을 강화도가 가로막아서 강폭이 2~3Km 밖에 안되고 수심도 깊지 않으면서 흐름도 느린 곳이다.
동북쪽 개성시도 여기서 불과 20Km 거리에 있다.
“응, 그래. 강폭이 좁긴 하네. 그런데, 탈북 루트로 적격인 줄 뻔히 아는 북한 쪽 경비가 그렇게 허술할까?”
정훈이 긴가민가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도 그럴 것이 빤히 건너다 보이는 북한땅에는 강변 개펄을 따라 철조망이 둘러쳐있고 군데 군데 감시초소도 있는데 무슨 개구멍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어떻게 건너온단 말인가?
“네가 말했잖아! 국경수비대 한 놈당 200만원이라서 수비대 3놈 입막음 값이 600만원 든다고. 그래서 중국 브로커랑 북한 브로커 200만원씩 주면 탈북비가 모두 1천만원 든다고. 크크.”
강사는 까먹었는데, 모범 무료 수강생 문도는 잘 기억하고 있다.
“아, 그렇지 참. 근데, 그건 두만강 얘긴데, 여기 임진강에도 그런다는 말이야?”
엉성한 강사가 되레 학생한테 묻는다. 무료였기 망정이지 수강료 게워낼 뻔 했다.
“내가 어떻게 아냐. `우리민족`이 알아서 다 처리하겠지 뭐. 그러나 저러나 어디로 올지 몇 시에나 올지 모르니까, 내가 조지골 쪽으로 날아가면서 한번 훑어볼게. 자정 다 돼가는데 이 근처 어딘가 숨어있다가 움직이기 시작하겠지. 너는 이 근처에 쪽배 뜨는 거 있는지 잘 살펴보고 있어라.”
문도가 이제 탈북 전문가가 되어서 짱인 정훈을 지시한다.
짱이던 뭐든 상전 노릇 하려면 쉬지 말고 열심히 부지런히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갈고 닦아야 되고, 그래야만 안 뒤집어지고 오래오래 유지하는 법이다.
화면 공유모드로 둔 두 삼통사 대원은 모니터 귀퉁이에 나타난 시커먼 상대편 화면을 확대시켜 번갈아 보면서 각자의 맡은바 임무수행에 들어갔다.
강화도 해변가를 샅샅이 다 훑어본 정훈은 물위에 떠있는 쪽배나 별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다.
`문도 저 녀석 뭘 잘못 들은 거 아닌가? 아무래도 이쪽은 아닌 것 같은 데···`
12시를 훨씬 넘어서자 정훈이 점점 의심이 든다. 더 뒤져볼 곳도 없어진 정훈이 혹시나 싶어 바로 옆에 있는 교동도를 향해 서해 쪽으로 나가본다.
해안을 따라 삼각형 BB2를 신속히 움직여 20Km쯤 날아가자, 4Km 강폭 건너편에 육지로 길쭉하게 수 Km나 들어간 좁은 포구가 보인다.
고공으로 솟아 올라 강을 건너서 폭이 800m쯤 되는 포구 입구주변을 살펴보는데 뭔가 여러 사람의 움직임이 희미한 적황색으로 나타난다.
`어, 이 밤중에 웬 사람들? 혹시 저 사람들 아닌가? `
정훈이 고도를 낮추고 가까이 내려가 보니까 포구의 입구에 거의 다다른 작은 쪽배 위에 대여섯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의 형상이 보이고, 포구의 중앙에서 서쪽 해변으로 치우쳐 떠있는 쪽배는 느리지만 분명히 남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쪽배에서 불과 300m 거리의 해안에 커다란 북한군 경비초소가 우뚝 서있는 게 보인다. 반대편 동쪽 500m 거리에도 똑 같은 경비초소가 있다.
“야, 문도야 여기 좀 봐라! 이 거 같다.”
정훈이 큰 소리로 바로 옆에 서서 드론 BB1을 조종하는 문도를 부른다.
“엉? 찾았어? 어디야 거기가?”
BB2에서 20Km나 떨어져 조장골 방향의 도로변을 수색하던 문도가 얼른 정훈의 화면을 확대시켜본다.
“아, 그래 그거 맞는 것 같다!” 더 내려가 봐라.”
문도가 금세 살펴보고 다급하게 외친다.
정훈의 화면에 나타난 쪽배가 점점 커지면서 배 위의 사람형체도 훨씬 더 뚜렷하게 보인다.
“어때, 그 사람들 맞는 것 같아?”
쪽배 위 불과 30m 상공에 BB2를 정지시킨 정훈이 문도에게 묻는다.
“잠시만! 줌 좀 더 댕겨서 화면 키워 줄래? 어디 보자···”
문도가 점점 가까워지는 사람의 형체를 유심히 들여다 본다. 포구 해안선을 따라 띄엄띄엄 켜진 희미한 백열등 불빛을 받았지만 두꺼운 옷을 입고 머리도 무언가로 뒤집어 쓴 채 장갑을 낀 사람들은 얼굴 모습만 어른거리며 나타난다.
남자로 보이는 사람이 3명이고 여자로 짐작되는 사람이 2명으로 모두 5명이다.
덕배와 영순, 덕배의 삼촌 내외와 북한에서 배를 준비해 함께 탈출 하거나 남한에서 파견되어 안내하는 사람이 1명이라고 추정하면, 사람들의 숫자는 거의 맞아 떨어진다.
자세히 보니 뱃머리에 남자 1명이고 그 뒤에 여자 2명, 끝에 남자 2명이 앉아서 뒤쪽 4명이 노를 젓는 것 같다.
발목이 삔 덕배는 맨 앞에 앉고 그 뒤에 체격이 작았던 영순과 숙모, 맨 뒤쪽에서 삼촌과 안내원이 노를 젓는 게 분명해 보인다.
“맞다! 그 사람들 틀림없다! 야~ 우리 심통, 너 또 심통도사 마술 부린 거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찾아냈냐? 크크크.”
문도가 너무 반갑고 신기해서 얼굴을 옆으로 돌려 짱인 정훈을 거의 존경스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도술은 무슨! 어찌 뒷걸음 치다 쥐 잡은 거지. 하하. 그래도 발견해서 다행이다. 그지?”
정훈이 자신도 어쩌다 덤불 속에서 바늘을 찾은 기분이라 몹시 즐겁고 상쾌해서 함빡 웃음을 지으며 한 시름 놓는다.
“나도 얼른 그리로 날아갈게, 조금만 기다려.”
문도가 BB1을 급히 회전시켜 서남방향으로 전속 질주한다.
“저 속도로 노 저으면 안전한 지점까지 나오는데 30분도 더 걸리겠는데! 아마도 서쪽 경비초소가 뇌물 받은 경비대원들이 있는 것 같지? 그쪽으로 치우쳐 나오는 거 보니까. 그지?”
정훈이 화면을 계속 살피면서 조바심을 갖는다. 저기서 남쪽으로 수백 미터만 더 내려오면 저 사람들은 이제 안전한 자유대한의 품에 안기게 된다. 북한땅에서 핍박 받으며 살던 그들이 얼마나 학수고대했던 순간이겠는가?
“그러게. 모터보트면 저기서 그냥 부앙~ 하고 날라버리면 되겠고만. 이왕 준비할 거 왜 쪽배로 했을까? 크크.”
BB1을 급속으로 조종하느라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문도가 그래도 기분은 좋아서 농담을 하며 싱글벙글이다.
“한강에 유람 왔냐? 달밤에 체조하냐? 웬 모터보트! 히히··· 어? 달빛이 비추는 거 같은데?”
느린 쪽배의 속력에 맞춰서 BB2를 서행하며 농담에 맞장구를 치던 정훈이 깜짝 놀라 소리친다. 아까는 무심코 봤는데 계속 보고 있으니까 어두운 화면 속 쪽배의 옆 부분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 같다.
“달빛? 아니야! 하현달은 이제 거의 눈썹처럼 되어서 떠도 달빛이 그렇게 밝지 않을 건데?”
문도가 급히 서행모드로 바꾸고 공유한 정훈의 화면을 확대해서 들여다 본다. 문도의 눈에도 조금 전 보았던 배가 아니고 희미하지만 그 윤곽이 거의 드러나 보인다.
“이게 어찌된 거지? 달빛이 아니고 불빛이 비춰진 것 같은데! 남쪽으로 내려오면 더 밝은 보안등이 켜져 있는 거 아닌가?”
닷새 전부터 자정에 뜨는 하현달빛 받고 비행해봐서 잘 아는 문도가 깜짝 놀라 정훈을 멍하니 돌아다 본다.
“그래? 이거 큰일이네. 동쪽에 있는 뇌물 안 먹은 경비대가 보면 금세 발각되겠는데! 아직은 안 자고 교대로 살피고 있을 거 아닌가?”
문도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서 정훈도 몹시 걱정이 된다.
“내가 빨리 날아가서 로봇 팔로 뱃머리 잡고 끌고 내려올게. 조금만 기다려. 여기가 어디냐?... 한 10분내로 도착하겠다.”
일이 터지면 앞뒤 안 가리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저돌적인 무댓보 정신의 문도가 얼른 BB1 화면을 확대하고 급속 비행으로 날기 시작한다.
“그래 맞다! 얼른 와서 끌고 내려오자.”
정훈이 옳다구나 하면서 문도를 재촉한다.
정찰과 전투 전용으로 만들어서 정훈의 BB2에는 가제트 로봇 팔이 안 달려있다.
지금 최선의 해결책은 문도의 BB1뿐이다.
이번에는 문도의 무댓보 정신이 해결사가 되었다. 기특한 지고!
-왜애애앵!~ 왜애애앵!~
이 때, 갑자기 정훈의 드론 조종기 스피커에서 금속성의 숨가쁜 사이렌소리가 연속해서 울려 나온다
“어, 어? 문도야, 큰일 났다. 발각된 모양이다!”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쪽배에 내려가 대화를 나누려고 드론의 음성 마이크를 작동시켜놨었다.
드론 BB에서 저 정도 크기로 들리는 소리라면 분명히 해안포구의 경비대에서 울린 경보사이렌일 것이다.
“뭐? 발각됐어? 이거 큰일났네! 저 놈들 경고 없이 바로 따발총 갈겨댈 건데 어떡하냐?”
깜짝 놀란 문도가 울상을 짓고 화면을 들여다보며 손놀림을 가속시킨다.
-따다다다 풋슝, 풋슝!
아니나 다를까 문도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정훈의 BB2 화면이 훤하게 밝아진다 싶더니 스피커에서 따발총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잌크, 이거 난리 났네! 저 놈들이 진짜로 사격을 하는데! 어떡하지?”
정훈이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한다.
화면 속 서치라이트에 비춰져 훤하게 몸체가 드러난 쪽배 멀찍이 잔잔한 해수면에 물방울이 튀는 모습이 다 보인다. 동쪽에서 날아온 총알들이 물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이다.
동쪽 경비초소에서 갈겨대는데 500m 거리라 너무 멀어서 쪽배에 정조준이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서쪽 뇌물 먹은 경배대원들도 어쩔 수 없이 사격을 가해야 될 것이다.
불과 300m 거리의 가까운 초소니까 일부러 안 맞히려고 딴 데 대고 헛방만 갈길 수는 없을 테고 쪽배를 향해 정조준사격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뭘 어떡해? 빨리 날아가서 서치라이트부터 깨 부셔야지! 얼른 뛰어!”
문도가 버럭 고함을 지른다.
“응? 내가? 그렇지 참! 레이저 건이 있지! 흐흐, 깜빡 했네. 알았어. 이 놈들~ 어디 내 레이저 건 맛 좀 볼래?”
정훈이 BB2를 동쪽초소로 향해 돌리더니, 서치라이트 불빛을 향해 날쌘 제비처럼 달려간다.
다급한 상황이 벌어지니까 삼통사 사령관이 간덩이 큰 순서로 바뀌어버린다.
번뜩이는 머리만 믿고 입만 나불거리던 정훈에게 무댓보 문도가 지시를 내린다.
“야, 이놈들아 어디다 경고도 없이 총질이냐? 나도 경고 없이 갈길 거니까 그런 줄 알거라!”
20초도 안 돼서 800m를 날아간 정훈이 서치라이트에 레이저 빔 마크를 정조준한다.
-풋 슝!
-파직!
눈 깜짝할 새 환하던 화면이 도로 어두워져 깜깜 밤이 된다.
동쪽 경비초소의 서치라이트가 레이저 빔에 맞아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히얏-호!~”
정훈이 신나서 탄성을 지르고 좋아한다.
첫 실전사격이 단 한방에 명중된 것이다.
“명중이야? 잘했다, 심통. 근데, 빨리 서쪽도 가서 깨 부셔야지 뭐하고 있어?”
신임 사령관 문도가 큰 소리를 꽥 지른다.
“어.. 그렇지, 참. 저쪽에도 서치라이트 켰겠네!”
좋아서 팔짝거리던 행동대원 정훈이 얼른 BB2를 돌려서 서쪽 경비초소로 쏜살같이 날아간다.
아니나다를까, 머뭇거리던 서쪽 경비초소도 서치라이트를 켜고 쪽배를 비추기 시작하는 중이다.
-풋 슝!
-파작!
순식간에 쪽배를 비추던 불빛이 사라져 버린다.
“히얏-호!~”
양쪽 경비초소의 서치라이트가 다 부셔져 버리자 쪽배 근처는 다시 캄캄한 어둠으로 둘러싸인다.
갑작스레 서치라이트가 깨져버려서 혼절한 북한 경비대원들은 원인도 모른 채 사이렌만 울리며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 헤매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상부의 조사를 받더라도 남조선으로 탈출하는 5명이나 탄 쪽배를 발견했고 제대로 사격까지 가했는데 갑자기 탐색등이 차례로 망가지는 바람에 놓쳤다고 하면 최소한 총살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더 가까운데 있으면서 먼저 발견 못한 죄로, 뇌물 받아 먹은 서쪽 경비대원들은 꽤 심한 벌을 받을지 모르겠다.
그건 자업자득이니까, 벼룩의 간을 빼먹은 죄값으로 달게 받아야 되겠지!
“덕배씨와 영순씨 맞지요? 어제 여러분을 도왔던 사람들입니다. 잠시만 기다리면 다른 날틀이 와서 이 배를 남쪽으로 끌고 갈 겁니다. 이제 안심하시고 편안하게 기다리기 바랍니다.”
정훈의 BB2가 쪽배로 다가가 스피커로 알려준다.
목숨 걸고 쪽배에 의지해 탈출하다 발각되어 환한 서치라이트가 비추자 그 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따발총 소리가 들리고 근처 해면에 총알이 떨어져서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엎드려있었는데, 난데없이 서치라이트 불빛이 소리도 없이 사라지자 이게 웬일인가 하면서도 불안에 떨고 있던 차에, 어제 본 그 날틀과 비슷한 것이 날아와 안심하라는 말을 해주니, 이제는 살았구나 싶어 내려앉았던 가슴을 쓸어 올리며 감격에 겨워 서로 부둥켜 안고 운다.
잠시 후 문도의 BB1이 도착했고, 두 연인과 삼촌 내외에게 인사를 나눴다.
가제트 로봇 팔을 뻗어 오렌지 볼로 뱃머리를 꽉 움켜진 BB1은 4Km 남쪽 건너편 교동도를 향해 출발했다.
문도와 정훈은 북한군과의 첫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고 죽음으로 몰릴 뻔했던 5명의 아까운 인명을 구해낸 것이다.
오~ 정의의 삼통사 앞날에 신들의 축복이 있을 지어다!
이 소설은 판타지가 아닙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닥쳐 올 사실을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의 가까운 미래를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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