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모략
< 51화. 모략 >
“콰앙!”
태훈의 점멸의 힘을 실은 몸통 박치기 한 방에 컨테이너의 벽 한쪽이 뜯겨 날아갔다.
“다 들었어. 이 X새끼들아.”
부서진 컨테이너에서 황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박수혁과 젊은 헌터. 그 둘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자신의 투구에 있는 4K 카메라에 찍히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이전에 서로 떠들던 내용을 포함해 전부 녹화 중이고.
“옜다. 받아라!”
태훈의 발이 미노타우로스의 머리를 걷어찼다.
마치 축구공처럼.
팡!
【단축(短縮)】과 【확장(擴張)】
그 차는 과정에 공간 마법의 묘리가 숨어있었다.
쾅!
자신의 신체나 공간이 아닌 물건에 마력을 투사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 힘이 투사된 미노타우로스는 놈들을 향해 포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힉!”
총알처럼 튕겨 나간 미노타우로스의 머리.
그 머리가 박수혁이 질끈 감은 눈앞에서 정지한 듯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아래 짜장과 탕수육 그릇 위로 와장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흐어헉!”
태훈의 이글이글 불타는 눈이 박수혁의 놀란 얼굴에 박혔다.
“확인해라! 네놈들이 요구했던 그 미노타우로스 보스의 머리다.”
어안이 벙벙한 박수혁이 두 눈이 튀어나오고 혀를 길게 내밀고 죽어있는 미노타우로스의 머릴 보며 경기를 일으켰다. 그의 바지가 짜장 범벅이 된 채 축축하게 젖어왔다.
“히히익!”
“맞나?”
“히에엑! ··· 보보보스 미노타우로스 머리가 맞습니다.”
태훈이 둘을 보며 이를 갈 듯 말했다.
“통신 복구해놔라.”
“흐힉! 예?”
“두 시간 준다.”
“흐히익. 알··· 알겠습니다.”
태훈보다 오히려 태훈의 등 뒤에서 컨테이너 안을 바라보는 가고일의 눈.
마치 부엉이의 안광이 둘을 꿰뚫어 보듯. 안광이 빛났다.
사냥감을 바라보는 날선 시선으로 블랙이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마음 같아서는 다 쓸어버리고 싶었는데···.”
태훈은 둘을 보며 잘 참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저 둘을 두드렸다간 증거가 있어도 쌍방.
다 찍어놨으니 나중에 써먹으면 된다.
신성과 길드 연합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리라.
그리고 지금은 실랑이를 벌이고 싶어도 더는 시간이 없었다.
그가 다시 동굴로 돌아서려 할 때.
자신의 발밑에 있는 붉은 돌을 하나 발견했다.
달걀처럼 매끈한 덩어리. 돌이라고 하기엔 그 안에 방사형으로 빛나는 붉은 광채가 마력석처럼 눈에 익었다.
“음?”
방금 자신이 발로 차 넣을 때 미노타우로스의 머리에서 튕겨 나왔던 주먹만 한 돌이었다.
[미노타우로스의 혈마석을 발견했습니다.]
[강태훈 님의 심장에 있는 용의 기운이 혈마석의 힘을 원합니다.]
“엇?”
마력석으로는 절대 채우지 못했던 태훈의 마력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었다.
***
태훈이 조심스럽게 혈마석을 집어 들자 심장에서 돌고 있던 용의 기운이 어깨를 타고 내려와 혈마석과 연결되었다. 그러길 잠시
[강태훈 님의 용의 기운이 혈마석에 깃든 마력을 온전히 흡수했습니다.]
심장의 기운이 터질 듯 팽팽해졌다.
그를 둘러싸고 은은하게 금색의 기운이 넘실거리다 일순 사라졌다.
“후우우우”
이거였네.
레벨 업하는 느낌.
미노타우로스의 잘린 머리는 초원에 하나.
그리고 영지의 통나무집 앞에 아직 넷이나 더 있다.
‘우선 그것들부터 취한다.’
게이트의 입구를 넘어온 태훈은 블랙의 등에 올라 쏜살처럼 동굴을 날아 지나갔다.
***
대현 길드의 마스터 고대현은 벌써 이 길이 여섯 번째였다.
처음은 발견한 던전을 조사하기 위해서.
“후우.”
그리고 세 번은 오크 보스를 잡기 위한 레이드. 마지막 두 번은 행방불명된 조사대원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산 사면을 내려온 소로가 끝나는 곳. 작은 평원을 뒤로 저 앞쪽은 원시의 수림이다. 대현 길드의 250여 헌터들이 그 평원에 자리를 잡고 사주 경계를 하며 짐을 풀었다.
“이쯤이던가?”
“맞습니다.”
그때 발견했던 조사대원들의 장비와 복장엔 혈흔이 잔뜩 묻어있었고 사라진 두 용병은 행방불명으로 처리했었다. 자신의 길드원을 위험에 노출하지 않기 위해 불렀던 용병이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그중 한 놈이 신성과 영웅이랑 연결되어있을 줄이야.’
그러니까 한 마디로 첩자이고, 다른 말로 말한다면 신성과 영웅 길드를 이 던전으로 불러들이는 미끼였다. 사라진 다른 한 놈은 흑마법을 하는 초보 술사였던가?
행방불명된 이를 찾겠다는 잡다한 이유를 들어 두 길드는 이 던전을 뒤졌고, 상업성을 확인하자 두 길드는 태도가 돌변했다. 토벌 능력을 앞세워 자신들의 권리를 야금야금 빼앗아갔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둘이 정말 죽었는지, 아니면 몰래 숨겨버리곤 이 공작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여기까지 두 시간입니다.”
항상 공격대의 선두를 지켜주던 강상흠이 다가와 묻는다.
“어찌할까요?”
“발 빠른 이들로 정찰대를 먼저 보내야 하겠지?”
강상흠이 불편한 얼굴로 재차 물었다.
“대표님. 놈들이 코앞입니다. 정말로 그 마력석은 길드원들에게 나누지 않으실 겁니까?”
“어차피 들고 왔다가 들고 나갈 게 아닌가? 굳이 나눠야 하겠나? 그러다가 하나라도 분실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강상흠이 보기엔 길드 마스터라는 고대현이 자신의 길드원조차도 백 퍼센트 신뢰하지 못하는 얼굴. 어찌 되었든 나누는 과정에서 누수가 있다면 그가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니, 그걸 막고자 저러는 것일 터였다.
‘그 마력석을 길드 재산이 아닌 자기 걸로 생각하는군.’
강상흠의 눈빛이 사늘하게 가라앉았다.
‘마지막으로 설득해본다.’
“그래도 오크 놈들과 교전이 일어나면 어쩔 수 없이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크의 영역은 이 숲부터야. 우리가 잘 경계한다면 오크와 싸울 일은 없네. 그리고, 우린 이곳에서 14시간만 버티면 돼. 오크 정찰대라고 해봤자 스물 정도이지 않은가? 그 정도라면 마력석 없이도 우리 인원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어!”
근 시간차 던전에서 20일 넘게 훈련을 하고 왔건만, 마스터인 고대현은 싸울 생각 자체가 없었다. 감상흠은 자신과 훈련을 함께한 40명의 공대원 쪽을 바라봤다. 그들이 자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제가 정찰을 나가겠습니다.”
그가 손짓하자 그와 훈련 시 손발을 맞췄던 공격대 헌터들이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두 명씩 조를 맞춰서 빠르게 자릴 잡고 은신합니다.”
“저 팀장님.”
“?”
“무선이 먹통인데요?”
“음?”
자신의 무전기를 꺼내 확인해보니 맞다.
통신 불능에 에러 코드가 떠 있었다.
“씹새끼들이 또 장난질하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그래 보입니다. 저번처럼···”
그때 그들의 머리 위로 드론 한 대가 날아와 한 바퀴를 돌더니 사라졌다.
“저 개새끼들은 또 어디서···.”
“어쩌다 길드겠지. 우리 찍어줘서 나쁠 거 없잖아? 그때 그 영상 덕분에 인지도도 많이 올라갔고 말이야.”
“그래도 저 드론 때문에 우리 위치가 드러나면 큰일 아닌가요?”
“상대 팀 대장이 감규석 헌터님이야. 아무리 바보들이 모여있어도 그분만큼은 믿어야지. S급 중에서는 우리 이야기 들어주시던 분은 그분 혼자 아니었나!”
“아. 예. 그랬죠.”
강상흠은 이 대현 길드에 계속 회의감이 들었지만, 이번만 잘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고향 길드이기도 했고 나가고 싶어도 자신을 따르는 후배들이 꽤 있으니 혼자 나가면 배신자만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길드가 지금 마스터로는 더는 힘들겠지.’
노회한 고대현 길드 마스터가 은퇴해주면 가장 좋겠지만, 그는 마스터 직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가 길드원보다 돈을 더 앞세운 순간 마스터의 자격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결을 본다면 이 레이드 이후.
같은 훈련받았던 40명의 헌터들은 안전하게 이 던전 레이드를 마친 이후엔 쿠테타라도 일으킬 모양새. 저 어쩌다 길드의 카메라만 없었다면 여기서라도 상황은 일어났을 것이었다.
“다들, 통신이 죽었으니 서로 보이는 곳에 자릴 잡고 수신호로 연락한다. 거리를 최대한 좁힌 상태로 위치를 잡아라.”
“알겠습니다.”
조심스럽게 위장복을 꺼내 준비하는 헌터들.
대부분 싸구려 길리슈트나 위장을 위해 풀과 나무로 장식된 특수복이었다.
“출발.”
숲의 입구에 본대가 위치를 잡자 조심스럽게 위장을 한 정찰조의 헌터들이 숲속으로 둘씩 짝을 지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
“대현에서 움직입니다.”
그 모습을 멀리 언덕 위에 자릴 잡고 지켜보던 어쩌다 길드의 헌터 부대. 뒤쪽에서 쉬고 있는 힐러를 제외한 전원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가?”
감규석이 언덕에 드러누워 쌍안경으로 헌터들을 바라보고 있던 고호권에게 물었다.
“정찰조만 숲으로 들어가는데요?”
“본대는?”
“저 아래에서 짐 풀고 있어요. 놈들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감규석이 봐도 천막까지 치는 모습엔 실소가 나왔다.
“오크는?”
“그놈들 아주 웃겨요. 저쪽에 모여있는데 드론은 신경도 안 씁니다.”
“날파리에 신경 쓰는 오크 봤나?”
“하긴. 먹는 거 아니면 신경 쓸 이유가 없겠죠.”
감규석이 안력을 높여 반대쪽 강 너머 멀리 평원을 바라봤지만, 아까까지 부산하게 날아다니던 가고일들은 이젠 보이지 않았다.
‘미노타우로스를 벌써 다 잡았을 리는 없을 테고···.’
하지만, 느껴지는 기감은 전혀 다른 느낌. 아까까지는 그런대로 거대한 힘의 물결이 평원에 웅크리고 있다는 기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말끔히 사라진 느낌이었다.
‘허. 모를 일이지. 족발 얻어먹으려면 좀 더 서둘러야겠는데?’
“나도 한번 보세.”
고호권의 쌍안경을 건네받아 살펴보니 정글의 오크들은 뭘 잡았는지 커다랗게 불을 피워두고 뭔가를 뜯어먹고 있었다. 대충 봐도 장비는 자신들이 차고 있는 오크 상전사용 보다 훨씬 떨어지는 느낌. 대부분은 가죽으로 만든 앞 가리개에 해골로 얼기설기 짜 넣은 엉성한 뼈 갑옷이 전부였다.
“엉성한데?”
“그렇죠? 이 갑주에 비하면 완전 원시인 수준이에요.”
“주술사는?”
“없습니다. 아니 아··· 없을 겁니다. 못 찾았어요.”
“잘 살펴봐. 사람 해골 같은 머리뼈를 주렁주렁 목이나 지팡이에 달고 있는 놈이야.”
“아. 그거라면··· 혹시···, 잠시만요.”
고호권이 손짓하자 다른 헌터 하나가 다가왔다.
그가 이미 녹화된 영상을 화면으로 보여주자 그곳에는 해골을 주렁주렁 단 제단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거미줄처럼 제단의 기둥을 연결한 무언가가 방사형으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마치 거미줄로 그물을 짜듯 중앙의 기둥에서 퍼져 주변 숲의 나무까지 닿아있었다.
“대체 저게 뭔가?”
“글쎄요···. 제가 아까부터 확인했는데, 저 넝쿨 같은 게 아무리 봐도 무슨 동물의 창자 같던데요?”
“창자?”
“예. 곱창이요. 처음에 놈들이 저거 걸칠 때 보니까 피가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그리고 드론의 영상에 붙잡힌 오크 하나.
크진 않지만, 목에 다양한 형태의 해골들이 가득 붙은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저놈이다.”
“저놈이 보스에요?”
“아니. 주술사.”
“그럼 어찌할까요?”
감규석은 잠시 생각한 후에 헌터들을 모아 말했다.
“너희는 은밀하게 접근해서 여기 밥 처먹고 있는 오크들은 전부 대현 길드 쪽으로 몰아봐. 난 저 주술사부터 잡고, 놈들의 은신처로 치고 들어가 보스 목 먼저 따고 나올 테니.”
“알겠습니다.”
“좋은 영상이 잡히면 좋겠군. 대현 쪽 헌터들 너무 상하게 하진 말고.”
“하하하 맡겨주십시오.”
감규석과 함께 움직일 헌터는 총 11명.
나머지 49명은 이곳에서 영화를 만들 요량이었다.
감규석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준비되셨죠?”
그곳에 열 명의 힐러들이 방긋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녀들 모두 그에게만 힐을 쏟아낼 전력이었다.
“출발하시죠. 마스터.”
길드 마스터가 아닌 소드 마스터.
그녀들은 전장에서만큼은 그를 마스터로 불렀다.
선작과 좋아요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겁게 보셨다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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