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대장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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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화. 대장간 (2)>
“여기요!!”
“누구 없어요?”
태훈과 구하린이 살펴본 대장간 안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안쪽의 모습은 막 작업을 진행하다 만 느낌. 화로의 열기며 주변에 정리되지 않고 널려 있는 장비들만 봐도 잠깐 주인이 자릴 비운 듯. 모루 위에는 낡은 검 한 자루가 수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자릴 비우신 것 같은데 이따가 다시 올까요?”
“그러죠. 요 앞에 노점에서 뭐 좀 먹고 옵시다. 출출하네요.”
“네. 대표님.”
그렇게 다시 대장간 골목을 돌아 나오려 할 때였다.
“어허이!!”
저쪽 막다른 골목에서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가 귀에 쩌렁쩌렁 울렸다.
노인은 껄렁한 청년 여럿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놈들 저리 안 비켜!!”
“못 비킵니다!!”
“안 해! 못 해! 내가 미쳤다고 그걸 만들어 주나?”
“이보쇼. 영감님!”
“이 미친놈들아! 내 안 한다고 몇 번을 말해!”
“돈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다니까요? 다들 못 만든다니까 영감님에게까지 순번이 온 거 아닙니까! 다른 대장장이들이 만들 수 있었다면 굳이 우리가 여기에서 이러고 있겠습니까? 그러니 한 번만 더 생각해주세요. 이것도 다 영감님 실력 믿고 이러는 거 아닙니까. 워낙 실력이 대단해서···”
“만들 수 있어도 안 만들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그딴 물건은 죽어도 못 만드니 그리 알고들 비키셔!”
“진짜 그렇게 고집부리다가 후회하십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시겠어요? 와. 정말 상황 파악 안 되시네.”
“잔말 말고! 난 죽어도 못 만드니까 그리 아셔! 그걸 어디에 쓸 줄 알고 만들어? 네놈들도 정신 차려. 그런 거 알선하다가 잘못하면 죄다 빌런 죄로 쇠고랑 차는 거여!”
“빌런이라니요? 그건 진짜 오해라니까요?”
“내가 그 소릴 믿을 거 같나?”
“정말 말 안 통하시네. 진짜! 확!”
“왜? 칼이라도 뽑아 눈이라도 찌르게? 허허! 그런다고 내가 쫄 거 같나? 더는 말 않겠네!”
“진짜 후회하게 되십니다. 윗선이 움직이면 그땐 정말 무슨 사달이 날지 몰라요. 저희도 그땐 진짜 장담 못 한다고요. 진짜 피 본다니까요? 아! 씨블, 그게 빌런인가?”
“야이 븅신새끼야. 넌 빠져있어!”
“다 필요 없으니까 쌍소리 튀어나오기 전에 얼른 꺼져. 에이! 씨부랄것들.”
노인이 젊은이 넷을 어깨로 밀어 길을 열곤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왔다. 젊은이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어딘가로 황급히 전화를 걸며 빠져나갔다. 그들의 입 모양을 유심히 살펴보던 태훈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튀김이랑 어묵은 조금 이따가 먹어야겠네요.”
“아!”
“대장간 주인이 돌아오신 거 같으니, 이야길 한번 해봅시다.”
“···네. 대표님.”
태훈이 방금 노인이 들어간 대장간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계십니까?”
어두운 안쪽.
예의 노인이 고개만 힐끗 내밀고 쳐다봤다. 한 손엔 그 수선을 기다리던 낡은 장검이 벌써 벌겋게 달궈져 있었다.
그가 걸걸한 목소리로 던지듯 말을 받았다.
“오늘은 영업 끝났습니다. 내일 다시 오세요.”
태훈은 한 발 안으로 들어갔다.
[능력 【심안(諶眼)】이 발동합니다.]
차분한 음성으로 대장간을 둘러보며 물었다.
“드워프 가르마른 파타닐 보로움의 모루와 망치가 보이기에 여기 장인의 실력이 대단하겠다 싶어 찾아왔는데, 이 모루엔 먼지만 쌓이고 있네요?”
“음?”
탕텡투르르르르
망치 집어 던지는 소리. 그리고 이어 ‘치익’ 달궈진 검이 다이빙 하는 소리가 들렸다.
“허허. 거참!”
차가운 인상으로 노인이 대장간 앞으로 나왔다.
그가 거칠게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묻는다.
“뉘슈?”
“장비를 좀 맡기고 싶어서요.”
“무슨 장비이길래··· 드워프의 모루와 망치가 필요합니까?”
태훈은 뒷짐 쥔 손으로 아공간 창고를 열었다.
그리고 <드워프 카와란 브로드얀의 드레이크 가죽 건틀릿과 장화>를 꺼내 들었다.
“여기선 드레이크 가죽도 취급합니까?”
“드레이크 가죽?”
노인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호기심이 동한 눈빛.
“한번 보시죠.”
태훈의 손에 들려있는 장비는 한눈에 봐도 드워프의 손길로 만들어진 꽤 그럴듯한 장비였다.
“허허! 이것은···?”
그가 세심한 손길로 장비를 바라보고 있을 때, 태훈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제가 보기엔 이걸 확인하시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으신 거 같은데요.”
“그게 무슨 소리요? 급한 일이라니?”
“저 밖에 있던 젊은 놈들이 지금 막 전화로 ‘인질’이 어쩌고, ‘대장장이 손주 딸’이 어쩌고, 떠들며 사라지던데요? 괜찮으신 겁니까?”
“뭐··· 뭐요?”
노인은 황당한 얼굴로 말을 잊지 못한다.
“거 잠깐만 기다리시오.”
다급하게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그래. 얘야. 그렇지, 그러니까 거기 꼼짝 말고 숨어있거라. 알겠지?”
[알겠어요. 할아버지.]
“내 곧바로 데리러 갈 테니 그때까지만 조심하고. 절대로 누굴 따라가선 안 된다.”
[네. 알아요. 또 그놈들이죠?]
“그래. 알았으면 됐다. 그만 끊으마. 기다리고 있거라.”
[네. 조심히 오세요.]
전화기를 끊은 노인이 깊게 한숨을 뱉는다.
앞치마를 걷어내곤 태훈을 바라봤다.
“고맙소.”
호기롭고 짧은 인사.
“괜찮으신 겁니까?”
“지금은 봐서 알겠지만, 내 사정이 이러니 나중에 다시 들리시오. 그때 이야기합시다.”
“어디로 움직이십니까? 혹 도움이 된다면 제 차로 이동하시지요?”
“?!”
노인은 대장간 거리 대로에 세워져 있는 자신의 낡은 1톤 트럭과 그 옆에 서 있는 테슬롭의 네모반듯하게 접힌 픽업트럭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노인이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물었다.
“저건 차요? 아니면 장난감이요?”
“저 낡은 트럭보다는 빠를 겁니다.”
“이왕 도와주셨으니 그럼 나도 부탁을 좀 합시다. 저 차, 나 좀 빌려 주시오.”
“타시죠. 어디로 모실까요?”
“노량진. 유물 감정사 학원이요.”
“예?”
***
학원 앞에 도착했을 때, 그곳엔 아까 대장간 골목에서 보았던 청년 넷과 함께 거친 마력을 풍기는 각성자 둘이 보였다. 한쪽 골목 벽에 기대어 서선 학원 정문을 지켜보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커피를 홀짝이는 그들의 모습을 알아본 노인이 침음을 토했다.
“허어. 이런 제기랄!”
“혹시··· 저 둘이 누군지 아십니까?”
“광마 길드 놈들이요. 요즘 저놈들 때문에 대장간 골목이 아주 골머릴 썩고 있어요.”
“무슨 일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 미친놈들이 글쎄 흑요석으로 된 손바닥만 한 소검을 만들어달라고 대장간 거리 전체를 들쑤시며 지랄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아니라면 또 아니겠지만, 문제를 만들려고 한다면 아주 크게 문제를 만들 수 있는 게 흑요석 단검이지요.”
“그게 어떤···.”
“그런 물건은 흑마술의 악령 소환의식에 자주 쓰입니다.”
“!!”
“흑마법사 놈들이 주로 쓰는 소환의식에서 꼭 제물의 령을 취할 때 그 검을 사용하지요. 그딴 걸 만들어달라고 하니 내 어찌 만들겠소. 재수 없게 그 검으로 누굴 죽일 줄 알고! 제물 목 따는 검을 나보고 만들라니! 그건 대장장이에겐 수치요. 주술사들이나 자기가 필요하면 직접 만들까··· 그걸 대량으로 만들어내려고 한다면 무슨 술수가 있겠지요.”
태훈이 구하린과 눈이 딱 마주쳤다.
빌런 수사과에 제출했던 < 마령의 소환검 >, 혹 그 복제물보다 더 성능 좋은 소환검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손녀분부터 먼저 안전하게 데리고 나와야겠는데요?”
“그럼 이왕 신세 진 김에 한 번만 더 집시다. 아마도 내가 나타나면 저놈들이 더 지랄을 할 거요. 그러니··· ”
“혹시, 손녀 따님 이름이···.”
“조령···. 주조령이요.”
“예에?”
오히려 놀란 목소리를 낸 것은 뒤에 있던 구하린.
“왜? 알아요?”
그녀가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령 언니! 어. 나야. 지금 을지로 대장간 갔다가 할아버지께서 부탁하셔서 테슬롭 픽업트럭 타고 데리러 왔거든? 어! 그거. 보여? 그게 우리 차야. 어! 그러니까 학원 뒷문 옆 개구멍 넘어가면 거기 편의점 알지? 어. 그래, 거기. 거기로 갈 거니까 그리로 나와!”
“허허! 둘이 아는 사이였소?”
“저도 여기 이 학원 출신이거든요.”
“이런 인연이 있나.”
“아무튼 가요! 대표님. 저기 저쪽 100미터 앞에서 우회전이요. 지금 후문에서 바로 만나기로 했어요.”
그렇게 돌아간 골목.
그곳엔 붉은 머리에 눈을 확 끄는 아름다운 몸매의 처녀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
거친 숨을 몰아쉬는 주조령이 구하린을 보며 방긋 웃었다.
“후아! 살았다. 하린아! 고마워.”
“전 언니가 대장간 하는 줄 이제야 기억났네요.”
“허허허. 아무 탈 없다니 다행이다. 다행이야.”
“아! 할아버지, 별일 없죠? 그리고··· 이분이 그 말로만 듣던 대표님?”
“반갑습니다. 강태훈입니다.”
주조령의 눈이 슬쩍 반달을 그린다.
“반갑습니다. 주조령입니다.”
칭찬이 자자해서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지만, 만나보니 평범한 얼굴.
“영감님. 이제 어디로 모실까요?”
“우선은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갑시다. 가면서 찬찬히 이야길 좀 해보지요.”
“예. 그러시죠.”
“이 차가 그 자율주행 차요?”
“예. 그렇습니다.”
“허어. 세상 참···. 그래 보니 편하겠소.”
대장장이여서 그런지 차의 이곳저곳을 유심히 살핀다.
그런 노인을 보며 태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궁금한 것이 있어 묻습니다. 그 드워프의 모루와 망치는 사용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아. 그거야 사용하지요. 하지만 그걸 사용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어요.”
“그게 무엇입니까?”
“그 모루와 망치에 짝을 이뤄서 대장간 안쪽에 드워프의 화로가 있지요. 그런데 그 화로가 글쎄 불을 넣으려면 상상도 못 할 것이 들어갑니다.”
“아니 어떤 것을 넣으시길래···”
“그놈은 마력석을 석탄 쓰듯 쓰지요. 그러니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그 화로에 불을 붙이기도 소원한 일이요. 어찌 그 돈을 감당해가며 제련을 하겠소? 그러니 특별 주문이 아니면 그 모루와 망치를 쓸 일이 평소엔 없습니다.”
음?
마력석?
태훈은 슬슬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힘주어 내리며 진지한 얼굴로 다시 한번 물었다.
“그 화로를 이용하려면 마력석이 엄청 많이 들겠군요.”
“그렇죠. 그러니 먼지만 쌓일 수밖에···”
“그럼 그걸 감당할 수 있다면요?”
“그걸 감당할 수 있다면···이라니. 마력석 말이요? 그러면 나야 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지요. 마력의 화로로 제련한 무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안다면 아마도 까무러치게 놀랄 거요.”
태훈의 눈은 호기심과 생기로 반짝거렸다.
“마력석만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면 드워프의 화로를 다시 불붙일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그게 가능하다면 내 영혼까지 팔 수 있소.”
“놈들이 어르신 붙잡으려 하는 것만 봐도 실력이야 이미 검증이 된 듯싶어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혹시 불편하지 않으시면 저희 길드 전속 대장장이로 스카웃 요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전속?”
“예. 대신 조건으로 저희가 마력석은 충분하게 공급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화로가 24시간 활활 타도록 말이죠.”
“마력석을 말이오?”
커다랗게 떠진 눈.
대장장이 주진환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근.
심장이 찌르르 무언가에 찔린 느낌.
“지금··· 방금 한 그 말. 책임질 수 있는 거요?”
“물론입니다. 제가 이렇게 보여도 길드 마스터입니다.”
“허어!”
지금 운전석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이 꼭 사기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저 자신감 넘치는 표정부터 그 인상이 마치 신기루 같았다. 그리고 스치듯 드는 기억 하나.
- 모두들 그 사람을 찾고 있어요. 어디고 마력석 매장이 다들 난리가 났습니다. 젊은 놈인데 서른은 안 됐고, 눈썹이 진하답니다. 이마는 넓은데 좀 평범하게 생겼다더라고. 눈썹이 진해요. 키가 한 185쯤 된다던가?
- 그렇게 순도 높은 마력은 처음이래요. 효율이 거의 3배··· 아니지! 잘 나오면 6배까지도 나온다더라고요. 모두 그 각성자를 못 찾아 난리에요. 마법사 하나는 자기 돈으로 1억 현상금까지 걸었다니까? 정말 미친 능력이지.
- 어째 난 각성 능력 중에 【마력 충전】이란 능력은 생전 처음 듣는다니까?
“혹시 말이요. 요 근래에 서울 전역의 마력석 교환소를 돌아다니며 마력석 충전을 하고 다닌 적이 있었소?”
“아. 예! 그게 접니다.”
“그럼 능력 중에 【마력 충전】도 있소?”
“저는 아니고 그 능력이 있는 친구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어허허. 세상에나!”
주진환은 눈을 끔뻑끔뻑 몇 번을 뜨더니 꺼지듯 한숨을 내쉬었다.
식은땀이 흐르는 손바닥을 자신의 두껍게 마감된 작업복에 문질러본다.
“허어. 그 드워프 화로에 불이라···.”
그 화로를 얻은 후 자신은 딱 세 번 불을 붙여봤다.
그리고 그 불은 마치 무지개처럼 검을 감싸고 돌았었다.
그 기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마력 화로에 불을 넣을 수만 있다면···’
두꺼운 굳은살, 힘든 노동에 지문이 죄 지워져 반질거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주진환이 말했다.
“내 오늘 아주 귀인을 제대로 만났구먼!”
다 지워져 버린 자신의 손바닥에도 말년 운의 손금은 하늘을 향해 쭉 뻗어있었다.
***
“가져 올 수 있다고요?”
주진환은 전혀 믿기지 않는단 얼굴로 다시 한번 물었다.
태훈은 주위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고 계시면 됩니다.”
“정말로··· 그 도구들을 혼자 옮길 수 있단 말이오?”
“아. 예. 해봐야 알겠지만, 아마 될 겁니다. 아니, 됩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허어. 어찌 그런··· 능력이···. 그게 무게가 상당할 텐데?”
“무게는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도구들은 어찌 안 가져가셔도 되시겠어요?”
잠시 생각에 잠긴 주진환.
“손에 익은 도구들이야 좀 있지만 그렇다고 그 도구를 못 구할 것은 또 아니지요. 단, 그 드워프의 모루와 망치, 화로만은 꼭 챙겨와야 합니다. 다른 건 다 버려도 상관없소. 아니면 나중에 시일 지나서 천천히 챙겨도 되겠지요.”
“좋습니다. 제가 몰래 들어가서 그것만 챙겨서 나올 테니 그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태훈은 조심스럽게 차를 을지로의 으슥한 주차장에 세워두고 홀로 길을 나섰다.
불 꺼진 대장간 거리.
대부분 대장간이 셔터를 닫고 영업을 끝냈지만, 주진환의 대장간은 사람 없이 열린 상태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대장간 앞에는 예의 그 껄렁한 청년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놈은 노골적으로 잭 나이프를 꺼내 이리저리 휘둘러본다.
“하아. 씨발, 그 노친네. 눈치 하나는 빠르다니까?”
“흑요석 단검 두어 개 만들어 달라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사람을 이 지랄을 하게 만드나 몰라!”
“사진 본 놈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대장장이 영감 손주 딸년 생긴 게 졸라 쌔끈하고 이쁘다더라?”
“어. 너 몰랐어? 조령이라고 있어. 이 동네에서 유명해.”
“봤냐?”
“졸귀에 쭉죽 빵빵이지.”
“아. 씨발. 탐나네.”
“왜? 침이라도 발라보고 싶어?”
“니 얼굴로? 너 저번 주에도 주접떨다가 까였다면서. 그 누구더라?”
“닥쳐라! 씨발련아. 넌 더 떠들면 바로 한강 잠수교에서 잉어 밥 된다.”
그때.
가로등을 등지고 검은 인형(人形) 하나가 천천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음? 뭐지?”
“뭐야? 저 새낀?”
“어이! 여긴 영업 끝났으니까 돌아가셔!”
“내 말 안 들리나? 이 동네 영업 끝났다고!”
한 명이 벌떡 일어나 태훈을 막는다.
하지만 어떻게 한 것인지 그를 막았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그는 막은 이를 지나쳐 걷고 있었다. 유유히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너 뭐야?”
“야! 막아!”
다른 넷까지 합심하여 태훈을 포위했다.
“뭐냐니까?”
“여기 영감님과는 아는 사이냐?”
“대답 안 해? 여기 형님이 묻고 있잖아.”
태훈이 비릿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답했다.
“어. 여기 짐을 좀 찾아가려고.”
“무슨 짐? 너 여기 알바냐? 영감 어딨어? 어디 숨겼어?”
“이 새끼 대답 안 하지! 우리가 물로 보여?”
‘귀찮은데?’
“야! 대답 안 하냐고! 씹새끼가 귓구녕 다시 뚫어주랴? 영감 어딨냐고!!”
놈의 어깨빵이 태훈에게 들어오는 순간.
파바바방!
눈을 한 번 깜빡할 사이였다.
정지한 듯 네 청년은 그 선 자세 그대로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러길 잠시. 실 끊어진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허물어졌다.
“이놈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깜짝 놀랄 거다.”
그들을 내려다보며 태훈이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아. 네! 형사님?”
빌런 감시국의 형사에게 짧은 설명.
“그래서 좀 이상해서요.”
[광마 길드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쪽도 그 건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지금 어디요?]
“을지로 대장간 골목 제일 끝입니다.”
[바로 출동할 테니까···]
그렇게 통화를 마친 후 태훈은 느긋한 발걸음으로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
광명시 소하동 구름산.
힘겹게 산 중턱까지 올라온 일행이 주위를 둘러봤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멀리 서울과 광명시의 야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오오! 산속에 이런 절이··· 아니지, 이런 집이 있다니!”
“저 아래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건물도 저희 길드 소유 건물이에요.”
“허어. 정말 대단하시오. 대단해. 허! 돌을 무슨 퍼즐처럼 맞췄구려. 신기하네. 이리 훌륭할 수가···”
“아닙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태훈은 저 아래쪽 길드 사무실과 전시동이 아닌 자신의 자택, 즉 영지의 던전 게이트가 있는 제일 위쪽 건물 앞 창고를 대장간으로 내놓았다. 딱히 뭐로 써야 할지 답을 내지 못하고 빈 상태로 두던 곳이었는데 드디어 제대로 임자를 만난 듯했다. 던전에서 꺼낸 물건을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바로 대장간으로 옮겨 놓기도 수월했다.
“딱이네.”
태훈은 적당한 위치에 아공간 창고에서 꺼낸 모루와 망치, 그리고 화로를 위치시켰다.
“이쯤이면 되겠지?”
한쪽 구석에는 화로를, 그리고 중앙엔 모루와 망치.
달랑 셋만을 위치시켰음에도 넓은 창고 공간이 아늑하니 꽉 차 보였다.
‘부족한 공간은 지하로 만들어야 하려나? 아니지. 저쪽을 좀 더 개축하면···’
우선은 시작이 중요한 것이니까···
“자. 다 됐습니다. 들어와서 한번 보시죠.”
“허어! 어찌 이 물건들이···.”
“잠시만요.”
태훈이 잠시 자택에 들러 돌아온 자리.
그가 들고 온 자루에는 마력석이 한가득, 하얀 백색의 광체(光體)를 머금고 반짝이고 있었다.
“화로에 불을 한번 넣어보시죠. 마력석은 언제든 공급 가능하니까요.”
선작과 좋아요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겁게 보셨다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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