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과거일 뿐이에요.
아침부터 회사가 소란스럽다.
장 팀장이랑 홍 대리가 보이지 않는다. 서서 우리 팀 자리만 빤히 바라보는 1팀장을 향해 물었다.
“두 분 다 출근 안하셨어요?”
“그런 것 같은데··· 연락이 안되네.”
9시 30분.
출근해야 할 시각은 훨씬 지났고, 단체 메시지 방에는 반차를 쓰겠다, 휴가를 쓰겠다 아무런 말도 없다. 주식 장은 열렸고 어제 왕주현 부사장이 올린 입장문 파급 효과로 인해, 유엘 엔터 주가는 주르륵 흘러내린다. 2만원대가 깨졌다. 어제부터 흐른 주가는 다행히 하한가로 인해, 오늘 하루로 내가 매집했던 10,300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15,000 - 17,000원 대 샀던 장 팀장의 손이 빠르다면, 장 팀장은 조금이나마 돈을 벌지도 모른다. 홍 대리의 마지노선은 모른다. 얼마를 넣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이 둘이 출근 하지 않은 걸 보면, 위험하지 않을까?란 예상을 조심스레 해본다.
9시 30분. 20분이 더 지나서야, 헬쑥한 몰골로 장 팀장이 등장했다.
“··· 좋은 아침.”
“괜찮으신 거 맞으세요? 몸이 안 좋아보이시는데···”
“몸은 괜찮아. 마음이 안 괜찮지.”
자리에 앉아 핸드폰만 바라보다, 의자에 기댔던 장 팀장이 앓는 소리를 내며 미끄러진다.
“끄아아아악-.”
끝없이 내려가는 유엘 주가처럼 장 팀장은 의자 밑으로 내려간다. 만 오천원 선에 달했다. 아마, 오늘의 하한가는 이게 마지노선 같은데-.
패잔병이 혼자는 되기 싫었는 지, 장 팀장이 지옥 속에서 돌아왔다. 책상 위로 얼굴을 들이밀며, 이제야 홍 대리 근황을 물었다.
“홍 대리는?”
이건 내가 궁금한데.
“두 분이서 연락 하시고 계시던 거 아니셨어요?”
장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응, 아니야. 어제 퇴근하고나서부터 홍 대리 연락 안되던데.”
만에 하나, 혹시나···?를 생각하던 1팀장이 위험한 소리를 늘어 놓는다.
“설마···? 아니겠죠?”
“에이, 그냥 하는 소리더라도 그런 소리는 집어 쳐. 홍 대리가 이혼을 하면 했지. 그럴 사람은···”
저 멀리 사무실 창 너머,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장 팀장이 호기롭게 외쳤다.
“저 봐-.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저기 홍 대리 오는 거 아니야?”
호랑이가 아니다. 처음 보는 어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다가와 고개를 자꾸만 흔들었다.
1팀장과 내가 다가가 물었다.
“누구 찾으러 오셨어요?”
“··· 팀장이라고 하던데.”
“네? 장 팀장님이요?”
아저씨가 고개를 저었다. 아주머니를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장 씨가 아니야, 박 씨야.”
팀장인데, 박씨. 아쉽지만, 1팀장은 박씨가 아니다.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지만, 굳이 먼저 말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우리 팀도 아니다.
찾는 사람이 본인이 아니라는 걸 확신한 장 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 찾으신다구요?”
“박 팀장.”
아주머니가 뒤늦은 계약서를 꺼내 당당히 말했다.
“박대현이요.”
“박대현이면, 제작&투자 팀장 아니야? 박 팀장이 왜요?”
아저씨가 사무실을 둘러보며, 이를 갈았다.
“여긴 제작··· 그 팀이 아니에요?”
“네, 여긴 아니고, 더 올라가셔야 하는데. 왜요? 무슨 일이신데요?”
“우리 전세금 받고 토꼈다고!!!! 전화, 문자. 다 연락도 안 되고!!!”
생각만 해도 분통 터진다는 듯이, 낯선 아저씨가 소리를 지른다.
“박대현, 어딨어! 박대현!!!!”
나락은 따로 있었다.
+
소란스러웠던 소동이 한 바탕 물러가고 난 점심. 모두가 멍하니 숟가락만 들고서, 깨작거렸다. 분출되었던 도파민이 정리되지 않는다. 1팀장이 한숨을 내쉬면서, 혀를 내둘렀다.
“박 팀장님은 그러면 세입자 전세금으로 주식을 돌린 거였어?”
“전세 만기가 되면 돌려 막으려고 했던 거죠.”
뜻하지 않게 개인 사정상 세입자가 먼저 나가게 되니, 지금이라도 급하게 세입자를 구해야 하는데, 요즘 빌라 세입자 구하기가 여간 힘든 상황이고.
밥 한 숟갈, 국물 몇 모금 마신 1팀장이 혀를 끌끌 내차며 일어섰다.
“진짜 돈 버는 것보다 제 손에 쥔 돈 관리가 더 중요하다니까. 밥맛도 없다.”
1팀장이 내 식판을 둘러본다. 아직 많이 남았다.
“백 대리는? 남아서 더 먹을거지?”
“네.”
밥은 남기지 말라고 배웠다. 나야 밥맛 떨어질 일도 없고, 밥은 천천히 먹어야 체하지 않는 법이다. 점심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고, 크게 서두를 것도 없다.
명인과 유엘과의 혈투는 이제 종전이 된 듯 하다. 확실한 승리를 알리는 승전보가 도착했다. 뒤쫓으며 난리치는 왕주성을 배경으로 두고, 왕주현이 브이하는 인증 사진.
유엘은 이렇게 끝난 듯 했다. 이제 유엘에게 받을 전리품을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식당 문을 열고, 연습생들이 들어온다. 유희재가 터덜 터덜 연습생 끝줄을 위치했다. 마무리로 문을 닫으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딱 봐도 오늘도 평가가 좋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할 수 없지. 내가 나서는 수 밖에.
이럴 줄 알고, ‘퍼즐’ 복사부를 가져왔다.
유희재 프로필은 고정운에게 이미 넘겼다. 마스크는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비주얼이 나쁘지 않을 뿐이지. 연기 실력이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캐스팅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특히 지금처럼 고정운이 각본까지 맡았을 경우에는 더 더욱.
쩐주라고 어떻게든 감독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지만, 우리와 같이 갈 수 있냐, 없냐는 유희재의 몫이다.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유희재를 향해 다가간다. 식판을 들고서, 멍한 눈빛이 톡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상태.
유희재가 나를 힘없이 올려다본다.
초점이 풀렸다. 얘, 상태가 살짝 위험한데. 이런 애들, 한 두 번 보지 않았다. 처음 시작했던 테크 트리와 다르게 타의적이든, 자의적이든 중간에 갈아탄 애들.
그만큼 밀린 연습량과 커리큘럼을 따라가다, 갈리는 애들.
“아, 매니저님.”
“희재야. 잠 안 잤어?”
“어....”
희재가 고개를 숙인다. 정수리가 보여야 할 내 시선이 나도 모르게 다 드러낸 콧대 근처 눈가로 향했다. 고개를 숙이자, 퀭한 눈가가 내 눈에 띈다.
“... 당연하죠.”
유희재는 날 평가자로 인식했다. 잠 못 자서 너무 힘들다는 말을 내뱉었다간,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다. 충분히 자야할 수면을 갉아 먹으면서까지 연습한다. 당장이라도 노력의 성과가 금방 눈에 띈다면, 좋겠지. 그게 재능이고.
하지만 이 재능이란 단어 뒤로 숨은 속뜻은 도둑놈 심보와 다를 바 없다.
연기만 하던 애가 금방 보컬과 한 번도 춰본 적이 없는 춤을 수년 간 한 우물만 팠던 애들을 금방 따라 잡는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이 바닥에서 천재들이 각광을 받는 이유고.
식판을 잡고 있던 유희재 손이 추-욱 늘어진다. 유희재는 나를 한번 바라보다 여자 연습생만을 위한 특별한 배식 코너를 보고, 입가가 바싹 마른다.
다 풀떼기 뿐이다. 밥맛 뚝 떨어지겠지.
“오늘 뭐해?”
내가 알고 있기론 정규 수업은 없는데.
“네? 이따가 연습.... 해야 될 것 같은데요.”
“그래?”
나는 유희재가 붙잡고 있던 식판을 붙잡았다. 밖으로 나오라고, 고개를 까딱 거렸다.
어차피 여기서 대놓고 대본을 줄 생각은 없었다. 원래 자리로 식판을 돌려 놓은 유희재를 데리고 사옥에서 세 블록 떨어진 햄버거 가게로 왔다.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고민이다.
그래도 관리 중인 연습생인데 감자튀김을 먹으라 할지, 햄버거만 먹으라 할지. 어차피 활동량이 무지막지 할 것 같아,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미 두 손에 햄버거를 쥔 유희재가 물었다.
“.... 괜찮을까요?”
안 괜찮을 건 뭐냐.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유희재 평가 점수는 그리 녹록치 않다. 이대로라면 데뷔조 들기는커녕, 회사는 그대로 계약 해지를 요구하겠지. 이미 연습생들끼리 돌려대는 비아냥을 들었다면 본인도 주제 파악이 됐을 텐데-.
기다렸다.
먹을 때 괜히 일 얘기 하면, 얹힐 것 같아서.
분명 햄버거 세트는 다 사라졌는데, 유희재 손은 가만히 있질 않는다. 자꾸만 무언가를 더 찾는 손짓.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려고?”
“... 히히히. 원래 치팅데이면 시원하게 원 없이 먹어줘야 미련이 없어서.”
원 없이 먹으라고 초코, 딸기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사왔다. 이제는 말해도 괜찮겠지.
“어때?”
“음...”
당이 들어가서 그런지, 아까보단 훨씬 사람이 사람다워 보인다. 일회용 숟가락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핥는다.
“할 만해요.”
“연기보다?”
“에이, 연기가 더 좋죠.”
말하던 유희재가 아차 싶었는지, 한 마디를 덧붙인다.
“물론 댄스랑 노래도 좋구요.”
“전에 연기할 때가 훨씬 좋아 보여서.”
그동안 꽁꽁 숨겨두었던 ‘퍼즐’ 대본을 올려두었다.
“한번 연습해볼래?”
“이걸요? 제가?”
놀란 유희재가 연신 되물었고, 나는 크게 말하지 않았다. 어떤 배역이 자신한테 잘 어울리고, 캐릭터를 해석하는 능력까지 배우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말했다.
누가?
“오랜만이네. 무진 오빠. 아, 이제는 백무진 씨라고 불러야 하나.”
고개를 돌렸다.
내게 이 말을 알려줬던 배우가 눈앞에 바로 서있었다.
“한... 6년 만인가? 오빠가 그렇게 그만두고, 이직한 게. 현성 갔다는 말은 들었는데.”
6년 전, 내게 연예계란 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려준 여자가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야, 차소민. 나오지 말라니까. 왜 나와 가지고.”
햄버거 세트 포장지를 양 손에 든 매니저가 나와 차소민을 돌아본다.
“백무진?”
- 작가의말
즐거운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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