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소소화 님의 서재입니다.

학생부터 시작하는 천재 소드마스터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소소화
작품등록일 :
2024.03.03 23:06
최근연재일 :
2024.03.29 15:1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6,406
추천수 :
279
글자수 :
207,131

작성
24.03.08 15:15
조회
243
추천
8
글자
22쪽

에소릴 (1)

DUMMY

나는 스스로가 감상적인 편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아주 오랜만에 온 에소릴의 정문의 모습은 퍽 이상하게 보였다.


돌아왔구나.


처음 이 문을 본 날, 나는 스승님과 함께 이 문을 지났었다.


그때의 스승님은 분명 날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



에소릴은 명실상부한 현 제국 내 최고의 학교이다.


쭉 솟은 2개의 오벨리스크를 지나 정문으로 들어서서 걷다 보면, 학교의 상징인 ‘성 다니엘의 눈물’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연꽃 호수가 있다.


그 호수를 감싸는 듯한 초승달을 닮은 모양의 거대한 중앙도서관 '엘피스'.

이 도서관은 제국의 심장이라고도 불린다.

대재앙을 겪으며 상실될 위기에 놓였던 각종 고서들과 인류가 가진 모든 지식들을 다 수집, 취합, 보관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에소릴은 기사, 마법사, 성직자를 육성하는 학교답게 그 중앙의 호수를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기사단의 건물들이, 서측은 높게 솟은 마탑들이, 동쪽으로는 아름답게 건축된 성당들이 구역을 나뉘어 위치하고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위치와 방향이 그렇다는 말이지, 그 각각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사야는 단정한 하얀색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 은발 단발에 작은 검은색의 브로치를 한 채였다. 이사야는 남쪽의 정문으로부터 학생증을 받아 나오며 벌써부터 학교의 규모에 압도당한 것 같았다.


이시리엘 백작은 딸바보답게 온갖 동행을 붙였으나, 그 하인들은 당연하게도 특별한 행사나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에소릴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에소릴 전체가 제국 2급 기밀지역이기 때문이다. 에소릴은 학교이자 그야말로 하나의 작은 도시다.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대신에 웬만한 것이 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사야는 그 규모에 놀라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사야는 입학안내문에 그려진 지도를 보며 허둥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이사야를 보며 말했다.


“일단 트램을 타자.”


트램. 다른 말로는 마력부상열차.

교내의 도로 아래로는 마력석이 깔려있어, 그 위를 따라 트램이 다녔다. 그것을 통해 학생들은 교내의 주요 지점으로 갈 수 있었다.


“와아···”


교정을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트램이 우리를 태우고 기숙사 앞에 도착할 때까지, 그리고 내릴 때까지도 이사야는 줄곧 입을 와-하고 벌리고 있었다.


“정말 크네요. 이게 어떻게 움직이는 건가요?”


나는 간단히 설명했다.


마력석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접촉할 때 가장 큰 효율을 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성질이 다른 마력석과 마력석을 사이에 두고 그 간극 사이에 마전체라 불리는 마력이 통과하지 못하는 물질을 위치시키면 그 사이의 공간에 더욱 큰 마력을 모을 수 있다. 그 마력이 열차의 바닥의 소재와 반발하며 열차가 뜨게 되는 것이다-


라는 내용의 설명을.


“역시······.”


하나도 알아들은 것 같진 않았지만, 이사야는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역시라는 건지 물으려다가 참았다. 짓궂은 아저씨 같아서.


“...그런데 조금 걱정되네요.”


정말 걱정되는 표정으로 이사야가 말했다.


“왜?”

“제가 길치거든요.”

“학교가 너무 크다 보니 이동수단이 필수인 거지, 실제 걸어 다닐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아. 그러니까 길치인 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하. 그런데 신시님은 와보신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잘 아시나요?”

“···!”


이사야답지 않게 예리한 말이었다.

대답이 궁했다.


이미 여기를 와본 적이 있으니까.

여기서 지내봤으니까.


···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난 필기에서는 1등이었잖아. 이 정도는 상식으로 당연히 알지.”

“과연···!”


순수하게 믿어주니 농담이 통하지 않는다.

뭐가 과연···!인지 묻고 싶었지만, 다행히 이번에도 참아냈다.


곧, 조금 더 걸어 기숙사에 도착한 우리는 헤어졌다.

물론 에소릴에 기숙사는 곳곳에 흩어져 많았지만, 신입생들은 북쪽에 모여있는 신입생 전용 기숙사를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사는 분리되어 있었다.


이미 포장된 짐은 방앞에 도착해 있을 것이었다.


“그럼, 조금 있다 뵙겠습니다.”


이사야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정말 예의범절이 몸에 배어있는 애다.


그리고 이사야와 헤어진 나는 그 길로 기숙사로 들어가지 않고, 반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가볼까.”


나에게는 짐 정리보다 급한 것이 있었으니까.


중앙도서관 엘피스.

방금 받은 따끈따끈한 학생증으로 볼 수 있는 제국 내 최고의 위상과 방대한 양의 정보들.

나에게는 그것이 더 급하다.


입구를 지나쳐 종합정보실로 향했다. 악마들과 마물들에 대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곳이지만 지금의 내가 찾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살아있었구나.”


이엔은 살아있었다.


그것도 아주 잘. 이엔이 아직 에소릴의 구성원이었기에 확인이 가능했다. 에소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며 잘 지내고 있었다. 걱정했던 내가 무색해 질만큼.


시간이 없다.

나는 찾아야 할 중요한 것들이 남아있었기에 서둘렀다.


“···죽어있구나.”


그리고 나는 죽어있었다.

본래의 나인 아르곤 아퀴나스는 실종 상태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 정보에서조차 성검에 대한 내용은 일절 없었다.


분명히 그들은 내가 성검을 찾아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엘카 카르토펠의 손길이 상당히 깊게 뻗어있다는 의미다. 대외지성물수탐단 내부에게로 말이다. 적어도 내가 속했던 팀 전체는 다 장악당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


이것은 나만이 알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사실이다.


이 세상은 결과가 전부다.

지금의 이 결과처럼.

철저하게 배신당하고 힘을 잃은 채 여기 있는 내 모습처럼.


‘그러니 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다시는 나의 것을 힘이 없어서 잃는 일이 없도록.



어떻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



만나기로 약속했던 기숙사 앞에서 다시 이사야와 만나 대강당으로 향했다.


우리는 살짝 늦은 편이었다.

한발 늦게 대강당에 도착하자,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은 입구에 비치된 400여명의 학생들의 자리표였다. 학생증의 순서대로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문을 열고 우리가 들어가자, 학생들의 시선이 쏠린다.

당연히 나에게가 아니다.


“···쟤 머리카락 이쁘다.”

“옷 입은 거 봐. 스타일도 좋다.”


이사야게도 들렸는지, 얼굴이 조금 빨개지며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이 이쁘다는 건 좀처럼 보기 힘든 은발이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중간부터는 반묶음을 해서 더욱 단정함을 강조했고, 얼굴과 피부가 워낙 하얗다 보니 흰 셔츠가 잘 어울렸다. 아래로는 검은색 슬랙스 역시 깔끔했고.


집사 테오도르가 골라준 옷이다. 반드시 첫날에는 이걸 입어야 한다고 강조했었지.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첫인상만큼은 똑 부러진 느낌을 줘야한다고 했었다.


“옷이 잘 어울리긴 해.”

“그,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이동했다. 헤어지기 직전, 이사야는 나를 보고 짧게 목례했다.


강당 내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차갑고 꿉꿉한- 그런데도 어쩐지 싫진 않은 먼지 냄새가 코로 들어온다.


도대체 얼마 만에 이곳에 와서 앉아보는가. 감회가 새로웠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과거의 나는 이 중에서 최고였었고, 지금은 아니라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이상하긴 하다.

그때의 나는 어땠더라.


“흠······.”


오러는 경지가 높은 사람만이 그 아래의 사람들을 읽을 수 있다. 비록 지금의 나는 오러의 양이 형편없이 적어 그 경지가 가늠이 안 됨에도 다들 실력자인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내 직감 덕분이다.


그리고 아마 지금 내 실력은 여기서,


‘굉장히 낮겠지.’


기감은 자연스레 시선이 모이는 곳을 찾는다.

그래, 당장 저기 앉은 쟤만 해도.


허리까지 오는 금발의 긴 생머리에, 새하얀 피부, 속눈썹을 조용히 내려 깐 차가운 인상. 쭉 뻗은 다리를 까딱거리고 있는 그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간단했다. 기사로서의 동경의 시선. 그리고, 남자들의 목마른 시선.


그렇게 한두 명씩 애들을 파악하고 있는데, 그때 내 옆에 멀뚱히 앉아있던 거구의 근육질 남자애가 불쑥 손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


“낙자일 입니다.”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자신을 소개한 것임을 알고 나도 손을 마주 잡으며 인사했다.


“신시야.”

“지금부터 대기시간 막간의 5분을 이용해서, 제 사업계획을 설명드리려 합니다.”


당최 이게 무슨 소릴까.


“사업을 하나 구상하고 있습니다.”

“사업?”


“건강의 시대지 않습니까. 매일 먹는 음식을 찍으면 그 영양성분이 나오는 분석기를 개발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양제의 과다복용 문제, 즉 먹고 있는 음식의 양과 수준을 알 수 없기에 부담이 가게 많은 양의 영양성분을 영양제에 넣을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도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영양성분에 따라 많이 섭취하면 빠지지 않아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분석기와 영양제 업체간의 사업협력도 가능하겠지요. 확장성도 높은 부분입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사업?”

“아, 제가 기억력은 좋습니다.”

“기억력?”


나는 되물었다.

바보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입학식에 오셨던 분이 아니시죠. 오늘은 신입생 대상 학교 소개의 날이고요. 그러면 그 사이에 붙은 특별전형으로 온 특대생이시란 소리고 들어오실 때 다른 기사부와 학생들의 반응으로 보아 뛰어나신 오러도 아니었습니다. 마법부이실 수도 없는 것이 제가 마법사기에 측정해본 결과 마력 역시 없으셨습니다. 그러니 신성부이고 돈이 많으실 것으로 판단, 사업을 제안했던 겁니다. 그래서 어디 성직자십니까?”

“나 신성부 아닌데.”

“아. 아하. 기사부셨군요. 중급? 소드엑스퍼트 중급쯤 되시나 보군요.”

“중급 아닌데.”

“아하. 하급. 요즘은 그것도 많다지 않습니까. 역시 잠재력이 중요하지요.”

“하급도 아닌데.”

“네?”

“최하급인데.”


낙자일은 순간 인자한 돌멩이를 따라 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비슷한 말로는, 사고 쳤다는 걸 깨달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움직이기 편한 짧은 바지에, 아까 학생들이 웅성거릴 때도 속눈썹을 내리깐 채 가만히 앉아만 있던 그 긴 금발 여자애가 어느새 내 앞에 서 있었다.


“야. 너 뭐냐?”

“뭐가?”

“네가 진짜 특대생이라고?”


똑바르게 나를 쳐다보는 2개의 하늘색 눈동자는 경멸의 빛을 띄고 있었다.


“응. 못 들었어?”

“아니. 들었어. 내 말은 도대체 얼마를 먹여야 이런 무재능으로 에소릴에 기어들어 올 수 있었냐는 건데.”


순간 강당이 조용해졌다.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한동안 내가 말이 없자, 그 여자애가 고개를 까딱했다.


“딱히 반박할 말이 없나 보지?”

“응.”

“뭐?”


예상외의 답변이었는지, 그녀는 눈썹을 모았다.


“내가 뒷길로 들어온 건 사실이니까.”

“······.”


그렇게 나를 잠시 노려보던 그녀가 툭 쏘듯 말했다.


“난 너 같은 애가 제일 싫어.”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 자기 자리에 앉았다.


저, 저 당최···


물론 오러라는 것은 검의 깨달음이며, 수련이며, 일생의 고통이다. 그것을 위해 괴롭고 지난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내게 화가 나기도 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나 못 따라가겠어! 무서워!


강당의 아이들은 싸움 구경을 하려 하다가 날 것 같지가 않자 아쉬워했고 한편에서는 다시 도란도란 얘기들을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일이 커진 것 같습니다.”


옆의 그 낙자일이라는 거구의 근육질 남자애가 진짜 죄송한 얼굴로 나를 보며 사과했다.


“알면 됐어. 사과는 안 해도 돼.”

“그래도···”

“됐다고.”

“그래도······.”

“아니 알았다고. 원하는 것을 확실히 해. 난 재능 있지도 않고 돈도 없어. 그런데 내 옆에 왜 붙어있는 거야?”

“물론 제가 재능을 좋아하고 돈도 좋아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도리라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피해를 끼쳐 드렸으니 제가 드릴 수 있는 방법으로 작게나마 도움을 드리는 것이 도리에 맞는 것 같습니다.”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 같은 그 모습에 결국 나는 허락했다.


“그래. 네 맘대로 해라.”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특대생으로 들어오셨으면 각 학생들에 대해서 잘 모르실 듯한데, 저는 에소릴 이전의 엘리시스부터 쭉 보아왔기에 각 학생들에 대해서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궁금한 분이 계십니까?”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뽑아먹을 수 있는 건 다 뽑아먹자.


“그럼, 나는 저 남자애 먼저.”


이 소란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자신의 운기조식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인 회색 머리의 마른 애였다. 분명 여기서, 내 직감으로서는 쟤가 제일 강하다.


“백밀 덴버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양측 가문이 다 유서 깊은 기사 가문이라 들었습니다. 핏줄의 영향인지 뛰어난 검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입학시험에서 기사부 전체에서 2등의 실력이라 알고 있습니다. 특이할 점으로는 친구를 사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늘 혼자 다닌다 합니다.”


제일 강한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2등이었다.


“그래? 그럼 다음엔 저 애.”


아까부터 나를 노려보던 갈색 머리의 애다.

나한테 말만 안 걸고 시비만 안 걸었지, 노려봄의 정도와 세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트레 하시크입니다. 리더가 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항상 나서는 편이고, 제법 리더십이 있고 강함도 가지고 있어 하트레를 따르는 무리도 많습니다. 다만 자존심이 강하고 날카로워서 이곳저곳에 부딪히는 성격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 뒤로 나는 사실 제일 궁금하던 애에 대해 물었다.

아까 나에게 뭐라고 한 금발 긴 머리의 여자애.

걔를 보며 눈짓하자 낙자일이 곧바로 설명했다.


“리아나 다이브비체입니다.”


다이브비체 가문이라면 들어봤다. 4대 명가 급은 아니더라도 굉장히 유명한 귀족 가문 중 하나가 아닌가.


“저 까칠한 성격의 이유는, 뛰어난 성취로 순식간에 경지에 올랐지만, 그 뒤로 어느샌가 실력이 막혀있···”


그 순간 리아나가 뒤를 훽 돌아봤다.


낙자일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명실상부 올해의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인 것이 확실합니다.”


리아나는 한동안 우릴 노려보다가, 다시 앞을 봤다.

낙자일은 그때까지도 인자하게 웃으며 눈을 피하는 것을 유지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분명, 내 기감 상으로는 이곳에서 백밀 덴버와 리아나 다이브비체가 가장 강하다. 그렇다면···


“그럼 실력적으로 올해 기사부의 첫 번째는 누구지?”

“아, 그건···”


드르르륵-!


그때 문이 열리며 앞문으로부터 백발의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것을 본 누군가가 말했다.


말도 안 돼, 라고.



*



내 이름은 ‘카’다. 카 교수라 불러라.


그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작은 숲을 지나 대연무장으로 갔다.

정확히는, 400명 중 기사부의 200명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실제로 본 건 처음이다.’


그랜드마스터.

4명의 그랜드마스터는 각각 황제의 수호기사, 대장군, 폐관 수련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남은 하나가 제국 곳곳을 싸돌아다닌다고만 알려진 ‘카’다.

어째서 그에게만은 황제의 명령도 없이, 어떠한 과업도 없이 자유가 주어졌는지는 모른다.

대륙을 유람하며 방랑하는 생활만을 한다던 카. 그렇기에 나는 전생에서도 그를 본 적이 없다.


널찍하고 천장이 높은 대연무장에 도착한 후, 그가 말했다.


‘단 한 번, 자신의 검을 받아내는 것’. 그것이 시험이라고.


“너희는 죽을 수도 있다.”


그 말에 모두의 사이로 긴장감이 맴돌았다.


“걱정이 된다면 미리 관둬라. 고지했기에, 책임은 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랜드마스터는 인류 최고의 경지이며, 보물이며, 존경이다.

아무도 책임을 물을 순 없다.

황제가 아닌 이상.


“시험은 간단하다. 나는 이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휘익-


“검을 한 번. 휘두를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받아낸다면.”


강당 내의 호흡이 멈춘 것 같았다.


“내 제자가 되게 하마.”


장내가 술렁였다.

누군가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제자... 제자가 된다니.”


기사로서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여기서 아무도 없다.

아무도.


“약속한다. 객기를 부려 시험에 들어와 내 검을 받아내지도 못한다면 바로 퇴학시키겠다. ‘불합격’의 기준조차 미달 된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

“이것은 장난이 아니다. 나는 귀한 시간을 내서 이곳에 왔다. 자. 이제 잡설은 그만하고 시작하지. 누가 처음으로 할 테냐.”


처음으로 나선 것은, 백밀 덴버였다.


간단했다.

백밀은 카 교수의 앞에 가서 섰고,

카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다.


카 교수의 검에는 어떠한 오러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 평범한 검이, 백밀의 검강을-


투카앙-!


잘라낼 뻔했다.


“음... 통과.”


검강을 두른 검은 검강을 두르지 않은 검을 두부처럼 잘라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그 반대가 일어날 뻔 한 것이다.

상식이 아니다, 이건.

이때까지 배운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감각에 다들 호흡을 멈췄다.


넓은 연무장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다음.”


다음으로 나온 아이는 딱 보아도 이미 자신감이 없었다.

힘껏 검에 오러를 둘러보지만, 오러가 단 한 줌 담기지 않은 카의 검이 그의 검을 반으로 잘랐다.


털썩.


그 아이는 카 교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너는 불합격조차 아니다. 너는 퇴학이다.”

“아, 아아, 안 됩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검을 다시는 못 잡게 할 수도 있다.”

“아, 아아······.”


그가 우리를 돌아보며 다시 말했다.


“너희에게는 선택지가 2개가 있다. 지금 나가는 것. 그리고 나에게 시험 치는 것.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까.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미래를 망치지 마라. 제대로 된 판단을 하는 것 역시 용기다.”


그리고 그대로 반절 이상이 관뒀다.


그리고 이어지는 행렬.


‘통과.’

‘불합격.’

‘통과.’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통과.’


이후는 다행히, 퇴학을 당하는 아이는 더 없었다.

단지 불합격과 통과만이 무수하게 나뉠 뿐.


‘무섭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쫄린다.

어떤 테스트인지, 무엇을 테스트하는 건지. 봐도 봐도 아직까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단 1합.

오러도 두르지 않은 단순히 쎈 검을 받아내는 거라면 자신이 있어.

공격을 ‘흘려내는’ 거라면 나의 기술로 가능하다.


양쪽이 서로 오러가 없는 검이라면.

정말 ‘기술’을 보는 시험이라면.

나도 충분히 할만한 싸움이 아닌가.


통과인 애들은 웃음꽃이,

불합격은 너무나도 아쉬운 표정으로 단상을 내려간다.


통과한 아이들은 한곳에 모여있었고, 통과가 점점 늘어나면서 엄숙하던 장내에서도 조금씩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도 무엇을 테스트한 건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야. 관둬라. 소드엑스퍼트 최하급인 오러로는 무리다.”

“봐! 이놈 굳어있는 거. 왜? 기껏 들어와 놓고 짤리려니 무섭냐?”

“용기와 객기는 다르다. 퇴학 당하기 싫으면 관둬, 임마! 정신 차려!”


이놈이고 저놈이고 떠들어 댄다.

분명 아까 강당에서 내가 수많은 이목을 모았기 때문이겠지.


카 교수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할 건가?”

“그렇습니다.”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이 무엇을 테스트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힘 그 이상을 보려 한다는 건 알겠다.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무엇을’ 보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난.

나는 절박해야 한다.

과거의 나와 다르게.

얻을 수 있는 것은 뭐든 얻어내야 한다.


천천히 그의 몸이 나를 향해 온다.

그리고 그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순간-


그것을 막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린 그 순간.


“···!”


분명히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어야 하는 그의 검은,


정확히 나의 비어있는 옆구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지금 막으려면 늦는다!’


이미 팔을 올렸기에 움직임이 늦었다.

억지로 몸을 뒤틀어 쓰러지듯 팔을, 검을 옮겼다.


‘죽는...다!’



“···!”


그리고 옆을 막은 그곳엔, 검이 없었다.

분명 내 옆으로 왔어야 하는 그의 검은, 내 머리 앞에 가만히 멈춰있었다.


“뭐야, 쟤?”


결과적으로, 나는 옆 허공을 막다 우당탕 자기 혼자 넘어진 모습이 되었다.


“풉, 푸하하,,,”


웃음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이! 다리 힘이 풀린 거냐고! 그렇게 무서웠던 거냐고!”


그러나 내게 그 말들은 들리지 않았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그토록 첨예한 기감.

내 몸이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강렬한 기감.

그것은 죽음 앞에서만 발현된다.


‘이 사람, 방금 나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생에서조차 단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는 일이었다.


직감과 결과의 부조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도대체, 어떻게······.’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던 카 교수가 말했다.


“너는 합격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학생부터 시작하는 천재 소드마스터 생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합니다. +4 24.03.31 163 0 -
29 스승과 제자 (3) 24.03.29 58 4 11쪽
28 스승과 제자 (2) +1 24.03.28 70 6 16쪽
27 스승과 제자 (1) +1 24.03.27 68 6 13쪽
26 화이트 크리스탈 (7) +2 24.03.26 73 5 18쪽
25 화이트 크리스탈 (6) +2 24.03.25 80 8 18쪽
24 화이트 크리스탈 (5) +2 24.03.24 72 7 18쪽
23 화이트 크리스탈 (4) +1 24.03.23 74 5 11쪽
22 화이트 크리스탈 (3) +1 24.03.22 84 8 10쪽
21 화이트 크리스탈 (2) +1 24.03.21 103 9 16쪽
20 화이트 크리스탈 (1) +1 24.03.20 108 8 15쪽
19 수련 (2) +2 24.03.19 130 9 14쪽
18 수련 (1) +2 24.03.18 149 10 14쪽
17 정급 시험 (7) +2 24.03.17 146 10 18쪽
16 정급 시험 (6) +1 24.03.16 145 9 19쪽
15 정급 시험 (5) +1 24.03.15 142 12 15쪽
14 정급 시험 (4) +2 24.03.14 175 10 17쪽
13 정급 시험 (3) +1 24.03.13 173 10 13쪽
12 정급 시험 (2) +2 24.03.12 201 9 12쪽
11 정급 시험 (1) 24.03.11 213 10 20쪽
10 에소릴 (3) +1 24.03.10 217 13 13쪽
9 에소릴 (2) +1 24.03.09 231 13 13쪽
» 에소릴 (1) +1 24.03.08 244 8 22쪽
7 이사야 (4) +1 24.03.07 252 11 17쪽
6 이사야 (3) +2 24.03.06 280 10 19쪽
5 이사야 (2) +3 24.03.05 302 8 12쪽
4 이사야 (1) +1 24.03.04 377 12 16쪽
3 기감 (2) +2 24.03.03 486 12 16쪽
2 기감 (1) +1 24.03.03 660 15 22쪽
1 나는 천재였다. +4 24.03.03 1,069 22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