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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화 님의 서재입니다.

학생부터 시작하는 천재 소드마스터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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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화
작품등록일 :
2024.03.03 23:06
최근연재일 :
2024.03.29 15:15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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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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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7,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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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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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이사야 (3)

DUMMY

하루 뒤.

나는 응접실에서 이사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시리엘 백작 아저씨께서는 이사야와 내가 둘이 얘기할 시간을 넉넉하게 주겠다 하셨다. 내가 설득해내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햇볕이 따뜻하구나······.’


고작 일주일 전의 그 참사가 거짓말인 것처럼, 창밖으로는 저택 정원의 화사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사야 이시리엘.

일기장에서의 이 신시라는 애는 이사야에게 완전히 빠져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이사야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 수 있었다.


이사야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잘 정돈된 은발 단발을 가졌고, 성격은 양처럼 온순하고 천진하다. 내가 짧게나마 봐본 이사야는 일기장에서 묘사한 그대로였다.

집안도 너무나 좋다. 외지 여덟 섬도시 중 하나,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동부 최대의 섬도시 이시리엘의 백작의 외동딸이라. 이것보다 더 좋은 집안이 나오려면 수도의 사대명가 급은 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신성력까지도 최고위급으로 우월하다고 일기장에서는 말했다. 그러니까 이 참사에서 살아남은 거겠지.


그러나 이사야는 불행하다.


듣기로는 이사야의 어머니도 어릴 적 악마에게 당해 잃었다는 모양이었다. 이런 어린 나이에 불행하게도 이런 참극을 두 번이나 겪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불행한 이 애를 이용해야 한다.’


이 이사야라는 애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철저하게 얘를 이용해야 한다. 얘를 설득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가까워져선 안 된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이 아버지가 딸을 얼마나 아끼는지를 보았지 않나. 괜히 친해지면 귀찮다.

귀찮은 일이 만들어지는 건 사절이다.

설득은 하되 나를 싫어하게 만들 정도.

결국 그 정도의 거리가 적당하다.


벌컥-


그때 문이 열리며 이사야가 들어왔다.


부드러운 하얀 스웨터에 발목까지 오는 검은색 긴 치마.

위아래로 넘실넘실 품이 넓은 옷에 파묻힌 채. 게다가 한 팔에는 웬 바구니를 껴안고 와서, 고급인 소재의 옷이나 깨끗하고 흰 피부, 세련된 머리 장식, 예쁘장한 얼굴이 아니었다면 웬 시골 소녀가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수수한 차림새였다.

그런데 그게 또 은발 단발의 머리와 묘하게 어울렸다.

막상 보니까 그새 많이 수척해진 느낌이었다. 얼굴이 야윈 느낌이었다.


‘심지어 그때 계단에서 처음 봤을 때도 아파서 수척한 상태였을 거 아니야?’


들어온 이사야가 날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대로 내 앞까지 걸어온 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절친한 친구님.”


장난스레 싱글싱글 웃고 있는 얼굴. 아마 내가 자기 아버지한테 절친한 친구라고 소개한 것을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어, 그래. 어서 오고.”


내 능청스러운 말에 이사야가 킥, 하고 웃더니 말했다.


“그래도 예의상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다시 인사드릴게요. 저는 이사야 이시리엘이고요, 신시님의 절친한 친구···는 아니지만 앞으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리고 말이 끊겼다.

응접실은 쓸데없이 큰데 사람은 두 명뿐이라, 적막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막상 보니 말이 안 나왔다.

아무래도 위로를 먼저 해야 하나?

그렇게 멀뚱멀뚱 서로를 보며 앉아있는데, 또 갑자기 이사야가 풉, 하고 웃었다.

얘 왜 이렇게 자꾸 웃어.


“왜 웃어.”

“웃겨서요.”

“뭐가 웃겨?”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게 웃겨요.”


그렇게 말한 이사야가 대뜸 자신이 가져온 바구니를 들이밀며 말했다.


“아 맞다. 감자 좀 드실래요?”

“아니.”


순간 이사야의 얼굴이 절벽처럼 무너졌다. 당연히 거절할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얘 저번부터 느꼈는데 좀 멍한 그런 부분이 있다. 놀리는 재미가 있네.


“장난이야. 줘.”

“설탕? 소금?”

“설탕.”

“역시, 절친이라 그런지 통하나 봐요. 저도 설탕이 좋아요.”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감자를 먹었다.

그런데 내가 하나를 먹을 때 쟤는 두 개를 먹고 있다. 오물오물 잘도 먹는다. 저 작은 몸에 어떻게 감자가 끝없이 들어가나 싶다.

한참 포슬포슬한 감자를 달달한 설탕에 찍어 먹던 도중, 이사야가 불쑥 말했다.


“감사합니다.”

“뭐가?”

“그냥요. 이것저것.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신경이 쓰였고, 직접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어느새 감자먹기를 멈춘 채로, 이사야는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


“계시면서 힘드신 점은 없으셨나요? 혹 대우가 안 좋았다거나······.”

“없었어.”

“뭐든 편하게 말씀 주셔도 돼요.”

“진짜 없었어.”

“그런가요?”

“응.”

“그렇군요.”


잠시 우물쭈물하던 이사야가 다시금 속삭이듯 말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바로 수련하시는 것 보고··· 솔직히 말해서 정말정말 대단해 보였어요.”


나는 내 일이 아니었으니까. 죽은 애들과의 추억이 없으니까. 누군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나는 내색 없이 이사야를 바라보기만 했다.


“너무 괴로웠거든요. 솔직히, 죽고 싶었어요. 그런데 신시님을 보고 저는 힘을 얻었어요. 묻고 싶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나를 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순수하고 올곧아 보였다.

그 눈빛에는 솔직히 말해서, 나조차도 조금 마음이 따끔했다.


과거의 나라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힘이 필요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그러니 나는 멋진 척을 해야 한다.

얘를 감동시켜야 한다.

내 말을 듣도록 해야 한다.


“수련으로 잊는 거지. 수련만이 잊을 수 있게 해주니까.”

“와아···”


희미하게 웃는 이사야가 너무 가냘파 보였다.

하긴 나는 나이를 먹었지만, 얘는 정말 사춘기의 소녀가 아닌가.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 것인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도 저렇게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하고 있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있지 않은가.


“그, 아까 말한 거요. 혹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도와드리고 싶어요. 언제든 편하게 말씀 주세요. 정말로요.”


그리고 그런데도, 본인이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상태일 거면서. 어찌 나를 먼저 위한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얘를 설득해야만 한다.

얘를 이용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나도 최소한의 예의만큼은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먹던 감자를 내려놓고 말했다.


“솔직히 말할게. 나는 너를 설득하기로 했다.”

“네?”

“나는 에소릴에 가야 한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너의 아버지는 네가 에소릴에 가길 바라신다. 그래서 거래를 했다. 너를 설득하면, 나도 에소릴에 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너를 이용할 거다.”


이사야는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었다.

나는 천천히 처음부터 설명했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대마법사 지즈키엘이 찾아낸 축복받은 화이트비 덕분에, 성구가 보호해주는 드넓은 내지와 크리스탈을 깨지지 않고 지켜낸 외지의 여덟 섬도시에는 다행히 마물이 없을 수 있게 되었지. 하지만 그 안에는 악마가 있다.”


손가락을 톡톡 치며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대재앙 이후 50년간의 제국이 어땠지? 지즈키엘의 유언에 적힌 남은 사대 성물을 찾아내려는 온갖 시도들! 악마와 마물을 소탕하려는 유구한 노력! 그런데 50년간 성물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악마들은 각각의 피마다 지닌 독특한 혈능을 살려 끝까지 숨고 싸워대는 중이지. 더불어 사대성물 중 유일하게 찾아낸 성구의 능력조차 우리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해. 그 사용법의 일부를 익힌 것이 고작이었어. 내지의 기사들과 마법사들, 관료들에게만큼은 악마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한 것. 그것이 지난 50년 동안 해낸 전부다. 그리고 이번 공격은 외지의 섬도시의 아카데미들에 일제히 이루어졌지. 왜일까?”


폭풍처럼 정보를 나열해 정신없게 만든 후, 마지막에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해서 당황하게 만든다. 이사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지요?”

“너도 알겠지만, 악마의 특정 핏줄엔 불완전하지만 예언의 힘이 있다.”


예언은 정확할 수 없다. 질문을 명확히 할수록, 시간과 공간, 인간을 상세히 정할수록 그 답은 더욱 애매모호 해지고 표현은 부정확해진다.

하지만 내가 전생에서 죽게 된 이유는 아마 이것 때문일 것이다. 엘카 카르토펠이 성검을 찾아 내게 온 것은 예언의 힘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예언이 있었겠지. 그러나 그 해석이 정확하진 않았을 거고, 그렇기에 ‘외지의 섬도시의 아카데미’라는 목표를 향해 무차별 공격을 동시에 한 거겠지. 그러니 아마 우리 둘을 마저 처리하려 할지도 모르지. 네가 여기에 남는다면 끝없이 시달리게 되겠지. 악마에게.”

“그건, 알고 있···”

“그리고 사람들에게.”

“···!”

“왜 너의 아버지는 너를 그렇게나 숨긴 걸까? 악마들로부터 뿐만이 아니야. 사람들에게서다.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의 감정이 처음엔 너에게 향할지도 모르지. 왜 혼자 살아남았니. 알고 있었던 거 아니니. 다른 애들도 살릴 수 있었던 거 아니니. 처음에는 분노. 그러나 해소되지 않은 의문은 두려움이 되고 그건 곧 경외로 바뀔 거다. 성녀로 추앙받게 될걸. 아버지가 막아주는 것도 잠깐이고, 너는 여기서 끝없이 기대받겠지. 악마들에게 노려지면서.”


창밖에는 회색 구름이 끼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이사야의 얼굴은 더욱 창백하게 보였다.


“그래서, 내지의, 황도의, 가장 안전한 에소릴로 가라는 건가요? 저는 못 가요. 그렇게 이기적인 일을 할 수는.”


이사야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감정이 차올라 말을 멈춘 모양새였다.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늘 불합리한 선택을 한다.


“나 그거 말 안 했다. 너 계단에서 만난 거.”

“알고, 있어요. 그건 감사하다고 생각···”

“진짜 감사하다고 생각해?”

“네?”

“사실은 너, 내가 말해줬으면 하고 바랬던 거 아니야?”

“네에?”


이사야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나는 기세를 잡고 이때구나 싶어 말을 이었다.


“아까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괴로웠다고 했지. 그런데 사실은 죽었으면, 하고 안 바랬잖아.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서 ‘죽임당했으면’, 하고 바랬던 거 아니야? 그러면 기대받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런, 어떻, 게······.”

“얼굴에 다 쓰여있는데 뭐.”


내가 설득할 수 있다고 자신한 이유.

나도 전생에서 고아였기 때문이다.

나도 같은 일을 겪었었기 때문이다.

혼자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안다. 나만큼은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기장에서 이 신시란 애가 이사야에게 반했던 이유는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일기장에서 주구장창 이사야에 대해 말했던 것.

천성의 착함.

이사야 이시리엘은 천성이 양처럼 온순하고 착하게 태어났다.


지금 숨을 새액새액 내쉬며, 의표를 찔린 듯 쩔쩔매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착하기 때문이야. 너는 너 잘못으로 해야 편해지잖아. 그렇게밖에 못해.”

“······.”

“‘원래 마력화재 알람은 잘 고장난다.’, ‘내가 한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나는 아팠다.’, ‘나는 잘못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괴로우니까. 그렇게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더 괴로우니까. 맞지?”

“저, 저는···”


무언가 말하려는 이사야의 말을 나는 끊어냈다.


“넌 착하지만 이기적이야.”

“···!”


이사야는 충격을 받은 듯 그대로 멈춰있었다.

좋다, 충격요법이 제대로 들어갔다.


“아까 말이야. 그 이유를 모르겠다 했지. 내게 왜 신경이 쓰이는지. 왜 잘해주고 싶은 건지.”

“······.”

“난 알아. 넌 나한테, 죽은 애들을 투영시키고 있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잘해줘야지. 그래야 죄책감이 덜어지잖아?”


이사야는 손을 부르르 떨었다.

크게 뜬 그 두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있었다.


“저...저는.. 그런 게... 그런 마음으로..”

“나는 너를 이용할 거다. 너는 이제 나의 사정을 알아버렸지. 너는 착한 놈이야. 그러니까 넌 날 포기 못 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에소릴로 갈 거다.”


그리고 나는 벌떡 일어나 휘적휘적 문밖을 나섰다.

걸어 나오며 아닌 척 흘깃, 슬쩍 뒤돌아보니 이사야는 멍하니 멈춰있었다.


음, 통했구나 통했어. 이 정도면 설득은 성공했다.


‘그리고 일부러 준 충격도 잘 먹혀든 것 같고.’


날 싫어하면서도 내 말은 들을 만큼 됐겠지. 이쯤 했으면 분명히 날 충분히 싫어하게 됐을 거다.


난 기쁜 마음으로 방을 나섰다.




*




이사야는 응접실의 한켠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차차 흐려지던 밖은, 이젠 아예 어두워진 채였다.


비가 오고 있었다.


창을 따라 빗물이 강물처럼 주룩주룩 흘렀다. 이사야는 어두워진 창밖으로 비치는 자신의 옆얼굴을 본다.


‘절친한 친구라고?’

‘나는 너를 이용할 거다, 라고?’


이사야는 생각한다.

너무나도 제멋대로인 태도.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나 깊은 위로를 느끼는 것일까.


모두가 위로해주었는데.

모두가 날 위해주는데.


‘그렇다면 이 텅 빈 느낌은 뭐일까.’


몇 번이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때 자신도 같이 죽었었다면, 하고.

위로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해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자신은 바른 말을 듣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오직 한 명만이 솔직했다.


‘이기적이라고, 했어.’


모두가 거짓된 위로를 하는 속에서 오직 그 말만이.


무한하게 자신을 위해주는 위로. 공감. 따뜻함이 있다.

그러나 그 따뜻함은 방향성이 없다.

자신은 돌아가면 또다시 겪어야 한다. 해바라기처럼 이곳, 저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야 한다. 그 모든 위로와, 기대와, 그것에 부응하고 반응해야만 하는 자신이.


착하지만 이기적이다.


“하, 하하....”


달궈진 뺨을 따라 눈물이 흘렀다.


“울면 안 돼.”


울면 약해지니까.

감정에 휩쓸려 가버리니까.

이사야는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눈꺼풀로 잡아끌어 적셨다.


그랬구나.

나는 이기적인 거구나.


살짝 열린 창틈으로 언뜻 비릿한 비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투둑투둑, 물방울들이 몇 번이고 창틀에 떨어져 튀겼다.


자신조차 몰랐던 부끄러운 부분.

인정을 하니까 너무나도 편해지는 자신이 있었다.


맞다, 자신은 이기적이다.

나는 이기적이다.


나는 그 사람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




“설득에 성공했을까요?”

“떼잉, 이 사람아. 최소 며칠, 길게는 몇주는 필요하겠지. 그렇게 금방 되겠나.”


이시리엘 백작과 집사 테오도르는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에소릴에 가게 만든다라. 상태조차 회복 못 하고 있는데 그런 어려운 것을 절대 설득해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내로라하는 성직자들이 다 달려들었는데도 힘들었지 않나.”

“그럼 왜 그 소년에게 맡기신 겁니까?”

“말대꾸하지마.”

“······.”


잠시 말없이 걷던 이시리엘 백작은 테오도르에게 물었다.


“그 소년의 수준은 어떻다던가?”

“관찰하기로 대략 막 오러를 끌어내는 수준, 소드엑스퍼트 최하위 정도인 모양입니다.”

“약하군.”

“그렇습니다.”

“그런데 강하더군.”

“예?”

“나랑 일대일로 대면했을 때 말이야. 보통의 그 나이대의 애라면 백작이라는 지위 앞에서 위축되기 마련인데.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오히려 당당하게 내게 요구하더군.”

“그렇습니까?”


아카데미라 함은 재능의 요람이다. 더구나 바스톨은 섬도시 세라티움에서 최고의 아카데미라 불렸다. 그런 재능있는 아이들이 대응도 해보지 못하고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그런데 이제야 오러를 뽑아내는 하류 중의 하류인 기사 지망생이란 놈이 살아남았다. 범상치 않을 거라곤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막상 만나보니 더 미쳐있었다. 이미 모든 사태를 파악하고 자신을 대상으로 거래를 제안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더구나 받아주지 않으면 혼자라도 어떻게든 에소릴로 떠날 기색이었다. 실력도 없으면서 영문모를 자신감만 넘친다.


“그래. 내 오래 살진 않았지만 말이야, 테오도르. 결국 사람은 큰일을 겪었을 때 그 밑바닥, 본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단 말이지. 그때 일어서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 그 갈림길에서 사람이 나뉜다고 나는 생각한단 말이야.”


가끔 있다.

그런 두려움이 없는 놈. 겁이 없는 놈.

미친놈.


“놈은 필사적이야. 그런 사건을 겪고도 바로 훌훌 털고 일어나 수련을 한다는 건 미친 거지.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이시리엘 백작은 말을 멈췄다. 문 앞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이사야는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둘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설득에 실패했구나.’


집사와 눈짓을 나눈 이시리엘 백작은 천천히 딸에게 다가갔다.


“어흠...”

“······.”

“그래, 그 놈 제정신 아닌 것 같더라니까. 아빠는 그래도 말렸지 않니.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보자고.. 어? 아빠는 좀 있다 보자고 했다? 우리 딸이 빨리 보겠다 한 거다?”


방금까지 주구장창 그 소년을 칭찬했었던 백작이 1초 만에 바로 말을 바꾸는 모습에, 집사 테오도르는 순간 어이가 없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입술까지 깨물며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막아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대답이 없었다.


그쯤 되니 이시리엘 백작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상하네. 원래 이렇게 장난치면 반응해주는데.’


좀 더 자세히 보니,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앉아있는 이사야의 상태가 영 이상했다.


“우리 딸, 괜찮니?”


멍하니 앉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딸은 울고 있는 거였다.

계속 울어서 눈물조차 말라버린 것이었다.


“혹시... 그 놈이 뭐라고 한 거냐?”

“······.”


무응답.

무응답이라는 것은 곧 긍정이다. 그렇다는 건.

거기까지 사고가 닿은 순간 이시리엘 백작은 일어서서 뛰쳐나갈 뻔했다.


그때 이사야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이시리엘 백작의 손목을 힘없이 부여잡았다.

너무나도 가느다란 부여잡음. 그러나 이시리엘 백작은 자신의 딸의 그 연약한 손길에, 마치 접착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살짝 벌어져 있는 이사야의 입술로부터 실낱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갈게요...”


너무 작은 목소리였기에, 더구나 자신의 딸로부터 나오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말이었기에. 이시리엘 백작은 순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쏴아아아-

먼 곳으로부터 흐르는 듯한 빗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조명처럼, 이사야는 흐느끼듯 말했다.


“가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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