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소소화 님의 서재입니다.

학생부터 시작하는 천재 소드마스터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소소화
작품등록일 :
2024.03.03 23:06
최근연재일 :
2024.03.29 15:1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6,413
추천수 :
279
글자수 :
207,131

작성
24.03.03 23:08
조회
660
추천
15
글자
22쪽

기감 (1)

DUMMY

“신시. 왜 대답이 없지?”


누군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절대로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방금 죽었으니까.

나는 재빨리 주위의 풍경과 나에게 말 거는 사람을 살폈다.


밤의, 기숙사의, 복도였다.

제국 외지의, 동부의 섬도시 세라티움의, 일류 학교 바스톨이였다.


길게 뻗은 하얀색의 복도.

방문 앞마다 아이들이 2명씩, 또는 1명씩 서 있다.

사감처럼 보이는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가 나를 의아하게 보며 질문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곳은 한때 내가 다녔었던 너무나도 익숙한 아카데미의 복도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봐도 이건 내 몸이 아닌데?’


내 몸에 흐르고 있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그리고 양도 너무 적은 오러의 상태. 그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러는 사이, 머리가 벗겨진 사감 아저씨는 내가 대답하지 않자 이제는 나를 이상하게 보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정신을 차렸다.


뭐가 됐든, 지금 나의 이 상황을 들키면 절대로 안 된다!


“신시?”

“예! 저는 신시입니다!”

“어? 어···그래, 너는 신시지. 그런데 대답을 왜 안 해?”

“죄송합니다! 잠깐 딴생각을 했습니다!”


내 목에서 나온 앳된 목소리에 잠깐 놀랐지만, 어쨌든 나의 훌륭한 임기응변으로 다행히 상황은 좋게 흘러가는 듯 했다.

그렇게 머리가 벗겨진 사감 아저씨는 내 앞을 지나쳤고, 남은 방들 앞도 지나치며 점호를 마저 진행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난 끝에,


“그래,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 편히 쉬어라!”

“네에-!”


마침내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쾅-!

쾅-! 쾅-!


동시다발적인 문닫힘 소리와 함께, 학생들은 다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온 후에도 나는 잠시 몇 분여간, 그대로 현관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안전해진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후아.”


나는 제일 먼저 방 안의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살폈다.


“이게, 뭐냐···”


개털처럼 부스스한 검은색의 머리카락에 짙은 검은색의 눈동자.

창백한 피부에 길게 내려온 다크서클.

어딘가 음울해 보이는 인상이다. 길 가다가 어깨 부딪히면 상대 쪽에서 먼저 넙죽 사과해올 것만 같다.

괜찮으시냐고.


“나 누가 된 거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내가 누구에게로 들어온 건지 모르겠다.

방 한켠에 걸려있는 달력이 시야에 들어온다.

달력이 말해주었다. 해후 52년. 지금은 내가 죽은 지의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미친······.”


난 어떻게 된 것이고, 이 몸은 누구냐.

당장 내일이 큰일이었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애가 친구들 이름이며 뭐며 아무것도 기억 못 한다? 바로 정신병원 직행이다.


게다가.

오러라도 있다면 도망쳐서 살든 뭘 하든 어떻게 해보겠다만.


“오러가 거의 안 느껴진다.”


이 몸은 그냥 쓰레기였다.

전생에 모은 오러를 모두 잃은 채 나는 그냥 일반인이 되어 있었다.


“물론 수련하는 법을 아니까, 시간을 들이면 빠르게 강해지긴 하겠지만······.”


한번 길을 닦아놨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일단 습득 속도가 말도 안 되게 차이 난다는 거니까.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


죽음 이후에 모든 기억을 가지고 환생했다.

그것도 내가 다녔던 아카데미의 학생으로. 정말 기적 같은 일이긴 했다.

기적이라 하니, 불현듯 하나의 말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성검 아우플리온.


“가끔씩 지맘대로 소원을 들어주기도 한다고 했었다.”


내가 죽기 전에 생각했던 것.

다시 태어난다면 완벽한 천재가 아니어도 좋겠다는 것.

재능 같은 거 없어져도 좋으니··· 다시 시작할 수만 있게 해달라고. 뭐 대충 그런 걸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게 지금 이뤄진 거라고?


“······.”


재능이 없어져도 좋아?

누가 그런 개쓰레기 같은 소원을 빌었냐!


라고 하면 나였다.


소원 다시 들어줘!

그때로 돌아가게 해줘!

아니면,


‘그놈을 죽일 힘을 줘.’


···맞다, 힘이었다.


절대적인 힘.

전제국에 단 4명뿐이라는 검의 끝, 최고의 경지 그랜드마스터.

50년 전 제국을 멸망시킬 뻔했던 대재앙의 그때처럼, 그랜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악마가 있다.

그것도 그냥 악마가 아니다. 모두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성구 ‘축복받은 화이트비’에 탐지되지 않는, 사람들 속에 숨을 수 있는 악마.


“엘카 카르토펠.”


내지에 악마들이 다시 활보한다.


아무도 믿지 않을 사실이다.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힘이 있어야 한다.

다시는 내가 전생 같은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힘이 없어서 배신당하고, 힘이 없어서 죽는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생에서보다 높은 경지를, 이제는 딱 봐도 쓰레기 같은 이 몸으로 올라야 한다.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해내야만 한다.


“···우선 일단은 이 몸의 정보를 모아야 한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어두운 방 안의 천장 위로 네모난 상자를 만들고 있었다.

밤의 방이었다.

달빛이 들어오고 있는, 방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창문.

그 창문 앞에 놓여있는 작은 서랍장.

양쪽 옆의 벽면에 각각 놓여있는 침대 2개와 옷장 2개.

그리고 입구 쪽의 화장실과 문.


2인실의 방이었다. 그러나 한쪽은 왜인지 채워진 생필품이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는 상태였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배움은 쉽지 않고, 도중에 퇴학을 당하는 경우나 자퇴생도 수두룩하게 나오곤 했다. 아마 이것도 그런 경우겠지.


창밖으로는 어둠에 잠긴 커다란 운동장의 풍경이 보인다.

운동장 너머로는 도시를 밝히는 마력 가로등도 보이고.


‘이게 성검이 이뤄준 거라고······.’


그럼 성검은 어딨는데?

단촐한 방이다. 옷장에도 옷가지를 빼면 뭐가 없다. 혹시나 해서 샅샅이 뒤져봤지만 아우플리온인지 뭔지하는 성검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뭔가 있을 만한 곳이 서랍장.


“오.”


서랍장을 열자, 큼지막하게 ‘신시의 일기장’이라고 쓰인, 커다란 노트를 발견했다.


“신시라, 아까 사감 아저씨가 말했던 이름이 맞기는 한가 보구나.”


나는 일기장의 아무 페이지를 펼쳐 들었다.


[3월 13일.


우리 반의 이사야가 너무 예쁘다.

이사야랑 사귀고 싶다.

오늘 이사야는 은발 단발에 어울리는 하얀색의 티셔츠와, 하의로는 무릎 조금 아래까지 내려오는 청치마를 입고 왔다.

분명히 이사야의 옷차림은 깨끗했고 그녀의 분위기는 차분하다. 그러나 종종 스커트의 원단이 당겨지며 살짝살짝 드러나는 그녀의 몸 곳곳의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이, 움직일 때마다 언뜻언뜻 끼쳐오는 향긋한 냄새가, 웃을 때마다 반달처럼 굽어지는 살랑거리는 눈웃음이 나를 미치게······]


거기서 나는 일단 일기장을 덮었다.


“잠깐만, 잠깐만.”


이거 내가 봐도 되나?

사생활 침해 아니야?

아니지, 되겠지? 아무튼 지금은 나잖아.

나긴 한데, 응, 되는 거긴 한데. 음, 윤리적으로 이게······.


“이거 일단 다 보고 나면 태워야겠다.”


남한테 들키면 수치사할지도 몰라.


나는 일기장을 하나하나 넘겼다. 너무 양이 많아서, 보는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루하루 빠진 날짜가 없다. 매일 일기를 썼다는 뜻이다.

얘 약간 그런 성격이구나.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 줄은 무조건 일기를 쓴다, 그런.


“성실하네······.”


반면 그 성실함에 비해 별 내용은 없었다.

알게 된 것은 이 아이도 고아라는 것 정도?.

오러에 대한 재능은 없지만, 오직 이론을 철저히 공부해서 필기 1등으로 바스톨에 입학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기사부를 이론으로 들어온 탓에 주위에서 무시당하며 교우관계가 딱히 좋지는 않았다는 것.


일기의 날짜도 역시 지금은 내가 죽은 지 이미 2년이 지난 후인 해후 52년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외에 알게 된 것은(사실 이것이 일기장 내용의 대부분이었다) 이사야라는 애의 피부가 하얗고 깨끗하다는 것, 이사야는 어깨에 닿을 정도의 길이의 은발 단발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순진무구한 표정의 순한 양을 닮았다는 것,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요리는 잘하지 못한다는 것, 등등등등 ··· 그런 사실들이 꼼꼼히 적힌 스토커 같은 일기장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이 애는 평범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나, 들키지 않고 학교생활 잘할 수 있을까······.



그때였다.


-위이애애앵!!! 위이애애앵!!!


“깜짝아.”


기숙사 전체에 울리는 격렬한 사이렌 소리.

전생에서도 몇 번이고 들었던, 마력화재알람의 소리였다.

원래부터 바스톨의 기숙사는 두세달에 한 번 정도로 마력화재알람의 오작동이 잦았다. 옛날부터 고치기 힘들다 어쩌구 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나는 잠깐 고민했다.

어차피 전생에서도 이렇게 나가보면 결국 전부 오작동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나는 다른 애들을 만나면 좀 위험하다. 어쩌다 대화라도 걸리면 큰일이 나버리니까.


“그래도··· 나가자.”


가는 것이 맞다.

나는 지금 이곳을 모르니까.

거의 12년 전이다. 솔직히 이 정도의 기간이면 오작동 없게 마력화재알람이 고쳐졌을 수도 있으니까. 진짜 사고가 난 걸 수도 있으니까.


문을 닫고 나오면서 방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3층의 끝에서 두 번째 방. 302호구나.


“근데 아직도 안 고친 거 맞나 보네.”


아니면 다들 이렇게 안 나올 리가 없지. 어두운 방 밖과 대조되게, 복도는 환히 밝았다. 그 환히 밝은 복도에 나 혼자뿐이었다. 3층 끝의 방인 내가 복도 중앙인 계단에 도착할 때까지, 그리고 사감실이 있는 2층으로 내려갈 때까지도 누구도 나오는 일 없이, 언뜻언뜻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을 방안에서 낼 뿐이다.


‘옛날이랑 똑같구나.’


왱왱 시끄럽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괴로울 텐데도, 힘든 학교생활에 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더 괴로우니까. 어차피 불이 났을 리도 없고.


그때, 아래 2층의 복도로부터 들리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대화 소리에 나는 걸어 내려가는 속도를 늦췄다.


“이사야.”

“아, 회장님.”

“먼저 나와 있었구나. 사감 선생님이 뭐래?”

“화재는 아니래요. 그래도 일단 확인차 내려 가보신 것 같아요.”

“그래. 너 많이 아파 보인다. 가서 쉬어. 여긴 내가 애들 돌려보낼게.”


그리고 꾸벅, 살짝 목례를 하는 듯 기척이 있더니 2층으로부터 한 여자애가 계단을 따라 올라왔다.


그렇게 계단의 중간에서 우리 둘은 멀뚱멀뚱 얼굴이 마주쳤다.


이사야라는 애는 급하게 나온 듯 잠옷인 채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파 보이긴 했다.

미열 때문인지 얼굴이 살짝 달아올라 있었고, 흘린 땀 때문인지 은색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귓가와 가슴께에 달라붙어 있었다.


‘얘가 일기장의 걔구나.’


조금 이해가 됐다. 왜 그렇게 일기장에서 찬양을 해댔는지.

멈춰있는 날 보며 이사야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곧 ‘아’, 하고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불 아니래요. 쉬세요.”


얘 약간 멍한 게 있네.

일단 나는 작게 끄덕였다.

난 이 몸이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도 모르니까.


불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으면 더 있을 이유도 없고,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빨리 방으로 돌아갔다. 괜히 다른 애들 만나서 얘기 붙으면 피곤해진다.


내가 302호에 돌아올 즈음이 되자 그제서야 몇몇 애들이 졸린 듯 하품을 하며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뭐 2층에서 그 회장이란 사람이 돌려보낸다 했으니까, 나는 그렇게 안심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




아마 대략 한두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줄곧 일기장을 탐독하는 데에 집중했다.


3년간 쓴 일기장의 양은 방대했고, 비록 대부분의 내용은 좀 그렇고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하루에 빠지지도 않고 작성해준 덕분에 이 몸에 대한 쓸만한 정보들을 제법 건질 수 있었다. 나는 1시간 사이 제법 자신감이 생긴 상태였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이 몸은 일단 고아였고, 게다가 애초에 교우관계도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 조용조용히만 지내면 어떻게든 연기해낼 수 있지 않을까?


'오러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크긴 하네.'


일단 전생의 기억을 살려서, 수련을 통해 빠르게 경지를 올리고 복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힘을 빠르게 찾는 거니까. 필요한 것은 영단. 그리고 그것을 얻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제국 황실의 아카데미인 에소릴로 들어가는 것이다. 다만 어떻게 들어가느냐가 문제인데······.



저벅, 저벅-


그런데 기숙사가 묘하게 부산스러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해서 일기장을 읽느라, 너무 작은 소리라서 그렇게 신경은 못 쓰고 있었는데 계속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복도를 조용히 걷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뭐, 다들 잠을 설쳤으니까 그렇겠지.’


애초에 아카데미 바스톨의 기숙사는 방음이 안 되기로 유명했다. 잠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지만, 소리가 묘하게 작게 울리는 것이다. 문을 열고 닫거나, 복도 중앙마다 있는 식수대를 쓰거나, 복도를 조용히 걷는 소리, 방마다 있는 화장실을 쓰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린단 거다.


‘응?’


그런데 내가 이상함을 느낀 부분은 그런 게 아님을 곧 깨달았다.

왜 그것이 ‘꾸준히’ 들리느냐는 얘기다.


저벅, 저벅-


복도를 조용히 걷는 소리, 그리고 작게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너무나도 꾸준하고 규칙적으로 들리고 있었다.


이 야밤에 문이 열릴 이유라면 하나밖에 없다. 분명히 과거의 나의 경험에 비춰보면 그랬었다. 애초에 아카데미의 통금은 확실히 관리된다. 밤에 기숙사의 방문이 열리는 이유는 식수대에 물 마시러 나가는 것뿐이다.


학생들이 한 방 한 방, 차례로 물을 마시러 나가기라도 하고 있단 말인가?


게다가.

어째서 나에게는 문이 닫히고 열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 그리고 저벅저벅 복도를 걷는 소리가 들릴 뿐.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인가.


저벅, 저벅-


“···!”


그 순간, 심장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 느껴졌다.

전생에서 몇백, 몇천 번을 느껴왔던 감각.

‘기감’이었다.


‘기감이?’


내가 전생에서 천재라 불렸던 이유 중 하나인 기감.

전생의 쌓아놓은 오러는 사라지고 쓰레기 몸이 되어버렸지만, 어찌 된 일인지 다행히 기감이라는 재능은 남아있었다.

그래, 맞다. 나는 완벽한 천재가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만, 다시 태어나면 모든 재능이 주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모든 재능’이 주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어쨌든 그래도 재능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쓰레기였어서 참 다행이구나.’


덕분에 이거라도 있는 걸 보니까 막 배가 부르고 든든하고 그러네.


‘그런데 왜 지금?’


저벅, 저벅-


달빛이 들어오는 기숙사의 어두운 방.

이 한 칸이라는 작은 공간이 날 옥죄는 듯 조여온다.


“어라···?”


이렇게 민감한 기감은, 목숨의 위기 앞에서 주로 발현되곤 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목숨이 경각한 위기다···?


저벅, 저벅-


여전히 울리고 있는, 복도를 걷는 그 소리.


기감이 반응하여 말해준다.

나는 자연히 알 수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다면 나는 오늘 죽는다고.

아니, 오늘도 아니다.

단 몇 시간 뒤, 아침도 밝아오기 전에 나는 죽는다.


“내가 죽는다고···?”


죽고 왔는데 또 죽는다고?


그건 싫다.


‘일단 생각해보자.’


어떻게 해야 도대체 지금이 위기인 상황일 수 있는지.

원인일 거라고 한다면 그것뿐이다.


‘마력화재알람?’


혹시, 이런 거라면. 사감실의 선생님이 우연히 무언가를 보거나 느꼈다던지. 그런데 확실하게 본 것은 아니고, 게다가 방범 마법도 작동한 건 아니고. 그래서 급하게 화재 버튼을 눌러 일단 학생들을 모두 깨우려 했던 거라면. 그리고 1층의 문을 확인하려, 상황을 확인하려 서둘러 내려 가본 거라면?


‘그리고 내려가던 길에 그 이사야라는 애를 만났겠지.’


만약 문제가 있다면 여기서 오해가 생긴 걸 거다.

이후 사감 선생님은 내려가셔서 숨어있던 괴한에게 당하고, 그 2층의 이사야는 사감 선생님이 ‘일단’ 불은 아니라고 하고 내려갔던 건데 오해해서, 불 아니라고 회장에게 그대로 전달해서 애들이 다 방에 돌아간 거다. 그리고 저벅저벅-하는 발소리는, 지금 그 괴한들이 관리실을 점령하고 방 하나하나를 덮치고 있는 거다.


말도 안 되는 생각.

그야말로 망상이다.


하지만 너무 말이 안 되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저벅, 저벅-


이 와중에도 조용히 울리는 그 소리는 전혀 끊기지 않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기감은 계속 내게, 지금이 목숨이 경각한 위기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당장 오러가 없다. 힘이 없다. 싸울 수 없다.

만약 지금이 진짜로 위기인 거라면 위험은 가능한 피해야만 한다.


상상하는 것으로 손해 볼 것은 없다.

혹시 모르니까 일단 위험하다는 것을 가정하고 생각은 해보자.


‘창문.’


만약 진짜로 복도가 장악당해있다면, 탈출할 수 있는 곳은 창문 뿐이다.

이곳은 3층이니 어쩌면 비록 오러가 없는 지금도 상처 없이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창밖을 살피기 위해 창가에 다가가려는 그때였다.


“···!”


지잉-, 하는 기감이 다시금 찌릿하게 경고한다.


반대로 말하면, 창밖에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조금 더 이해하면, 이것은 체계적으로 계획된 습격이라는 뜻이고.


'아니, 이게 진짜라고...?'


복도에는 괴한, 창문 밖에도 괴한.

오러는 다 잃었음.

유일히 가지고 있는 재능인 기감이 알려준다. 너 지금 죽기 직전이라고.


“무슨······.”


어떻게든 해야 하는 상황.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는 거다.


너무나도 적은 오러의 양, 그 적은 양조차도 몸 안에서 단단히 꼬여 움직이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이곳을 덮칠 정도의 수준이라면 상대는 기사라는 뜻, 반드시 오러를 사용하고 있다. 나도 오러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면, 상대의 몸을 두르고 있는 오러 때문에 생채기조차 낼 수 없다.


그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깨끗이 빈 옆자리를 본다.

2인실이지만 1명만이 있는 방. 특이할 일은 아니다. 아카데미 생활은 쉽지 않다. 벽에 부딪혀 자퇴하거나, 실력의 문제로 퇴학당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두 자리 다 비어있는 방도 있었겠지.’


내 방은 302호. 끝방이다. 내 방에 오기 전에 다른 방들을 이미 많이 들렸겠지. 그 방중에는 한 명만 자고 있었던 방도 있었을 거다. 그리고 매우 드물지만, 2명 다 없는 아예 빈방도 있었을 거다.


중요한 건 상대는 이미 빈방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통할지 안 통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도 없는 방인 척을 한다.’


방을 비운다.




*




“허억, 헉······.”


오러가 없고 단련이 안 된 몸은, 단순히 짐을 좀 옮기는 정도로도 버거워했다.

사실은 단순히 짐을 옮기는 것만으로 힘든 것은 아니었다.


서둘러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점점 강해지는 기감은 위기가 임박해 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나씩 하나씩 방들을 차례차례 열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그 한 방 한 방 열고 있는 그 사람이 이제 나한테 거의 다가왔다는 뜻이다. 시간이 없다.


소리도 크게 내서는 안 된다. 물건이라도 바닥에 떨어뜨리면 끝이다. 물건을 구겨 넣은 옷장의 문을 닫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동시에 창가를 조심해야 한다. 서랍장 위를 치울 때도 최대한 몸을 낮춘다. 밖에서 감시 중인 적에게 들켜서도 안 된다.


침대 시트와 베개는 침대 밑의 서랍장 안에 구겨 넣는다. 신발과 슬리퍼는 화장실 안으로 집어 넣는다.


‘누가 보면 미친놈이라 하겠군.’


일단 방은 깨끗해졌다. 짐을 다 옮긴 나는 화장실의 벽에 기대어 숨었다.

억지로 찾아 들어오지 않는 이상, 현관에서 들어오는 사람은 내가 보이지 않을 각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오러를 숨긴다.’


오러를 숨기면 몸을 보호할 수 없기에 적의 공격에 취약해진다는 점이 있지만, 애초에 내가 가진 오러는 보호고 나발이고 될 양이 아니다. 차라리 숨겨버리는 것이 낫다.


기사는 오러를 보고 수준을 느낄 수 있다. 오러를 보는 기사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나는 인간이 아닌 무생물로 보인다는 거다.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이 모든 것이 의미 있는 일이었길 믿으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화장실 구석에 웅크렸다.




*




지잉-, 하고 울리는 한계까지 강해진 기감.


울리듯 낮게 들리는 선고 같은 발걸음.


방마다 쓰는 시간은 단 몇십 초.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저벅, 저벅-


‘왔다.’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내 방문 앞에서 멈췄다.


덜컥,-


한순간 문이 열렸다.


그리고 뭔가가 들어오고,


다시 문이 닫혔다.


현관에 서 있는 적과, 화장실 벽에 기댄 나.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숨어있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아야 했다. 흥분해서는 안 된다. 그럼 숨이 거칠어지니까.


문을 연 그놈은 현관에서 잠시 멈췄다.

찬찬히 방을 살피는 시선이 곳곳에 닿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침대 위를, 서랍장 위를, 자신이 선 현관을.

그놈이 내 모습을 볼 수 없도록 숨은 만큼, 나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시간은 짧았다. 단 몇 초.


이후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듯, 천천히 몸을 돌리는 기척이 들렸다.


저벅,-


밖으로의 발소리와 함께,


덜컥,-


그리고는 조용히 다시 문이 열리고, 닫혔다.





그런데도 기감은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안 나갔어.’


적막.

아무 소리도, 기척도 없는 찢어지게 조용한 방.

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히 경고하고 있었다.


‘나간 척, 한 거다.’


그리고 칼날처럼 예리해진 기감으로, 나는 또 하나를 알 수 있었다.



들어온 이놈은,


내가 숨어있는 이쪽을 바라보며,


소리죽여 웃고 있다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학생부터 시작하는 천재 소드마스터 생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합니다. +4 24.03.31 164 0 -
29 스승과 제자 (3) 24.03.29 58 4 11쪽
28 스승과 제자 (2) +1 24.03.28 70 6 16쪽
27 스승과 제자 (1) +1 24.03.27 68 6 13쪽
26 화이트 크리스탈 (7) +2 24.03.26 74 5 18쪽
25 화이트 크리스탈 (6) +2 24.03.25 80 8 18쪽
24 화이트 크리스탈 (5) +2 24.03.24 73 7 18쪽
23 화이트 크리스탈 (4) +1 24.03.23 74 5 11쪽
22 화이트 크리스탈 (3) +1 24.03.22 84 8 10쪽
21 화이트 크리스탈 (2) +1 24.03.21 103 9 16쪽
20 화이트 크리스탈 (1) +1 24.03.20 108 8 15쪽
19 수련 (2) +2 24.03.19 130 9 14쪽
18 수련 (1) +2 24.03.18 149 10 14쪽
17 정급 시험 (7) +2 24.03.17 146 10 18쪽
16 정급 시험 (6) +1 24.03.16 145 9 19쪽
15 정급 시험 (5) +1 24.03.15 143 12 15쪽
14 정급 시험 (4) +2 24.03.14 175 10 17쪽
13 정급 시험 (3) +1 24.03.13 173 10 13쪽
12 정급 시험 (2) +2 24.03.12 201 9 12쪽
11 정급 시험 (1) 24.03.11 213 10 20쪽
10 에소릴 (3) +1 24.03.10 218 13 13쪽
9 에소릴 (2) +1 24.03.09 231 13 13쪽
8 에소릴 (1) +1 24.03.08 244 8 22쪽
7 이사야 (4) +1 24.03.07 253 11 17쪽
6 이사야 (3) +2 24.03.06 280 10 19쪽
5 이사야 (2) +3 24.03.05 302 8 12쪽
4 이사야 (1) +1 24.03.04 378 12 16쪽
3 기감 (2) +2 24.03.03 486 12 16쪽
» 기감 (1) +1 24.03.03 661 15 22쪽
1 나는 천재였다. +4 24.03.03 1,069 22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