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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화 님의 서재입니다.

학생부터 시작하는 천재 소드마스터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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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화
작품등록일 :
2024.03.03 23:06
최근연재일 :
2024.03.2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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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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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131

작성
24.03.0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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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나는 천재였다.

DUMMY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사지가 잘린 채, 돌계단에 기대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제단에 꽂힌 새하얗고 아름다운 검이었다.


성검 아우플리온.

밤을 좋아하는 악마의 권능을 베어내고 무력화 시킨다하여 그 첫 이명이 ‘밤의 정복자.’

둘째로, 주인으로 인정한 자에게 가끔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킨다하여 ‘변덕쟁이’라고도 불리는 검.


“아, 으···, 아······.”


그 검이 내 눈앞, 저 너머에 꽂혀있었다.

그러니 나는 당장에 달려가 그 검을 뽑았을 것이다.


···만약 내 두 다리와 두 팔이 절단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 반드시 찾아내라! 그리고 죽여라!

- 샅샅이 수색해! 놈은 중독됐다! 멀리 못 갔을 거다!


마력 무전기 너머로 기사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배신이었다. 나는 믿어왔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다.

먼 곳인지 가까운 곳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녀석들은 곧 나를 찾을 것이다. 이미 죽어가고 있는 나를 더욱 확실히 죽이기 위하여. 그리고 성검을 가지기 위하여.


움직여야 한다.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그런 내 희망과 별개로, 내 눈은 서서히 감겼다.



*



언젠가, 스승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천년의 기재를 타고났다’, 고.


언젠가, 스승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는 노력하지 않는 쓰레기다’, 라고.


나는 천재였다.

천재.

하늘이 준 재능.

천만 명 중 단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하다는 재능.

그게 나였다.


- 천재··· 이 아이는 천재요!


스승님이 나를 만나고 곧장 한 말이었다.

처음에는 그런가 하면서도 기뻤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남들이 우러러 봐주고 부러워 해주는데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 너에게는 하늘의 재능이 주어졌다. 그러니 마땅히 노력해야 한다!


나는 고아였다.

고아.

가족이 없는 아이.

명예와 혈통을 중시하는 ‘내지’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아이.

그게 나였다.


스승님께선 그런 나를 거두어, 자신의 딸인 이엔과 함께 나를 친자식처럼 길러주셨다.


- 근본도 없는 고아새끼가 아니오? 제정신이오?

- 쯧쯔, 드디어 저 이도 노망이 난 게지.


그러나 검의 세계에선 재능만이 전부였다.

남들이 백 번 휘둘러 알게 될 것이 한 번 휘둘러 알게 된다.

그것이 나의 재능이었다.


감각.

정확히는 ‘기감’이라 불리는 재능.


나에게는 ‘그냥’ 길이 보였다. ‘그냥 왠지 이럴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지나고 보면, 그 감각은 늘 최선의 경로로 나를 인도했다.

그 감각은 목숨이 경각한 위기상황에서는 더더욱 강렬해져, 그럴 때면 짧은 미래가 또렷이 보이고 느껴졌다.


시기. 질투. 경쟁심.

근본 없는 고아인 나를 시험하려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생겨왔다.

스승님께선 말씀하셨다. 너를 죽이지 못하는 적을 너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고.

죽음의 위기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대로였다. 위기가 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몇 번이고 그 기감으로 사선에서 살아나갔고 그때마다 더더욱, 나는 빠르게 성장했다.


곧. 나는 천재라 불리며 17살의 나이에 소드마스터에 올랐다.

쉬운 일은 아니다. 수재, 영재라 불리는 이들이 일생을 바쳐도 도달하지 못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성인이 되기 전 소드마스터에 오른 건 대재앙 이후 근 50년 간 단 세 명 뿐이었다고 하니, 아마 대단한 건 맞았을 거다.



그러나 그 뒤로, 나는 검을 더 수련하지 않았다.



-어찌하여 하지 않는 것이냐! 네 재능의 털끝이나마 가지고 싶어하는 이가 천지에 널렸다! 너는 하면 되는데 왜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랜드마스터. 소드마스터 너머, 검의 끝이라는 경지.

‘현인’이라 불리는, 인류에 단 4명 뿐인 경지.

악마 중의 악마인 진마와 싸우기 위해, 외지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인류의 희망.

그곳에 오르기 위해선 천만 명 중 1이라는 천재의 재능에 더불어, 세상과 단절한 채로 10년 이상의 뼈를 깎는 노력을 필요로 했다.


- 저에게는 노력할 이유가 더 없습니다.


내가 그 말을 꺼냈을 때의 스승님의 표정을 기억한다.

자신이 사랑하던 것이 자신의 꿈을 사랑하지 않을 때의 표정을.


어린 말이었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았다.


검의 세계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기사의 길을 걷기로 한 이상, 기사는 검을 수련하는 자신만의 이유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나에게는 노력할 이유가 없었다. 수련의 고통을 견딜 이유가 없었다.

단지 검을 ‘잘’했을 뿐. 천재라 칭송해주고 치켜세워주는 것이 좋았을 뿐. 더 이상의 기대의 무게를 견딜 이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그렇게 영원한 투정이 계속 될거라 생각하는 사이.


갈라할 아퀴나스.

나의 스승님, 나의 아버지.

제2차 대외지 성물 수탐을 위해 성막 너머 외지로 나섰던 스승님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



지겹도록 잊고 싶은 기억만이 지독하게 뚜렷하다.


몇 번이고 봐온 풍경이다. 목재로 된 벽면에는 약하지만 따뜻한 조명들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원형의 탁자들마다 사람들이 가득가득 앉아있다.

스승님을 뒤따라, 아직 내가 외지로 떠나기 전인 2년 전의 풍경.


꿈속의 나는 술집에 앉아있다.


“아르곤!”


날 부르는 이엔의 큰 목소리에, 술집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다.

비단 소리의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소리의 높이와도 관련이 있다. 이곳은 ‘내지’ 에피리움 최고의 대학인 에소릴에서도 주로 기사가 많이 오는 술집이며, 기사에는 여자가 적다. 그리고 이엔은 스승님의 외모를 똑 닮았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 검은색과 검푸른색 사이의 색을 가진 머리카락, 서늘한 눈매. 그다지 길지 않은 머리카락 아래로는 하얀 목선과 어깨선이 드러났다. 즉, 예쁘다는 뜻이다. 그러니 남자들의 목마른 시선이 흘깃흘깃 닿는 것도 당연하다.


쭉 뻗은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온 이엔이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내가 미리 시켜두었던 술과 안주가 나왔다.

구운 연어에 둥근 빵, 토마토 양파 볶음과 말젖으로 만든 술. 아는 사람은 아는 이 술집의 정석 코스다. 먼저 연어부터 한 입. 그 후 촉촉하고 부드러운 연어살을 달콤한 둥근빵과 양파와 함께 입안에서 녹이고, 기름진 연어의 지방이 주는 느끼함을 묵직하고, 시원하며, 구수한 말젖술로 마무리한다.


이엔은 그런 나를 어이없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너무한 거 아니야?”

“뭐가.”

“수련이며 뭐며, 바쁘다고 몇 달 만에 만나놓고 말도 없이 술만 마시는 거요.”

“으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엔의 표정은 밝다. 이엔은 줄곧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이 끼고 온 반지를 매만지고 있다. 스승님의 유품이다. 내가 줄곧 받기를 거절했었던. 나는 그것을 오늘 받겠다고 했다. 이엔은 드디어 내가 그 반지를 받으며, 스승님의 수제자로서 그 유언과 검계를 이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빨리 말해야겠다. 더 힘들어지기 전에.


구운 연어와 둥근빵과 토마토와 양파와 말젖술을 입에 우겨넣던 나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맞다. 할 말 있었다.”

“어, 응. 뭔데?”

“나 이번 성물수탐단에 지원했다.”


톱니바퀴로 움직이던 인형처럼 뚝.

모든 행동이 멈춘 채, 이엔은 고개만을 들어 나를 봤다.


“너 미쳤어?”

“뭐가?”

“갑자기 성물수탐단은 무슨 소리냐고!”


이엔은 발작하듯 외쳤다. 당연하다. 그것은 그녀의 트라우마다. 아버지를 그곳에서 잃었으니. 그렇기에 나는 더욱 건조하게 말했다.


“이번 3차 대외지 성물수탐단에 참가하지 않으면 다음은 언제일지 몰라. 실적은 안 나오고 인재만 잃는다고 줄이는 추세니까. 나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간다는 거다.”


이엔은 격렬히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 가지 마.”

“이엔. 나는 갈 거다.”


나는 설명했다. 성물수탐은 스승님의 유지를 잇는 일이다. 무엇보다 외지에서 실종된 스승님의 유해를 찾는다. 그것이 내 강력한 명분이었다.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 이엔은 강하게 반박하지 못했다. 내 예상대로였다. 그녀는 아버지와 관계된 일에는 약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한동안 찾아온 적막 이후, 술잔을 매만지던 이엔이 불쑥 말했다.


“같이 가자.”


내가 조용히 바라보자, 이엔이 말을 이었다.


“조금만 기다려줘. 응? 내가 소드마스터에 올라서, 아니면 에소릴을 졸업하면,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생기면······.”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나는 왜 쓰레기인가? 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히 노력할 수 없는가. 다들 하기 싫은 일을 하며 견디며 살고 있다. 나는 왜 그럴 수 없는가.

그러나 그런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엔은 내지에 남게 한다. 이엔은 스승님의 하나뿐인 딸이니까. 그것이 조금이나마 스승님께 받은 은혜를 갚는 길이라 믿었다.


“아니, 너는 짐이 된다. 나는 혼자 갈 거다.”


이엔 자신의 말대로, 그녀는 반드시 소드마스터에 도달할 거다. 그러니 따라오지 못하는 지금이어야 한다.


“왜,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나는, 우리가···”


이엔은 입술을 깨물며 말한다.


“나는 우리가, 가족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결국 남남이었다는 거네요. 너는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네.”

“이엔.”

“네네, 짐이 된다고요. 알겠습니다. 재능도 없고 천재도 아니고 소드마스터도 아닌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벌떡, 이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손목을 붙잡았다.

그 순간 작은 반동과 함께 툭, 내 손등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손, 놓아.”


그것은 언젠가 내가 스승님께 짓게 했던 그 표정이었다.


“동정받는 것 같아 허무해지니까.”


이엔은 흘려보내듯 반지를 탁자 위로 떨어트렸다. 반지는 또르르, 소리를 내며 잠시 구르다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나는 방금 막 깨끗이 잘린 한 팔을 부여잡으며 서 있었다.


“아르곤. 내 노예가 되렴.”


이것은 이 지루하고 긴 악몽의 끝이다.

왜나하면 이건, 고작 몇 시간 전 내가 겪은 일이니까.


나의 앞에 서 있는 나의 팔을 잘라낸 그녀는 아름다웠다.


분명 그녀의 옷차림은 단정했다. 하지만 비에 젖은 그녀의 경장 차림의 얇은 옷감 너머로 꽉 끼는 몸선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녀가 조금씩 움직일 때면, 부풀어 오른 그녀의 몸 부분부분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출렁였다.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은 또렷했다. 거리가 떨어져 있었음에도 때때로 묘한 향기가 끼쳐오는 듯했다.


“내게 안기고 싶지 않니?”


엘카 카르토펠.

제국 4대 명가 중 하나인 카르토펠 가문의 주인.

제3차 대외지 성물수탐단의 부단장이자, 지난 2년간 내가 충성해온 사람.


그리고 그녀는 진마였다.


진마. 가장 강력한 악마. 그중 사람을 유혹하며 파멸시키는 권능을 가진 그녀는 ‘음란’이었다.

하지만 악마는, 아무리 진마라 해도 내지에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가. 어떻게 그 긴 시간 자신을 숨겨왔는가.

알 수 없다.


“복잡하게 생각 안 해도 돼.”


오러로 지혈한 어깨가, 차가운 비와 닿아 모락모락 연기가 났다.

그녀는 사뿐사뿐한 발걸음으로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흥분되어서 힘들지?”


짐짓 걱정되는 어조로, 그녀가 내게 묻는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의 하물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있었다. 그녀가 가진 남자를 복종하게 만드는 권능의 힘이었다.


“나의 노예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렴. 너는 나를 거부할 수 없어. 응? 지극한 행복을 맛보게 해줄게. 네 입으로 말하면 돼. ‘당신의 노예가 되고 싶다’, 고. 네 팔도 다시 붙여줄게. 독도 빠질 거야. 그것은 내 피로 만든 독이니, 너는 자연히 치유될 거야. 더불어 너는 뛰어나니, 내지에 돌아가면 네 자리도···”

“닥쳐.”


여유롭게 미소짓던 그녀의 얼굴이 한순간에 차가워졌다.

그것은 단순히 내가 그녀의 말을 끊었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검을 쥔 팔을 위로 들었다. 그리고 아래로 떨어트렸다.


서걱-


그 소리와 함께 나의 그것은 그대로 잘려나갔다.

아래에서 터져 나오는 피를 곧장 오러로 뭉게며 지혈했다.

고통의 파도와 함께 모든 사물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매혹에게서 풀린 것이다.


“···제정신이 아니구나, 너도 정말.”


그녀는 슬픈 눈으로 나를 본다.


“그래서 좋아했었는데.”


엘카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순간, 그녀의 신형이 부딪혀 왔다.


- 트카앙!


한 수 한 수, 검이 부딪힐 때마다 내 검에 담긴 오러가 흔들리며 눈에 띄게 깎여나간다.

온몸에 퍼진 독으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죽음을 목전에 둔 나의 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하고 예리해져, 나에게 살아남을 최선의 경로를 알려온다.


‘만약에.’


막고, 찌르고, 흘리고, 피하고, 걷어내고.


‘내가 검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춤이었다. 가장 죽음에 가까워 있는 지금, 내 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나는 이 사람을 이길 수 있었을까.’


기감은 말한다.

내가 만약 조금 더 노력했다면. 좀 더 충분한 오러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래서 조금 더 긴 시간 그녀와 합을 나눌 수 있었다면.


나는 이 싸움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그랜드마스터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검이라는 재능에 도가 튼 놈이구나.”


엘카가 말한다.

단지 그것뿐이다. 내가 조금이나마 더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순간이었다.

독으로 몸이 굳어 멈칫한 한순간. 상대의 검이 내 두 다리를 잘라내고, 이어 굽이치듯 남은 한 팔을 베어냈다.

사지가 잘린 채 바닥에 쓰러진 나는 흐린 하늘을 보았다. 두 뺨과 눈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렸다.


“이젠 끝났으니 말해주마.”


마치 깜박하고 지갑을 안 들고 나왔다는 듯한 평이한 어조였다.


“네 스승 말이다, 갈라할.”


나는 그다음의 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을 죽인 건 나다.”


눈을 크게 뜨는 나를 향해 그녀가 웃는다. 내 목을 향해 검이 곧장 날아온다. 그것은 아주 느리게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내 목에 걸려있던 반지가 빛을 뿜었다.


환하게, 더 환하게.


그 환한 장막 너머로 엘카의 격렬한 움직임이, 표정이, 나를 멈추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랬구나. 그랬던 거였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스승님의 원수를 찾았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그것보다 더 싫은 건, 아주 어린 아이였던 그때처럼, 또 스승님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나.



*



“카아아아악!”


꿈에서 깬 나를 맞이하는 것은 극심한 고통이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꼬챙이로 뼈를 긁는 것 같은 고통. 뜨거웠다. 온몸 구석구석에 퍼진 독이 땀구멍을 통해 흐르는 듯했다.


“크우웨엑! 커에엑!”


가까스로 토해낸 검은 핏덩이 한 뭉치가, 마치 파먹히다 만 쥐의 시체처럼 꿈틀거렸다. 독이 강했다. 소드마스터 최상위에 오른 오러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견디기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살아남았구나.’


돌계단과 제단, 그리고 하얀 검이 있는 풍경.

그래. 나는 살아남았었다. 나는 배신을 당했고, 진마와 싸웠고, 스승님의 유품인 반지의 힘으로···


‘다 무슨 의미인가.’


어차피 나는 곧 죽을 것이다. 찾아내져 죽는 것이 빠를까, 독으로 죽는 것이 빠를까,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죽는 것이 빠를까의 차이일 뿐.


사지가 잘린 채 간신히 돌계단에 몸을 기대고 있던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숨을 쉬는 것이 힘들었다.


‘웃기지 않습니까, 스승님.’

무엇이 말이냐.


독과 고열 때문일까. 고요한 동굴 속에서 환청이 들렸다. 생전 스승님의 목소리와 꼭 닮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적을 바로 옆에 둔 채 바보처럼 도와주고 있던 꼴 말입니다. 쓰레기다운 최후이지요.’

너는 쓰레기가 아니다.

‘저를 쓰레기라 하신 건 스승님이십니다.’

너는 나, 갈라할 아퀴나스의 자랑스런 아들이다. 그리고 아퀴나스의 아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있는 상황에선,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된다.



나는 눈을 떴다.


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


웃기게도 아직 할 수 있는 것은 있었다.


나는 기어갔다.

턱을 든다, 몸을 뒤틀며 민다, 갈고리처럼 턱을 계단에 걸고, 온몸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것의 반복.


쓸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몸통과 턱뿐이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원래라면 순간이었을 그 한 걸음의 거리에 10분이, 20분이, 1시간이 걸린다.

독의 고통에 절로 눈물이 났다.

아니다. 독 때문이 아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 때문에.

무력한 나에 대한 미움 때문에.


울면 안 된다. 체력과 수분이 빠진다.

잠들면 안 된다. 이번에 잠들면 정말로 끝이다.


“아······.”


고개를 들어 본 위의 계단은 아직도 몇십 개가 남아있었다.


이건 내 죗값이다.

이 세상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려간다.

강해져야 한다. 왜 진작 몰랐을까.

왜 진작 노력하지 않았을까.


내가 포기하지 않았다면. 스승님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지에 남아 날 가르치셨을 테니.

그게 마지막 대화일 줄 알았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텐데. 이엔은 이제 또 혼자 남겠구나. 오지 않을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건방지다는 것은 알고 있다.

염치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에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더러운 짓을 해서 살아남으리라.

재능 같은 거 없어져도 좋다.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줘.

다시 내게 기회를 줘.


오직 그 하나의 바램만으로.

얼마를 기었는지 몰랐다.

시간 감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퍼진 독으로 떨리는 눈꺼풀을 고정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기고, 기고, 기어서.

마침내 도달한 그 끝에서, 나는 입가가 찢어지도록 검날을 이빨로 물어 잡았다.

온몸의 힘을 다 소진하여 자연히 눈이 감겼다.


마지막에는 최선을 다했다는 다행감.

그것이 나를 편히 잠들게 해주리라.

나는 상상한다. 만약 돌아간다면,


‘그래도 재능··· 다 없어지진 말고···’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쓰레기처럼 생각했다.


‘역시 조금쯤은 있는 게 좋을지도······.’





성검 아우플리온의 이명 중 하나는 ‘변덕쟁이’로,

주인으로 인정한 자에게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가끔.


아주 가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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