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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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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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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 폭격(Bombardment) (4-4)

DUMMY

채 아홉시가 되기도 전이었다. 강치환 수사관이 9국 HQ에 도착했다. 박살난 건물은 아침 해를 받아 더더욱 비참해 보였다. 출입을 막기 위해 둘러놓은 테이프가 을씨년스러웠다. 주차장에 서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던 강치환 수사관은, 입구에 설치된 가설 계단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2층의 국장실로 들어가자 한강진 국장과 정은정 과장이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강 수사관,”

“국장님...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뭐겠습니까. 「악마」가 쳐들어왔죠.”


심드렁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모습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선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농담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강치환 수사관이 짧게 목례하면서 말했다.


“먼저... 돌아가신 분들께 애도를 표합니다.”

“고맙습니다.”


짧은 대답과 함께 역시 고개를 숙이는 한강진 국장이었다. 절제된 움직임에서 감춰놓은 슬픔이 느껴졌다. 남의 감정에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그걸 뛰어넘을 정도의 감정이 - 슬픔뿐만 아니라 분노까지 - 피부를 흔들고 있었다.


“장례식은 언제입니까?”

“다음 주 초가 될 것 같군요. 날짜가 정해지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본론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 강치환 수사관은 한강진 국장의 책상 앞에 의자를 끌어 앉았다. 그리고 가져온 가방을 들고 안쪽을 뒤적이며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이번에 「검은색 나무」의 보급선을 특정했습니다.”

“보급선을요?”

“네. 아시겠지만 지금까지의 루트는 유럽-북한-일본-부산을 통한 해상 반입 형태였죠. 주로 다카즈미의 원양어선을 통해서요. 하지만 이 방법은 저번 달 중순, 공식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한강진 국장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검역 강화와 함께 사전에 허가받은 물품만 반입하는 정책이었다. 여기에 현장 검색도 대폭 강화하면서 압박을 가했다. 특히 해산물 등에 강하게 적용하면서 검역과 통관 기간까지 대폭 늘렸다. 일부 성과도 있었다. 해산물 속에 숨겨 오던 공업 및 전자용 부품을 발견하여 압수했다. 관련 인원들은 구금당했고 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부품들은 「칼」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것이었다.


이렇게 의도적인 통관 방해가 시작되자 검은색 나무도 기민하게 반응했다. 곧바로 해상 반입 시도가 멈췄던 것. 그리고 몇 주 동안은 움직임이 없었다. 다카즈미의 어선들 역시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


“보급선을 특정했다는 건, 놈들이 새로운 보급선을 뚫었다는 말씀인가요?”

“네. 벌크선입니다.”

“벌크선을요?”


벌크선은 컨테이너와 다르게 포장하지 않은 화물 - 곡물, 광석, 석탄 등 - 을 적재하여 운반하는 화물 전용선을 의미했다. 하지만 순간 의문이 든 한강진 국장이 물었다.


“오히려 컨테이너 쪽이 더 낫지 않나요? 벌크선이라면 하역 인원들을 전부 매수해야 될 텐데요.”

“아직 거기까지는 파악이 되진 않았습니다. 다만 패턴을 역산한 결과, 최소 두 번 정도는 왔다 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발견하신 겁니까? 놈들도 상당히 조심스러웠을 텐데요.”


강치환 수사관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 가져온 자료를 펼쳤다. 여러 장의 사진과 서류였다. 배 사진도 있었고 사람 사진도 있었다. 모두 멀리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서류는 여권과 각종 표 등의 복사본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강진 국장이 그 중 한 서류를 보면서 물었다.


“이거... 다카즈미의 외항선 세부 현황이잖습니까.”

“네. 완벽하지는 않지만, 현재는 거의 다 마크하고 있죠. 꽤 힘들었습니다.”


그곳에는 선박 리스트와 출항-기항 일정, 스펙시트, 인력 현황 등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강치환 수사관이 말을 이어갔다.


“며칠 안으로 일본 벌크선 한 척이 부산에 기항할 겁니다. 그런데... 행적이 독특하더군요.”

“행적이 독특하다...?”

“어차피 한일을 오가는 벌크선의 패턴은 뻔합니다. 고베(神戸)와 부산을 오가는 것이 보통이죠. 헌데 이 배는 하코다테(函館)에서 오고 있습니다.”

“하코다테라면... 북해도의 항구잖습니까. 그게 문제가 되나요?”

“최근에 좀 죽긴 했지만, 그곳은 일본 북방 어업의 주요 기지였습니다.”

“어업... 그럼 원양어선, 다카즈미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죠.”


사진을 넘기던 중 두 척의 배가 나란히 접안한 사진이 나타났다. 하나는 화물선이었고, 다른 하나는 원양어선이었다. 한강진 국장이 미간을 좁히자 강치환 수사관이 말했다.


“하코다테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어선은 다카즈미 소속입니다.”

“...!!”

“아무튼, 결론은 이 두 선박 사이에서 확인되지 않은 물자 이동이 있었죠.”

“물자 이동...?”

“어선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상자 등이 벌크선에 실린 걸 확인했습니다.”


다음 사진이었다. 야간에 가까운 시간, 원양어선에서 물건을 내려 벌크선에 싣는 장면이었다. 2x2x2m 정도 크기의 나무 상자 여러 개가 팔레트에 실려 벌크선 적재함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한강진 국장이 고개를 갸웃 했다.


“루트를 종잡을 수 없군요. 북방어업이라면 베링해 정도일 텐데, 여기서 어떻게 물건을 받아 옮긴다는 거죠? 벌크선을 쓰는 것이었다면 그냥 유럽-일본-우리나라 루트를 타도 됐을 텐데요.”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간단한 게 아니더군요. 다음 사진을 한 번 보시죠.”


다음 사진으로 넘기라는 강치환 수사관의 손짓에, 한강진 국장이 보던 사진을 내렸다. 나온 건 어떤 항구를 찍은 사진이었다. 건물 형태로 봐서는 유럽의 어딘가로 보였다. 그곳에 꽤 커다란 배 한 척이 접안 중이었다. 검붉은색으로 도장된, 화물선이라기보다는 연구선 또는 특수한 목적을 위한 배처럼 보였다. 선명은 「보리알레스Borealis」였다.


“이건 뭡니까?”

“두 달 전 쯤 에스토니아의 탈린항에서 찍은 사진이죠. 최근 북유럽 일대에서 출몰하곤 하는데, 현지에서는 「정부 또는 서방 대부호의 위장 연구선」 정도로 알려져 있긴 합니다. 1만톤급의 대형 쇄빙선이고... 결론만 말씀드리죠. 유럽 각국 정보당국에서는 이 배를 「검은색 나무」의 이동 사령부로 보고 있습니다.”

“네?!”


놀란 한강진 국장이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배의 모습으로만 봐서 수상한 점은 없어 보였다. 강치환 수사관이 말했다.


“상어와 검은색 나무의 등장 이후, 많은 것이 바뀌긴 했습니다. 서방 정보당국들도 이 사건이 단순히 볼리셔니스트만의 일은 아님을 깨달은 거죠. 우리와 마찬가지로요. 덕분에 협조체계가 꽤 진일보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동 사령부라... 놀라운데요.”

“문제는 워낙 신출귀몰해서 찾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죠. 이 사진도, 정말로 우연찮게 얻은 사진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에스토니아? 최근 발트 3국 정세가 혼란스럽다고 들었습니다만.”

“잘 아시는군요. 소련에게서 독립 요구가 거센 상황입니다.”

“......”


한강진 국장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사진을 손가락으로 치면서 말했다.


“쇄빙선... 그럼 먼저 짐을 북극항로를 통해 옮긴 다음, 해상에서 원양어선으로 옮겨 싣고, 그걸 또 하코다테에서 환적해서 부산으로 들여온다?”

“네. 그런 셈이죠.”


강치환 수사관이 다른 서류를 하나 빼서 한강진 국장에게 보였다. 대공수사실에서 작성한 「검은색 나무 물자반입 경로 검토」라는 문서였다. 그가 서류를 빙글 돌려 한강진 국장 앞에 내밀었다. 내용은 방금 그의 말과 거의 같았다. 한강진 국장이 물었다.


“너무 복잡한 거 아닙니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저희도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물건을 옮길 필요가 있었다... 라는 것이 결론입니다.”

“그렇긴... 하죠.”


한강진 국장이 꼬리를 끌며 말을 마쳤다. 강치환 수사관의 말뜻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챈 터였다. 그렇게 옮겨온 물건은 바로 HQ를 감쌌던 결계와, 볼리셔니스트 두 명의 목숨을 빼앗은 「총」임이 분명했다. 강치환 수사관이 말했다.


“생각 외로 머리 쓴 거죠. 다카즈미의 원양어선이 마크당하는 지금, 외견상으로는 다카즈미와 「관계없는」 벌크선을 통해 옮겨오는 셈이니까요.”


한강진 국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사력을 다한 운송작전이었다. 쇄빙선까지 동원하여 북극해를 뚫고 오는 행위조차 비범하기 짝이 없었지만, 거기에 위험을 무릅쓴 거친 바다 위에서의 환적 역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작년 「히카와마루」를 통한 마약 운송 - 일본 선사 소속으로 위장했던 - 과 달리, 완벽히 일본 선박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섣불리 손대기도 곤란했다. 자칫 외교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반드시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한강진 국장이 고개를 들었다.


“배가 언제 들어오죠?”

“일주일 뒤입니다. 이름은 「아카기마루(赤城丸)」입니다.”

“조사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마냥 풀죽어 있을 수는 없죠. 오히려 적당한 타이밍인 것 같습니다.”


한강진 국장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강치환 수사관이 옅게 웃으며 흩어진 서류와 사진을 정리했다. 그리고 가방 안에서 책철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자세한 내용이 담긴 자료입니다.”

“감사합니다. 작전이 결정되면, 바로 연락드리죠.”


강치환 수사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한강진 국장이 바로 전화를 들었다.


“정 과장. 지금 국장실로 와 주게.”


국장실에 모인 두 사람은 곧바로 다음 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놈들을 날려버리겠다는 일념이 담겨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9국의 복구가 급한 상황이었음에도, 가용 자원을 모두 동원하기로 결정했다. 놈들이 다시 이런 위험한 물건을 반입하게 둘 수 없었다. 여전히 기술은 압도적으로 뒤쳐진 상황에서, 되도록 적을 같은 선으로 끌어내려야만 했다. 한강진 국장이 책상 위에 어지러이 쌓인 서류를 뒤지면서 물었다.


“서 대리는 어떻지?”

“상태는 많이 좋아졌지만... 전투 투입은 무리입니다.”


정은정 과장의 대답에 한강진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 과장이랑... 휘승이랑 민서... 현 대리... 그리고 S와 J 정도겠군.”

“네.”

“이곳 방어를 위해 볼리셔니스트를 남겨야 할 거 같은데. SOSS 출신들을 대기시키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침입 작전인만큼 세밀한 의사소통이 필수였다. S와 J의 경우 전투에서의 호흡은 어느 수준까지 올라온 상태였지만, 복잡한 작전에의 투입 가능성은 미지수였다. 그렇게 인원을 정하고 일시까지 확정을 마쳤다. 날짜는 4월 21일 목요일, 시간은 새벽 01시였다. 마지막으로 작전명을 결정했다. 역시 토성의 위성인 「히페리온Hyperion」이었다. 한강진 국장은 거칠게 휘갈겨 쓴 작전안을 모아 챙겼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확실하다면... 다 부숴 버리게. 침몰시켜도 좋아.”


부드러움 속에 활화산 같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정은정 과장은 역시 비슷한 표정으로,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5-


발바토스의 9국 HQ 습격 이틀 후, 1988년 4월 15일 금요일 08시 12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모(某)처.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조심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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