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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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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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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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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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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지하 던전 2층 (1)

DUMMY



폭사한 유닛들의 잔해는 골짜기 안에 수북히 쌓여 시체 산을 이루었다.

여섯 헌터들의 안티-게이팅 파워와 이능이 만들어낸 거대한 골짜기.

이곳이 어비씨언들을 매장해주기 위한 애도의 무덤이 되었다.


헬리오투스 준장은 아쉬움이 다소 묻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아쉽군, 저 전력.”


메넬라오스는 이심전심으로 동조하였다.


“길드장의 전투력이 이곳 안에서만 유효한 힘이 아닌, 실제 물리 세계에서도 적용되는 전력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뭐, 모든 헌터가 같은 처지라지만, 라이텔바흐 군은 더욱 아쉽단 말이지.”


하나하나의 전투력이 S급 던전의 보스에 버금가는 인간형 유닛들 일만 기.

여기에 지능은 뒤떨어지나 물리력은 그들을 능가하는 괴수 백만 기.

비록 다섯 최상위 헌터의 보조가 있었다고는 하나 그런 적군을 일거에 무력화시키고 시신으로 바꾸어버렸다.


현실로 비유하자면 수십 년 전 세계를 통일했던 그 ‘제국’을 상대로 핵무기나 비대칭 전력은 제외한 채 백병전으로 단신의 승리를 거둔 셈.


하지만 이런 가정법은 사실상 무의미한 비교였다.


첫째, 타 헌터들도 그렇지만, 라이텔바흐의 이 전력은 고농도의 어비쓰론이 산재해있는 헬게이트 권역 안에서만 발현 가능한 힘이다.

둘째, 이 괴물들, 곧 어비씨언들은 오로지 SSS 랭크 던전 안에서만 생존이 가능한 존재들이기에 바깥 세계에서의 전쟁은 가정할 수 없다.

즉 라이텔바흐의 ‘제한적인 환경’ 속 전투력이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이러한 특수한 ‘극한의 환경’으로만 한정되는 셈이었다.


셋째, 굳이 이런 수준의 어비씨언들이 아니더라도 어비씨언들은 기본적으로 물리력에 내성을 지닌 존재.

즉, 헌터가 아닌 군대는 십만 명이든 백만 명이든, 핵무기를 사용하건, 충분하게 시간을 끌면 어비씨언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통상의 군대와 어비씨언들의 전력을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하니 지금의 성과들을 가지고 라이텔바흐가 인간 군대를 상대로 얼마나 선전할지 계산하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인간들은 이 강력한 SSS 랭크 헬게이트의 권역 안에서 아예 생존하지 못한다.

오로지 SS 랭크 이상의 헌터들만 예외일뿐.

그러니 인간 군대를 이곳으로 들여와서 라이텔바흐와 붙게 한다는 가상의 실험 또한 무의미했다.

고로 저 강력한 전력을 세계 정부군을 상대로 적용한다는 상상은 논리적으로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 망상일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자아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저 걸출하고 잘난 흑재규어도 헬게이트의 영향력이 아예 없는 환경에서는 그저 강력하고 똑똑한 인간 한 명에 불과하겠지.”


“게다가 블랙스미스가 만들어낸 헌터용 장비들과 헌터 웨폰도 기본적으로는 안티-게이팅 파워와 헬게이트의 파생물들을 이용하는 기전을 띠지.

헬게이트와 무관한 환경에서는 그냥 조금 강력한 첨단 무기에 불과해.

알맹이를 다 떼내고도 제법 성능은 높겠지만 그래봤자 인간 유닛이 휘두르는 병기인만큼 거대한 전략 병기에 비할 수는 없지.”


그렇다.

이것은 지나치리만큼 철두철미한 극 상성의 가위바위보 관계.


안티-게이팅 파워는 물리 세계 속에서는 완전히 무용지물이다.

물리적 세계는 헬게이트의 권능 앞에서 완벽히 무력하다.

그리고 헬게이트와 그 무리를 향해서는 안티-게이팅 파워가 극악의 천적이다.


이런 상성 관계에 있기에 균형은 유지될 수 있었다.

헌터들이 살아남기 위해 책략, 모략, 정치, 경제, 학문을 섭렵한 것도 이런 조건 가운데 유리함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하죠.”


라이텔바흐는 관측 데이터를 정리한 자료를 홀로그램 도면으로 그려내었다.


“이곳은 지하에 잠입한 헬게이트로 인해 구조가 구형으로 변형된 상태입니다.

원래의 지표면에 해당되던 부분이 바깥 쪽 구각을 이루고 원래의 지하에 해당되는 부분이 구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헬게이트는 구 전체를 몇 개의 구 껍질로 압축한 것 같습니다.

구각(球殼)의 개수는 총 6개, 즉 층의 개수도 6개입니다.”


본래라면 권역 전체가 지각층을 통해서 만들어진 암반이니 고체여야 한다.

그런데 헬게이트가 그것들을 여섯 층으로 나눠서 얇게 압축한 덕분에 층 사이 사이에는 빈 공간이 만들어졌다.

헬게이트의 의도는 필시 압축도를 높여 밀도를 증가시키는 것이었으리라.

그래야 적의 침입을 더 효과적으로 방어해낼 장벽을 세울 수 있을테니까.


“한 층의 구각으로 압축했더라면 더 밀도가 높았겠지만, 아마 다른 변수를 고려해서 적당히 분배한 모양입니다.”


한 개의 단단한 층으로 장벽을 만든다면 방어력 자체는 높아진다.

하지만 그 경우 그 한 개의 벽이 뚫리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리스크가 커진다.

벽 하나를 뚫고 나면 헬게이트로 이어지는 길은 빈 공간이니 직행 통로가 열리는 셈이다.

게다가 비행이 가능한 어비씨언은 만들기도 어렵고 만든다고 해도 비행에 에너지가 쓰이는 바람에 다른 기능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벽이 뚫리더라도 후일을 도모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어비씨언을 최대한 다수 배치할 수 있도록 여러 층을 만들어두는 편이 전략상 효율적이었으리라.


너무 많이 나누면 구각의 방어력이 약화될 테니 절충안으로 6층을 잡았겠지.


헬게이트의 치밀하고 교활한 사고력과 연산력을 다시금 체감하였다.


“헬리오투스 협회장님과 메넬라오스 협회장님, 그리고 악시오스 협회장님은 일대 다수의 전투에 특화되셨으니 이곳 일층의 착륙 포인트를 맡아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이곳에 셋을 남겨두어야 하는 이유는 웨폰 박스들 때문이었다.

웨폰 박스는 자율적으로 운행할 수 있는 일종의 드론.

그러나 아무리 블랙스미스의 공정을 거쳤다고는 해도 SSS 랭크 던전의 깊은 심연부로 들어가고도 드론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한다는 건 무리였다.


그러므로 웨폰 박스가 견딜 수 있는 심도는 이곳 1층이 최대였다.

이제 무기를 조달하려면 웨폰 박스들을 이곳에 설치해둔 뒤 필요할 때마다 무기를 꺼내서 지하로 던져 주는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웨폰 박스들의 좌표를 지켜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하죠, 길드장.”


“무운을 빕니다.”


“이곳은 믿고 맡겨주십시오.”


아마도 층이 깊어질수록 등장하는 어비씨언도 소수 정예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고로 2층까지는 다수의 하위 유닛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데 그것들이 만일 이곳의 웨폰 박스 좌표로 밀려들 확률이 있다.

그때는 다수의 적을 소멸하는 재능이 탁월한 세 협회장이 맡는 편이 좋다.


“플루타르크 총회장님과 테무친 길드장은 제 곁을 엄호해주시죠.”


“알겠네.”


“동의한다, 라이텔바흐.”


디버프 계열의 헌터 웨폰을 다루는 에커먼 플루타르크 중장은 깊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적 약화에 혁혁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테무친도 상당한 전투력의 소유자이니 라이텔바흐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맡을 수 있으리라.


라이텔바흐는 금강봉(金剛棒)을 꺼낸 뒤 잠금 장치를 해방하였다.

곧 황금 빛의 긴 원통이 광채를 발하는 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윽고 금강봉과 지하 2층 이하의 물질들간의 기본 상호작용이 개시되었다.

다크포스에 침식된 물질들은 부르르 떨며 진동하였다.

중력, 전자기력, 심지어 약한 핵력과 강한 핵력까지.

금강봉과 침식된 물질들 사이의 기본 계수가 일시적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가라.”


라이텔바흐가 괴물들을 참하는 데 썼던 검붉은 고형 물질들이 한 줄기로 압축되었다.

그것들은 금강봉의 한쪽 끝으로 응집되었다.

마치 로켓이 연료의 폭발을 힘입어 앞으로 발사되듯, 금강봉은 검은 물질의 축퇴를 원동력 삼아 지하 쪽을 향하여 진격했다.


굉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임했다.

라이텔바흐와 헌터들은 던전 내 공간 왜곡 상태를 역이용해 축지법으로 몸을 빠르게 움직여 폭발의 여파를 피했다.


어마어마한 관통력이 땅을 그대로 뚫고 지하로 나아갔다.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엄밀히는 ‘구멍’ 또는 ‘싱크홀’이라 표현해야 옳으리라.

크레이터와는 달리 밑바닥이 훤히 뚫린 상태였고 그 너머로는 지하 2층의 세계가 보였다.


놀랍게도 금강봉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지하 2층, 3층, 4층, 5층까지 나아갔다.

마지막 6층을 다 뚫기 전, 에너지를 다 소모한 금강봉은 끝내 밑창을 다 드러내지 못한 채 멈췄다.


“아쉽군. 그대로 헬게이트까지 벌거벗겨져 드러날 줄 알았는데.”


“괴물 같은 녀석.”


테무친은 혀를 내둘렀다.

길드장들 중에서는 자신이 다섯 랭커와 더불어 1위 자리를 겨룬다고는 하나, 저 논외의 인간에게는 전혀 비할 바가 아니라는 점이 새삼 실감이 났다.


‘하긴 헌터들 중에서도 격이 다르지.’


라이텔바흐 이전의 1세대, 2세대, 3세대 실험체들은 라이텔바흐라는 성공 사례에서 나온 산물들을 원료 삼아 구조를 받고 부활된 재활용 개체들.

그리고 라이텔바흐 이후인 4세대, 5세대, 6세대는 아예 시작부터 그에게서 나온 세포들과 물질들과 데이터를 베이스로 빚어진 자들.

그러니 여타 헌터들이 그와 격을 나란히 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다.


‘전무후무한, 유일한 EX 랭크 헌터.’


SSS 랭크가 책정 가능한 최대치의 등급인 헌터 세계.

오로지 EX 랭크는 그 한 사람을 정의하기 위해 도입된 등급.

다른 등급들과 달리 엄밀한 기준치조차도 정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이전으로도, 그 이후로도 그 등급에 추가로 넣을 유닛이 없으니까.



“들어갑시다.”


우측에는 에커먼을, 좌측에는 테무친을 대동한 채 라이텔바흐는 약 100m 직경 구멍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신발에 장착된 호버크래프트 시스템과 로켓 시스템이 그들의 낙하 속도를 적당한 범위로 조절해주었다.



“시작부터 환영이 거창하군.”


지하 2층의 어비씨언들은 개별 유닛이 아닌 콜로니를 이룬 집산체.

바닷속의 해초나 히드라 혹은 산호초를 연상시키는 형상으로 나무처럼 자기 몸의 부분을 길게 확장할 수 있는 괴수들이었다.

골치 아픈 부분이라면 그 크기였는데 가히 작은 건물만한 굵기의 가짓들이 촘촘하게 머리카락처럼 뻗어나오고 있었다.

군집 전체의 크기를 측량해보니 사실상 구각 표면의 60% 이상을 덮고 있었다.


“촉수에는 촉수로 대응한다 이건가.”


일반적으로 헌터들의 랭크, 무기의 랭크, 던전의 랭크, 헬게이트의 랭크, 어비씨언 유닛의 랭크를 책정하는 계산법의 기준치는 각기 다르다.

즉 전투력 비교로 단순무식하게 환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헌터의 랭크와 헬게이트의 랭크를 얼추 비교하는 방법이 없진 않았다.

일반적으로 헌터는 자신의 랭크 이하의 알파벳에 해당하는 랭크의 헬게이트로 진입하면 심장부에 들어갈수록 힘이 강해진다.

반대로 자신의 랭크 이상의 헬게이트 속에 들어가면 심장부에 들어갈수록 능력이 약화되며 신체적인 위해를 겪는다.


굳이 이번 작전에 SSS 랭크 헌터들만 대동한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적어도 이들은 깊이 들어간다고 해서 힘이 급격히 약해지지는 않고 얼추 비슷한 전력은 유지할 수 있을테니까.


반대로 라이텔바흐의 경우 해당 헬게이트보다 랭크가 높은 자.

그러므로 그는 더 깊은 권역으로 들어갈수록 전투력이 상승한다.

그것도 기하급수적인 곡선으로.


“제 곁에서 3m 이상 벗어나지 마시죠.”


굵은 채찍을 뽑아든 라이텔바흐가 두 사람에게 엄호를 명했다.


“잘못하면 죽을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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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기대와 불안 NEW 15시간 전 1 0 14쪽
56 제안 24.09.03 4 0 15쪽
55 교활한 광전사 (2) 24.08.30 5 0 13쪽
54 교활한 광전사 (1) 24.08.29 6 0 13쪽
53 조우 24.08.25 7 0 17쪽
52 레기온 24.08.22 8 0 16쪽
51 다중심연융합체 24.08.17 8 0 11쪽
50 극강 장벽 24.08.15 8 0 11쪽
49 이변 (2) 24.08.12 7 0 13쪽
48 이변 (1) 24.08.10 7 0 12쪽
47 마무리 단계 24.08.07 9 0 12쪽
46 독립운동가 24.08.04 8 1 12쪽
45 예측력의 한계 24.07.31 10 0 12쪽
44 에일린 (2) 24.07.28 9 0 13쪽
43 에일린 (1) 24.07.25 11 0 11쪽
42 재난 예보 작전 (3) 24.07.22 12 0 13쪽
41 재난 예보 작전 (2) 24.07.17 11 0 13쪽
40 재난 예보 작전 (1) 24.07.17 13 0 12쪽
39 퇴각 24.07.05 15 0 14쪽
38 정부군 대 헌터군 (3) 24.07.02 13 0 15쪽
37 정부군 대 헌터군 (2) 24.06.29 11 0 12쪽
36 정부군 대 헌터군 (1) 24.06.27 13 0 13쪽
35 뒷통수 24.06.24 11 0 12쪽
34 최후 일격 24.06.22 10 0 11쪽
33 지하 던전 6층 24.06.19 12 0 13쪽
32 지하 던전 5층 (3) 24.06.17 11 0 12쪽
31 지하 던전 5층 (2) 24.06.16 11 0 14쪽
30 지하 던전 5층 (1) 24.06.14 12 0 13쪽
29 음모와 술수 24.06.13 11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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