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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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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7
최근연재일 :
2024.09.0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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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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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예보 작전 (1)

DUMMY

사상 최악의 헬게이트 토벌전 종료 후 있었던 해프닝은 우야부야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미 적잖은 사람들이 그 일의 실상을 본 뒤였다.

그에 대한 소문 역시 은밀하게 스멀스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세계 정부의 정당성과 민심 기반이 적잖이 타격받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당장은 사람들도 쉬쉬하겠지만, 적어도 헌터와 정부 중 어느 쪽을 나쁘게 볼 지에 대한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에게 불리하게 흐를 것이 자명했다.


플레먼은 라이텔바흐 대령의 안위에 대해 걱정하였다.

분명 총탄을 맞고도 멀쩡하게 서 있었으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뒷 장면까지 모두 보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믿으며 애써 안위해보았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염려에만 치우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부모님께 배운 인생 교훈은 ‘내일의 일들은 내일이라는 녀석이 대신 염려하도록 넘겨주라’ 라는 것이었다.

염려거리가 저절로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염려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하나라도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 나으리라.

라이텔바흐는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플레먼도 플레먼 자신의 일을 충실히 감당하다보면 때가 되었을 때 무사히 친우와 재회할 수 있겠지.


‘그래, 지금은 우리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틀 간의 최대급 헬게이트 토벌전이 벌어지기 약 보름 전.

라이텔바흐는 월드커넥터 디바이스를 통해 플레먼에게 좋은 데이터를 제공했다.

그것은 상당한 가치를 띤 고급 정보였다.

무려 조만간 수주 내에 호주 지역에 발생할 모든 헬게이트에 대한 예견 정보가 담겨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에 이렇게 갑작스레 헬게이트 발생 횟수가 늘어나는 일은 이례적입니다.”


라이텔바흐는 친절을 베푸는 와중에도 자신의 행동에 명분을 부여하였다.

절대로 플레먼과 그의 고향 주민들을 생각하거나 특별히 배려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투로 행동을 정당화하였다.


“당분간 추이를 계속 예측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정보를 공유해본 것입니다. 후일 변동 사항이나 예측과 어긋난 부분이 생긴다면 제게도 전해주시길. 아, 물론 의무는 아닙니다. 당신이 기뻐하는 방향으로 선택하셔도 됩니다.”


분명 이번 재앙 예보 데이터는 심상치 않은 점을 시사하였다.

다수의 헬게이트 발생 확률 내포 지점이 짧은 기간 내에 여러 군데 나타난다?

인구가 많은 유라시아나 북미라면 모를까, 호주에서는 흔히 발생치 않던 일이다.


다행히도 라이텔바흐의 예측 정보에 따르면 발생할 것으로 예견되는 헬게이트들의 대부분은 소형 또는 초소형, 그리고 난이도로는 하급에 해당되었다.

아마 침식 영역은 건물 한 개, 잘해야 서너 개 정도의 건물을 아우를 것이다.

물론 사람이 그 안에 갇힌다면 흑색파동이나 어비쓰론의 영향을 받아 운 좋게는 질병을, 운 나쁘게는 죽음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상 침식 권역 크기가 넓지 않고 예상 오차율도 크지 않으니 ‘미리 아는 것’만으로도 피신 전략 수립에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플레먼은 자료와 정보를 필기해둔 달력을 체크해보았다.

공교롭게도 보름 전 받은 헌터 협회들 측의 시뮬레이션 자료에 따르면, 가장 먼저 헬게이트들이 출현할 시점은 현재로부터 약 이틀 뒤였다.

때마침 얼마 전 라이텔바흐는 임무와 배반 당함으로 인해 리타이어되었다.

아마 추가적인 정보를 더 건네주긴 어려운 상황이리라.

저번에 받았던 것들만을 기반으로 보름간 진행했던 계획의 다음 단계를 속행해야 한다.


‘쥬오디아와 신티가 지나칠 정도로 멋지게 잘 해내주었지.’


그는 며칠 간의 일들을 회상하며 끝마무리까지 완수하리라 다짐하였다.




*


보름 전에 데이터를 받기 이전부터, 이미 플레먼은 준비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기다렸던 데이터를 받는 그 순간, 그는 지체없이 예비된 카드들을 뽑아들고 행동에 나섰다.

또한 자신을 도와줄 대원들로써 두 여장부를 불렀다.

미리 예고를 들었기에 그들도 재빠르게 팔을 걷어붙히고 나섰다.


“이곳들이 주요 발원지가 될 장소들이야.”


데이터를 받은 당일, 플레먼은 동지들 앞에서 종이 지도를 펼쳤다.

라이텔바흐가 보낸 데이터와 월드커넥터의 포맷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정부 추적을 피하기 위해 휘발되어 사라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를 아는 플레먼은 부랴부랴 미리 준비된 지도 상에 자신만이 아는 암호와 언어로 헬게이트 예측 정보를 옮겨 기록해두었다.

그날 그의 지도들과 기록물들은 어니스트와 쥬오디아와 신티 앞에 제시되었다.


“체크된 ‘발원 가능성이 있는 위치’들과 그 근방의 지역들, 그리고 몇몇 추가 장소들, 이곳들이 우리가 순회하면서 작전을 펼칠 곳들이야.”


세 사람 모두 무엇을 하면 되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이미 작전 합의를 데이터 받기 이전부터 다 끝내놓았기 때문이었다.


작가로서의 플레먼에게는 다섯 개의 필명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자기 자신의 본래 이름을 내세운 정체성은 하나.

나머지는 정체를 모를 ‘익명의 작가로서의 정체성’으로 공식적으로는 플레먼 본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즉 나머지 네 개의 필명은 사람들도 그 정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공식적인 필명 아래에서의 플레먼은 아주 히트를 친 작가는 아니었다.

훌륭한 편이기는 했고 스테디셀러 몇 권은 자랑하였으나 딱 그 수준이었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나머지 네 필명은 각각 서너 개의 작품을 지녔는데 그 작품들은 하나같이 당시 돌풍을 일으킨 히트작 겸 베스트셀러였다.


정작 플레먼 자신은 그 네 개의 비밀 필명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기기를 꺼리는 편이었고 인정하지도 않아 왔다.

그래서 그는 출판사들과 소통할 때에도 해당 필명을 쓸 때는 자기 정체를 숨겼고 지인들에게도 그 필명들이 자신의 것임을 감추었다.

심지어는 인세 계약도 하지 않았고 해당 작품들로는 수익을 거두지도 않았다.


왜일까?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아서일까?

본인도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그런 해석이 그나마 정확한 편이겠다.


작가로서의 플레먼은 항상 ‘가치 지향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상 세계 속에 반드시 고귀한 가치와 짙은 작품성을 녹여내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류의 작품들은 대중의 선풍적 인기를 끌지 못했다.

뭐, 그래도 탁월한 역량 때문에 애용하는 이들은 꾸준히 있었지만.


반면, 다른 네 개의 필명 하에 쓰인 작품들은 그의 일탈작(逸脫作)에 가까웠다.

그 자신의 진정한 재능과 소명과 가치관이 충분히 담기지 않은, 그런데도 역설적으로 정작 본인의 심혈을 담은 걸작들을 인기 면에서는 능가한 것들이었다.


그렇다.

이상하게도 그는 원하는 방면보다 원하지 않는 방면에서 성공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네 개의 필명을 그가 한꺼번에 동시에 운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한 기간에 일탈하여 작품들을 쏟아내고 대중을 매혹한 다음, 회의감을 느끼고 그 필명을 묻어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일탈을 하고 싶을 때 새로운 필명을 만들어내어 다시 돌풍을 일으키는 식이었다.

그렇게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네 번의 일탈기를 거쳤다.


각 기간마다 그의 일탈 방식도 달랐기에 네 필명마다 배당된 스타일, 양식, 강조포인트가 달랐다.

그랬기에 네 필명에 딸린 팬층 또한 분포가 완전히 달랐고 거의 겹치지 않았다.

그 독자들은 그때 그 책들을 읽고 받은 깊은 감명과 스릴을 아직도 기억하는 중이었고 지금까지도 하염없이 ‘정체불명의 작가’의 복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주로 장르 계열 소설을 다루었지. 흥미와 감각 위주의 내용들 말이야. 추리, 액션, 로맨스, SF, 대체역사 등, 별의별 괴이한 시도를 했었어. 그러니까······, 음, 한마디로 뇌를 빼놓고 보기에 좋은 것들이었지.”


그는 흑역사를 회상하며 밀려오는 자괴감에 헛기침을 하였다.


“하지만 인기만은 확실해. 지금까지도 그 작품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곤 하지만. 내 이름을 그들에게 밝히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말이지.”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온다고 했던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때 있을 것이 없지 않도록 준비해둬야 하는 법이다.


플레먼이 이번 ‘카타콤 암호 체계’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활용하려 했던 개똥은 바로 그의 묻혀진 흑역사들이었다.


“네 개의 필명 각각에서 대표작 한둘 씩을 뽑아두었어. 그리고 이벤트에 활용할 만한 ‘독자들을 위한 보물’도 만들어두었지.”


아쉽게 마무리된 결말 이후에 펼쳐질 ‘감춰진 이야기들’.

이해되지 않았던 설정과 작품 내 수수께끼들에 대한 ‘작가의 해답’.

팬덤 내에서는 백만 년을 토론해도 해결되지 않을 ‘논란’들에 대한 명쾌한 풀이.

차기작에 대한 자세한 설정 정보.

특정 등장 인물들의 비밀 사항들.

작가로서 부끄러운 나머지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던 외전들.

그의 머릿속에만 있던, 본작보다도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각종 설정들.


이번 기회는 그는 그 모든 것들을 풀어내기로 했다.


플레먼은 이것들을 미끼로 요긴히 활용하기 위해 공개 이벤트를 기획했다.

이 일들을 시행해줄 용사들이 바로 유능한 행동 대장들인 쥬오디아와 신티였다.


“저희만 믿고 맡겨주세요.”


“후후, 간만에 여흥거리가 생겼구먼.”


부탁을 받은 두 사람은 플레먼과 어니스트가 열심히 준비한 여러 가지를 들고는 그날부터 순회 이벤트를 시작하였다.


“자, 자, 여기들 주목하세요!”


길거리에 나선 두 여장부는 특유의 개성 넘치는 외모와 익살스러움의 재능을 요긴히 활용하여 호객 행위를 하였다.

체대생 시절에 취미로 희긱인 동아리를 했었던 둘인지라 버스킹이나 길거리 이벤트에는 도가 트인 상태였다.


두 사람을 도울 ‘시각적 유인책’은 바로 그림이었다.

플레먼의 비밀 필명 작품들의 작품 세계 속을 반영한 그림.

주요 인물들부터 작품 내의 배경까지, 너무나도 절묘하게 잘 반영한 일러스트가 여러 장 펼쳐져 누구라도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워낙에 개성적이고 특이한 작품들인지라 그것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길거리에 펼쳐진 일러스트에 본능적으로 촉이 세워질 수밖에 없었다.

서서히 사람들이 몰려들어 원형 진을 그리며 그녀들을 에워둘렀다.

어떤 곳에서는 인파도 몰렸고 심지어 줄을 서는 일까지 생겨났다.


시각적인 유인과 그녀들의 재치발랄한 끼에 힘입어 모여든 사람들.

그들 다수는 플레먼의 비밀 작품 중 하나 이상에 입문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그 의문의 작가가 어서 빨리 복귀하여 기존 시리즈를 확장해주거나 신작을 낳아주기를 고대하던 차였다.

그런 때에 ‘그 작가님의 귀환 가능성’을 예고하는 특별 이벤트가 선물로써 주어졌으니 참을 수가 있겠는가.


쥬오디아와 신티는 능숙한 말재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며 이벤트를 성황리에 완성하였다.

그녀들은 또한 플레먼이 팬서비스로 예비해둔 각종 보배들, 곧 팬들이라면 눈이 혹하고 유혹받을 수밖에 없는 정보 아이템들을 나눠주었다.

설정집, 한정판 차기작, 한정판 외전, 비밀 브로마이드, 그 외의 별의별 것들.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원래는 수익을 창출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제작 비용들을 감안하면 최대한 빠르게 많이 생산해야 하므로 돈을 받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덕분에 꿩 먹고 알 먹는 격이 되었고 쥬오디아와 신티는 더욱 신이 나서 열심히 일하였다.


“화이팅!”


“나이스 시스터!”


근육질의 두 여인은 목표 지점을 휩쓸 때마다 호쾌하게 포효했다.

그들은 그때마다 하이파이브로 승리를 자축하였다.

또한 우정의 주먹이 가볍게 맞대며 완벽한 듀오답게 전열을 다졌다.

가녀린 남자들은 이해치 못할, 여장부들만의 패기와 용기와 의리가 교차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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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기대와 불안 NEW 15시간 전 1 0 14쪽
56 제안 24.09.03 4 0 15쪽
55 교활한 광전사 (2) 24.08.30 5 0 13쪽
54 교활한 광전사 (1) 24.08.29 6 0 13쪽
53 조우 24.08.25 7 0 17쪽
52 레기온 24.08.22 8 0 16쪽
51 다중심연융합체 24.08.17 8 0 11쪽
50 극강 장벽 24.08.15 8 0 11쪽
49 이변 (2) 24.08.12 7 0 13쪽
48 이변 (1) 24.08.10 7 0 12쪽
47 마무리 단계 24.08.07 9 0 12쪽
46 독립운동가 24.08.04 8 1 12쪽
45 예측력의 한계 24.07.31 10 0 12쪽
44 에일린 (2) 24.07.28 9 0 13쪽
43 에일린 (1) 24.07.25 11 0 11쪽
42 재난 예보 작전 (3) 24.07.22 12 0 13쪽
41 재난 예보 작전 (2) 24.07.17 11 0 13쪽
» 재난 예보 작전 (1) 24.07.17 13 0 12쪽
39 퇴각 24.07.05 15 0 14쪽
38 정부군 대 헌터군 (3) 24.07.02 13 0 15쪽
37 정부군 대 헌터군 (2) 24.06.29 11 0 12쪽
36 정부군 대 헌터군 (1) 24.06.27 13 0 13쪽
35 뒷통수 24.06.24 11 0 12쪽
34 최후 일격 24.06.22 10 0 11쪽
33 지하 던전 6층 24.06.19 12 0 13쪽
32 지하 던전 5층 (3) 24.06.17 11 0 12쪽
31 지하 던전 5층 (2) 24.06.16 11 0 14쪽
30 지하 던전 5층 (1) 24.06.14 12 0 13쪽
29 음모와 술수 24.06.13 11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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