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e********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공모전참가작 새글

peacetiger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7
최근연재일 :
2024.09.16 14:16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2,013
추천수 :
15
글자수 :
343,511

작성
24.08.17 00:00
조회
8
추천
0
글자
11쪽

다중심연융합체

DUMMY

집단 감금이 시작된 지 56시간의 시간이 흘렀다.

천년처럼 느껴질만큼 길고 답답한 시간이었다.


살얼음판과 같았던 ‘태풍의 눈 속 고요함’은 이제 막을 내릴 차례였다.


“이제 시작이군요.”


편히 쉬지도 못한 채 뜬 눈으로 적막을 지켜온 두 명의 헌터들.

언제 이변이 어떤 형태로 확대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이 둘은 계속 상황을 모니터링해야만 했다.


고단한 두 사람의 곁에서 지루하지 않게 말동무가 되어준 이는 플레먼이었다.


“당신들은 신기하군요.”


콘스탄틴 중사가 플레먼에게 말했다.


“이런 상황이 두렵지 않단 말입니까? 우리와 같이 힘을 가진 것도 아닌데도?”


다른 모든 일반인들이 공포에 질려 마비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플레먼과 그의 세 친구는 헌터들 보기에도 확연히 달라 보였다.

그들에게는 위기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의연함의 불꽃’이 깃들어 있었다.

단순히 초인적인 담력이라고 설명하기에는 석연찮은 기묘한 위화감이었다.


“정말로 무섭지 않단 말입니까? 언제 파리 목숨처럼 죽게 될지도 모르는데도?”


“그럴 리가요.”


베르나르도 중사의 질문에 플레먼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무섭지 않을 리가 없죠. 저 헬게이트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 본능적으로 제 육신을 공포심이 사로잡았습니다. 생명체 속에 깃든 본능으로서의 본성, ‘공포’라는 신호 체계가 제 안에서도 격렬히 경보를 울렸습니다.”


플레먼은 말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차원의 공포가 있노라고.


첫 번째 차원은 몸에 깃든 생존 본능으로서의 반응이다.

이것은 일종의 경고 체계이기 때문에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 앞에서는 반드시 작동되어야 한다.

헌터든 일반인이든 여기에는 예외가 없으리라.

다만,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이 경보 체계의 필요가 줄어들 뿐이겠지.


두 번째 차원은 혼 속에 깃들어 있는 공포.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적의의 실체를 알 수 없기에, 미지를 이해할 수 없기에 필연적으로 맞닥트리는 공포.

이 또한 헌터든 일반인이든 동일하게 체험하는 어려움이다.

다만, 이해력이 뛰어나고 사전 지식이 많다면 역시나 이 어려움을 겪어야만 하는 상황을 상대적으로 적게 마주할 수 있으리라.


예컨대 라이텔바흐처럼 헬게이트들을 능가하는 능력과 헬게이트의 기전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공포를 느낄 일이 없으리라.


그러나 플레먼은 세 번째 차원의 공포를 알았다.


그것은 ‘영’ 속에 깃들어 있는 공포심.

인간은 누구든 그 앞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어떤 강한 인간도, 심지어 최강의 인간이나 최강의 헌터조차도.

바로 그것은 죽음과 죽음 너머에 대한 두려움이다.


“저와 제 친구들도 첫 번째 차원과 두 번째 차원의 공포 앞에서는 그저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약하고 취약한 존재일뿐입니다. 하지만 세 번째 차원의 공포에 대해서는 다릅니다.”


이것이 헌터들은 갖지 못했으며 플레먼과 세 친구는 가진 무언가였다.


“그 무언가가 무엇이길래 당신들은 다른 것이죠?”


콘스탄틴의 질문에 플레먼은 입을 열 수 없었다.

원래라면 당당히 증언했어야만 하는 것.

그러나 입천장에 혀가 달라붙어 금언의 저주에 빠진 고대의 한 선지자처럼, 플레먼은 강력한 견인력에 의해 침묵의 규율을 따라야만 했다.

이것은 비단 그 한 명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극복한 자’들에게 지워진 짐.

불행히도 플레먼은 이것에 순응해야만 했다.


‘미안합니다.’


부디 헌터들에게도 그 마음이 닿았으면 했거늘.

깊은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군요.”


“슬슬 대비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긴장감과 두려움이 두 헌터의 뇌리를 사로잡았다.

둘은 하늘에서 생성된 수수께끼의 재앙을 바라보았다.

그 본체가 곧 땅 위로 내려올 순서였다.


“저것의 정체를 알기 전에 지원군이 오기를 바랐건만.”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번데기처럼 생긴 껍데기에 둘러싸인 무언가가 감옥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수백 개의 헬게이트들이 만들어낸 감옥 벽이 둥지라면 그 존재는 둥지가 존재하는 목적, 곧 둥지가 키워내야만 하는 열매와도 같았다.

말하자면 여왕벌과 같은 역할.


“저 헬게이트들 중 절반 이상이 저 껍데기 속으로 들어가 융화되었습니다.”


콘스탄틴의 말에 플레먼은 마른침을 꿀꺽 넘겼다.


“위험한 상대인가요?”


“모릅니다. 한 번도 저런 유형의 어비씨언에 대한 정보를 접해보지 못했으니까요. 아니, 저것을 어비씨언이라고 정의해도 되는 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최소 백 개 이상의 헬게이트들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번데기 껍질.

흉흉하게 생긴 시커먼 외골격 덩어리가 거미줄에 감긴 거미의 먹잇감마냥 메달려 있었다.

줄에 달린 그것은 천천히 천장에서 땅 쪽으로 내려왔다.

줄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실상 그것은 헬게이트의 생산물들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고밀도의 검은 유사물질이었다.

헌터들의 증언에 따르면 다이아몬드의 수만 배 이상의 경도를 가진 유사물질.

과연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맞긴 한걸까?


‘우리는 저것을 상대할 수 없다.’


본능적으로 콘스탄틴과 베르나르도는 직감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절대 무리하게 목숨을 내던져서는 안 된다.

선배 헌터들에게서 배운 철칙이었다.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네 어쩌네 하고 만용적인 영웅 심리에 잠겨 허무하게 목숨을 내던지는 행동은 절대로 금물이다.

특히나 저 정도로 전력차가 나는 상황에서는 자신들의 희생심 어린 투쟁이 시간벌이조차도 되지 못한다.


‘즉 절대로 전면에 나서 싸워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럴 경우 시민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자신들의 개입이 과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긴 한걸까?

이 상황에서 자신들의 의무는 무엇이란 말인가?


복잡한 상념들이 헌터들의 머릿속에서 맹렬히 회전하였다.



-크아아아아아아!



마침내 정적을 깨트리고 귀를 찢는 끔찍한 메아리가 발원하였다.

공간 전체를 매운 음성은 살아남은 시민들의 마음을 불 앞의 얼음처럼 녹였다.

온 몸의 근육이 힘을 잃고 감각 기관들의 힘마저 무너져내리는 듯한 공포.

어마어마한 크기의 위화감이 모든 인간의 최소한의 의지력을 무참히 깨트렸다.


미래를 직감한 헌터들은 얼어붙은 채 벌벌 떨었다.


‘상대의 힘은 최소한 S급 헌터 수준. 반면 우리는 C급에 지나지 않는다.’


즉 전력으로 따지면 두 중사급 헌터를 백 배로 수를 불려 군단으로 만들어도 승리는커녕 발목을 잡지도 못한다.

괴물이 어리석게 자비를 베풀거나 꾸물거리기를, 그리고 그 틈에 지원군이 오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니스트, 신티, 쥬오디아.”


자신의 진으로 돌아간 플레먼이 세 친구와 손을 맞잡았다.

네 사람 모두 다른 이들과 동일하게 긴장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다른 시민들에게 없는 희미한 생명의 빛이 그들의 얼굴 속에서 발원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원형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더니 잠시 눈을 감았다.


‘뭐지? 뭘 하는 거지?’


헌터들은 그들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의구심을 느꼈다.

평생 실험체로, 혹은 전투 병기로 살아왔던 그들로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


번데기 껍질 같은 것 위에 균열이 생겼다.

이내 그것은 뱀의 비늘처럼 생긴 작은 단위들로 나눠지기 시작했다.

잘 맞춰둔 퍼즐이 박살나 사방으로 흩어지듯, 껍질은 산산이 깨어졌다.


-크크큭


베일에 감싸인 괴물의 실체가 드러났다.

고밀도의 흑색 반고체성 물질로 구성된 어떤 형체.

모양은 언뜻 보기에 인간과 비슷한 직립 보행의 생명체였다.

그러나 온 몸이 주변의 빛을 모조리 삼키기라도 한 듯 어두웠다.

순수한 심연의 물질 그 자체였다.


괴물의 관절에는 보랏빛 섬광을 내뿜는 구체들이 사리처럼 촘촘히 박혀 있었다.

하나하나가 헬게이트와 동일한 기운을 지녔다.


‘어비씨언이 아니다.’


베르나르도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헬게이트들이 스스로 인격성과 행동성과 개체성을 얻었다.

그것도 집단 합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서.


‘어비쓰론이나 흑파를 방출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다크포스 농도가 짙지도 않아.’


장벽을 만드는 원리를 볼 때부터 짐작하기는 했다.

이번 상대는 순수한 물리력에 모든 것을 걸었다.


-벌레들인가.


괴수의 입에서 듣는 이들을 섬뜩하게 질리게 하는 파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새 힘을 검증해보기에 나쁘지 않군.


완전 흑체의 인간형 괴물은 1km 상공에서 땅을 내려다보았다.

기절하거나 힘을 잃고 쓰러진 사람들이 수없이 널려 있는 도심 지대들.

괴물의 입술이 기묘한 모양으로 쭉 벌어졌다.

마치 악마가 웃는 듯한 풍경이었다.


그것의 손이 다섯 배 크기로 쭉 늘어났다.

곧 검은 색 가시 같이 생긴 것들이 생성되었다

가시들은 가지 위에 가지를 뻗어내며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이후 잔가지들이 떨어져나가더니 긴 송곳 창의 형태로 바뀌었다.

그 날카로운 물체들은 예비 동작도 없이 그대로 공간을 가르고 질주하였다.

총탄보다도 빠른 속도에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직선 궤도.

그 물체는 물리 법칙의 영향을 무시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장애물들을 그대로 통과하며 진격하였다.

건물 벽도, 도로도, 차량도, 심지어는 아스팔트도.

마치 이 감옥 한정으로 물질 간 작용-반작용 원리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아비규환의 풍경이 펄쳐졌다.

수백 명의 사람이 관통되었다.

곳곳이 삽시간에 피바다와 울음바다로 변했다.

잔인한 그 괴물은 사람들의 급소를 일부러 회피한 채 고통스러운 부위를 위주로 공격하였다.


-천천히 놀아주지.


사방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비명을 듣던 시민들은 패닉 상태가 되었다.

실제 물리적인 피해보다도 오히려 이러한 정신적 공황이 이 지옥도를 더욱 끔찍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장애물을 무시한다고?”


콘스탄틴의 분석안이 동공을 파르르 떨었다.


“아니, 아무런 화학적 반응도 없다. 순수한 물리력의 극한이야. 단단한 바위들을 마치 두부나 종잇장처럼 썰고 있어. 게다가 예리함이 극에 달한 나머지 분자 사이의 틈새를 정확히 파고들고 있다.”


베르나르도는 자리를 지킨 채 적의 동태를 주시했다.

두 헌터 모두 감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몇 가지 불편한 진실을 직면한 두 사람.


별도의 운송 시설이 없는 지금 헌터에게 공중전은 불리하다.

만약 이곳이 침식 권역 내부라면 물리 법칙의 우회를 역이용하여 고공 점프라도 해볼 수 있겠지만, 감옥 내부의 다크포스 밀도는 낮은 편이었다.

사실상 헌터로서의 충분한 잠재력을 발휘하기에 불리한 환경이었다.


반면에 상대는 거미줄처럼 생성된 검은 줄을 통해 자유로이 곡예를 하며 이 감옥 내부를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는 공중전 특화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의 공격은 침식을 통한 파괴가 아닌, 순수한 물리력.

그러므로 헌터의 안티-게이팅 파워와는 상성이 좋지 않다.

초고등급 헌터라면 모를까, 두 사람으로서는 대응 전략이 전무했다.


더욱이 순수 전투력과 역량만 놓고 비교해도 체급 차이가 막대하다.


‘움직여서는 안 돼.’


눈에 띄면 안 된다.

제대로 방해도 해보지 못하고 반드시 즉사한다.

헌터 특유의 생존 본능이 두 사람의 몸을 마비시켰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작합니다! 24.05.08 125 0 -
60 악몽의 추억 NEW 13시간 전 2 0 14쪽
59 출항 24.09.14 7 0 14쪽
58 진급 24.09.13 7 0 12쪽
57 기대와 불안 24.09.07 9 0 14쪽
56 제안 24.09.03 9 0 15쪽
55 교활한 광전사 (2) 24.08.30 9 0 13쪽
54 교활한 광전사 (1) 24.08.29 8 0 13쪽
53 조우 24.08.25 8 0 17쪽
52 레기온 24.08.22 8 0 16쪽
» 다중심연융합체 24.08.17 9 0 11쪽
50 극강 장벽 24.08.15 9 0 11쪽
49 이변 (2) 24.08.12 8 0 13쪽
48 이변 (1) 24.08.10 9 0 12쪽
47 마무리 단계 24.08.07 9 0 12쪽
46 독립운동가 24.08.04 9 1 12쪽
45 예측력의 한계 24.07.31 10 0 12쪽
44 에일린 (2) 24.07.28 10 0 13쪽
43 에일린 (1) 24.07.25 11 0 11쪽
42 재난 예보 작전 (3) 24.07.22 14 0 13쪽
41 재난 예보 작전 (2) 24.07.17 11 0 13쪽
40 재난 예보 작전 (1) 24.07.17 13 0 12쪽
39 퇴각 24.07.05 15 0 14쪽
38 정부군 대 헌터군 (3) 24.07.02 13 0 15쪽
37 정부군 대 헌터군 (2) 24.06.29 12 0 12쪽
36 정부군 대 헌터군 (1) 24.06.27 13 0 13쪽
35 뒷통수 24.06.24 12 0 12쪽
34 최후 일격 24.06.22 12 0 11쪽
33 지하 던전 6층 24.06.19 12 0 13쪽
32 지하 던전 5층 (3) 24.06.17 12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