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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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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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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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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교활한 광전사 (2)

DUMMY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헌터들의 근원에 해당하는 존재.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헌터나 다름없는 자.

라이텔바흐 벤 키르헤른스트란 그런 인간이었다.


결코 과장된 평가는 아니다.

현존하는 헌터들의 기본적인 필수 능력인 이터널 셀, 나노봇, 안티-게이팅 파워의 유일한 원본이자 원료가 라이텔바흐 자신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인류와 세계 정부는 단 한 번도 이 세 가지 오파츠를 오롯이 소화하여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니 모방해내는 일도, 심지어 흉내내거나 이해하는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이미 존재하는 라이텔바흐의 힘을 모으고 긁어 착취하여 남에게 이식할 뿐이었다.

라이텔바흐가 죽는 순간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힘들을 말이다.

그러니 세대와 상관 없이 모든 헌터들이 라이텔바흐의 일개 분신에 불과하다는 헬게이트들의 평가는 정확했다.


하지만 그런 라이텔바흐조차도 초인에 이르지는 못했다.

제아무리 강력한 몸과 지능을 가진 그도 일개 인간의 궤를 벗어나진 못했다.

수명이 길긴 하나 노화를 피하진 못하며 물리적인 세계에서는 물리 법칙의 한계에 지배받고 육체의 한계 아래에 놓인다.


이런 이유로 레기온에게도 자기 나름의 꿍꿍이와 희망은 있었다.

아무리 상대가 천하무적의 강적이라 해도, 심지어 레기온보다 몇천 억 배는 강력한 세 여왕과 SSS급 헬게이트를 죽인 장본인이라고 해도, 적어도 이 환경 안에서는 최소한의 승률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어머니들은 저자에 대한 대응책을 찾아내셨다. 그것이 바로 나.


엄밀히 말하면 레기온은 그저 그 대응책에 대한 연습용 테스트에 불과했다.

아마 유사-심연들은 이 테스트를 밑거름 삼아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큰 프로젝트를 준비할 계획이었으리라.

하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지금 라이텔바흐라는 저 인간은 약화된 상태가 아닌가.


-이 필드 내부에는 어비쓰론과 흑색파동의 농도가 극히 낮아. 게다가 권역이 아니기에 다크포스의 위력도 낮지. 우리 권역에서 나오는 힘들에 자극을 받아 강해지는 저 인간에게는 불리한 조건이다.


레기온의 생각은 이러했다.


-순수하게 물리력만을 극대화한 이 몸의 전투 모듈이라면 놈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 침식 작용은 포기한채 오로지 힘으로 놈을 부순다. 그러면 녀석의 안티-게이팅 파워도 메리트를 잃는다.


이런 생각으로 덤볐건만, 어째서였을까?

어째서 라이텔바흐는 초인처럼 움직이며 모든 공격을 충격 없이 부수었는가.


문득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인간은 저런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없을텐데?


다크포스로 완전히 짙게 침식된 권역 내부라면 물리법칙 붕괴를 역이용해서 그런 움직임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가 않을 터.


대체 무슨 속임수를 부린 것일까?


-너는 누구냐?


괴물이 자신보다 더 강력한 존재를 향해 의구심을 품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도대체 그 힘을 어디에서 얻은 것이지? 누가 네게 힘을 얹어 주었지?


레기온의 질문은 허공에 메아리쳤다.

누구도 그 난해한 질문에 대답을 줄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라이텔바흐 본인조차도.


“말이 많군, 괴물.”


이어지는 일격에 레기온이 생성한 거대 촉수들이 무참히 썰려나갔다.

무성한 정글이 잔혹한 전기톱에 의해 처참히 벌목되듯, 괴물의 창날들이 가루가 되어 부스러졌다.

라이텔바흐의 움직임은 합을 거듭할수록 점점 가속되었다.

이제는 헌터들은 물론 레기온의 눈으로도 쫓을 수가 없었다.


-물리법칙의 궤에서 벗어난 존재는 아니야. 종족은 분명 인간이다. 관절에 의존해 무술을 벌여야 하며 뼈와 살이 필요해. 에너지를 방출하기 위해서는 산소와 탄수화물에 의존하며 에너지원으로도 우리처럼 초자연적인 수단을 쓰는 것이 아닌, 일개 분자에 불과한 ATP에 의존한다.


거듭 꿰뚫어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강함이라고는 단 하나, 안티-게이팅 파워뿐. 그 힘마저도 거의 봉인당했다.


하지만 이해가 닫지 않은 어떤 기묘한 영역이 존재하고 있었다.

레기온은 그 영역의 신비로움을 얼핏 감지하기는 했으나 그 근원과 본질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어떤 종류의 강함’이 라이텔바흐의 수중에 있었다.

힘도, 능력도, 물리력도, 안티-게이팅 파워도 아닌 무언가.

마치 그것은 운명 같은 섭리처럼 느껴졌다.


“한눈 팔 틈이 있는가?”


순식간에 간격을 좁혀 들어온 전사.

그는 예리한 검날을 신속히 움직여 괴물의 목 위에 꽂았다.

레기온은 반사적으로 강력한 검은 물질들을 생성하여 그를 튕겨내었다.


-근거리에서의 방어는 먹힌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라이텔바흐의 검격이 레기온의 창을 부수지 못했다.

대신 쌍방이 뒤로 밀려나 튕겨져나갔을 뿐이었다.


-그렇군. 최대한 압축해서 싸워야한다 이건가.


쓸데없이 공격 물질의 부피를 키울수록, 그리고 괜히 욕심을 내어 원거리 싸움을 시도할수록 라이텔바흐의 공략은 더욱 잘 먹히게 된다.

이 사실을 경험적으로 깨달은 레기온은 즉각 대응 전략을 교체했다.

그는 모든 힘을 자신 주변에 압축한 뒤 최속의 근거리 전투로 돌입했다.


-죽어라 인간.


바짝 다가온 괴물은 수천 개의 검은 창과 촉수들로 라이텔바흐를 공격했다.

전사는 한치도 밀리지 않고 모든 합을 받아내었다.

두 자루의 빛나는 검이 레기온의 사악한 일격들을 실수 없이 튕겨내었다.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한쪽의 목이 날아가버릴 수 있는 섬뜩한 전투였다.


전사와 괴물은 인간의 상식과 이성을 벗어난 속도로 칼춤을 추며 겨루었다.

그 둘의 공격이 자아낸 충격파가 겹치고 겹쳐 소닉붐을 일으켰다.

중첩된 괴이한 파동들이 기괴 현상을 자아내었고 그것은 주변 지역 전체의 물리법칙 왜곡으로 이어졌다.


“달아나자.”


플레먼은 세 명의 친구들의 손을 붙잡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어니스트는 도련님의 의도를 눈치채고 끄덕였다.

네 사람은 싸움터에서 최대한 멀어지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저 사람은 누구셔요?”


“아저씨랑 알던 사이 같던데요?”


영문을 모르던 쥬오디아와 신티가 질문했다.


“지금은 급하니 나중에 설명해줄게. 일단 내가 예전에 만났던 사람은 맞아.”


여기에 어니스트가 짧게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전에 뉴질랜드에서 던전에 떨어졌을 때 나랑 도련님을 구해주신 분이 바로 저분이었어.”


“세상에!”


쥬오디아는 찬탄하듯 중얼거렸다.


“평생 헌터 한 명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저런 강한 사람을 만났다고요?”


“강하다는 말로 충분히 설명이 안 될 것 같은데요.”


어쩐지 두 여장부는 위기의 상황에서 건짐 받은 것보다는 극도로 이상적인 강함의 존재를 목격했다는 사실에 더 흥분하는 것 같았다.

하여간 엉뚱한 여인네들이었다.



*


레기온은 여러 합을 겨룬 끝에야 라이텔바흐가 선전하는 이유를 얼추 깨달았다.


-그렇군. 어쩐지 초인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했더니.


라이텔바흐의 두 검과 레기온의 검은 물질이 충돌할 때마다 그 접합부에서는 아주 미시적인 차원의 미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극도로 예리하게 벼려진 그의 특수한 검날이 레기온이 잘 조직해놓은 어비쓰론과 흑파들의 직물을 예리하고 파고 들고 있었다.

원래라면 그 흑색의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들은 외부를 침식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들끼리의 결합력만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했으리라.

그러나 외부의 무언가가 그 미세한 틈을 발견하여 비집고 들어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순간, 마치 풍선이 터지듯, 혹은 배가 갈라질 때 내장들이 튀어나오듯, 검은 물질이라는 직물 내부에 담긴 어비쓰론들과 흑파는 미세하게 밖으로 세어나온다.

라이텔바흐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통찰력으로 무적 같아 보였던 레기온의 물질의 틈새를 찾아내었고 극도로 정밀한 감각을 통해 그 틈새에 자신의 무기를 꽂았다.

그리고 그렇게 벌려낸 틈에서 나온 어비쓰론과의 접촉을 통해서 순간적으로나마 자신의 힘을 증폭할 기회를 얻어내었다.

그 접촉의 순간만큼은 마치 권역 속에 담궈진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되었다.

덕분에 제한된 그 찰나 동안은 물리적인 제한을 넘어 초인적인 움직임을 이뤄낼 수 있었다.

라이텔바흐는 그 찬스를 영원히 얻기 위해 공격하고 또 공격했다.

찬스의 제한 시간이 다 지나가기 전에 다시 검은 물질과 충돌해 또다른 틈새를 벌려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 순간도 빈 틈의 순간을 내주지 않고 모든 기회들을 연속적으로 접합하여 사실상의 영속적인 강화를 이뤄냈다.

약간의 실수로도 공을 완전히 놓칠 수 있는 저글링(Juggling)처럼, 심히 어려운 묘기였다.

극한 연산력과 통찰력을 소유한 테크니션에게만 허락된 신기(神技)였다.


-내 쪽에서 너와의 거리를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군.


원거리 전을 시도하면 물질의 압축도가 떨어지기에 더욱 공략당하기 쉬워진다.

그렇다고 거리를 이대로 계속 좁혀 놓으면 라이텔바흐와 쉴새 없이 합을 겨루게 된다.

즉 라이텔바흐는 초인적인 움직임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레기온으로서는 곤란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무르군.


전략을 바꾼 레기온은 민간인들을 향해 창날을 날렸다.

아니나다를까 라이텔바흐는 상대할 필요도 없는 그 공격들을 일부러 자신이 나서서 막아내고 튕겨내었다.


-그렇게 신경쓸 게 많은 녀석이 무슨 수로 진검승부를 벌이겠다고.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우는 입장이란 불리한 법이다.

레기온은 이것이 자신의 고지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오판이었다.

다음 순간 칼날이 괴물의 목을 스쳤다.


-크윽!


한 걸음의 차이로 가까스로 피해낸 레기온은 당황하였다.


“네놈이야말로 민간인 공격으로 한눈을 팔 틈이 없을텐데.”


라이텔바흐 이외의 다른 민간인 표적을 노리느라 아주 조금 집중력이 떨어진 그 취약한 틈새.

전사는 괴물의 그 한눈팔이를 예민하게 포착하였다.

한 순간의 실수마저도 사형 선고로 이어지는 이 싸움에서 괴물은 경솔한 선택을 한 셈이었다.


“확실히 지금의 나는 제 능력을 다 쓰지 못한다.”


레기온의 방패들을 겹겹이 베어부수고 다가온 라이텔바흐.

그는 더욱 맹렬하고 변칙적인 일격들로 괴물을 구석으로 몰았다.


“하지만 너 정도를 상대하는 데는 굳이 거대한 출력이 필요치 않아.”


백색파동을 제대로 방출했을 때는 레기온보다 수십억 배는 강한 바블로니아, 이두미아, 타이레도 순식간에 증발시켰다.

하지만 그런 반칙에 가까운 힘의 남용은 오히려 라이텔바흐의 취량이 아니었다.

그는 정교하고 예리한 방법으로 상대를 내면에서부터 말려가는 편을 선호했다.

상대가 헬게이트이건, 세계 정부의 하수인들이건, 그의 그 개인적인 전투 철학은 달리 적용될 이유가 없었다.



“상대를 잘못 만났군. 차라리 S급 헌터를 만났다면 어떻게든 네놈도 파훼 전략을 생각해냈을 수 있었을 텐데”


레기온은 결코 어리석은 유닛이 아니었다.

오히려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어비씨언들과는 달리 헬게이트들의 복합체인 이유인지 훨씬 더 똑똑하고 간악하고 치밀했다.

생존과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발상해낼 수 있는 영악한 지성체였다.

그런 레기온이라면 설령 자신보다 몇 단계 더 높은 힘을 가진 헌터를 상대로도 허를 찌르며 어떤 반전의 술책을 만들어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영 대전운이 좋지 않았다.

능력을 봉인당했으나 대신 본연의 재능인 ‘책략’을 자유자재로 펼치기 시작한 라이텔바흐.

레기온의 두뇌는 그저 날아다니는 새 아래에서 기어다니는 벌레에 불과했다.


“약속대로 3분은 지켰다.”


순간 레기온은 자신의 대적이 움직임을 간파하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분명히 헬게이트 특유의 물리계 예측 권능을 통해 지금껏 어느 정도 라이텔바흐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있었거늘, 이번에는 순간적으로 그 주도권마저 놓쳤다.


-인간이 나를 페이크 동작으로 속였다고?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앙글라켈과 앙구이렐.

두 쌍둥이 헌터웨폰의 참격이 수백, 수천 차례 레기온의 몸체를 갈랐다.


-크헉!


참격 하나 하나가 급소를 노린 치명상이었다.

그것도 재생이 불가능하도록 정확히 헬게이트 정중앙 핵들만 노렸다.

미량의 안티-게이팅 파워가 정밀하게 레기온의 중요 부위들로 파고들었다.

오차 없이 제대로 들어갔기에 본질째로 깨부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간만에 몸을 풀게 해줘서 고맙군, 움직이는 헬게이트.”


빛의 곡선 수천이 중첩되어 섬광의 향연을 흩뿌리며 장렬히 폭발하였다.

검은색의 구체들로 분해된 레기온은 단말마와 함께 깨어져 산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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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악몽의 추억 NEW 13시간 전 2 0 14쪽
59 출항 24.09.14 7 0 14쪽
58 진급 24.09.13 7 0 12쪽
57 기대와 불안 24.09.07 9 0 14쪽
56 제안 24.09.03 9 0 15쪽
» 교활한 광전사 (2) 24.08.30 9 0 13쪽
54 교활한 광전사 (1) 24.08.29 8 0 13쪽
53 조우 24.08.25 8 0 17쪽
52 레기온 24.08.22 8 0 16쪽
51 다중심연융합체 24.08.17 8 0 11쪽
50 극강 장벽 24.08.15 9 0 11쪽
49 이변 (2) 24.08.12 8 0 13쪽
48 이변 (1) 24.08.10 8 0 12쪽
47 마무리 단계 24.08.07 9 0 12쪽
46 독립운동가 24.08.04 9 1 12쪽
45 예측력의 한계 24.07.31 10 0 12쪽
44 에일린 (2) 24.07.28 10 0 13쪽
43 에일린 (1) 24.07.25 11 0 11쪽
42 재난 예보 작전 (3) 24.07.22 13 0 13쪽
41 재난 예보 작전 (2) 24.07.17 11 0 13쪽
40 재난 예보 작전 (1) 24.07.17 13 0 12쪽
39 퇴각 24.07.05 15 0 14쪽
38 정부군 대 헌터군 (3) 24.07.02 13 0 15쪽
37 정부군 대 헌터군 (2) 24.06.29 12 0 12쪽
36 정부군 대 헌터군 (1) 24.06.27 13 0 13쪽
35 뒷통수 24.06.24 12 0 12쪽
34 최후 일격 24.06.22 12 0 11쪽
33 지하 던전 6층 24.06.19 12 0 13쪽
32 지하 던전 5층 (3) 24.06.17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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