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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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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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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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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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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형 전략가

DUMMY



길드 커맨드 센터로 복귀한 라이텔바흐는 썩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몹시 불쾌해보이는 표정에 퀭한 얼굴이었는데 무리는 아니었다.

한꺼번에 다섯 개의 대형 상급 헬게이트를 처치하자마자 연달아 일을 맡았다.

협회장들과 당회장들이 맡긴 의뢰, 총회장들 측에서 내려온 임무들.

거기다가 밀린 길드장 회의도 처리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운영하거나 간섭하는 민간, 군수 기업체의 개수는 한둘이 아니다.

일일이 경영 문제 재점검하고 전략 구축하고 실행에 옮기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게다가 어제는 북부 수장 주최의 청문회가 있었다.

총회장급 헌터만 무려 일곱이 참석했는데 여간 가관이 아니었다.

일일이 어르신들을 상대해드리느라, 그리고 부족한 판단력과 시세 분석력을 교정해드리느라 제법 애를 먹었다.

그나마 썩어도 준치라고, 다들 상위 헌터들이라서 이 정도 선에서 말이 통했지.

지능 자체가 하급 생물들인 정부 측과 대화했으면 복장이 터졌을 것이다.


“라이텔바흐.”


친우인 라울 길드장이 그의 어깨 위에 팔을 얹었다.


“왜 그렇게 또 울상이냐.”


“피곤하니 오늘은 내 개인 작업에만 집중하고 싶군. 놀아줄 시간은 없으니 너희 부대 쪽으로나 돌아가라.”


“또 이런 저런 잔소리를 들은 모양이군. 꼰대들이 뭐라고 책망했나?”


“늘 비슷하지 뭐. 너무 과격하고 공격적인 전선을 취한다는 둥, 자신들도 세계 정부의 폐위를 원하는 것은 마찬가지면서 지나치게 몸을 사린단 말이지.”


“어쩔 수 없지. 행동대장 격인 우리들이 독박 쓸 일 아니겠나.”


라이텔바흐가 권위를 얻고 난 뒤부터 세계 정부와 헌터계 간의 치열한 줄다리기는 얼추 헌터 쪽으로 기우는 추세였다.

이미 세계 정부가 고안해냈던 열댓 가지의 목줄은 거의 힘을 잃어가는 상태.

더욱이 이제는 라이텔바흐의 특기로 인해 실상 정부는 속수무책이 된 상태였다.


거시적 헬게이트 역학(疫學) 해석 능력.

헬게이트가 어떠한 패턴으로 어떠한 시공간에서 나타나는지를 이해하는 학문.

의외로 이론이 잘 정립된 덕에 요즘은 구체적으로 몇 년 몇 월 몇 시 몇 분 쯤에 어떠한 규모와 어떠한 유형의 헬게이트가 나타날지, 그것은 어떠한 종류의 어비씨언과 오염물들을 생성할지, 그 침식 반경은 어떠할지도 예견이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물론 그 이론이라 함이 인간과 컴퓨터의 연산력을 넘어서는 난이도라 일반인에게는 전달조차도 불가능했고 언어나 수식으로 논문화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기밀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헌터들의 독점 학문이었다.

더 정확히는 라이텔바흐와 몇몇 소수의 헌터들만 독점에 참여하였다.


라이텔바흐는 더 나아가 이 학문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기술도 있었다.

그는 어떤 헬게이트를 어떤 시점에 어떤 속도로 공략할 때 그것의 재발과 확산과 전염 패턴이 어떠한 식으로 발현될 지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런 고도의 예측 정보를 퍼즐처럼 조합함으로써 거국적 전략을 짤 수 있었다.


헌터들의 전력을 움직여 이러이러한 패턴과 순서로 공략전을 펼치자.

그러면 그가 원하는 방식대로 헬게이트들의 권세를 수세로 몰 수 있으리라.

나아가 그들을 몰아넣어 헌터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도 있으리라.


이런 마인드로 미래를 계산해온 라이텔바흐.

그는 기어코 헌터계 내부에서 강력한 영향력과 신임을 얻었고 이 계획들을 실천으로 옮길 실행력까지 획득했다.

물론 헌터들 내부에서도 그런 그의 강력한 행동력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주로 라이텔바흐보다 앞선 세대, 곧 상급 계급자들이 그러했다.


오늘 청문회에서 잔소리 아닌 잔소리와 회유의 말을 들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라이텔바흐는 최근 한 달 간 발생한 헬게이트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예측력과 전략적 행동을 십분활용하여 최선의 전략대로 몰아세웠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의 헬게이트 발생 패턴도 그가 미리 몇 달 간 준비해둔 안배들이 반영된 결과물에 가까웠다.

그리고 예외 없이 그 흐름들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헌터들과 일반 민중에게 장기적으로 훨씬 더 유리한 방향이었다.


이런 ‘의도적인 책략’과 ‘무시무시한 혜안’의 섬뜩함을 여실히 느낀 헌터 상부.

그런 그들이기에 라이텔바흐를 상당히 경계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도 이해 관계나 뜻에 있어서는 라이텔바흐와 합치했다.

그렇기에 따로 심하게 꾸중하거나 제지하지도 못했다.

그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잔소리만 놓는 수준.

라이텔바흐로서는 상급자를 존중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약간 한심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권력 회수가 필요해. 그들에게는 주도권을 맡길 수 없다.”


“마치 네가 그들에게 힘을 맡기기라도 한 투네. 뭐, 나야 이전 세대들보다 네 실력을 더 신임하긴 하지만, 그래도 직접 헬게이트와 정부를 상대로 동시에 싸우면서 헌터들의 조직 체계를 닦아온 선배들을 가볍게 여기진 말아달라구.”


정작 이렇게 말하는 라울의 태도도 권면보다는 농에 가까웠다.

그 또한 알고 있었다.

머지않아 헌터 권력의 무게중심이 저 사내에게로 수렴할 것을.

아마도 수장들과 그 부관들도 십분 이해하고 있으리라.


“하기야, 네가 그들에게 힘을 맡겼다는 말이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니네.”


“시끄럽다.”


불쾌했던 실험실에서의 지난 삶이 떠오른 라이텔바흐는 퉁명스레 되받아쳤다.

라울은 무마해보려고 장난스레 친구의 등을 두드렸다.


“왜 그래, 마. 알잖아.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너한테 목숨 빚진 거.”


“앞으로는 그런 저주스러운 역사는 없을 거다.”


“뭐, 차차 그런 세상으로 만들어가야지.”


두 번 다시 인간이 헌터로 만들어지는 광기어린 질서가 세워져서는 안 된다.

비극의 확산과 순환은 여기서 마무리한다.

헬게이트도, 독재자의 유산도, 궁극적으로는 함께 공멸시켜 무덤에 묻으리라.


라이텔바흐는 늘 다져왔던 결심을 다시금 마음판 위에 철필로 새겼다.

전에는 그저 야심으로서만 머금어왔던 결의였다.

이제는 그러한 세상을 만들고픈 현실적인 동기 또한 작게나마 느끼게 되었다.

소소하지만 소중한 인연들.

그런 인연들을 안심하며 쌓아갈 수 있는, 그리고 그것들의 삶을 악귀 서린 광란으로부터 보존해낼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얻고 싶었다.




*


모든 헌터가 전투에 특화된 것은 아니다.


여기서 헌터란 ‘안티-게이팅 파워’를 체내에 소유한 개조인간 전반을 뜻한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세 가지.

뇌와 융화된 ‘이터널 셀’.

안티-게이팅 파워라는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원료인 ‘안티-게이팅 에너지’.

그리고 미토콘드리아와 같이 신체의 구성 성분으로 융화된 외부체인 ‘나노봇’.


그것 이외에는 각기 획득된 특수 능력의 구성이 제각기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개성 탓에 그들의 재능 발현 방식은 여러 형태로 나뉘게 되었다.

그 가운데는 전투도 있었으나 제작이나 연성(鍊成)도 있었다.


그러므로 크게 클래스를 분류하면 셋이 된다.


워리어는 전투에 특화되었으며 안티-게이팅 파워를 직접 싸움에 사용한다.

최소 70% 이상의 헌터는 바로 이 워리어 클래스를 소유하였다.


둘째로, 알케미스트는 엘릭서라는 이름의 약을 만들어낸다.

엘릭서라 함은 기본적으로 지상의 물질에 특수 작용을 더하여 안티-게이팅 에너지를 첨가해 만든 약.

사실상 일반인에게는 큰 유용성이 없고 헌터에게만 쓸모가 있는 약이었다.

주 기능은 체내에 흡수된 다크포스를 분해하고 역전시켜 안티-게이팅 파워 생성력과 발현폭과 저장폭을 키우는 것이었다.

몸을 키우는 운동선수로 비유하자면 신체 회복제 겸 단백질 보충제와 비슷했다.

아울러 엘릭서의 종류는 다양했는데 이는 여러 부가 기능의 차이로 나타났다.

부 기능에는 신체와 정신의 회복, 오염물의 정화, 안티-게이팅 역량 강화 과정에서 축적된 불확정성의 해소, 전반적인 헌터 능력 개화 및 강화 등이 있었다.


엘릭서의 발명은 초기 세대 헌터들에게 씌워진 정부의 목줄을 크게 약화하는 데 적잖이 기여하였다.

그 전까지는 헌터들은 자신의 몸에 쌓이는 불확정성과 다크포스를 정화하고 소화하기 위해 인위적인 개조 실험을 계속해서 받아야만 했다.

정부는 이것을 그들을 옥죌 카드로 삼았다.

하지만 엘릭서를 발명해낼 기술력과 지혜를 얻은 헌터들이 나타났고 이들은 그것을 기회 삼아 자주성을 일부나마 쟁취해냈다.


물론 세계 정부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엘릭서의 제작 과정에서 알케미스트 클래스의 헌터들의 재능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특수 원료가 조달되어야 함을 알아차렸다.

이에 정부는 원료의 유통을 쥠으로써 알케미스트들을 쥐락펴락 하려 하였다.

그 시도는 초기에는 성공적이었으나 차차 알케미스트들도 조직적으로 대응책을 개척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물밑 씨름을 하는 과정에서 각종 권모술수와 상업적인 술책들이 난무하였다.

헌터들은 점점 세력이 강해졌고 다양한 엘릭서를 발명하였으며 무수한 데이터와 요령을 축적했다.

그리고 어느덧 엘릭서의 정교함, 풍부함, 특수성은 헌터 이외의 인간들의 인지가 닿지 않을 수준으로 상향되었다.



마지막 클래스는 바로 블랙스미스.

그들은 헌터만 이용할 수 있는 특수 무기를 만드는 재능을 소유했다.


본래 헬게이트 속의 싸움이란 인간에게 철저하게 불리한 것.

그 안에서는 물질계의 요소들은 모두 약화되거나 부식되거나 고장난다.

물론 침식된다고 당장 모든 요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헬게이트 또한 지성을 지니고 있기에 최소한 자신을 향하여 치명적인 적대성과 위협을 띤 것으로 보이는 요소들만은 부식의 영향 아래 확실히 둔다.

무기는 예외없이 여기에 해당되었다.

무장 시설은 물론 심지어는 대량살상 무기나 핵무기마저도.


그랬기에 3세대 중반까지는 헌터들도 토벌 시 맨손 싸움에 의존해야 했다.

그것은 절대적인 전력난을 의미했다.

모든 헌터들은 빠듯한 조건 속에서 바삐 일을 하며 노예처럼 헬게이트들을 정리해야 했다.


이런 상황을 한 순간에 뒤엎은 것이 바로 헌터 웨폰의 발명이었다.

그것은 가히 불이나 전기의 발명에 필적할만한 혁신이었다.


안티-게이팅 파워를 증폭하고 강화할 무기가 만들어지면서 헌터들의 전력은 순식간에 수십 배, 아니 수천 배 이상으로 상향되었다.

전투력의 상향으로 인해 공략 속도는 배 이상으로 빨라졌다.

이제는 현존하는 헌터 전력만으로 세계 전체의 헬게이트들을 능히 감당하고도 남을 수준이 되었다.

그것도 헬게이트가 가장 창궐했던 시점의 증식력이 계속해서 유지된다고 가정한 상황에서.

헬게이트들의 위세가 꺾인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이는 잉여 전력의 생성으로 이어졌다.

이제 헌터들은 싸움을 여유로이 즐기면서 동시에 부업에 전념할 기회를 얻었다.

덕분에 그들은 정치, 경제, 문화, 산업, 학문의 영역을 마음껏 장악하였다.


아울러 이제 그들은 자신의 전력을 마음껏 속일 수 있게 되었다.

헌터들의 무기는 오로지 헌터만 사용할 수 있다.

안티-게이팅 파워가 없는 일반인 학자는 그 무기의 분석조차 불가능하다.

또한 일반인은 헬게이트 속에 들어가 상황을 감시하지 못한다.

관측 기구조차도 그 속에서는 제 기능을 발하지 못하니까.


그러므로 헌터들은 자신의 잉여 전력을 ‘숨김 패’로써 감춰둘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명분 삼아서 정부의 명령을 제멋대로 불복할 수 있게 되었다.


헌터들은 헬게이트 문제에 있어서만은 정보의 절대적 우위에 있는 자.

어떤 헬게이트가 더 위험하며 어떤 헬게이트에 더 전력을 투입해야 하는지,

그리고 헬게이트와 헌터의 전력차가 어떠한지,

이런 정보들을 파악해서 공언해줄 사람은 오로지 헌터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만일 헌터들이 담합해서 정보 흐름을 유리하게 통제하면?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의 조언을 따라야만 했다.


이는 곧 헌터들이 자신이 원하는 영역에 원하는 수준으로 전력을 배치할 기회가 생겼음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선택적으로 사냥의 순서와 방법을 정할 권한을 얻은 것이다.

요컨대 그간 목줄을 걸었던 세계 정부를 옥죌 ‘복수로서의 목줄’이었다.


이 세 클래스는 배타적인 것은 아니었다.

고로 둘 이상의 클래스를 겸하는 헌터들도 더러는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하나의 클래스만을 지닌 자들보다 개별 재능은 떨어졌다.


단 하나의 예외.

클래스 세 개를 모두 소유하였고 그 전부에 대해 최고의 재능을 자랑하는 자.

라이텔바흐 벤 키르헤른스트만을 제외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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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기대와 불안 NEW 15시간 전 1 0 14쪽
56 제안 24.09.03 4 0 15쪽
55 교활한 광전사 (2) 24.08.30 5 0 13쪽
54 교활한 광전사 (1) 24.08.29 6 0 13쪽
53 조우 24.08.25 7 0 17쪽
52 레기온 24.08.22 8 0 16쪽
51 다중심연융합체 24.08.17 8 0 11쪽
50 극강 장벽 24.08.15 8 0 11쪽
49 이변 (2) 24.08.12 7 0 13쪽
48 이변 (1) 24.08.10 7 0 12쪽
47 마무리 단계 24.08.07 9 0 12쪽
46 독립운동가 24.08.04 8 1 12쪽
45 예측력의 한계 24.07.31 10 0 12쪽
44 에일린 (2) 24.07.28 9 0 13쪽
43 에일린 (1) 24.07.25 11 0 11쪽
42 재난 예보 작전 (3) 24.07.22 11 0 13쪽
41 재난 예보 작전 (2) 24.07.17 10 0 13쪽
40 재난 예보 작전 (1) 24.07.17 12 0 12쪽
39 퇴각 24.07.05 15 0 14쪽
38 정부군 대 헌터군 (3) 24.07.02 12 0 15쪽
37 정부군 대 헌터군 (2) 24.06.29 10 0 12쪽
36 정부군 대 헌터군 (1) 24.06.27 12 0 13쪽
35 뒷통수 24.06.24 10 0 12쪽
34 최후 일격 24.06.22 10 0 11쪽
33 지하 던전 6층 24.06.19 11 0 13쪽
32 지하 던전 5층 (3) 24.06.17 11 0 12쪽
31 지하 던전 5층 (2) 24.06.16 11 0 14쪽
30 지하 던전 5층 (1) 24.06.14 12 0 13쪽
29 음모와 술수 24.06.13 10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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