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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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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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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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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7,372

작성
18.10.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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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귀향(歸鄕)(5)

DUMMY

도서실에 마련된 연구실. 온갖 모양의 플라스크와 약품제조 관련 제품들이 한쪽에서 무슨 실험을 하고 있는듯 부글부글 끓어대며 연기를 내고 있었고 다른 쪽에는 커다란 기계들이 벽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 사이로 대여섯명의 흰색가운을 입은 과학자들이 왔다갔다하면서 뭔가를 적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면 꽤 넓은 공간이 나타났고 그곳에는 분주하게 뭔가를 만지고 있는 인물, 아니 괴물이 있었다. 에볼라는 연신 눈을 굴리며 시험관안에서 증식을 하고 있는 괴생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험관안에 있는 것은 예전에 봤던 수라지란이 축소된 모양으로 마치 심장처럼 두근두근 뛰는 것까지 유사했다. 한쪽 구석에는 좀비들 시체가 한가득 쌓여 있어 특유의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벌크인 에볼라는 그런 냄새를 느끼지 못하는지 아무렇지 않게 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 방에는 그 외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참을 시험관을 쳐다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던 에볼라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시험관에서 수라지란을 꺼내들더니 좀비들의 시체쪽으로 그것을 던져버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살아있는 생물처럼 조그만 수라지란에서 촉수들이 솟구쳐 좀비 시체들에게 들러붙는다. 순식간에 수십개의 촉수들이 수십구의 좀비시체들과 연결되더니 말그대로 빨대처럼 좀비들의 체액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불과 일이분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체액을 빨린 좀비들은 가루처럼 부서지더니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바닥에 모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런 와중에 몸집을 불린 수라지란은 건물의 외벽에 달라붙어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일련의 과정은 고어물이나 B급 호러물에서나 보일법한 장면이지만 에볼라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지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는 모습이었다. 마치 인간의 표정을 따라하듯이 그렇게.

" 저게 완성된 수라지란인가? "

그런 에볼라의 뒷편에서 갑작스레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이전부터 그 자리에 존재했다는 듯이 평온한 목소리였다.

" 네, 바위님. "

에볼라 역시 별다른 놀람없이 본래부터 그가 관전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대꾸했다.

" 근데 저 알에서는 뭐가 나오는거지? "

" 가장 기본적인 오르크가 배출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실패시··· 벌크가 나옵니다. "

실패시라... 자신들의 정체성이 실패로 인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건가? 문득 바위는 궁금한것이 생겼다. 아니 본래 이것을 묻기 위해 이곳까지 온것이었다.

" 근데 누가 저 오르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거지? 여긴 적색 바코더.. 가 없는데 말야. "

한두명있다. 일우외에.. 하지만 그는 귀찮다고 도망칠께 뻔했고 다른 이들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위험했기에 이후 알에서 나온 괴수들의 통제방식이 궁금한 것이었다.

" ··· 안그래도 그 문제때문에 찾아가려 했습니다. 바위님. 통제할 인원의 혈액이 필요합니다. 일반인이 아닌 사이퍼의··· "

당연히 그것을 물을 줄 알았다는 듯이 대답을 하는 에볼라였다. 바위는 왠지 에볼라, 벌크들이 자신의 피를 원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 그래? 그럼 사스를 여기로 보내주지. 근데 누구의 혈액인지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건가? "

" ··· 그건 솔직히 알 수가 없습니다. 아직 그것에 대한 연구자료가 없습니다. "

바위는 에볼라이 대답에 잠시 고민을 하다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것을 선택했다.

" 흠, 그럼 실험을 해보지. 혈액을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거지? "

그러자 잠시 멈칫한 에볼라가 막 만들어진 수라지란을 가리키며 말했다.

" 저곳에 뿌리시면 됩니다. 저기 입부분에.. "

도대체 어디에 입이 있다는 건지 알수 없었지만 바위는 여러 번 봐왔던 수라지란에 다가서 자세히 살펴보자 똥구멍처럼 보이는 곳이 하나 있었다. 설마 이게 입인가?

고개를 돌려 에볼라를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는 제스처를 보내왔다. 바위는 그 위로 손가락을 하나 뻗어 의지를 싣자 피가 손가락 끝에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뚝뚝 거리며 금세 떨어져 내렸다.

수라지란은 바위의 피를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게걸스럽게 꿈틀거리며 흡수하기 시작했고 어느정도 흡수를 하자 피처럼 붉은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바위는 피를 멈추고 물러서며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에볼라에게 물었다.

" 이건 무슨 현상이지? "

" ··· 모르겠습니다. 처음보는 현상입니다. "

모르겠다는데 더 이상 추궁할 가치를 못느낀 바위는 조금더 기다리자 붉은 빛이 수라지란에 흡수되듯 사라지며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 수라지란은 크게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조금 붉은색이 짙어져 있었고 모양도 살짝 심장에 더 가깝게 변해 있었다.

" 언제쯤 오르크를 배출하는 거지? 언제까지? "

바위의 질문에 잠시 넋을 잃고 수라지란을 쳐다보던 에볼라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 대꾸를 했다.

" ··· 기본적으로 사오일주기로 생산을 하지만 기본적인 재료, 먹이를 계속 수급해줘야 합니다. "

에볼라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좀비시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 모습에 바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중국에 좀비시체는 커녕, 그 조각조차도 거의 없었는지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 그럼 오일뒤에 다시.. "

그때였다. 수라지란이 갑작스레 두근두근 거리는 횟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뭔가가 일어날것만 같은 두근거림이었다.

" ··· 하지만 첫번째 배출은 그 시기를 특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

에볼라의 말이 채 끝이 나기도 전에 아래쪽 똥구멍, 아니 자궁이 열리며 엄청난 크기의 오르크를 토해냈다. 중국에서 본 오르크는 신장 이미터에 전신이 근육질 몸매를 가진 갈색빛깔의 괴물이었지만 막 태어난 오르크는 품종이 다른듯 붉은색이 짙은 피부에 터질것 같은 근육이 예전의 오르크의 두배는 되어 보였고 키도 한뼘이상 커 보였다. 당연히 얼굴은 뭉개진 상태로 눈코입은 있지만 그 배치가 인간처럼 정확하지 않은 말그대로 괴물의 형상이었다.

크르륵. 바닥에 철푸덕 뱉어지듯 배출된 그 오르크는 잠시 버둥거리다 금새 중심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확실히 바위보다 커보였다. 근육은 도저히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그런게 아니었고 뭉개진 두눈에는 붉은 빛이 서려있어 쳐다만 보고 있어도 주눅이 들 정도로 위압감이 엄청났다.

그렇게 몸을 일으킨 상태로 바위를 보면서 가만히 서 있자 호기심이 든 바위가 다시 물었다.

" 이 오르크를 어떻게 통제를 하면 되는거지? 말로? 아님 생각만으로도 가능한가? 그리고 먹이는 뭘 먹지? "

" ··· 그건 지금부터 시험을 해봐야 할듯 합니다. 저희도 이게 처음 연구결과물이라, 그리고 먹이는 좀비나 인간을 먹고 활동을 유지합니다. "

먹이의 경우는 익히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바위는 입을 열어 명령을 내려보았다.

" 앉아. "

하지만 멀뚱멀뚱 바위를 보며 멍청하게 서 있는 오르크는 반응이 없었다. 말로 이것저것 지시를 했지만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오르크에게서 눈을 떼며 에볼라를 바라봤다.

" 아직도 방법을 못찾은건가? "

바위는 이제 이 벌크라는 생명체는 자신들끼리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결론을 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잠시 시간을 벌어준 것이었고 지금쯤 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 예상하고 말을 걸었다.

" ··· 일단 텔레파시나 저것과 연결되는 의식을 찾아야 합니다. 일단 상대의 눈을 보고 정신을 집중해 연결시켜 보십시오. "

바위는 그것이 무슨말인지 몰랐지만 에볼라가 말한대로 오르크의 붉은 눈을 바라보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바위가 가장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집중이었고 그것을 통한 수련을 그 동안 해왔었기에 금방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자 무엇인가 대뇌피질을 간지럽히는 느낌이 잡혔다. 그리고 그것에 집중하며 의식을 보냈다.

' 앉아라. '

그러자 오르크가 무릎을 굽히며 그 자리에 앉았다. 성공한 것이다.

" 자율의지는 없는건가? 단순 명령만 가능한거야? "

바위는 주저앉아 있는 오르크에게서 눈을 떼며 자신의 옆에서 그런 오르크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에볼라에게 시선을 주었다.

" ··· 아닙니다. 지금은 본능만 있는 유아기정도로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의 습득을 통해 인간의 나이로 따지면 일곱살정도 수준까지는 사리분별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

일단은 학습을 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고개를 끄덕인 바위는 다음 실험을 위해 오르크에게 명령을 내렸다.

' 나를 공격해라. '

의지가 전달되자 앉아있던 오르크가 몸을 튕기며 순식간에 바위를 향해 쇄도해왔다. 그 근육에서 나오는 순발력은 압도적이었다. 거기에 더해 바위를 후려쳐오는 주먹의 위력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탁! 파팍! 쾅! 바위는 그런 오르크의 주먹을 살짝 쳐내며 중심을 흩트려뜨리고 가볍운 로우킥과 뒷목을 강타한 수도만으로 오르크를 바닥에 처박히게 했다. 오르크는 부숴진 관절과 반쯤 부러진 뒷목에도 호전성을 잃지 않고 다시 달려들려고 발버둥쳤지만 역부족이었다.

' 그만! '

얌전해진 오르크를 반듯하게 눕히며 바위가 결론을 내렸다.

" 확실히 중국에서 봤던 오르크와는 다르군. 힘, 스피드, 뼈대.. 그리고 회복력까지 말이야. 더 뛰어나다는 말이지. "

누워있던 오르크가 눈에 보일정도로 자신의 몸을 자가치료하는 것을 보며 바위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 정도면 사이퍼들의 평균적인 자가치료만큼 뛰어나보였다.

" ··· 괴수들의 자가치료의 경우는 보통은 우리, 벌크들을 섭취함으로써 그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이곳의 경우는 좀비시체를 섭취해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을것을 판단됩니다. "

에볼라가 아무렇지 않은듯 그런 말을 내뱉었다. 아마 그 자신들은 그런 운명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면에서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인간들과는 차별화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 이 오르크들이 인간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단순히 명령만 내리면 되는 건가? "

" ··· 그들의 연구결과로는 보통 본능이 강하기 때문에 강력한 암시가 아닌 이상 본능을 억누르기 어렵다고 나와 있습니다만, 바위님의 경우는 솔직히 잘모르겠습니다. 데이터가 없는 상태입니다. "

그렇게 말한 에볼라는 생선같은 눈깔을 돌려 바위를 올려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 그리고 확률적으로 실패작이 태어납니다. 그게 바로 우리 벌크들이고 당연히 저 수라지란에도 벌크가 태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

" 그래서? "

그건 바위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저 수라지란에 자신의 혈액이 들어갔다는 사실이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 ··· 일단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연구를 해봐야 알겠지만.. "

" 알았어. 계속 연구해봐, 그리고 이 오르크는 내가 데려가지. "

바위는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오르크라서 그런지 왠지 호감이 가는 첫번째 오르크를 데려가 여러가지 실험을 해보려는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기본적인 박투를 통한 전투술을 가르쳐 볼 생각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게 된다면 의외의 곳에서 강력한 아군을 만들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긍정적인 결과였다.

이후에 태어날 결과물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벌크중에서도 특이개체는 기본적으로 괴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에볼라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벌크의 왕의 자식과 비슷한 존재라고 할 수 있었기에 그런 능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혜는 바위모임에 합류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자신이 천사고아원 출신에 바위를 알고 있다는 사실과 지윤이가 좀비백신을 만들 수 있는 중요인물인 덕분에 만월회측에서 꽤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하지만 바위의 소식을 듣고 이곳 육사쉘터로 자신만 옮겨 온 뒤로 원장님과 아이들을 만나 해후를 나누고 지금까지 잘 적응하고 있었다. 비록 옛 자신의 직원인 명환이와 지윤이는 만월회에 남기로 했지만 아쉬운 생각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남들과 다른 대우를 받으면서 회의에 참가를 하던 도중에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 나와 의견을 제시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이렇게 다시 북한산쉘터로 오게 되었다.

이곳은 여전했다. 아니 더 놓이 올라간 철책과 좀비의 접근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고자 전면에 흙벽을 쌓은 모습은 그녀도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이전 신세계가 저지른 좀비공습이 이들에게 하나의 트라우마로 자리잡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자신들을 꽁꽁싸매고 쉘터안에서 틀어박혀 자신들만의 환경을 만들어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양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싫었다. 바로 지금처럼.

" 뭐? 아이들과 여자, 노인들을 데려가겠다고요? 그럼 청소나 심부름, 허드렛일은 누가하죠? "

당장 저 뻔뻔한 면상에 마시고 있는 뜨거운 차를 뿌리며 욕을 한바가지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자신의 지위와 목적을 생각한 인혜는 두눈을 감으며 화를 식혔다.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이는 여자는 예전에 무슨 시의원인가 구의원인가 했다던 전형적인 뚱뚱한 아줌마였다. 여전히 찐한 화장에 뿔테안경은 언발란스했고 욕심이 더덕더덕 붙은 퉁퉁한 얼굴은 꼴보기가 싫을 정도였다.

인혜는 내심 다희나 사스를 데려오지 않은 것을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들이 여기까지 와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같이 온 다희팀의 춘자와 사스팀의 메두사, 두 여자사이퍼들 역시 예전과 달리 자신들 팀장 성격을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나마 춘자는 합류한지 얼마되지 않아 정상적인 사고를 아직은 하고 있었지만 초창기 멤버인 메두사는 제2의 사스로 불릴 만큼 반쯤 미쳐있었다. 최근 사스가 얼굴에 긴 흉터를 달고 복귀를 하자 자신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면서 이마부터 턱까지 칼로 자기 얼굴을 찢어버린 여자였다. 덕분에 지금 그 흉터가 얼굴을 정확히 사선으로 가르며 나 있었고 쉘터인물들은 그녀를 슬슬 피하는 실정이었다.

그런 메두사가 자신의 무기 발톱너클을 착용하면서 서울여성연합의 위원장이라고 소개받은 그 뚱뚱한 중년여인을 노려봤다.

" 그래서? 못 보내겠다는 거야? "

그런 메두사의 위협적인 모습에 움찔한 위원장은 자신이 있는 이곳, 쉘터본부에 경비병력들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소리 높여 주장했다. 자기 목소리가 외부까지 전달되기를 바라듯이.

" 그래요! 왜요! 절 아무리 위협해도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아요. "

그러자 메두사의 머리가 휘날리며 수백수천의 뱀으로 변하면서 사방으로 휘날렸다. 그녀로써는 지금 엄청난 인내심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바위의 지시는 경거망동하지 말고 인혜의 호위와 결정을 따르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미쳐도 바위의 지시를 거역할 만큼은 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먼저 사스에게 토막쳐서 저 어디엔가 뿌려져 거름이 되어 있었으리라.

그런 모습을 질린 얼굴로 쳐다보던 위원장은 급히 몸을 일으키며 변명하듯이 말하며 문을 나섰다.

" 여튼.. 그렇게 알고, 난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

채 말릴새도 없이 급하게 나가는 위원장의 드럼통같은 뒷태를 보던 인혜는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었다. 대화로써는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 것이다.

" 저,저 잠시 화장실 좀.. "

어느새 휘날리던 뱀들을 진정시켰는지 검은색 머리카락으로 돌아온 메두사가 두눈을 번뜩이며 이야기를 했지만 인혜가 고개를 저었다.

" 안돼요. 여기서 저 사람 하나 죽인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방법을 찾아야.. "

" 인혜씨. 그럼 이 방법은 어떨까요? "

인혜의 뒷편에 서서 자신의 몸길이보다 큰 태도(太刀)를 만지고 있던 춘자가 문득 입을 열었다.

" 어짜피 이 쉘터의 이런 상황이 된 것은 만월회의 무책임이 가장 큰 이유에요. 몇만명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방치하듯이 내버려두니 이런 일이 벌어진거 아니겠어요. "

" 그래서요? 그래도 만월회에서 이 사람들을 살린거잖아요. "

" 그렇죠. 이들은 지금 우물안에 같혀서 그 작은 구멍으로 하늘만 보고 있는 개구리랑 다를께 없어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해요. 당장 지원하고 있는 식량을 반으로 줄인다면 이들은 가장 쓸모없다고 여기는 사람들부터 쳐내기 시작할꺼에요. 그게 누굴까요? "

춘자의 말은 명확했다. 단순히 문제없이 살아가는 현 상황에서 자신들의 참견은 귀찮고 변화를 싫어하는 인간의 습성상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인 것은 당연했다.

" 차라리 그럴바에는 그냥 협박하는게 낫지 않나? 만월회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당장 내일부터 배급이 없으니 우리를 따라라하고 말야. "

여전히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던 메두수가 춘자의 말에 딴지를 걸었다.

" 아냐, 이들을 한꺼번에 우리 쉘터로 옮기는 건 문제야. 그만큼 남는 자리도 없을뿐더러 그 혼란을 수습하기가 너무 어려워. 차근차근 흡수를 해야하기 때문에 우리가 나온거지. "

" 흥, 알아서 해. 난 인혜씨 호위로 나온거니까. "

메두사는 타당한 춘자의 말에 할말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주먹에 낀 너클을 만지작 거렸다.

" 춘자씨, 말이 맞아요. 이들에게 고통을 주어서 설득하기 싫지만 방법이 없네요. 만월회측과 이야기를 해서 단계적으로 식량지원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겠어요. "

" 그만큼 우리에게 그 지원을 돌리는 방향으로.. "

춘자가 거기에 말을 곁들였다. 덩치는 곰같은 여자였지만 눈치가 여우같은 춘자였다.

" 근데, 여기 직원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상한 말을 들었어요. "

" 뭐죠? "

" 어린아이들과 여자, 노인들 위주로 어느날 갑자기 모습을 감추고 안보이는 경우가 늘었다고.. "

" 그게 무슨..? 여긴 인원관리를 안하는 건가요? "

" 네, 수만명의 사람을 관리하는게 보통일이 아니라서 우리같이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이 아닌이상 자연발생적인 사회를 만드는게 이들의 관리지침이라고 하더라구요. 쉽게 말해 귀찮으니까 너희들끼리 해결해라 정도? "

춘자의 말에 곰곰히 생각을 한 인혜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 그럼 사라진 인원이 있다고 눈치챘다는 말은 이미 상당히 많은 인원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말이네요. 흐음.. 한번 조사해 볼 가치가 있어요. 지금 상황에서는 특히.. "

북한산 쉘터는 북한산을 끼고 있는 캠핑장과 북한산 국립공원의 넓은 부지에서 만들어진 임시쉘터의 모습이었다. 가까운 곳에 계곡과 한강지류의 강도 흐르고 있어 이만큼 쉘터를 만들기에 좋은 장소도 없었다.

그렇기에 조금만 들어가도 산으로 이어져 있었고 좀비들이 북한산을 넘어 이곳까지 흘러들어오는 경우는 없었기에 많은 이들이 산속에 거처를 마련하고 있을 정도로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특히 최근 좀비들의 공습이 있고 난 후부터는 아예 산속에 숨어드는 사람들이 늘어나 있었다.

배식을 할때는 내려왔다 다시 숨어드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인원파악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통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도 그 나름대로 자기방어수단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무슨 사고가 생겨도 알수도 없고 대처도 할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어떤 사건이 일어난 기색은 확실히 느껴지는데 원인을 알 수 없고 물증도 없는 그런 경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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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구조작전(7) +1 18.09.19 659 18 20쪽
94 구조작전(6) +1 18.09.18 684 17 19쪽
93 구조작전(5) +1 18.09.17 664 17 20쪽
92 구조작전(4) 18.09.15 676 17 19쪽
91 구조작전(3) +1 18.09.14 698 1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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