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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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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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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7,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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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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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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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24쪽

The Gear(2)

DUMMY

" 휴우. 바위 너 요즘 너무 과격해. 그게 능사는 아니야. "

제비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이 이상의 말은 잔소리라는 것을 깨닫고 화제를 전환했다. 이미 춘자와 지수는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지수의 응어리가 풀렸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아마 그녀는 다시 칼을 들고 차돌을 찾아가지는 않으리라.

무엇보다 걱정은 이런 사실이 다희나 사스의 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엠바고를 했지만 안심할 수 없어 그 당시 관련된 대원과 춘자등에게 신신당부를 한 상태였다.

" 하여튼, 갔다 온 일은 잘 처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만월회측에서도 감사말을 전하더라. 물론 댓가는 확실히 받아냈어. 이젠 우리 쉘터를 중심으로 북동부가 안정화되어가고 있어. 별다른 사건사고도 없고··· 무엇보다 좀비들의 습격도 많이 줄어들었어. 고맙다, 다 네 덕이야. "

제비가 또 코를 만진다. 이 녀석은 자신의 버릇을 모르는 건가?

" 본론이 뭐야? 사족이 너무 길어. "

제비는 갑자기 찌르고 들어가는 바위의 말에 화들짝 놀란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 말을 건낸다.

" 사실은 만월회에서 또 도움을 요청해왔어. 휴우.. 본래라면 내 선에서 잘랐어야 하는데 말야. 좀비감염 백신이 있다고 해서.. "

" 백신? 벌써 그런게 개발된건가? "

" 뭐, 그쪽이야 이해할 수 없는게 한두개가 아니니까. 근데 좀비를 사람으로 되돌려주는게 아니라 좀비에게 물려도 좀비감염이 되지 않는 역할만 한다고 해. 좀비에게서 공격을 안받는 것도 아니고.. "

" 흠. 그건 당연한.. "

바위는 이미 좀비가 된 사람들은 이미 한번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실제로 좀비들을 잡을 때 생각보다 많은 피가 튀지 않는다. 혈액은 이미 응고되기 시작했고 심장을 비롯한 모든 장기들은 활동을 정지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메카니즘인지 몰라도 그럼에도 인간일때 보다 뛰어난 신체능력을 보여주는 좀비는 불가해한 존재였다.

" 그래서, 그걸 우리측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부탁을 해왔어. 근데··· "

" 왜? 그건 무조건 우리가 얻어야 할 물품이잖아. "

제비가 말을 흐리자 바위가 먼저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하지만 제비는 여전히 표정을 구긴채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의아한 모습이지만 바위는 기다렸다. 마침내 결정을 내린듯 천천히 입을 떼는 제비였다.

" 그래, 우리가 얻어야 할 물품인건 확실하지. 문제는 그 댓가로 우리측에서 중국으로 지원을 나가는 거야. 누군가를 구하면서 그들이 맡은 임무까지 완료하는 거지. 너도 알다시피 중국은 너무 위험하고 시간도 오래걸려. 그래서 난 이번 부탁은 웬만하면 거절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야. 사장 아저씨도 그렇게 동의했고.. "

제비의 말을 끝까지 들으면서 침묵을 유지한 바위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제비도 그런 그를 보며 별다른 첨언을 하지 않은채 기다렸다. 결국은 바위가 결정해야 할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바위의 고심은 꽤 길었다. 하지만 결국은 결정을 내린 바위가 조용히 입을 뗐다.

" 어쩔 수 없어. 그들이 내민 조건이 너무 강력해. 우리에게 꼭 그 백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도 알고 있잖아. 결국은 그들에게 끌려다닐 수 밖에 없어. 하지만.. "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만월회의 부탁을 가장한 명령도 말이다. 이렇게 끌려다니는 것은 분명히 좋지 않은 일이다. 이건 제비도 알고 사장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런 바위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제비는 그런 바위의 마음을 느꼈는지 더욱 열정에 불타올랐다. 예전엔 단순히 생존에 급급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조직을 이끌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마무리를 지은 바위는 제비의 집무실을 벗어나 그 동안 소홀했던 형과 고아원 아이들의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국에 갈때까지 짧은 시간이나마 그들과 함께 보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 중국? 거기 망했잖아? "

사스가 어디서 구했는지 날카로운 수리검으로 손톱을 다듬으며 벤치에 앉아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의 옆에 메르스가 개처럼 엎어져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대머리, 문어가 두손을 공손히 모은채 무언가를 보고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더러운 것들이 씻겨 내려간 듯 청명한 하늘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젠 완연한 가을 날씨로 돌아와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본래라면 지금쯤 개학을 한 학교들은 분주히 학생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그 학생들은 얼굴에 깊은 수심과 짜증을 드리운채 학교로 향할 시간이었다.

지금은 모든게 과거의 이야기일뿐. 멀지 않은 곳에 기합소리가 울려퍼지는 이곳은 육사 쉘터의 한 공원이었다.

" 또 만월회? 그것들이 또 바위를 그곳에 보내려고 한다는 말이지? "

사스가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되물었다. 저런 모습 뒤에는 항상 누군가 죽어나가거나 팔다리가 잘렸기에 눈을 내리깐 문어가 더듬더듬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옆에 엎드려 있던 메르스도 더욱 위축된 모습으로 몸을 말았다.

" 그래서 누구랑 언제 출발한다던? "

" ··· 그건, 아직 말씀을.. 지,지금 당장 알아오겠습니다! "

사스가 수리검을 내려놓고 마체테를 잡아가자 불에 덴 것마냥 화들짝 놀란 문어가 급히 말을 바꿨다. 그런 모습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 사스를 보며 뒤로 물러서며 급히 어디론가 뛰쳐나갔다. 홀로 남겨진 사스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 마음에 안들어. 그 만월회의 회주인지 뭔지 그년 가랭이를 찢어··· 설마 다희년도 이 사실을 안거 아냐? "

아니 분명히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을것이다. 무슨 수를 썼는지 항상 그년은 자신보다 정보를 빨리 얻었기 때문이었다.

" 이럴때가 아니네. 준비를 해야겠어. 다희년이 선수치기 전에.. "

벤치에서 몸을 일으킨 사스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메르스를 무시한채 어디론가 급히 걸음을 옮기는 그녀였다. 중국은 결코 가까운 옆동네가 아니었다. 이번은 꽤 긴 여정이 되리라는 생각에 준비할 것이 많은 사스였다. 당연히 자신도 그 여정에 참여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그녀였다.

사스가 처음 찾은 사람은 도끼였다. 요즘 뭔가를 만드는데 재미를 붙였는지 쉘터내에 있던 큰 창고를 혼자 차지하고 온갖 기계를 들여다 놓은 상태였다.

깡깡! 촤르륵! 우웅! 대형선반과 사용처를 알 수 없는 기계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는 이곳은 도끼의 작업실이었다. 그 외에 몇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는데 모두 기술자들로 기계들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들 중에 일우도 끼여 있는 모습이었다.

갑작스런 사스의 방문에 가장 먼저 눈치 챈 일우가 슬그머니 자리를 떴고 그녀가 작업실에 들어와서야 발견한 기술자들은 동시에 석상처럼 몸이 굳었다. 한참 뭔가를 잡고 씨름하고 있던 도끼는 그런 그녀를 보고서 어색하게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사스, 무슨 일이야? 또 무기가 부러졌나? "

슬쩍 그녀가 가지고 다니는 무기를 훑어본 도끼가 차분하게 물었다. 그녀가 가지고 다니던 무기들에 이상이 보이지 않자 도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스의 말을 기다렸다.

" 이번에 멀리 원정을 갈 것 같아. 새로운 무기가 필요해. "

" 원정? 어디를? 어떤 무기를 찾는데? "

일단 창고안에 사스를 계속 세워놓을 수 없었던 도끼는 그녀를 이끌고 자신의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둘은 창고 한쪽에 마련된 밀폐된 공간, 기술자들이 내뱉는 안도의 한숨을 뒤로하고 도끼의 집무실이라 불리는 곳에 둘이 함께 들어섰다.

그곳에 걸린 온갖 무기와 도면, 설계도는 도끼가 얼마나 이일을 좋아하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사스는 대충 간이의자를 꺼내들고 철푸덕 앉아 차분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무기를 고르거나 설계할때는 평상시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도끼만 알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 정확히 말해봐. 어떤 무기를 말하는 거야. "

" 흐음··· 설명하기에 좀 애매한데. 일단 내 능력이 속도등 생체시계를 가속시키는 거잖아. 내 전투 스타일도 알고 있을꺼고. 이번에 느낀 점인데 일대일도 좋지만 다수를 상대할 때 사용할 무기가 있어야 할꺼 같아. "

잠시 그녀의 말을 들은 도끼가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그녀의 스타일상 능력과 전투센스등은 일대일에 특화되어 있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바위처럼 무식한 쇠사슬을 휘두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만큼 위력도 안나올뿐더러 오히러 그녀의 장점을 죽이는 결과일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도끼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 휴우, 도대체 너희는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

" 응? 무슨 말이지? 나 말고 다른이가 와서 비슷한 말을 한거야? 혹시 다희? "

" 니들 같이 나가는거 아냐? 똑같은 말을 하던데? "

빠드득.. 이를 세차게 갈아댄 사스가 어딘가를 노려보며 번뜩였다. 또 한박자 늦은 자신을 탓하는 것인지 선수를 친 다희를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 그래서··· 그년은 뭘 부탁했어? "

" 뭐긴. 너랑 비슷한 것을 말했지. 새로운 무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생각 중이야. "

" 으득. 무조건 그년보다 빨리 내것을 만들어줘. 알았지? "

괜히 중간에 껴서 낭패한 기색이 역력한 도끼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 그럼 잘 부탁해. "

그렇게 말한 사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나섰다.

" 야, 야! 니 무기를 어떻게 만들라고? 엉? 말이라도 해주고 가! "

도끼도 벌떡 몸을 일으켜 서둘러 따라 나섰지만 이미 사스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 야, 이씨.. 쌍년들아. 니들끼리 싸워. 날 끼우지 말고! "

툭. 버럭소리치는 도끼의 어깨를 누군가 짚는다. 화들짝 놀란 도끼는 동그래진 눈으로 급히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 일우가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도끼를 쳐다보며 어깨를 두드려주고 있었다.

" 쯔쯧, 친구. 그러니까 미친년들은 피해다녀야 돼. 고생해라. "

" 어디가, 너도 작업해야지? 왜 나만 죽을꺼 같아? "

" 뭐? 거기에 왜 나를 끌어들여. 이 새꺄! 이곳 책임자는 너라고! "

" 흥! 그게 니 맘대로 될까? 어짜피 넌 나와 공동운명체야. 도망갈테면 가봐. 그럼 너때문에 작업을 못했다고 떠들고 다닐테니까. "

" 뭐, 뭐..? 이.. 이.. "

어짜피 일우와의 싸움은 자신의 승리로 끝날것이 확실했기에 도끼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집무실로 쏙 들어가며 말했다. 반드시 일우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최근 전투를 직접 본 그의 조언이 없이는 그녀들에게 맞는 무기를 설계할 수 없기에 당연한 것이었지만 얄미운 일우를 비꼰 것이다.

" 최소한 일우 넌 안돼. 새꺄, 넌 먹이사슬의 최하위야. "

여전히 멍한 눈빛으로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일우는 혼란스런 얼굴로 그자리에 못박혀 서 있었다.


오랜만에 모임 간부들끼리 식사자리를 마련했다. 노회한 사장의 의견으로 중심축인 바위를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묵고 있는 신축 생도회관을 개조한 이곳은 다시 한번 리모델링을 한 상태였다. 외부에 보여주는 곳이라는 의미와 권위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사장이 주도해 바꾼 곳으로 지금 이시대에 맞지 않게 화려했다.

지상 3층 지하1층인 이곳에서 각 간부들의 집무실, 거주할 수 있는 공간과 휴게실, 훈련실, 연회장 겸 대회의실, 그리고 전용식당까지 개별적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렇게 오랫만에 간부들끼리의 식사자리는 조용히 이뤄지고 있었다.

" 바위야, 한마디 해봐. "

대충 가벼운 식사를 끝낸 바위에게 제비가 조용히 속삭였다. 이 모임의 주축인 바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었다.

바위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낮고 진중한 음성이 식당 전체에 울려퍼졌다.

" 모두 오랜만이네.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줘. "

언제부턴가 간부들끼리 혹은 대원, 일반인들과 말을 섞을때 존댓말이 사라져 있었다. 그 이유는 신속한 의사전달과 위계질서때문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사스가 돌아다니며 사고치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반말과 함께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것도 일종의 계급나누기였다.

짧게 말을 마치고 관심을 끊은듯 놓여있던 물잔을 들어올리는 바위를 어처구니 없는 시선으로 바라본 제비는 포기한듯 고개를 슬슬 흔들었다. 제비가 그런 바위를 이어 말했다.

" 여튼, 모인 이유는 대충 전해 들었을꺼야. "

제비가 좌중을 훑어봤다. 각 부의 수장들과 다희팀, 사스팀의 사이퍼들. 그리고 특별히 초대된 일반 거주구역의 대표들까지. 이제보니 꽤 많은 인원이었다. 그만큼 자신들의 모임이 커진것을 이 자리에서 세삼스레 느끼는 제비였다.

다행히 다희와 사스는 보이지 않았다. 어제부터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는지 행적을 찾기가 쉽지 않은 탓도 있지만 이런 자리에 끼면 백프로 사고를 칠것이 분명했기에 일부러 찾지도 않은 제비였다. 근데 도끼와 일우도 요즘들어 작업장에 쳐박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의아했지만 지금 도끼가 있어봤자 별로 도움이 안되기에 그냥 넘어갔다.

" 조만간 중국 원정을 갈꺼야. 그 원정대를 꾸리기 전에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인원을 찾으라는 지시는 들었지? 그럼 추천해보도록. "

이젠 제법 한 조직의 간부태가 나는 제비는 많은 시선속에도 위축되는 것 없이 능숙하게 좌중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런 제비를 보며 바위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가 모르는 능력이 어디엔가 모르게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제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장이 첨언을 했다.

" 일단, 일반인 여자는 안돼. 짐이 되면 안된다는 말이야. 물론 사이퍼는 예외고.. 그리고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이도 안돼. 들어서 알겠지만 이번 원정은 힘들고 위험해. 하지만 그만큼 댓가를 받을꺼라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지? "

중국어 능력자를 구하기 어렵지 않았다. 다만 위 요건을 만족하는 인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모든 간부들이 동분서주한 결과 겸사겸사 지금 이자리를 만든 것이다.

이 쉘터에도 제법 많은 인원을 받아들여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인구가 늘어나 있었다. 그곳의 행정을 총괄하는 제비와 사장은 요즘들어 수축해 지는 것이 눈에 보일정도로 업무에 시달리고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둘이 힘을 합쳐 행정체제를 기초를 잡아놔서 이젠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쉘터가 굴러가고 있었다. 물론 끊임없이 사건사고가 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양지관 대표입니다. 저희 양지관은 중국어 능력자가 대략 십여명 정도였지만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은 단 두명뿐이었습니다. "

반백의 사내가 조용히 몸을 일으켜 말했다. 예전에 듣기로는 어디서 교수노릇을 하던 인물이라고 들었다. 제법 행정관련 지식도 풍부해 사장이 여러가지 자문을 구할 정도라고 들었다.

그가 말을 떼자 다른 구역의 대표들도 서둘러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발표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건을 만족한 인물들은 총 열명. 이 모든 이들을 만나보고 이번 원정에 참여할 인물을 선발해야 할 제비는 그들이 제출한 인물들에 대한 상세정보를 받아들고 조용히 살펴봤다. 그러는 와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그들 사이에 잡담처럼 이어졌다.

" 요즘 거주지가 제법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려. "

" 그러게 말입니다. 예전 민주주의에서는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일이지요. "

" 큿, 아직도 예전 생각하는 건가? 답답하군. "

" 아니, 그렇다고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인간을 대하는 건 옳지않소. 인간의 기본권을 떠나 최소한 인간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해야지 않소. "

" 그전에 살아남아야 그런 대접을 받지. 좀비가 되어서 인간대접을 받으려는 건가? 정신차려, 당신들은 지금 예전 대한민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지금은 새로운 체제,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거야. "

이들의 대화는 젊은이, 노인들의 대화를 떠나 보수, 진보의 양상과 비슷했다. 누구는 과거의 유산을 지켜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그와 대립하는 입장은 현재 상황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그런 말이 아니었다.

제비나 사장도 그런 식의 토론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모임들을 자주 가져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듣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그들의 날선 토론은 사스가 등장하자마자 끝이 났다.

" 뭐야? 여기에 다 모여있네. 안그래도 찾아가려고 했는데 잘됐다. "

멀쩡한 문을 놔두고 창문으로 기어들어온 사스를 보며 애비인 사장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 이년아. 좀 다닐때는 정상 통로로 다녀. 맨날 그렇게 이상한데로 다니니까, 자꾸 쉴터내에 도시괴담이 돌잖아. "

사스는 그런 타박에 신경도 쓰지 않고 바위의 옆에 자리를 마련한 뒤 고양이처럼 바위의 팔뚝에 기대어 앉았다. 순식간에 장내의 공기는 내려앉았고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모두가 입을 닫았다.

이미 이 자리는 글렀다는 생각에 사장도 포기한 얼굴로 제비와 함께 선별된 인원들의 프로필을 들쳐보기 시작했다.

사장은 그런 사스지만 미워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가 쉘터내 치안 역할의 반정도를 담당하고 있었다. 예전 낙시를 좋아하고 회를 좋아하던 시절의 사장이 들은 것이 있었다. 활어 수송 컨테이너에 활어를 담아 수송을 하기 전에 그 활어 천적을 한마리 넣어둔다고 했다. 그래야 활어들이 살려고 발버둥 치면서 목적지까지 살아서 도착한다는 말이었다.

그런 천적 역할이 바로 사스였다. 다희도 비슷한 역할이었지만 다희의 경우는 별로 흔적이 남지 않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아 어필하는 강도가 약했지만 사스의 경우는 사람이 있던 없던, 시와 장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토막쳐 댔다. 그녀가 주는 압도적인 폭력과 잔인함과 무자비함은 쉘터내에서 천적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물론 사스는 자신만의 주관이 확실했고 잘못이 없다는 생각되는 인간을 건들지 않았기에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못하는게 맞지만 바위가 있기에 그리 심각한 수준까지 가지는 않았다.

" 아버지, 목장과 퇴비공장을 좀더 늘리려고 합니다. 최근 가공업체까지 우리측으로 끌어들여 제품을 막 생산하기 시작했어요. "

그 와중에 자기 나름의 성과를 확실히 보이며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아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은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인원과 자재를 보강해주지. 네 역할이 작지 않다. 쉘터내 인원들의 단백질 공급은 너에게 달려있어. "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탄수화물인 쌀, 밀등은 꾸준히 유입이 되고 있지만 유통기한이 짧은 제품들은 이제 슬슬 동이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통조림류는 남아있지만 그것도 소비되고 나면 실제로 영양불균형이 도래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으뜸이 매달리고 있는 목장의 성공함에 따라 그런 문제들이 일거에 해소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아직 초반이고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사장의 생각에는 긍정적이었다.

그렇게 사장이 자신의 아들과 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무렵, 제비의 검토가 끝이 났다.

" 일단 이 사람으로 하는게 좋겠어. 바위야, 한번 봐봐. "

그렇게 제비가 바위에게 한장의 종이를 건냈다. 당연하게도 이력서처럼 사진이 붙어 있지는 않았지만 신체스펙부터 그동안 해온 역할, 성향등 제법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 나쁘지 않네. 제법 오랫동안 수련도 해왔고. 조금 있으면 무력부에 들어올 정도라.. 그런데 왜 이런일에 지원한 거지? "

당연하게도 각 부에 승급해 들어온 사람들은 그 대우가 예전과 달라진다. 그리고 조장급이 되고 준간부급이나 간부가 되면 또 대우가 달라진다. 그렇기에 이런 위험한 여정에 각 부의 대원이상의 인원이 지원하지 않았고 조만간 무력부에 들어올 것이 확실시 되는 사람 역시 지원하지 않는게 당연했다.

" 뭐 이유가 있겠지. 큰 꿈을 꾸고 있다던가. 니 눈에 들고 싶다던가. 뭐 그런.. "

" 뭔데? 아, 그 중국어 가능한 사람을 뽑는거야? 흠.. 메두사. 너 중국어 좀 한다고 안그랬나? "

갑작스레 불린 메두사가 놀라 커피를 깨작거리며 마시다 뿜었다.

" 컥컥. 네? 제가요? 그게··· 더듬더듬 말할수는 있는데, 알아듣는건 좀.. 아하하하.. "

" 쓸모없는 년. 넌 나가서 좀비 백마리 잡고 대가리 들고 들어와. 빨랑 안나가? "

" 네,넵! 지금 갑니다. "

급히 일어선 메두사가 앗 뜨거라 하면서 문을 뛰쳐 나갔다. 이미 조용한 장내였지만 지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있었다. 모두가 제발 빨리 이자리를 끝내달리는 무언의 눈빛을 제비와 사장에게 보내고 있었다.

이왕이면 자기 조원을 데리고 갈 생각을 사스가 뜻대로 안되자 심술을 부렸고 장내 분위기는 더욱 다운되었다. 그런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비를 보며 사스가 물었다.

" 그래서 이 놈은 뭐하던 놈인데? "

" 조선족이었나봐. 뭐 뻔하지 돈벌러 왔다가 갑작스럽게 휘말린거지. 왜? "

" 흠, 오케이. 근데 이번 중국원정은 바위랑 이녀석만 가는건 아니지? "

" 글쎄.. "

제비가 말을 흐리며 바위를 봤다. 니가 정하라는 눈짓이었다. 그 뜻을 알아챘는지 바위가 말문을 열었다.

" 사이퍼 한두명 정도 같이 갔으면 좋겠지만 위험할 수 있어. "

" 그래? 그럼 됐네. 내가 같이 가주지. 나 혼자만 가도 두세명 머저리 사이퍼들보다 나을꺼야. "

그말에 가장 반색한 인물은 바위가 아니었다. 장내에 앉아서 숨직인 채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각 거주지 대표들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고 하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하지만 바위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쉘터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그녀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고민을 한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사스가 간다면 다희를 빼먹을 수 없었다. 괜히 엄한 사람들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다 데리고 가던지 예전처럼 둘다 놔두고 가던지 하나였다.

그런 문제를 알고 있는 제비가 먼저 말했다.

" 일단 이문제는 추후에 결정하자. 여기서 성급하게 문제를 만들지 말고.. 일단 이 남자, 전춘봉을 만나보자. "

곤란한 문제를 지금 당장 결정하기에는 듣는 이가 너무 많았다. 이런 사실이 소문이라도 나면 그다지 좋을것이 없었기에 스무스하게 넘긴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사스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은 말은 아니었기에 제비를 노려보며 사스가 이를 갈았다.

" 까득. 나중에? 언제? 만약··· 통보없이 바위가 떠난다면.. 소미년 가랑이를 찢어주지. "

제비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못하는 사스는 그녀의 연인을 언급하며 협박어린 말을 내뱉었다. 그말에 한숨을 쉬며 제비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개를 획 돌린 사스가 몸을 일으켜 들어온 창문을 통해 밖으로 뛰어내려 몸을 감추었다.

" 저, 저년이.. 하, 제비 너무 신경쓰지마. 원래 저러는거 알지? "

사장의 말이 전혀 맘에 와 닿지 않는지 이맛살을 구긴 제비가 바위에게 말했다.

" 그래, 출발은 언제 할꺼야. 그전에 확실히 인원구성을 마쳐야 하니까. "

" 일단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갈 예정이야. 그곳까지 가는 교통은 만월회에서 책임진다고 했지? "

" 그래. 일단 날짜만 정하면 그쪽에서 다 준비해주기로 했어. "

" 그 전춘봉이라는 남자를 만나보고 인원편성을 하자. "

" 하아.. 그래.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

깊은 한숨을 쉰 제비가 사장을 돌아보며 마칠것을 알리자 사장이 종료를 선언했다. 그렇게 단 한가지 일만이 마무리된 하루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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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72 마디마디
    작성일
    18.09.09 17:22
    No. 1

    만원회? 만월회? 자꾸 회명이 바뀝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JaeK
    작성일
    18.09.09 21:10
    No. 2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서비스
    작성일
    18.09.13 16:27
    No. 3

    예방약이 필요 할까요?
    이미 번질데로 번져서 생존자수가 손에 꼽을 정도인데...
    차라리 생산수단이나 자원 식량 같은 것이 좋겠죠...
    예방약이야 있으나 없으나 별차이 없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JaeK
    작성일
    18.09.13 16:35
    No. 4

    네 백신이 왜 필요한지는 이후에 연재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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