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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숨결의 소설 연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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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숨결
작품등록일 :
2017.03.23 02:54
최근연재일 :
2017.05.22 23:40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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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7,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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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02
글자수 :
125,924

작성
17.05.16 14:06
조회
19,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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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
글자
11쪽

히포 평야 전투.(1)

DUMMY

1.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꿀럭꿀럭 녹아내린 땅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쓰러져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이후,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러나 몸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단단하게 경직되어 있어 살아 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혹 무생물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돌이라든가, 항아리라든가.

그런 것과 같이 말이다.


'어떻게 된거지?'


어째서 이런 곳에 쓰러져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생각이 흩어졌다.

어떻게 된거지? 물음이 계속해서 해멘다.

메아리처럼.

그쯤 되었을 때 감각이 돌아왔다.

물컹한 진흙 바닥을 딛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보인 것은 시체의 산이었다.

서로 다른 갑주를 걸친 병사들이 끝도 없이 죽어 있는 모습이었다.

빗물속에 피가 강처럼 흐르고, 그 위로 수를 셀 수 없는 병사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곳은 전장의 한 가운데였다.


'이곳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

나는 눈을 뜬 채로 옆을 바라보았다.

한 시체의 얼굴이 낯에 익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이름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경박하기는 했지만, 붙임성이 좋아 금방 말동무가 되었던 동료다.

항상 밝은 표정이었던 그는 눈도 감지 못한 체, 원통한 얼굴로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공포가 온몸을 엄습해왔다.

이 감정 역시 일전에 느껴본 적 있었다.

기억에 있는 공포.

바로 그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부웅!

솜털이 일어날 만큼 소름이 끼쳤다.

엉겁결에 땅바닥을 한 번 구른다.

뒤 편에는 적군의 갑옷을 걸친 한 병사가 서있었다.

그는 끝이 둥근 철퇴를 들고 있었다.

좀 전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무기가 바로 저것이리라.

붉은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철퇴가 재차 올라갔다.

덜컥, 가슴이 철렁했다.

높이 치켜든 철퇴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2.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별 한 점 없는 밤 하늘이었다.

축축한 공기는 어디에도 없고, 주변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그 순간, 빛이 내 앞으로 휙 들어섰다.

그 위로 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이봐, 근무 교대 시간이라니까."


복잡한 머릿속이 저 경박한 행동 하나에 금방 정리되었다.

나는 눈을 끔벅이다, 이내 고개를 한 번 흔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좀 피곤했나보군."


남자가 킬킬 웃었다.


"쓸데도 없는 훈련 열심히 받더니, 역시 첫 출전은 무섭나보구만."

"...."

"그래도 사정은 봐줄 수 없지. 자, 받아. 근무 시간은 세 시간이야. 세 시간 뒤에 후번초 근무자를 깨우라고."


그는 내게 등불을 넘긴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외투를 벗더니 침낭속으로 몸을 던졌다.

나는 보급 담당자에게 등불의 연료인 기름을 조금 얻고, 출입외출자를 기록하는 명부를 받아들고 근무지로 향했다.

근무지는 야영지의 외곽에서 불침번을 보는 일이었다.


"여. 이제 왔나."


전번초 근무자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특이 사항은 있나?"

"없어, 없어. 뭔 일이나 있겠어? 아직 이타카 놈들 근처도 안왔는데."

"그렇군."

"그럼 난 내 후번초을 깨워 올테니 잠깐 혼자서 기다리라고."


나는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흥, 재미 없는 녀석.

근무자는 그리 말하며 야영지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 나는 경계방향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이타카 왕국의 국경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한 평야였다.

이름은 나도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후우."


이제 봄이 다가오건만 기온은 아직 차가웠다.

한숨을 내쉬니 하얀 입김이 어둠속에 흩어진다.

이리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온 몸은 땀에 젖어 축축하고 불쾌한 기분만 가득했다.


'무섭다라....'


전번초 근무자가 내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방금 전 내가 꾸었던 꿈은 틀림 없는 악몽이었다.

과거의 기억.

다름아닌 내가 첫 출전했을 때의 일이었으니까.

그 날 내가 겪었던 전쟁이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참혹한 것이었다.

이 땅위에 살아있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상대를 죽이기 위해 싸운다.

평범하게, 너저분하게만 살아왔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서는 평생을 가도 겪을 수 없는 광경들이었다.

견딜 수 있을리 없다.

살아 남은 것이 기적이었다.

그러나 살아 남았다고 해도 내게 남아 있던건 몇 조각 남지 않은 껍데기뿐이었다.

전쟁이란 격류의 소용돌이다.

감정과 이성과 이념과 폭력이 부딪히고 부딪히는,

생과 사가 찰나의 시간에 결정되는 그러한 선택의 시간들이 무한하게 지속되는 곳이다.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리 없다.

나는 눈썹을 가로모았다.


'두렵다라....'


스스로의 감정을 살펴보았다.

가슴에 손을 얹는다.

너는 지금 겁을 먹고 있는 것이냐고.

두려운가?

심장이 두근 거린다.

필경 이것은 대답일 것이다.

아무리 머릿속에서 두렵지 않다고 소리쳐보아도,

육체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나는 두려운게 분명할 것이다.


'이렇게 겁을 먹고 있어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텐데....'


십중팔구, 전장에 돌입하게 되면 이성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남는건 죽음이다.

예전의 나는 오랜 시간 전장을 겪은 베테랑 병사여서 알 수 있다.

내가 그 철퇴 병사에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 운이었다.

그 직후 적군이 쏘아 올린 무차별 화살 세례에 놈이 내 대신 맞았으니까.

인상이 더욱 찌푸려졌다.

지금 현재 우리, 205부대는 제 9 원정군에 소속되어 이타카 왕국의 국경을 넘고 있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며칠 후면 이타카 왕국의 평야에서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질 예정이었다.

거기 까지 생각이 닿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때를 위해 그동안 부단한 노력을 했다.

우연히 검성을 만나는 기연까지 얻었다.

지금 내 능력을 뛰어 넘는 일개 병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름 난 기사중에도 드문 편일 터.

겁을 집어먹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기억에 새겨진 상처는 그리 쉽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기운내자, 아론. 우선은 살아남는 것부터 생각하자. 공을 세우는 것은 언제든지 기회가 있으니까.'


그리 마음 먹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려왔다.

근무자를 본 내 눈이 동그래졌다.

여기 있을 리 없는 사람이 그곳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여, 날이 춥지?"

"벤 대장님?"


원래 내 근무자는 같은 병사인 하등병이나 중등병이어야 한다.

그런데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다름아닌 부대장인 벤이었다.


"특이사항은 있나?"

"이상 없습니다. 한데 대장님께서 어째서 불침번으로...?"


벤 역시 상등병으로 병사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번 원정에는 무늬만 지휘관이었던 케서딘 대사 대신 그가 지휘관 대리로 참가했다.

즉 그는 현재 간부. 간부들의 근무는 따뜻한 텐트 안에서 조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어째서 이곳에 왔단 말인가?


"아, 걱정하지 말게. 내 근무 시간을 다른 부대장과 바꿨네."

"그렇습니까?"


하지만 구태여 불침번 근무를 서야 할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물론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니까.

벤은 피식 웃더니 품속에서 투박한 담배 한대를 꼬나 물었다.

그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등불에 불을 붙이더니, 한모금을 깊게 빨았다.


"한 대 피겠나?"

"아닙니다."

"흠, 술도 잘 안마시는 편이고, 담배도 안태우는군, 그래?"

"태워본적이 없습니다. 저희 집은 무척 가난했으니까요."

"하긴. 이런 사치품, 돈 많은 졸부들이 아니면 엄두도 못내지. 하지만 말이야."


벤은 타닥타닥 타오르는 담배 끝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같은 병사들에게 있어서 돈 쓸일 이라고는 이런 것 밖에 없거든. 담배, 술, 그도 아니라면 창부들을 사제끼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지. 자네도 이해하겠지?"

"그렇습니까?"

"그래... 자네도 어렴 풋이 이해하고 있지 않나? 우리는 이제 며칠 뒤면 자신이 아닌 의지로 끌려와서, 생 판 모르는 자들과 목숨을 걸고 칼춤을 추는거야. 그리고 거기서 운좋게 살아남는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그러면서 수고했다면서 몇 푼 안되는 푼돈을 쥐어주는데, 자네라면 그 돈을 어디다가 쓰겠나?"

"생활은 보장이 되니 부모님에게 보내겠습니다."


벤은 소리 없이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효자로군. 그리고 착실해. 안그래도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중등병들은 자네를 높이 평가한다네.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들이나 자네를 인정하지 못하는 거지만... 직접 전장을 겪어보면 알걸세. 자네와 같은 이가 얼마나 든든한 동료가 될 지는."

"그렇군요."

"부모님이라... 그립군."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니 다시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연거푸 몇 모금을 더 빨더니, 그는 이내 땅바닥에 담배를 버렸다.

군홧발로 담배를 질근질근 밟는다.


"그런 소중한 이가 없는 이는 이따위 것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걸세. 그리고 다시 전쟁. 그것의 무의미한 반복일세.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이제 전쟁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버리지. 그렇다고 출세를 할 수 있을만큼 큰 공을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걸 즐길수 있는 것도 아니지. 이해하겠는가?"


그리 말하는 벤의 입에서는 희미한 술냄새가 풍겼다.


"사설이 길었군... 사실 자네에게 묻고 싶은게 하나 있었네."

"그게 무엇입니까?"


그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훈련을 하며 자네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은 보았네. 그러나 자네는 아직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햇병아리지. 그래서 묻겠네."

"예."

"자네 혹시 두렵나?"

"...잘 못 들었습니다?"

"두렵지 않냐고 물었네."

"예. 두렵습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두렵다고?"

"예."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 보통 두렵다고 하면 공포에 젖은 시선을 하거나, 아니면 두렵지 않다고 하는게 정상인데...."

"두려우니까 열심히 훈련했던 것입니다. 자이언트를 보셨잖습니까? 녀석과 저는 똑같습니다."


나는 밤의 어둠에 가려진 평야 너머를 바라보았다.


"살아남아야하니까요."



3.



그로부터 사흘 뒤, 롱베르트 변경백 휘하, 노틸루스 자작이 이끄는 제 9 원정군은 이타카 왕국 국경을 넘었다.

그들이 왕국군과 조우한 것은 국경을 넘은지 이틀이 지난 다음이었다.


작가의말

연재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오늘부터 다시 연재 갑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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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히포 평야 전투.(4) +44 17.05.22 13,450 482 8쪽
33 히포 평야 전투.(3) +25 17.05.18 15,520 526 8쪽
32 히포 평야 전투.(2) +20 17.05.17 16,480 539 7쪽
» 히포 평야 전투.(1) +37 17.05.16 19,399 609 11쪽
30 205부대(2) +53 17.04.29 29,287 827 9쪽
29 205부대 +40 17.04.27 29,201 887 7쪽
28 훈련소의 마지막. +37 17.04.25 30,740 882 7쪽
27 잭의 제안. +56 17.04.24 30,728 935 10쪽
26 교관 잭. +94 17.04.22 32,927 937 8쪽
25 훈련. +59 17.04.19 34,744 911 7쪽
24 입대하다. +110 17.04.14 38,207 1,006 7쪽
23 이별하다. +55 17.04.11 38,342 1,070 11쪽
22 재회하다. +57 17.04.10 40,690 1,137 9쪽
21 귀향. +84 17.04.08 40,383 1,156 11쪽
20 귀환. 그리고 이별. +39 17.04.06 39,551 1,088 7쪽
19 치료 약을 얻다. +88 17.04.04 39,956 1,050 10쪽
18 마나 블레이드를 익히다. +18 17.04.04 38,612 1,016 10쪽
17 제자로 받아들여지다. +54 17.04.02 39,490 1,057 7쪽
16 소드마스터와 만나다. +40 17.04.01 39,578 1,119 10쪽
15 사투. +45 17.03.31 39,731 954 12쪽
14 크루얼 베어. +40 17.03.29 40,440 949 8쪽
13 산맥으로. +33 17.03.28 41,680 996 8쪽
12 2년 후. +61 17.03.27 42,787 1,023 9쪽
11 친구. +44 17.03.26 43,647 988 9쪽
10 성장.(2) +30 17.03.25 43,595 96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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