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로 받아들여지다.
1.
제스는 눈 앞의 어린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청년이나 다름 없어 보이는 외견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13살이란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면밀히 그를 뜯어본다.
'근골은 나쁘지 않군.'
사실, 나쁘지 않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인간의 발육은 적절한 식단과 운동으로 이루어진다.
수백년을 살아온 엘프인 제스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눈 앞의 소년은 소작농의 자식이라고 했다.
그 말은 제대로 먹지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 보다 월등한 성취를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검사(劍士)의 입장에서 보면 탐이 나는 인재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제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네."
2.
"그, 그게 정말입니까?"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엘프 검성 제스는 수백년간 이름을 날린 자다.
세월의 흐름이 지나 지금은 잊혀진 이름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른다는 얘기가 그 증거다.
그런 이에게 검을 사사받을 수 있다?
이전과는 다른 생을 살아가겠다는 내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내게 검을 배우려는 자가 얼마나 많았을지 알고 있나? 나는 엘프일세. 신분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일은 하지 않지. 자네는 뛰어난 무재(武材)를 지닌듯 하네, 그 나이에 크루얼 베어를 쓰러트릴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지. 그러니 자네에게 검에 대해 몇 마디 해주겠네."
"감사합니다! 그러면 스승님이라고 불러도...."
"하지만 제자는 안되네."
"네?"
그리 말하는 제스는 창 밖을 바라본다.
풍경을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 너머.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 했다.
"오늘 처음 본 사이가 아닌가. 자네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제자로 받아주는건 무리가 있네."
역시, 일이 그리 쉽게 풀릴 리 없다.
"그, 그렇군요. 제스님이 그럴 생각이 없으시다면 저도 더이상 무리하게 부탁드리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검에 대한 조언이라도 부탁 드립니다."
"열망이 대단한 듯 하군. 좋아, 밖으로 나가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제스.
나는 그를 따라 마당으로 나갔다.
"삐이! 삐삐!"
밖으로 나가자마자, 검은 털 뭉치 같은 녀석이 내게 달려왔다.
바로 크루얼 베어의 새끼였다.
"삐익 삑!"
놈은 다리에 머리를 비비며 내게 친근감을 표했다.
아마도 어린 놈이라 그런지, 한 번 보았던 존재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듯 했다.
왠지 모르게 놈이 측은해졌다.
녀석은 제 어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슥슥.
그런 마음에 놈의 뒷통수를 쓰다듬었다.
"정말 살아 있었군요."
"그렇네. 어미는 죽었지만, 그또한 자연의 섭리겠지."
제스가 새끼 곰에게 다가가 무어라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다.
아마도 엘프어인 듯 했다.
엘프어는 엘프들이 사용하는 언어로써, 동물들도 알아 들을 수 있는 희안한 말이었다.
놀랍게도 새끼 곰은 그의 말을 듣고는 창고인지 측간인지 알 수 없는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제스는 마당 밖으로 나가 나무 가지 두 개를 들고 오더니 나에게 하나를 건넸다.
"내 독문 검술을 알려줄 순 없다만,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검술 하나를 전수해주겠네.
"검술 말입니까."
"그렇네. 이 프로메테우스 대륙의 검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검술이네."
어? 그건 설마....
"트리플 검술이라고 들어보았나?"
나는 눈을 끔벅였다.
"네."
"역시 그렇군. 그러니까 트리플 검술이란 뭐냐면 말일......알고 있다고?"
"네. 알고 있습니다."
"...."
제스는 멋쩍은 듯 뒷통수를 긁었다.
"흠흠, 그렇군. 그래도 자네가 잘 배운지 모르니 한 번 시연을 해볼 수 있겠나? 내가 조언을 조금 해주겠네."
"아, 알겠습니다."
뭐....
사실 조금 아쉽긴 하다.
어떻게 하다보니 전설적인 검사를 만났는데,
기껏 전수해준다는 검술이 트리플 검술이라니.
하지만 그것만 해도 충분히 호의를 보여준 것이리라.
나는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뭐라 해도 이 사람은 내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었다.
나는 감사한 마음을 속으로 가지며 나무 가지를 쥐었다.
슥.
검을 가슴깨 위치에 둔다.
중단세다.
트리플 검술은 베고, 찌르고, 사선으로 베는 세 가지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천천히 그 동작을 펼쳐보았다.
3.
제스는 담담한 얼굴로 아론이 펼치는 검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무덤덤한 표정과는 달리, 그는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대, 대체 이 소년은?'
크루얼 베어를 쓰러 트렸다고 들었을 때, 보통이 아닌 소년이란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아니 한 눈에 봐도 그정도는 눈치 챌 수 있다.
이 소년은 천고의 무골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저 재능에 의존한 그런 타입인줄로만 알았다.
과거에도 수없이 본 이들.
그저 몇 마디 조언이면 충분할....
그러나 소년이 펼치는 트리플 검술은... 그런게 아니었다.
동작 하나 하나가 매끄럽고 능숙하다. 적지 않은 노력을 가한 것이 틀림 없으리라. 아마도 죽어라 검을 휘둘렀겠지.
그뿐만이 아니다.
능숙하고 정확하다. 간결하고 빠르다. 그런 점을 뛰어 넘은 무언가가 있었다.
'간절함. 간절함이 담겨 있다.'
제스가 말했다.
"...그 쯤 되었네. 그만 해보게."
"네? 네. 알겠습니다."
"혹시 트리플 검술의 숙련도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겠나?"
제스의 물음에 아론은 볼을 긁적였다.
"그... 9입니다."
"...뭐라고?"
"숙련도 레벨이 9입니다."
제스가 허허 웃었다.
"이보게 젊은이. 숙련도 레벨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천 번, 만 번, 오직 그 검술을 미친듯이 수련했을 때 한 단계씩 오르는게 숙련도라네."
"그... 그러니까 제 숙련도가 9레벨이 맞습니다."
"...."
제스가 입을 다물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13살 짜리가 한 검술의 숙련도를 9레벨 까지 올린다?
재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숙련도는 말 그대로 숙련도.
뼈를 깎는 노력이 밑바탕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자네, 손 좀 한 번 보세."
제스는 그리 말하며 아론의 손을 붙잡았다.
4.
"...."
투둘투둘 굳은 살이 박힌 손.
제스는 내 손을 내려다보며 말이 없어졌다.
"...검을 배워서 어디다가 쓰려고 그러나?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짓는 일도 충분히 보람 있는 일이라네. 지금은 전란의 시대도 아니니까."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말했다.
"전란의 시대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현 황제 폐하는 야욕이 많은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보잘 것 없는 소작농이고, 항상 가진 자들에게 핍박당하며 살아가죠. 저는 제 삶을 바꾸고 싶습니다. 보다 나은 삶을. 그리고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
과거와는 다르게. 그 말은 속으로 삼켰다.
제스가 입을 한 일자로 다물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침묵.
정적.
이내 그가 말했다.
"좋네. 내 제자로 받아주겠네."
- 작가의말
제자를 받지 않는다는 대사 한 줄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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