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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숨결의 소설 연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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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숨결
작품등록일 :
2017.03.23 02:54
최근연재일 :
2017.05.22 23:4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1,317,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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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02
글자수 :
125,924

작성
17.04.11 22:55
조회
3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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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0
글자
11쪽

이별하다.

DUMMY

1.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 사이, 한기를 품은 새벽 공기에 몸을 가늘게 떨며 일어났다.

우유빛 햇살에 가득찬 세계는 우울함을 머금고 있었다.

주변에는 동료들의 신음이 병자들의 그것처럼 울려퍼지고 있다.

비린내와 썩은 고기 냄새가 코 끝을 찔렀으나, 그것도 잠시, 금방 사라진다.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야간 불침번들이 돌아와 땅바닥에 몸을 던지고,

한 켠에는 신관들이 시체를 태우는 광경이 보였다.

나를 포함한 전우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살아 있으나 스스로 살아 있다는 증명을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들.

볏짚 하나에 의존하며 밤의 추위를 보낸 우리는 가진 모든 것을 털어넣어 스튜를 끓여 먹고,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다시 진군을 시작했다.

시간은 환상처럼 지나갔다.

대군(大軍)과 대군(大軍)이 맞붙었다.

각군의 병사들은 물결치는 파도처럼 맞붙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한 줌의 물방울에 불과했다.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으나,

이번에는 운이 나빴다.

싸우던 도중 방패를 잃었고,

창을 놓쳤다.

검 따위는 배급 되지 않은지 오래였다.

바닥에 떨어진 무기를 줍다가 화살 세례에 노출 되었다.

급히 몸을 돌렸으나 팔과 등을 허용했다.

그뿐인가? 난전중에 눈 먼 칼에 가슴을 베이고 말았다.

전투의 광기에 미친 병사들은 그 누구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내가 그랬으니까.

일 선에서 한 번 격돌했던 기마부대가 재차 출격하며, 내 두다리를 짓뭉겠다.

적군도 아군도 모두 나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보이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들리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저....


2.


정신을 차렸을때, 하늘은 아직 회색빛이었다.


'꿈인가?'


입안이 쓰다. 기분이 불쾌했다.

잊으려고 하지만, 잊으려고 할 수록 전쟁의 기억은 내게 다가와 죽음과 공포를 속삭였다.

마치 내 의지를 시험하려는 것처럼.


'흥....'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조용하다.

예민하게 발달된 감각에 부모님의 코고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온다.

그것이,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이전의 삶이 아니라는 체감을 주었다.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과거에 쓸모 없는 인간에 불과했다.

비록 부모님을 구했다고 하더라도,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는 실력을 쌓았다 하더라도.

과거의 편린이, 세상이란 거대한 잔념이 나를 깔아뭉게는 그 기억은 여전히 불쾌하기 짝이 없는 감각이었다.


검이... 미친 듯이 휘두르고 싶어졌다.


나는 부모님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마당으로 나갔다.


"퓨우우. 퓨우우."


집 한 켠에는 블베가 잠을 자고 있었다.

한창 겨울 잠을 잘 시기이니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잠만 자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 옆에는 어린 시절 내가 쓰던 자그마한 목검들이 쌓여 있었다.

190 센티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로 자란 내게는 이제 장난감 같은 칼이다.

중검(中劍)크기의 목검을 비스듬히 든다.

검을 수평으로, 수직으로, 사선으로 연달아 뻗는다.

트리플 검술이다.

이제는 숙련도 9.9가 되어 손에 익을 대로 익은 검술.

순수하게 1부터 키운 것이 아닌지라 숙련도 레벨 10은 아직 요원한 일이었으나,

이미 장인이나 다름 없는 경지에 오른지라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형(形)이 뽑혀져 나왔다.

불안감을 잊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을 때였다.


"아론! 아론! 깨어 있었구나!"

"...?"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한 켠에는 처음 보는 미형의 소년이 보였다.

아니, 소녀인가?

짧은 단발 머리에 곱상한 외모.

눈망울이 크고 세상 물정 몰라보이는 순진해 보이는 얼굴이다.

다만 여자라기에는 어깨가 넓고, 체형이 바로 잡혀 있었다.

어라? 이 녀석?


"하티?"

"아론! 너 돌아왔다면서 나한테 기별도 없이...."


하티가 달려와 나를 껴안았다.

부드러운 감촉이 팔에 와닿았다.


"윽, 야, 사내놈끼리 왜 그러냐. 좀 떨어져봐."

"으, 으응."


하티는 얼굴을 붉히며 뒤로 물러났다.

어딘지 모르게 화가 난 것 같기도하고, 답답한 듯한 인상이었다.


"야, 친구끼리 뭘 그런거 가지고 삐지냐. 당연히 부모님한테 먼저 인사드려야지."

"응? 응, 아, 응응. 지금까지 어디 갔다 왔던거야?"

"수행이야."

"수행? 아... 응. 아론은 어릴 때부터 수행하는걸 좋아했으니까."

"그래. 그래서 이번에 전쟁에 참전할까 해."


하티가 눈을 끔벅였다.


"뭐? 전쟁에?"

"그래. 내가 일찍 돌아온건 그 이유 때문이야. 기껏 검을 수련했는데, 아버님을 전쟁에 내보내실 순 없잖아?"

"그치만 우린 아직 성인식도 받지 않았잖아."

"내년이면 우리도 성인이야. 그리고 난 자신 있어."


나는 목검을 치켜 들었다.


"지난 2년간 갈고 닦은 이 검 솜씨로 출세할거야."

"아론...."


힐끗, 곁을 바라보니 하티가 그윽한 시선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녀석 보면 볼 수록 여자애 같군.

나중에 여자 꽤나 울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전란의 불길이 이곳까지 오지 않는다는 전제하의 미래지만.


"아론이 마을에서 또 사라지면... 쓸쓸할거야."

"뭘, 출세해서 금의환향해서 돌아올텐데 뭘."

"그, 그런가? 하긴. 예전 아론을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겠지?"

"응. 나만 믿어."


하티가, 앗, 하고 소리쳤다.


"그러고보니 아론. 베인이 돌아왔어. 널 막 찾던데?"

"베인? 그 녀석은 원래부터 이 마을에 있었잖아?"

"아니야. 네가 사라지고 나서 걔도 어디론가 사라져서 마을에서 두문불출 했었거든. 옛날과는 완전히 달라졌어. 비쩍 말라가지고 눈에서는 살기가 번득이는게... 아무래도 위험해진거 같아."


흥, 난 콧방귀를 꼈다.


"제깟놈이 잘나봤자지. 참, 그래서 하티. 검 실력은 많이 늘었어?"

"으응? 아, 아니. 운동은 열심히 했지만...."

"트리플 검술 레벨은?"

"4야."


4라.

꽤 높다.

역시 이 녀석은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동료로서 전장에 같이 나가자고 제안하고 싶지만....

그곳이 어떤 지옥인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친구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럼 우리 옛날처럼 칼 싸움이나 해볼까?"

"으응?"

"뭐 어때, 자, 목검 들어!"

"자, 잠깐만!"


나는 웃으며 하티에게 목검을 넘겨줬다.

그렇게 우리는 흥겹게 웃으며 오랜만에 장난스럽게 칼 싸움을 즐겼다.


3.


하티를 돌려보내고, 일찍 일어나신 부모님과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머님, 아버님."


나는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며 식탁 위에 얹었다.


"무, 무엇이냐, 그게?"

"열어보십쇼."


아버지가 주머니를 받아 주섬주섬 풀어보셨다.


"이, 이건."


그 안에 들어 있는건 금화였다.


"대, 대체 이게 얼마냐?"

"1000골드입니다."


1000골드.

그 말에 부모님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정도면 땅을 살 수도 있을 만큼 큰 금액이었다.


"이, 이런 큰 돈을 어디에서...."

"스승님에게서 노잣돈으로 받은 겁니다. 전 이제 전장으로 떠날 몸이니 더이상 노잣돈이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그, 그치만...."

"이걸로 땅을 사셔서 소작농에서 벗어나세요."

"바, 받을 수 없다. 이런 큰 돈."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받아주세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치만 아론아...."


흘깃 보니 어머니가 눈가를 붉히고 있었다.

어머니가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며 식탁에 얹었다.

본 적이 있는 주머니다.


"아론아. 이걸 기억하니? 네가 2년전에 우리 곁을 떠나며 남겨 두었던 돈이란다. 우리가 아직 어린 내게서 받은 돈을 함부로 쓸 수 있을거라 생각하니?"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렇지. 우리는 네가 없어도 잘 할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전쟁에도 내가 나가고 싶지만, 네 고집을 알고 있으니 어찌할 수 없구나. 그러나 이번만큼은 양보 못한다. 천 사십 골드. 이건 전부 네 돈이야. 우리가 그걸 어떻게 쓰겠니. 언젠가 네가 돌아올 때를 대비해 한 푼도 쓰지 않았단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부모님과 두 개의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울컥했다.

당신들께서도 힘든 삶을 사시면서, 저 돈에 손 대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닐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모습을 감춘 아들을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흔들며 주머니를 부모님께 밀어드렸다.


"아닙니다. 써주세요. 저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으로 출세할겁니다. 그때가 되면 이런 돈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게 될겁니다. 어머니, 아버지, 저를 못믿으십니까?"

"너를 못믿는건 아니다만, 얘야...."


어머니가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내가 먼저 끊었다.


"저를 믿어주세요. 그래야만 제가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렇게 까지 말하니 부모님도 아무 말도 못했다.

정적속에서 아침 식사가 흘러갔다.

불쾌한 침묵은 아니다.

다만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을 감히 가슴 바깥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오전이 지나고,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문 밖으로 부모님이 배웅을 하러 나왔다.


"징집관에게까지 같이 가마."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한 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됐습니다. 아, 그리고 이걸 받아주세요."


나는 품속에서 푸른 구슬 하나를 꺼내 부모님에게 건넸다.


"이건...?"

"블베는 이번 겨울을 넘기면 세 살이 될거에요.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부모님이 같이 데리고 살기에는 힘들지 않을까요? 그때 사용하시면 돼요."

"이, 이 구슬이 무엇이길래?"

"내년 봄이 되었을 때 블베에게 가져가시면 아실 거에요. 그러면 녀석을 키우는데 아무런 불편도 없을 겁니다."


부모님에게 넘겨준 푸른 구슬.

그건 스승님께서 블베의 처리를 위해 만든 오브였다.

오브란 마력을 담을 수 있는 특수한 도구로써,

방금 부모님에게 넘긴 블루 오브 하나면 사실 천골드 이상의 값어치를 하는 마도구였다.

블베의 종족인 크루얼 베어는 원래 엘프들의 사역종.

다만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부모님이 블베를 키우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금은 겨울 잠을 자고 있어서 얌전하지만....

곰을 노리고 밀렵을 하려는 자들이 있을 수도 있고, 마을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식량값도 어마어마하게 들 터.

그러나 저 오브에는 소형화의 마법이 걸려 있었다.

마녀들이 자신의 패밀리어(사역마)를 소형화해서 데리고 다니듯이, 블베도 그리 할 수 있다는게 스승님의 말씀이었다.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블베가 아직 두 살짜리 어린애여서, 마법을 감당할 수 없을거란 생각때문이었다.

하여간, 나는 징집관이 있는 마을 중심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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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훈련. +59 17.04.19 34,744 91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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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하다. +55 17.04.11 38,342 1,070 11쪽
22 재회하다. +57 17.04.10 40,690 1,137 9쪽
21 귀향. +84 17.04.08 40,383 1,156 11쪽
20 귀환. 그리고 이별. +39 17.04.06 39,552 1,088 7쪽
19 치료 약을 얻다. +88 17.04.04 39,956 1,050 10쪽
18 마나 블레이드를 익히다. +18 17.04.04 38,613 1,016 10쪽
17 제자로 받아들여지다. +54 17.04.02 39,490 1,057 7쪽
16 소드마스터와 만나다. +40 17.04.01 39,578 1,119 10쪽
15 사투. +45 17.03.31 39,731 954 12쪽
14 크루얼 베어. +40 17.03.29 40,440 949 8쪽
13 산맥으로. +33 17.03.28 41,681 996 8쪽
12 2년 후. +61 17.03.27 42,787 1,023 9쪽
11 친구. +44 17.03.26 43,647 988 9쪽
10 성장.(2) +30 17.03.25 43,596 96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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