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의 마지막.
1.
"기사... 말씀입니까?"
순간, 당황스러워 말을 잘 잇지 못했다.
"그렇네. 기사."
잭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군요. 기사라.... 물론 될 수 있다면 좋습니다. 하지만 교관님께서 저를 기사로 임명하실 권한은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기사 임명은 자작 이상의 귀족, 혹은 그 이상의 권한을 가진 직급만 가능하다네. 하지만 자네가 기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려고 하네."
"그게... 어떤 방법인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간단하네. 자네가 기사의 종자가 되면 되는 것이지. 수련 기사로 전장에서 조금만 공을 세워도, 기사가 될 수 있네. 전시이니 어려운 방법은 아니지."
아. 이런 방법이군.
잭의 말에는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천민 출신으로 기사가 되는 법은 많지 않다.
천민이나 평민이 기사가 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귀족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실력과 전공이 있어야만 평민이 기사가 될 수 있다.
종자가 되는 법은 그보다 더 쉽다.
확실한 실력만 있다면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으니까.
나쁜 방법은 아니다.
기사가 될 수만 있다면 출세의 길은 열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자신도 있었다.
지금의 나는 어지간한 기사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다.
이건 제국의 엘프 검성이라 불리운 제스 스승님이 보장해준 것이었다.
"말씀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저에게 그런...?"
"내가 말하지 않았나? 자네가 휘두르는 검을 보고, 내게도 깨달음이 왔다는 것을. 비록 완전한 깨달음은 아니었지만 스킬 숙련도를 많이 올릴 수 있었지. 그리고 지금은 전시.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네. 실력 있는 남자를 보다 높은 위치로 보내는 것은 조국에 대한 충성으로도 이어진다고 볼 수 있지."
잭은 연이어 말했다.
"어떤가? 자네만 좋다면 곧바로 추천서를 써주겠네."
"그러나 어떤 기사가 저같은 천민을 종자로 받아주겠습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 없네.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한 기사가 있으니까."
"그분의 성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잭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듣고 놀라지 말게. 바로 막스 경이라네."
막스! 그 이름을 들은 내 눈이 커졌다.
그가 누구인가.
'기사의 거울'이라는 별명을 지닌 뛰어난 기사다.
지금은 오러 나이트 최상위권의 실력자지만,
나는 알고 있다.
막스는 장래에 소드 마스터가 되어, 제국을 빛내는 검이 된다.
"역시 자네도 막스 경의 이름은 들어보았나보군."
"그렇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윈덤 마을같은 시골에서도 그분의 명성은 널리 퍼져 있지요. 하지만 그런 분이 저를 종자로 받아주겠습니까?"
"쯧쯧,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네. 막스 경은 종자를 두는데에 있어서 신분의 차이를 논하지 않네. 뿐만 아니라 '막스의 창검들'이라는 작은 기사단을 운영할정도로 그분은 많은 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네. 재능 있는 인재를 막는 법이 없는 자라네."
확실히.
놓칠 수 없는 기회다.
하지만....
한 가지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막스 경의 제자가 되어 그분의 검술을 배울 수만 있다면 내 능력은 훨씬 진보될 것이다. 하지만....'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잭 교관님."
"음. 결정했나?"
"...거절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당연히... 뭐라고?"
"거절하겠다고 했습니다."
"허."
잭이 혀를 찼다.
"거절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자네같은 재능 있는 검사라면 더욱 더 기사의 종자로 들어가야...."
"괜찮습니다. 어떤 특혜를 받고 싶은게 아닙니다. 그거 말고도 이유가 있긴 합니다만... 지금 제가 밝힐 수 있는건 아닙니다. 하여간 신경써주신 점은 감사합니다만... 제게는 그 제안을 받을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라니. 그게 무엇인가?"
거절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스승님에게서 황태자인 발커스 경의 보좌를 부탁받았다.
나같은 무지랭이에게 최상위 검술을 전수해주신 스승님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것만큼은 반드시 들어드릴 생각이었다.
때문에 막스 경의 종자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막스 경의 주인은 북쪽의 변경백을 맡고 있는 라이온 백작.
그리고 라이온 백작은 2황자인 타이커스 일파에 속해 있는 남자였다.
발커스 황태자님을 위해 일해야 할 내가 타이커스 쪽 기사의 종자가 될 수는 없는 법이 아닌가.
좋은 기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건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친구... 내 제안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른단 말인가?"
"귀중한 제안이란 것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만큼은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꾸벅 머리를 숙였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저의 스승님과 제 명예를 걸고 교관님의 호의를 무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부디 제 뜻을 이해해주시길."
2.
그 후로 잭 교관과는 별 다른 일이 없었다. 그는 내 뜻을 존중해주었고, 더이상 그러한 권유는 하지 않았다.
마침내 훈련 교관인 일 주일이 끝났다.
자대 배치를 받기 전, 신병들에게는 하루의 휴가가 주어졌다. 힘든 훈련을 마친 보상이었다.
다만 휴가라고 해봤자 바깥으로 나가는 건 금지된 상태였다. 식사가 조금 더 좋아진 정도? 때문에 신병들은 생활관에 틀어박혀 뒹굴거리기 바빴다.
"헉, 헉."
나는 연병장을 달리면서 체력을 단련하고 있었다.
기술적인 훈련이라면 모를까, 체력 훈련만큼은 매일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었다.
숙련도는 올리지 못하지만, 운동은 언젠가 무조건 수치가 오르는 것이었으니까.
백 바퀴쯤 뛰었을까?
숨이 턱 끝까지 닿자,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허억, 허억.'
상태창을 한 번 켜보았다.
[아론]
[힘 : C+][민첩 : C][체력 : C+][지력 : C][마력 : C][잠재력 : S]
성인 남성의 평균 수치가 D, 잘 훈련된 병사들이 D+, 어지간한 기사들이 C인걸 고려하면 대단한 수치들.
고작해야 15살의 소년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능력치들이다.
하지만 아직 만족스럽지 못했다.
어서 빨리 모든 능력치를 C+로 끌어올리든가,
아니면 가장 자신 있는 근력 수치를 B-까지 올리고 싶었다.
'아직 요원한 일이긴 하지만... 뭐, 하다보면 되겠지.'
하늘을 보니 어느세 날이 저물고 있었다.
훈련소의 마지막 날인가....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저녁밥이라도 먹고 오늘은 일찍 자둬야겠다.
내일부터는....
진짜 전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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