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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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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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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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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86화 하나보다 여럿이 낫다

DUMMY

386화 하나보다 여럿이 낫다


첫날은 얼떨떨하고 그다음 날은 숙취로 인해 온전히 기뻐하지 못했다.


그리고 방이 붙고 사흘이 되던 날, 정연은 비로소 아침에 눈을 뜨고 제 볼을 한번 꼬집어 본 후에야 제가 붙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흐흐, 히히히, 흐헤헤! 내가, 내가 붙었어!”

“거, 이제야 실감이 나는가? 허면 얼른 고향에 편지하지 않고 뭐하나?”


자리에서 일어나 실실거리니 바깥에서 김 생원이 면박주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정연은 제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것, 그리고 아직 고향에 소식하지 않아 좋은 소식을 부모며 친지에게 알리지 않았던 점을 자각했다.


이 모두가 부끄러운 일이니 그는 얼굴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어르신,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허허, 그저 가벼운 농이라고 생각하게. 그보다 내 그제와 어제는 딱히 준비한 것이 없지만 오늘은 한숨 쉬어갈 거 같아서 별미를 준비하였네. 어서 준비하고 아침 들러 나오시게.”


아침에 별미를 준비하였다는 말에 정연은 기대감과 송구함을 동시에 느끼며 서둘러 채비하고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말린 어육하고 오늘 바로 도축한 쇠고기일세. 양은 대단치 않아도 질은 아주 훌륭하지.”


김 생원을 따라 평소 식사하던 곳에 자리하니 별미라는 말에 어울리게 그가 이른 것말고도 평소보다 때깔이 좋은 반찬들에 더 해서 과일 두엇이 함께 놓여 있는 걸 본 정연은 송구함이 한층 커지는 걸 느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이렇게 챙겨주시니 무어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관직 나가시게 되었으니 훌륭한 관리가 되시오. 어디에 어떻게 나갈지는 모르겠으나, 다들 이런 걸 어려움 없이 먹게 하면 더 좋고.”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말에 정연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나아갈 길이 단순하지 않다는 걸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냥 여유가 생기면 한번 생각해 주면 그만이니 명심이니 각오니 다짐이니 하실 필요는 없소이다. 자자, 내 말이 길어 음식이 식겠소이다. 어서 자시구려.”



***



김 생원이 차려준 상을 맛깔나게 해치운 후 정연은 곧장 고향에 소식을 적어서 보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다시금 방이 붙은 자리에 온 그는 새삼스러운 얼굴로 주변이며 방을 살폈다.


“장원은 아니라 못 하여도 탐화랑은 될 것이니 그렇게 걱정하지 마시지요.”

“크흠, 그런 것을 걱정한 게 아니외다.”


어느새 왔는지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건네는 김진표에게 정연은 헛기침하며 부정했다.


물론 아주 조금, 그런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장원은 종6품으로 시작하고 아원과 탐화랑은 정7품으로 시작하니, 참상관 반열에 들고 아니들고를 생각하면 욕심이 없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방을 살핀 것은 다른 연유에 있었으니, 그를 제한 다른 사람들의 답안은 무엇이었는지 한편 살펴보고자 한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이제야 떠올린 것은 조금 늦은 일이 아닌가 싶으나 나중에 괜히 얼굴 붉힐 일을 늦게나마 방지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 여긴 그는 천천히 눈으로 답안을 살폈다.


“허어.”


눈으로 대충이나마 내용을 살핀 정연은 기이하다고 여겼다.


그를 제한 다른 답안들에 쓰인 이름들은 분명 기억에 없는 것이건만, 내용이며 주장하는 논조는 비슷하다고 여긴 것이다.


“아하, 이제 보니 다른 분들 살피시는 거였군. 들으니 한 사람은 저 멀리 의주에서 왔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저기 동래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걸 어찌 그리 소상히 아시오?”

“간단하지요. 설마하니 그날 술 진탕 마신 사대부가 우리가 다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아하.”


김진표가 지금 신세가 다소 어정쩡하다고 하나 권세가 집안이며 부리는 사람들이며 가산은 여전하다.


그러니 사람 조금 풀어서 소문 그러모으는 일이야 어렵지 않은 일일 터였다.


정연 자신만 하여도 동네에 무슨 잔치가 있다고 하면 연유 알아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보다 그날 이른 것은 한번 생각하여 보셨습니까?”

“그날?”


어리둥절하여 되묻는 말에 김진표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좀 늦게 이르긴 했지요.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냥 관직에 올라가서 서로 잊지 말자, 그리 말하였을 따름입니다.”


확답을 받아야 할 일인가 싶어 정연이 두 눈을 껌벅거리니 김진표는 사방 눈치 보다가 슬그머니 조금 더 속내를 드러냈다.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적습니다. 농사지어도 혼자서는 힘들고, 나무를 베어도 혼자서는 힘들지요. 관직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사람은 전에 있던 인연을 기대할 수 없는 몸입니다.”


김진표가 이르는 말에 정연은 고민 어린 얼굴로 그를 보았다.


허나 김진표는 딱히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라고 하듯 몸을 돌려서 멀리 보니, 그가 보는 곳을 바라본 정연은 대답을 당장 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명에 따라 이제 모인 사람들을 차례로 확인하겠소이다! 호명된 자는 이리로 오시오!”


전에 보았던 자가 다시금 군사들과 와서 외치니 사사로이 한담이나 할 시간은 없어졌음은 분명하다.


또한 김진표 그걸 알아 대답은 천천히 하라는 투로 말했으나 정연은 여기서 아무런 언질도 없이 넘기면 나중에 의가 상한다고 여겼다.


“이런, 나중에 잘 생각하여 대답해드리리이다.”


면목이 없다는 얼굴을 더해 말하니 김진표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나중은 한참 뒤여도 좋으니 천천히 하시지요. 당장은 그보다 더 신경 써서 대답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말입니다.”

“응? 그게 무슨-.”

“김진표! 김진표는 앞으로 나오시오!”

“이크, 가봐야겠습니다. 나중에 봅시다.”


무언가 더 묻고 싶은 말에 묻고자 하나 김진표를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김진표는 부리나케 달려 앞으로 가니, 정연은 졸지에 의문만 잔뜩 그에게 넘겨받은 셈이 되고 말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연이 그 의문을 풀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이리로 들어가서 잠시 기다려 주시오. 곧 안내할 사람이 올 것이외다.”


말하는 대로 작은 방에 조심스럽게 들어가니 두 사람이 먼저 안에 있는 게 보이니 정연은 합격자들이라 생각하며 입을 열어 통성명을 시도했다.


“영변부에서 온 정연입니다.”

“이거 참, 아무래도 형장 말이 맞는 모양입니다.”

“쩝, 말하면서도 긴가민가했는데.”


헌데 돌아온 것은 이름이 아니라 영문 모를 말들이라, 정연은 당황하여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자신들이 실례하였음을 그제야 자각한 두 사람은 황급히 입을 열어 이름을 댔다.


“험험, 이 사람은 의주에서 온 임관일이라 합니다.”

“실례했소이다. 저는 안복삼이라 하는 자외다.”


이름들이 익지 않으면서 익다고 여기니, 정연은 이내에 이들이 자신과 함께 답안이 붙었던 이들이라는 걸 기억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장원과 아원이 여기 계셨습니다.”

“아원하고 탐화랑이 아니라?”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우리 답안보다야 정 선생 답이 더 나은데.”


긴장을 풀고자 한 말이나 절반은 진심이라, 두 사람이 대답하는 말을 들은 정연은 화급히 손사래를 쳤다.


“영변부에서 온 저와 같은 놈이 장원이라니, 되면 좋겠지만 무얼 바라겠습니까.”

“그렇게 치면 나는 의주에서 왔소이다.”

“그리고 나는 말만 양반이지 급제한 사람이 내가 한 오대였나 육대였나 그렇소이다.”


연이은 말에 정연은 오늘 자신이 무언가 액운이 있는 날이 아닌가 싶어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그 모습이 퍽이나 재미있게 보였던지 임관일이며 안복삼은 호의 어린 말을 건넸다.


“이만하면 우리 모두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으니 마음에 듭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무슨 실직을 얻을지는 모르지만 이것도 연, 동기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어디서든 잘 되면 좋지요.”


이들이 하는 말에 호의가 가득 담겨 있으니 정연도 차츰 진정하여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신변잡기며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묻고 풀고 하던 중 바깥에서 그들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안에 계신 분들, 들어가겠습니다.”


양해를 구한 후 곧장 문을 열고 한 사람이 얼굴을 비추니 그 얼굴에 보이는 곱상함이며 복색으로 내관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다.


그들을 이곳으로 오게 한 관리가 아니라 내관이라 한순간 이상하게 여기긴 했으나 내관도 내관 나름, 예의를 갖춘다고 낮은 자가 아니라고 하듯 그가 한 소개는 얕볼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상선 오자복이올시다. 세 분은 의관을 정제하고 따라오시지요.”


상선이라는 말에 세 사람은 크게 긴장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의관을 살피고는 그를 따랐다.


이윽고 걸음을 옮겨서 따르던 그들은 차츰 안색이 하얗게 변했는데, 아무리 보아도 가는 방향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점차 궁궐 안쪽으로, 그리고 더 안쪽으로 향함에 더해 누가 보아도 여기가 궁궐 가장 안쪽, 구중심처다 하는 곳에 들어서니 향하는 곳이 어디며 어떤 사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얼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지 않을까, 이르지 않을까 생각하던 이들에게 갑자기 생긴 이러한 일은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어떻게 하는 게 예의에 맞는 것이다, 이렇게 일러주는 이가 있기 마련인데 그런 언질은 전혀 없었으니 혹여 그들이 괜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허나 피하고 싶은 일이나 어려운 일은 반드시 닥쳐온다고 하듯 걸음을 멈춘 오자복이 외친 말에 그들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전하, 이르신 대로 먼저 셋을 데리고 왔나이다.”


안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보고자 부른 사람은 조선에서 가장 지엄한 이였다.



***



“시, 신 정연, 하늘 같은 주상 전하를 뵈옵니다.”

“소, 소인 안복삼, 임금님을 뵙습니다.”

“의, 의주에서 온 임관일이라고 합니다.”


신선하다.


예의를 갖추는 일은 매번 보는 일이다.


임금이 하는 말에 곤혹스러워하고 절절매는 것도 흔한 일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인사만으로 이리 땀을 뻘뻘 흘리며 어려워하는 모습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 참으로 신선했다.


그러고 보니 제법 년수가 지나긴 했지.


“이리 부른 것은 그대들에게 하나씩 물어보고자 함이다.”


상념도 잠시, 나는 이들을 부른 이유를 꺼냈다.


그러나 막상 말한 것이 다소 두루뭉술하였는지 세 사람은 누구 하나 눈치만 살필 뿐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조금 설명이 필요하겠구나. 나는 이번 과거에서 이르길, 시책을 물으며 직접 행할 것이라 하였다. 그대들이며 다른 합격자들은 이 기대에 훌륭하게 부응하였으니, 다소 거칠거나 부족하다고 한들 모두 한번은 논의될 것이다. 그러나 어디 나랏일이 그것으로 그치겠는가.”


천하 정세며 나라 간 일을 논하는 일이야 누구나 즐거워하고 생각하는 바가 하나씩은 있는 법.


그렇지만 그런 것만으로 나라는 굴러가지 않는다.


과거를 통해 외부를 대하는 법이며 천하 대하는 법은 충분히 모았다.


그러면 이제 마땅히 내부, 조선 자체를 위한 방법도 한번 들어봄이 좋았다.


사람 하나의 생각보다야 여럿이 하는 생각이 더 나으니 말이다.


“그대들에게 묻겠다. 각각 한 가지, 이번에 과거 시제로 나온 것과 별개로 시책이든 국책이든 권하고 싶은 것을 허심탄회하게 논하라.”


기껏 편히 일러 주었는데 부담이 큰 것인지 세 사람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게 보인다.


당근이라도 좀 던져줘야 하나.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만 이들에게도 하나 정도는 생각한 당근이 있기는 하다.


“이 일은 중하여 한때의 물음에 그치지 않을 것이니, 그대들이 한 말은 모두 조정에 회부되어 가부며 효용을 논할 것이다. 여기서 가장 훌륭한 시책이라 여기는 말을 한 사람은 내 높이 여겨 포상할 것이니, 한 급을 올려서 제수할 것이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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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417화 멈추는 것은 언제인가 +4 23.11.26 249 19 13쪽
417 416화 승전 아닌 승전 +2 23.11.25 262 21 13쪽
416 415화 찻잔은 넘길 수 없다 +4 23.11.24 239 18 18쪽
415 414화 선택할 수 없는 일 +3 23.11.23 230 16 13쪽
414 413화 시작은 끝이 아니다 +3 23.11.22 254 19 13쪽
413 412화 소문에도 진실은 있다 +3 23.11.21 263 19 12쪽
412 411화 새로운 하늘 +5 23.11.20 283 22 13쪽
411 410화 사천 평정 +2 23.11.19 253 19 13쪽
410 409화 천수가 있는 성 +4 23.11.18 259 19 12쪽
409 408화 이역만리의 만남 +5 23.11.17 296 22 12쪽
408 407화 부자가 가는 길 +6 23.11.16 289 21 14쪽
407 406화 체면 경쟁 +10 23.11.15 282 22 13쪽
406 405화 꿈보다 해몽 +2 23.11.14 275 19 12쪽
405 404화 할 수 있는 최선 +2 23.11.13 250 18 12쪽
404 403화 천명의 사자 +5 23.11.12 249 20 13쪽
403 402화 가시는 삼킬 수 있다 +2 23.11.11 258 19 12쪽
402 401화 시간은 때때로 불공평하다 +5 23.11.10 261 19 13쪽
401 400화 서쪽으로 +8 23.11.09 264 19 14쪽
400 399화 작은 천하 +3 23.11.08 262 19 14쪽
399 398화 아직은 반쪽 +3 23.11.07 258 21 14쪽
398 397화 흔들리는 판 +1 23.11.06 254 21 14쪽
397 396화 균형 +1 23.11.05 254 22 12쪽
396 395화 논공행상 +3 23.11.04 267 22 12쪽
395 394화 동경 +3 23.11.03 267 20 12쪽
394 393화 다섯인가 하나인가 +5 23.11.02 254 22 14쪽
393 392화 노리는 것은 +1 23.11.01 249 20 12쪽
392 391화 두 번째 황제의 죽음 +1 23.10.31 263 20 16쪽
391 390화 떠나는 계절 +3 23.10.30 248 22 13쪽
390 389화 사대부로서 부끄러운 일 +3 23.10.29 263 20 12쪽
389 388화 필요하면 만든다 +5 23.10.28 290 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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