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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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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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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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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92화 노리는 것은

DUMMY

392화 노리는 것은


“고되다, 고되어.”


멀리 심양을 보며 외조 좌랑 윤선거가 말하니 그를 따라서 이곳까지 온 의정부 주부 정연, 임관일, 안복삼 세 사람은 물론이고 말을 들은 모두가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일행 가운데 가장 힘든 기색이 덜하니 공감하기 어려웠던 탓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무어라 생각하고 어떤 얼굴을 하던 윤선거는 개의치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래도 곧 심양이니 세자저하 뵙고 나면 쉴 틈이 생길 거요. 다들 조금만 힘냅시다.”



***



“방금 도착한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바로 일러둘 말이 있다.”


쉴 수 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도착하자마자 조선에서 온 이들은 소현세자의 일장 연설을 듣게 되었다.


“당금 심양 정세가 매우 수상하다. 자리를 이어간다고 함은 엄숙하고 경건하며 책임이 넘치는 자리가 되어야 마땅하다. 하물며 선대가 갑작스러운 세상을 떠나서 잇는다면 말할 것도 없다. 허나 아무래도 떠난 사람을 개의치 않고 욕심을 부리는 이들이 있는 듯하니, 그대들은 행동을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심상치 않은 말에 몇몇이 청나라가 강하여졌다고 하여도 여전히 오랑캐구나 생각할 무렵 소현세자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또한 저들을 얕보지 마라. 이들은 이제 기틀을 잡아가고 있으니, 마땅히 어리석은 일이 있다면 지혜를 빌려주어서 나은 길로 가게 함이 옳다. 이웃으로서, 유학자로서 옳음을 전하는 것은 마땅한 방도임을 잊지 말라.”


속단하였던 사람들이 이 충고이며 꾸짖음에 얼굴을 살짝 붉히는 가운데 소현세자가 계속 말을 이었다.


“또한 오늘은 쉬게 하나 내일은 그대들에게 긴히 이번 일에 대한 각각의 생각이며 의견을 물을 것이다. 이따가 해지기 전까지 서문으로 그대들에게 알릴 것이고, 내일 정오에 기하여 사람을 보낼 것이니 그리 알고 준비하라.”


쉬라는 말이 절대로 그대로 들리지 않으니 사람들은 저마다 얼굴빛을 어둡게 했다.


그러던 중 이번에 온 이들은 마침 거의가 저번 과거에서 뽑힌 이들이라, 이것과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깨닫고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성상이나 세자저하나 똑같다고 말이다.



***



심양에 도착한 이들은 각각 안내를 받아서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러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아직 그러한 시간조차 허락되기 요원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윤선거였다.


“윤 좌랑, 고생이 많았소.”

“저야 엉덩이며 다리만 좀 고생하면 그만입니다. 어찌 이곳 심양에서 심기 쏟음이 다대하실 저하께 비하겠습니까.”


윤선거가 공손히 이르는 말에 소현세자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알았소?”

“이미 저하께서 욕심부리는 이들이 있다고 함을 이르지 않으셨습니까. 또한 전에 정랑 송시열이 그러한 일을 논한 바가 있으니 좋게도 나쁘게도 알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윤선거가 숨기거나 피하는 기색 하나 없이 대답하니 소현세자는 그 당당함에 작게 위안을 얻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대와 같은 이가 있으며 또 새로이 상께서 어여삐 보아 뽑으신 인재들이 있으니 참으로 든든하오.”

“신들은 최선을 다하여 조선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윤선거가 하는 말에 소현세자는 기꺼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그를 기쁘게 한 것은 조선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 한 부분이었다.


“도리에서 어긋나지 않고 항상 견실하여 정도를 간다. 실로 그대는 지금 조선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칭송받는 이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소이다.”

“소신은 뛰어난 사형과 사제 덕에 과한 칭함을 받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 그대가 그렇다면야.”


가벼이 말을 마친 소현세자는 곧 조금 더 진중하게 표정을 바꾸며 물었다.


“아버님, 아니 상께서는 이번 일에 대하여 무어라고 하셨소? 조정에서는 또 어찌 반응하였고?”

“상께서 몇 마디 이르시긴 하였으나 먼저 보내신 서신이 있으니 그것을 말보다 앞서 살피심이 낫다고 여깁니다.”


윤선거가 공손히 짐에서 꺼내어 내미는 서신을 받은 소현세자는 복잡한 얼굴로 그것을 보다가 내용을 살피지 않고 물었다.


“허면 조정 일은 어떻소?”

“크게 당황하여 말이 여럿 일고 있습니다. 다만 당장은 두고 보며 살피자는 의견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문제와 거리를 두겠다, 이거로군.”


적나라한 말에 윤선거는 무어라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 소현세자는 잠시 한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더니 소리없이 한숨을 쉬며 서신을 펼쳤다.


“으음.”


안부를 시작으로 하여 본론으로 이어진 서신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저 날이 차가워져 가고 있는데 몸은 건강한지 묻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번 일이 안타까우며, 현지에서 급함이 있어 따로 논하기 전에 정할 것이 있으니 먼저 정하고 고하여도 된다는 말이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는 말미에 세자를 믿고 있다, 이리 쓰여 있으니 내용 자체는 길이와 별개로 참 바라 마지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소현세자는 달가우면서도 의심을 거두기 어려웠다.


“상께서 보내신 내용은 이것이 다인가?”

“저는 그 내용을 모릅니다. 하지만 상께 받은 것이, 전하여 주라고 들은 것이 있는가 물어보시면 서신 말고 전언이 있나이다.”

“전언? 그게 무엇이오?”


소현세자가 궁금함을 담아서 물으니 윤선거는 곧장 입을 열었다.


“상께서 이르시길, ‘이웃을 가까이하고 도움은 마땅하나, 그들과 하나가 될 생각은 하지 마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우선함을 정하라’, 그리 이르셨나이다.”

“!”


윤선거가 이르는 말에 소현세자는 크게 깨달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웃은 이웃이지.”


이웃과 때로는 하나 됨이 가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이웃은 이웃이니, 먼저 할 대상은 아님이 분명하다.


‘당장 같은 가족도 3대를 내려가면 서로가 데면데면하여지는데 이웃이라고 무엇이 크게 다를까. 그래, 그런 법이지.’


소현세자는 짐작하고 알았다고 생각한 것을 입 밖으로 말은 내지 않고 속으로만 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앞으로 움직일 방향을 정하였으니, 소현세자는 곧 윤선거를 물렸다.


“좌랑은 고생하였소. 내일부터는 또 바쁘게 될 터이니 이만 물러가서 쉬시오.”

“예, 저하.”


윤선거가 예를 갖추고 물러난 후에도 소현세자는 홀로 생각에 잠겨서 여러 고민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고민을 마친 소현세자의 눈에는 망설임이 없으니, 그는 며칠 전부터 결정을 미루었던 일을 오늘 하기로 마음먹었다.


“게 누구 있느냐.”

“저하, 무슨 일이시온지요.”


바깥에서 거의 같이 붙어있다시피 한 박 내관의 말소리가 들리니 소현세자는 방금 내린 결정을 입에 담았다.


“사람을 두 곳에 보내라.”


어딘지 묻지 않고 그저 기다리는 반응에 소현세자는 곧 보낼 곳들을 일러주었다.


“예친왕과 정친왕에게다.”



***



“차는 입에 맞으십니까?”

“장비께서 이리 대우하여 주시니 실로 감읍합니다.”


예를 표하고는 차를 한모금 입에 머금은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은 참으로 전장에서는 누릴 수 없는 여유, 호사라 생각하며 속으로 쓰게 웃었다.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주한 상대, 영복궁 장비 보르지기트 붐부타이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푸린이 언제 오를 수 있겠습니까?”

“장례를 모두 마치고 가라앉은 후에나 가능할 것입니다. 대청이 위기라면 모르나, 지금 대청은 그 어느 때보다 성세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붐부타이에게 대답하여 주며 도르곤은 문득 세상일이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디 이러한 승계가 쉬이 이루어질 일은 아니긴 하다.


하지만 지금 시일을 차일피일 미루며 친왕들이 서로 눈치 싸움,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건 그저 장례며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다들 저마다 욕심이 있는 거지.’


우습게도 그 욕심 차리는 일을 생각할 수 있는 건 지금 대청이 전에 없는 성세를, 북경을 함락하여 사실상 천명 쟁탈전에서 승리한 셈이라 여기기 때문이었다.


‘한께선 너무 뛰어나셨다.’


차라리 북경이 아직 그들의 손에 떨어지지 않아 원대한 목표로 남아 있었다면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하여 푸린을 위에 올리고 전쟁을 이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명나라와 벌이는 전쟁은 이미 한 차례 끝났으며, 그 끝은 청나라의 대승이었다.


여기에 더해 지금 명나라 잔존 세력들은 감히 두려워하여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딴 생각을 품는 사람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당연한 일은 좋은 일이 아니고, 바람직한 일도 아니었다.


‘다섯을 노리는 이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허나 혹여 그 이상을 바란다면······자비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게 누구든 말이지.’


차의 온기와는 정반대로 싸늘하기 짝이 없는 눈을 한 도르곤은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가만두지 않으리라 여겼다.


그러면서 다시금 차를 입에 넣어 마음을 달래려고 하던 중 도르곤의 귀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예친왕 전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믿을만하여 가까이에 두고 부리는 휘하 팔기 사내의 목소리라는 걸 기억한 도르곤은 굳은 얼굴로 양해를 구했다.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 할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붐부타이가 수긍하여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준비한 작은 상자를 도르곤에게 내밀었다.


“오늘 드신 찻잎을 조금 담아두었습니다. 예친왕, 날이 차가워지고 있으니 부디 몸조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한을 뵈러 가시면 아니 됩니다.’


붐부타이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한 말을 삼키나 도르곤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삼켰는지 알아챘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럴 일이 없다고 장담은 못하는 게 인생사라고 하나, 내가 무슨 그런 애틋한 마음이 있다고 따라가는가.’


홍타아지가 예전에 어미를 순장하여 버린 일을 잊은 적은 한시도 없다.


그리고 도르곤은 자기 마음 안쪽에 여전히 야심이 있음도 안다.


허나 그 이상으로 욕심을 품고자 하면 전에 죽은 호오거의 얼굴이, 그 죽기 전에 그가 한 대답에 만족하여 편안히 눈감은 얼굴이 떠올랐다.


“이렇게 신경 써 주시니 실로 영광입니다.”



***



“조선에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조선에서?”


바깥으로 나가 돌아가는 길에 들은 첫 말은 도르곤이 기다렸던 일이었다.


그러나 돌연 바뀐 일이기도 하니,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그 외에는?”

“오늘 일찍 조선에서 사람이 여럿 당도하여 그들 거하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과연. 조선왕이 답을 보낸 모양이구나.”


그간 조선의 세자가 만남을 거절하는 핑계로 삼은 말이 ‘상께서 아직 답하지 않으셨다’였다.


그런데 이제 조선에서 사람이 여럿 오더니 그 세자가 미루던 만남을 하고자 하니 상황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날은 언제냐?”

“그것을 정하고자 보낸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허면 아직 있겠구나.”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다 하였기에 쉴 곳을 주고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잘했다.”

가벼이 치하한 도르곤은 문득 팔기의 얼굴에서 아직 이르지 못한 말이 있으며 그 말이 별로 탐탁지 않은 것임을 알았다.


“다른 일은?”

“······조선에서 정친왕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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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417화 멈추는 것은 언제인가 +4 23.11.26 249 19 13쪽
417 416화 승전 아닌 승전 +2 23.11.25 262 21 13쪽
416 415화 찻잔은 넘길 수 없다 +4 23.11.24 239 18 18쪽
415 414화 선택할 수 없는 일 +3 23.11.23 229 16 13쪽
414 413화 시작은 끝이 아니다 +3 23.11.22 253 19 13쪽
413 412화 소문에도 진실은 있다 +3 23.11.21 262 19 12쪽
412 411화 새로운 하늘 +5 23.11.20 282 22 13쪽
411 410화 사천 평정 +2 23.11.19 252 19 13쪽
410 409화 천수가 있는 성 +4 23.11.18 258 19 12쪽
409 408화 이역만리의 만남 +5 23.11.17 295 22 12쪽
408 407화 부자가 가는 길 +6 23.11.16 289 21 14쪽
407 406화 체면 경쟁 +10 23.11.15 282 22 13쪽
406 405화 꿈보다 해몽 +2 23.11.14 274 19 12쪽
405 404화 할 수 있는 최선 +2 23.11.13 249 18 12쪽
404 403화 천명의 사자 +5 23.11.12 248 20 13쪽
403 402화 가시는 삼킬 수 있다 +2 23.11.11 257 19 12쪽
402 401화 시간은 때때로 불공평하다 +5 23.11.10 260 19 13쪽
401 400화 서쪽으로 +8 23.11.09 263 19 14쪽
400 399화 작은 천하 +3 23.11.08 261 19 14쪽
399 398화 아직은 반쪽 +3 23.11.07 257 21 14쪽
398 397화 흔들리는 판 +1 23.11.06 253 21 14쪽
397 396화 균형 +1 23.11.05 254 22 12쪽
396 395화 논공행상 +3 23.11.04 266 22 12쪽
395 394화 동경 +3 23.11.03 266 20 12쪽
394 393화 다섯인가 하나인가 +5 23.11.02 253 22 14쪽
» 392화 노리는 것은 +1 23.11.01 249 20 12쪽
392 391화 두 번째 황제의 죽음 +1 23.10.31 262 20 16쪽
391 390화 떠나는 계절 +3 23.10.30 247 22 13쪽
390 389화 사대부로서 부끄러운 일 +3 23.10.29 262 20 12쪽
389 388화 필요하면 만든다 +5 23.10.28 290 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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