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새글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최근연재일 :
2024.07.07 21:00
연재수 :
631 회
조회수 :
349,380
추천수 :
16,067
글자수 :
3,722,848

작성
23.09.06 21:00
조회
270
추천
21
글자
13쪽

336화 형제의 연

DUMMY

336화 형제의 연


“그러니까 니 말은 지금 바깥에 왠 노인이 무릎을 꿇고 있다?”

“예. 그리고 그놈, 아무래도 이번에 온 놈들 가운데 하나인 거 같습니다.”


김충방이 대답하는 말에 김충선은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표로 나선 건 젊다 못해 새파랗게 어린놈이었는데?”

“왜 그러고 있냐고 물어보니까 그저 가르침을 구한다고만 반복해서 말하더군요.”

“흐음.”


가르침을 구하고자 하는 대상이야 굳이 물을 것도 없었다.


김충선에게 묻고자 함이 아니었다면 저렇게 하겠으며 또 김충방이 굳이 돌아와서 알릴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가르침이라는 게 대체 어떤 것을 말하는지 알기 어려웠기에 김충선은 미간에 주름을 가득 잡았다.


그러다가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니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생각을 입에 담았다.


“이거 설마 오늘 바깥을 나도는 놈들을 살리기 위한 수작은 아니겠지?”

“저야 모르죠.”

“쯧, 일단 나간다. 그놈이 무언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저 가르침을 구한다고 꿇어앉아 있다면 함부로 잡아들이거나 끌어내는 것은 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잘못이라면 있긴 하지요.”


잘못이 있다는 말에 김충선이 무언의 시선으로 물으니 김충방은 곧 그가 생각한 잘못을 늘어놓았다.


“이곳이 어디 평범한 곳입니까? 외조 참판 겸 수어통행감찰 제조이신 김충선 대감이 머무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함부로 드나들다니, 잘못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책하려면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잡거나 목을 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이다.”


김충선은 말을 잠시 멈추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렇게 하자면 너도 그렇고 여기까지 오는 길을 지키던 놈들 다 잘못이지.”

“크흠.”


딱히 틀린 말은 아닌지라 김충방은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쯧쯧, 기왕 이렇게 된 거 직접 가서 용무며 이 경비에 대한 것도 물어야겠다.”

“구,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을까요?”

“책할 생각 없으니 걱정 마라.”


김충선은 잘라 말하고 걸음을 옮기나 아무리 그래도 듣는 사람이며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잘라 생각하긴 어려운 법이었다.


“에이.”

그러니 김충방이 화급히 따라 나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



밤이라는 건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든다.


고요하여 침착함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그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인해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지금 신타로는 아쉽게도 후자에 해당하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미, 미야모토 공?”

“신타로, 스승님이라고 불러라.”


대뜸 찾아와서 무릎 꿇음도 그렇거니와 팔자에도 없던 스승을 모시게 된 신타로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미야모토 무사시는 그 위명을 노름으로 딴 게 아니라고 하듯 의연하게 무릎을 꿇고 자세를 꼿꼿이 했다.


참으로 감탄이 나오는 자세며 모습이나 신타로는 감탄보다는 원망이 들었다.


‘아니, 왜 갑자기 나는 끌고 와서 이러시냐구요!’


혹여 큰 소리를 내면 더 일이 커질까 봐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비명을 삼킨 신타로는 사방을 힐끗거렸다.


불을 붙여 밝히고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둘이고 셋이고 갑옷 입은 조선군이 있으니 당장에라도 달려와서 칼을 휘두르고 창을 내지를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조선 사람들은 활과 총을 잘 다룬다지.’


문득 오며가며 귀동냥으로 들은 말을 떠올린 순간 신타로의 머리에서 상상이 바뀌었다.


창과 칼에 죽는 것에서 화살과 총에 맞아 너덜너덜해져 죽는 것으로 말이다.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운지 고민하여 가능하면 덜 고통스러운 쪽을 바랐고, 또 한편으로는 그가 생각한 것들이 제발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는구나. 의연하게 있어라.”


두 눈 꼭 감고 간절히 빌던 중에 무사시가 이르는 말에 신타로는 크게 긴장하며 딱딱한 얼굴로 사방을 살폈다.


말한 대로 앞에서 포구에 내려서 보았던 조선군 장수가 오는 것이 보이니 신타로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대가 나를 부른 자인가?”

“그렇습니다. 소인, 미야모토 무사시라 하며 열셋에 아리마 기헤이와 결투해 승리하여 지금까지 낭인이자 검호로서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검호라.”


다소 미적지근한 반응에 신타로는 한층 더 두려움에 휩싸이며 당장이라도 몸을 돌려서 이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일었다.


허나 아무리 무사시만 한 위명이나 재주는 없다고 한들 그 역시 칼밥을 먹고 산 낭인이었고, 무엇보다도 사람으로서 할 도리가 있고 아니 할 도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여 벌벌 떨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니, 그 모습은 자연스레 김충선의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당당하고 젊은이는 두려움이 가득하군.”

“아, 아니 저는, 어, 그러니까······.”

“신타로는 제자로 들였으나 아직 날이 짧아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러나 스승을 위해 부족함을 무릅쓰고 함께 하였으니 실로 좋은 제자입니다.”


무사시가 하는 말에 신타로는 잠시 이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고민했다.


그러나 무어라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이야기가 다시 오가기 시작하니 그는 생각을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래, 검호가 무슨 일로 날 청하였나? 그리고 여기에는 어떻게 들어왔나?”

“청한 것은 조언을 받기 위해, 그리고 온 것은 그저 중요한 용무가 있음을 당당하게 일렀을 따름입니다.”


무사시가 하는 말에 김충선이며 김충방은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림짐작하였다.


당당하게 와서 중요한 일이 있다고 이르니 일본 측 대표가 보낸 사람이라고 여긴 것이 분명했다.


태도가 당당함도 그렇지만 무사시의 행색이며 지금 말하는 모양도 그렇고 나름대로 직책이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곳으로 오는 길은 조선군이되 항왜 출신 노병들이 섞여 있으니 아마도 그 차이를 쉬이 알아채고 조언하였으리라 여겨졌다.


“운이 좋았군.”

“운으로는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김충선이 중얼거리는 말에 무사시가 바로 말을 돌려주었다.


이에 김충선은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조언이며 원하는 것이라. 모두 같은 것을 향하는가?”

“그렇습니다.”

“허면 묻게. 내 자네를 보아 오늘만은 무례며 결례며 모두 잊고 대답해 주겠네.”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무사시가 비굴하여 보이지 않게 천천히 고개를 숙이니 김충선은 다시 입을 열었다.


“허나 이번뿐이다.”

“비례는 한번이면 족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김충선이 짧게 던진 경고에 담긴 냉랭함은 겨울 한파와 같으나 무사시는 굴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바로 본론을 입에 담으니 그 물음을 들은 김충선은 묘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바로 묻겠으니, 귀인처럼 성공하고자 하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성공?”

“이 사람은 명성을 위해 온갖 사람과 결투하고 그림을 그렸으며 조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병기를 다루는 법이며 마음가짐을 적은 책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허나 그 모든 것이 귀인이 이곳에서 이룬 것에 비하면 부족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무사시가 이르는 말에 김충선은 가만히 그를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서 물었다.


“부족하다? 그대는 저술을 남겼다고 하였다. 그것으로 후대에는 어쩌면 그대가 나보다 더 유명할지도 모른다.”

“후대에 유명함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나 살아서 그것을 보고 감이 덜 후회스러울 것입니다.”

“지금도 나중도 바란다라. 욕심이 크군.”

“그렇지 않으면 굳이 이런 나이가 되어 죽으라고 보내는 뱃길에 자원하겠습니까.”


이미 내려놓았음인지 무사시가 하는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 거침없음에 담긴 각오를 엿본 김충선은 감탄하는 한편 안타깝게 여겼다.


“대단한 일이나 나는 높이 올라가고자 조선으로 몸을 옮기지 않았다.”

“동기는 무엇이든 귀인은 성공하셨습니다. 하면 그것을 들려주시면 스스로 타산지석으로 삼겠습니다.”


무사시가 연이어 간청하니 김충선은 잠시 말없이 그를 보았다.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시선은 옆에 있는 신타로에게도 향하니 신타로는 괜히 두려움을 느끼며 움찔했다.


‘뭐, 뭐지?’


두려움과 궁금함이 동시에 솟으나 그 양쪽 모두 당장은 해소하기 요원하니 신타로는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도움이 되든 아니 되든 들어보고 싶은 간절함은 알겠소. 그리고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돌려보내는 건 유학자로서 할 일이 아니지.”


다소 말투가 풀어지며 이르는 말에 무사시는 반색하였으나 김충선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조건이 하나 있으니, 이것을 지키겠다고 말하지 않으면 나는 일러주지 않을 것이오.”


조건이 있다.


이 말에 무사시는 처음으로 긴장하는 빛을 눈에 드러냈다.


“무엇입니까?”

“그대가 높은 곳에 올라가면 청나라에서 올라가게 될 것이겠지.”

“아마도 그러하겠지요.”


이미 큰 뜻을 품고 바다를 건넜으니 돌아갈 생각은 없다.


조선에서 높이 갈 수 있다면 그것도 좋으나 아마도 이 나라는 그러한 일에, 더 정확히는 무사시가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허면 원래 가기로 한 곳인 청나라에서 두각을 드러냄이 마땅하니 그곳에서 높아진다면 무사시는 그곳을 곧 나라이자 고향으로 삼고 죽는 날까지 살 생각이었다.


“청나라에서 높은 곳에 오른다면, 그렇다면 그대는 그때 얻은 힘을 주변국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라 덕을 베풀기 위해 쓰겠다고 약조하시오.”

“덕을 베풀라? 정확히 일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 해석함이 크게도 되고 작게도 되는 일이니 무사시는 스스로에게 떳떳하기 위해 말을 확실히 하고 싶었다.


그러나 김충선은 쉬이 대답하지 못하니, 이는 그도 지금 한 말을 딱히 정의하고 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크고 대단한 일을 하라고 함이 아니오.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여유가 있으면 돕는 것이 당연하듯,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여유가 있다면 도움이 마땅하오. 또 어렵다고 하여 더 없는 이의 물건을 빼앗지 않고, 어렵다고 하여 더 작은 나라를 수탈하지 않으면 그것이 덕을 베푸는 일이지.”

“과연. 그렇다면 그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들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무사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에 김충선은 제가 겪은 일들을 짧게 일렀다.


전쟁을 하러 왔으나 일본에서 겪은 전란에 지쳐 조선에 가담한 것, 그리고 그들에게 조총 다루는 법이며 전술을 가르친 것, 또 이후 전쟁에서 활약하여 벼슬 받은 일이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겪은 일들을 최대한 간략하게 일렀다.


“이것으로 내 이야기는 끝이오. 이것을 어떻게 그대가 접목할지는 모르나 부디 약조를 잊지 마시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약조는 대장부가 어찌 한 입으로 두말을 하겠습니까.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무사시는 그렇게 이른 후에 한 가지 더 생각하여 고했다.


“이렇듯 제게 큰 도움을 주셨으니 부디 청나라에 가서도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싶습니다. 부디 형님으로 모실 수 있게 하여 주십쇼.”


형님으로 모시게 하여 달라는 말에 김충선은 잠시 무사시를 보며 속내를 살피고자 했다.


이윽고 그 살핌을 마친 김충선은 웃으며 대답하였다.


“연이 있으면 그 또한 좋은 일이겠지. 작은 도움이라면 내 얼마든지 줄터이니 연락하게. 나는 옛 이름을 버려 김충선이니 김 형이나 충선 형님이라 부르게. 나는 그대를 무사시 동생이라 부를 것이니.”

“감사합니다.”

“또한 내게 무슨 일이 있다면 여기 충방이를 찾게.”

“엥?”


김충선이 돌연 화제를 제게 돌리니 김충방은 저도 모르게 당황하는 음성을 내었다.


그러나 김충선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이는 내 일족으로 동생뻘이니 그대에 또 다른 형과 같이 되어줄 걸세.”

“이리 신경 써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미야모토 무사시, 주신 것들과 약조를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또한 제가 혹여 세상을 떠난다면 이후는 여기 제자인 신타로가 지킬 것이니, 기억하여 주십쇼.”


갑자기 이야기가 자신에게 돌아오니 신타로는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닫기 반복했다.


그 모습에 김충선은 그저 웃으며 대답하였다.


“기억하도록 하지.”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67 366화 승리로 이어질 패배 +2 23.10.06 236 16 14쪽
366 365화 선점 23.10.05 228 17 12쪽
365 364화 가야 할 곳은 +1 23.10.04 244 16 14쪽
364 363화 맞아떨어진 이해 +1 23.10.03 244 16 16쪽
363 362화 살기 위한 궁리 +2 23.10.02 236 17 12쪽
362 361화 버림돌 +1 23.10.01 234 18 13쪽
361 360화 지펴진 불길 +3 23.09.30 254 17 13쪽
360 359화 끌려가는 심리 +3 23.09.29 249 16 15쪽
359 358화 지식과 체감 +3 23.09.28 246 15 15쪽
358 357화 말은 언제나 쉽다 +1 23.09.27 257 21 14쪽
357 356화 북경 공방전 23.09.26 271 18 13쪽
356 355화 다시 오지 않을 지금 +2 23.09.25 274 18 12쪽
355 354화 때로는 알기에 괴롭다 +3 23.09.24 262 17 16쪽
354 353화 이리와 호랑이 +1 23.09.23 260 15 12쪽
353 352화 우물 안 개구리 +1 23.09.22 266 20 12쪽
352 351화 부족한 현실 +2 23.09.21 263 18 12쪽
351 350화 까마귀가 난다고 하니 +2 23.09.20 260 18 13쪽
350 349화 혀는 칼보다 위험하다 23.09.19 270 17 13쪽
349 348화 맡겨진 선택 +3 23.09.18 285 19 13쪽
348 347화 천하를 갈망하는 자들 +2 23.09.17 276 20 12쪽
347 346화 전쟁의 도리 +1 23.09.16 275 20 12쪽
346 345화 세상에서 가장 큰 전쟁 +4 23.09.15 298 22 12쪽
345 344화 훗날을 그리는 사람들 +1 23.09.14 273 19 12쪽
344 343화 이어받을 사람 +3 23.09.13 283 19 12쪽
343 342화 소란한 이웃들 +3 23.09.12 285 21 15쪽
342 341화 봄이 오기 전에 +5 23.09.11 290 18 12쪽
341 340화 가장 밝게 타오를 때 +2 23.09.10 277 21 12쪽
340 339화 모양새는 중요하다 +1 23.09.09 273 18 14쪽
339 338화 가운데 있는 자의 처신 +2 23.09.08 274 20 14쪽
338 337화 연줄을 만드는 방법 +6 23.09.07 292 21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