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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정(蘭亭)서재입니다~

비밀 낙서첩

웹소설 > 작가연재 > 시·수필

난정(蘭亭)
그림/삽화
nanjung
작품등록일 :
2015.06.21 08:53
최근연재일 :
2017.04.05 15:48
연재수 :
379 회
조회수 :
125,966
추천수 :
1,653
글자수 :
165,582

작성
15.09.23 12:05
조회
389
추천
7
글자
4쪽

시인의 말

DUMMY

어머니, 아직도 그 말씀 못 드렸네요


아득한 옛날인가요? 삼십 년도 더 되었는가요?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남몰래 병마와 씨름하시던

그때가 벌써 이토록 까마득해졌나요?


어머니는 그러셨죠.

처음에는 푼돈 만지기밖에 안될지언정

무를 머리에 이고 팔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지세포에서 장승포로, 지세포에서 옥포로,

지세포에서 삼거리 재를 넘어 거제 읍내로,


지금은 거제시가 된 거제군 일대를

주린 허리 불끈 동여매고,

장딴지 푸른 심줄 툭툭 불거지든 말든,

무거운 무다라를 이고 다녔지요.


영숙이 저가부지가 키워

도 대회 나가 특상을 탄 무시 사이소.

세상에 나서 남편 자랑을 그토록

외고 패며 하는 여자는

어머니 이후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네요.


-- 시원한 무시 사이소!

이 청방무 맛 좀 보이소! --


아버지 멸치어장 선주였을 때에

너무나 곱고 너그럽고

모든 윗사람 아랫사람들에게

햇살같이 베풀어주던

선주부인, 사장사모님, 우리어머니.


어머니가 불현듯이 행상품목을 바꾸셨지요.

무시장사로는 2남3녀 우리 아이들 교육에 택도 음따,

체면이 밥 믹이주나?


그랬지요,

어머니는 남의 어장에 가서

남이 잡아 남이 삶아 남이 말린 멸치를 떼어다가

팔러다니기 시작하였지요.


대신에서 대동으로,

대신에서 소동으로, 대신에서 회진으로,

동네방네 다니다가

그래도 벌이가 시원찮다 싶었는지

또 삼거리 재를 넘기 시작하시데요.


멸치 사이소, 멸치 사이소.

금방 삶아 말린 멸칩니더.

멸치 어장 선주 마누라가 보장하는 멸칩니더.....


아파도 아파도 내색 할 줄 모르던 아버지,

아버지는 한가한 강태공처럼 유유자적

낚시를 다녔지요.

평생을 두고 보아도 찾을 길 없는 그런

멋진 솜씨

멋진 성격의 소유자 우리아버지.


어머니는 또 당신의 남편이 낚은 숭어를,

도다리를, 볼락을

멸치 대신에 이고 다니기 시작했지요.


-미역국하고 천생연분 도다리 사이소!


-배창시가 환장할만치 꼬소한 뽈래기 사이소!



어머니, 우리 어머니,

그때 든 골병으로 언제부턴가 시작하여 시방도

다리를 절고 다니시는 우리어머니.


며칠 전에 갖다드린 명앗대,

이제 지팡이를 애인 삼으라고

한낱 풀인 명아주를 꼴란 한 해 키워

그것도 선물이랍시고


낳아서 길러서 평생 죽을 때까지 쓰다듬어주시는

어머니 사랑에

보답이라고 드리면서,

그래도 그 말 한 마디는 깜박했네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애간장 다 빼내어 자식새끼 먹이고도

그게 체할까봐 등까지 두들겨주시는

어머니..........


아무리 몸이 아파도

자식새끼 온다면 몸 벌떡 일으켜

밥쌀 안치시는 어머니..........



어머니 당신이 없었더라면

이 몸 무슨 수로 세상구경 했겠으며

무슨 수로 고귀한 남자

내 아버지를 단 이십 년이나마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어머니,

일요일이 전화세 적게 나온다고

행여나 전화 하려거든 일요일에 하라고

가르쳐주신 우리어머니.


오늘은 일요일도 아니고 해서

이렇게 카페 한 구석에 쪼글시고 앉아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선물로 드린 어머니의 애인

그 보잘것 없는 풀은

그래도 지금 어머니 곁에 꼭 붙어있으리란 믿음에

안도하면서 이만 총총............



당신의 큰딸


영숙 올림.

나나_0~1.JPG


작가의말

****** 위의 글은 2004년에 나온 주영숙 시선집

[참았습니다 그리워도, 그리워도....] 책 뒤에 있는 시인의 말입니다.

당시 저는 이 시집을 어머니에게 선물로 드렸었는데, 어머니는 딸의 이 편지를 거의 외우다시피 하였습니다.

떠듬떠듬한 읽기 실력으로 틈만 나면 시집을 뒤적여 시를 음미하시다가 마지막의 이 편지 부분에 가서는 눈물을 주루룩 흘리시며 회상에 잠기시곤 하였지요.

 

지금은 저세상 가신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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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어떤 이별 +2 15.10.20 362 3 1쪽
140 돌아오는 길 15.10.20 351 3 1쪽
139 외로움 . 4 15.10.19 311 6 1쪽
138 하소연 +2 15.10.16 226 6 1쪽
137 덮어둔 일기 +5 15.10.15 194 5 1쪽
136 꽃 편지 보내오던 그 사람 +2 15.10.14 190 4 1쪽
135 이별의 예감 15.10.13 123 4 1쪽
134 아내의 남자 +2 15.10.07 453 7 1쪽
133 사랑하고 사랑해도 15.10.02 178 5 1쪽
132 시행착오 속에 행복이 +1 15.09.26 444 7 9쪽
131 오래된 즉흥시 15.09.26 195 5 1쪽
» 시인의 말 +2 15.09.23 390 7 4쪽
129 그 사람 15.09.08 184 4 1쪽
128 내일은 죽을 수 없습니다. +2 15.09.03 293 6 1쪽
127 찔레꽃 붉게 피는...... +2 15.09.02 414 6 1쪽
126 청설모 +1 15.08.31 188 7 1쪽
125 비밀편지 5 +5 15.08.15 157 7 1쪽
124 비밀편지 4 15.08.15 190 8 1쪽
123 청개구리 15.08.15 142 6 1쪽
122 어느 봄 +2 15.08.15 234 7 1쪽
121 내 이름은 마고 +1 15.08.13 318 5 3쪽
120 가을비 우산 속 +2 15.07.31 334 9 1쪽
119 이웃 8 15.07.29 250 7 1쪽
118 이웃 7 15.07.28 168 5 2쪽
117 이웃 6 +3 15.07.27 249 7 1쪽
116 웬수 키우기 15.07.26 404 8 2쪽
115 이웃 5 15.07.25 240 7 1쪽
114 이웃 4 +2 15.07.25 250 7 1쪽
113 나방이 +3 15.07.23 291 7 1쪽
112 한계령 오르는 길 15.07.23 294 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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