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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멀고도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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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9.20 16:37
최근연재일 :
2021.01.19 20:0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52
추천수 :
0
글자수 :
204,498

작성
21.01.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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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30.

DUMMY

“그때 자퇴를 하지 않고 휴학을 한 건, 이러기 위해서가 아니잖아.”


대오가 말했다.

그때의 나였다면, 그게 옳은 말이었겠지.


“지금은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난 지금 행복하니까.”

“너······.”


그 답지 않게 망설인다.


“지금 너, 안 행복해 보여.”

“나 행복해.”


대오가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뭐가 행복한데?”


그의 눈빛이 불타고 있었다.


다 이런 눈빛이다.

음악회에서 별에게 보았던 그 분위기. 대오도, 채윤도. 그리고 별도. 모두가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 주고 있는데, 나는 그런 눈빛이 아니다.


애초에 그들과 난 섞일 수 없던 걸지도 모른다.


“지금 이대로가. 이게 진짜 현실적인 행복이야. 나 쓸 만큼 벌 수 있는 직장 얻고, 얻기 위해 공부하고. 시간 쪼개서 쓰고. 그걸 달성했다는 데에서 오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 예전에 그냥 막 글 쓰고 올려서 오지도 않을 댓글 기다리고 조회수 하나로 기뻐하던 거······.”


밖이 캄캄하다.


“도대체 왜 그랬나 몰라?”


하늘은 캄캄하다. 그래도 땅은. 건물들이 있는 한 눈부시게 찬란하다.


“이렇게 가까이 보다 나은 게 많은 데 말이야.”


내가 몸을 일으켰다.


“가려고?”


대오가 내 손을 붙잡는다. 이런 적이 없던 녀석이라 꽤 귀한 모습이지만, 너무 늦었다.


“이렇게?”

“여기에 더 있을 수 없어. 내가 보는 별은, 내가 보는 빛은 이런 게 아니야. 밖에 있는 저것들. 당장이라도 붙잡힐 저것들이야.”

“그만.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이제 시작인 걸.”


그의 손을 뿌리치며, 나는 발걸음을 옮긴다.


“난 출발도 하지 않았어.”


소설에 조차 실을 수 없는 구닥다리 대사들을 뱉으면서 말이다.

카페의 문 밖으로 나오자 불빛이 나를 반겼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에 살짝 입을 맞추고 지나간다.


잘했어. 잘 된 일이야.


차가운 바람이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건물들의 빛보다 더 가깝고 눈부신 불빛이 별의 문자를 품고 있다.


“어디야?”


약 30분 전에 온 문자였다.


“지하 카페에서 나오는 길이야.”

“만난다던 친구?”

“응. 대학교 친군데 이젠 못 볼 것 같아서.”

“헐, 왜?”


좌우를 살핀다.


어디로 가야할까. 오늘의 일정은 이미 끝났는데······.


일단 무작정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별에게 문자를 계속해서 보낸다.


“안 맞았어. 여러모로.”

“유일한 친구 아냐?”

“음············. 놀린다는 걸 아는데, 맞는 말이라 슬프다.”


‘ㅋ’을 뒤에 무수히 붙이는 걸로 장난이라는 걸 알렸다.


“너는 바쁜 일 끝났어?”


내가 물었다.


“응. 생각보다 빨리 끝났어.”

“무슨 일이였는데?”

“음···.”


그리고 그녀의 문자가 다시 온다.


“문자로 하기는 좀 그러니까, 만날래?”

“그래. 어디서 볼까?”

“너 지금 지하카페면 내가 그쪽으로 갈게.”

“알았어.”


방향은 정해졌다. 나는 별의 집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걷지 않을 때, 작은 호프집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냥 문득 들어온 가게였다.


‘별과 별 사이.’


가게 이름이 확 와 닿는 것도 있었고, 투박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은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손님이 적어서 시끄러울 일이 없었다. 나는 별에게 문자를 해 이곳으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래? 좋아.”


별에게 답장이 왔다.

약간의 미소를 품고 나는 가게로 먼저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무뚝뚝한 여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면 오고, 가면 가라는 식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자리의 안내도 없어서 내가 직접 이리저리 살펴야 했다.


“아무 데나 앉으면 되나요?”

“그럼 정해줘야 않으슈?”


주름이 자글자글 박힌 얼굴을 귀찮다는 듯 구긴다.


“그건 아니죠···.”


괜히 고개가 숙여진다. 그대로 한적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거 메뉴판 있으니까 알아서 먹고 싶은 거 말해주쇼.”


멀리서 여주인이 말했다. 꽤 구석자리라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물은 안 주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살폈다. 역시나 ‘물은 알아서.’라는 글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아무래도 물을 찾는 손님이 많았나 보다.

자리에 일어나 정수기를 알아서 찾아 별의 몫까지 물을 따라 가져왔다.


“어디쯤이야?”


문자를 보내본다.


“거의 다 왔어.”


그 말과 함께 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서 오슈.”

“반가워요, 주인아주머니.”

“할머니야.”


별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에이~ 뭘요. 아직 젊으신 거 같은데요?”

“시끄러워!”


후후후, 하는 별의 웃음소리가 곧 발소리로 변했다. 여주인의 말이 없어서 그녀는 용케도 나를 정확히 찾아 왔다.


“재미있는 곳을 발견했네?”

“오다가 눈에 띄더라고. 괜찮아?”

“응.”


그녀가 눈을 반짝였다.


“완전 마음에 들어.”

“다행이다.”


나는 얼른 메뉴판을 그녀에게 건넸다.


“뭐로 시킬까?”

“······음. 이거랑 이거?”


그녀가 김치전과 유부 우동을 하나, 하나 집어주며 물었다.


“어때?”

“괜찮아. 술은?”

“오~ 술도 마셔?”

“술집이잖아.”


내가 웃었다. 그녀의 얼굴에 오랜만에 미소가 은은하게 걸려 있었다.


“좋아. 그럼 오백으로?”

“알았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주인에게 갔다.


“이거랑, 이거. 그리고 오백 두 잔 주세요.”

“그려. 준비되면 알려줄 테니까, 알아서 가져가.”

“안 가져다 주세요?”

“예끼!”


자글자글한 주름이 사납게 치켜올라갔다.


“힘없는 노인네한테 가져다 달라는 거냐? 젊은 놈이···쯧, 쯧!”


그러고는 그대로 주방으로 들어가셔서 나는 그저 민망한 몸을 여기저기 매만지며 돌아와야 했다.


“혼났어?”


앉자마자 별이 그렇게 물었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그녀는 싱글벙글이다.


“응. 이상해.”

“뭘 이상까지 해. 그냥 웃긴데.”


그녀가 더 크게 웃으려는 걸 손으로 막아 참기까지 한다.


“오늘 즐거운 일 있었어?”


아무래도 너무 신나 보이는 게 이상해서 그리 물었다.

그녀의 눈이 즐겁게 흔들렸다.


“오늘? 흐응~ 관심 생겨?”

“관심은 원래 있었거든요?”


그때 저 멀리서 여주인이 소리쳤다.


“야, 맥주 가져가!”


그 말에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아, 네!”

“저기 옆에 기본 안주. 강냉이들 있으니까 알아서 퍼 먹어라.”


조금 둥글어진 주인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별은 내가 퍼다 온 강냉이에 환호성을 지르며 맥주를 홀짝 마신다. 그리고 나와 잔을 한 후에 다시 홀짝 마셨다.


“캬아! 진짜 오랜만이다.”


으. 역시 술은 떫다.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 없는 역함이 담겨있다.


“오늘 나 계약했어.”


그녀가 강냉이 두 개를 입에 차례로 넣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런 분위기로 할 말이 아니잖아.


그래서 혹시 내가 잘못들었나 싶었다.


“뭐?”

“계약했다구, 웹툰.”


그녀가 참지 못하고 미소를 가득 보여준다. 그리고 그걸로 모자랐다 생각했는지 두 손을 번쩍 들며 다시 외쳤다.


“웹툰! 내 웹툰 계약했다고!!”


그녀 손에서 강냉이가 날아오른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빨려들어 간다.


“짱이지? 저번에 열 편 정도 그린 거 뭐라도 걸려라 하고 여기저기 뿌렸거든?”

“그래서?”


그녀의 눈이 반짝인다.


“근데 연락이 온 거야.”


맙소사.


“오늘 그럼 관계자를 만나고 온 거야?”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 바람에 반짝이는 눈빛이 하늘하늘 아래로 떨어진다.


“너무 좋다고, 바로 계약하자고 하시는 거 있지? 그렇게 대단한 플랫폼은 아닌데 그래도 비전은 있는 곳이야.”

“정규 연재?”

“응, 응!”


와···. 축하해. 정말로.


말이 말려들어간다. 그 간단한 축하의 말이 목구멍 속에 더럽게 걸려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어떻게든 그걸 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본다. 얼굴이 구겨지고, 조금은 우는 얼굴이 됐을 거다.


그러니 그녀가 지금 행복에 겨운 얼굴을 걱정스럽게 뒤트는 거겠지.


“왜, 그래?”


그녀가 물었다.

그때까지도 나오지 않는 말을 나는 게워내듯, 간신히 다른 언어로 바꿔 토해낸다.


“너무 슬퍼서.”


그녀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호들갑을 떨어줬다.


“왜, 왜! 내가 뭐 잘못했어?”


그럴 리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 토해낸 말들이 목구멍을 뚫어 이제는 거리낌 없이 말이 나온다. 그리고 염치도 없게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말한다.


“네가 이렇게 빨리 하고 싶은 일을 성공할 줄 몰랐어. 그게 기뻐서 슬픈 거야.”


거짓말이 눈에 떨어졌다. 마지막 남은 양심의 송곳에 찔린 고통이 짜낸 눈물이었다. 그 거짓에 얼굴이 조금씩, 촉촉하게 젖어간다. 그게 어느새, 얼굴을 온통 거짓말로 얼룩지게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거짓말을 부드러운 손길로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반짝이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진실로 얼룩진 얼굴로 나에게 말한다.


“다 네 덕분이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네가 아무것도 안 했다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다 네 덕인데.”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이 연신 얼굴과 손을 스쳤다. 온몸에 행복이 퍼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 이거면 충분해.


“음식 가져가!”


주인 할머니의 소리에 나는 아쉬움을 남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솜씨 좋게 만들어진 음식들을 들고 다시 그녀에게 가자, 아까의 분위기가 안개처럼 밑에 깔린 채로 그녀가 방긋 웃어 보인다.

호수가 옆의 숲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잔잔한 호수의 안개 속에 싱그러운 숲의 향기가 코끝을 스치듯, 그녀의 웃음이 걸려있다. 그림에도, 사진에도 담을 수 없는 소중한 풍경이다.


“맛있겠다!”


그녀가 언제 가져왔는지, 양손에 젓가락과 수저를 들고 있다.

안주가 줄어들수록 술잔은 늘어나고, 하나의 갈래였던 이야기는 수많은 가지를 쳐 뻗어나간다. 이 얘기가 저 얘기가 되고, 이어지질 않은 대화가 자연스럽게 엮인다. 정신이 몽롱해질수록 웃음은 많아지고, 행복이 늘어간다.


“난 진짜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이 얘기를 몇 번이나 했더라.


“단 한 시간도 못 버틸 거야, 진짜아!”


아까 했던 말도 기억하지 못하고, 눈앞도 흐려질 때가 되면서 잘 마시지 못하던 술이 점점 달게 느껴진다. 술은 맛을 잃어갈수록 현실의 달콤함을 만끽하게 해줬다.


“너는! 너는 어때!”


별이 나에게 손가락질 했다.


“나?”


내가 딸국질을 하며 되물었다.


“그래, 너! 너는 어떠냐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

“나도 예전으로 돌아가면·········.”


이게 뭐지.


갑자기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마셨나.


“나 잠깐 화장실.”

“그래!”

“안주 더 시켜도 돼.”

“안주!”


그녀가 메뉴판을 들며 외치는 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갔다.

쏟아진다.

속 안에 하고 싶은 말이 뭐 이리도 많았는지, 쌓인 게 또 얼마나 많았는지. 끝도 없이 쏟아졌다. 이미 속에서 뒤섞여 내용물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이 변기를 가득 채우고, 막 분노를 폭발시킨 것 같이 두통이 밀려온다.


“죽겠네.”


벽을 짚으며 절로 그런 소리가 나온다.

비틀대는 손을 들어 물을 내렸다. 천둥소리와 함께 내 험악한 말들이 빨려 들어간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본다.


몇 번을 더 게워내야 속이 편해지지.


아직도 부글대는 속을 부여잡고 화장실 밖으로 나선다.


“이거 가져가.”


나오자마자 주인 할머니가 나에게 파전 하나를 건넸다.


“시킨 거예요?”

“아니, 이건 서비스다. 서어비스.”


꾸벅, 고개를 숙였다.


“파전!”


자리에서 어묵탕을 들이키고 있던 별의 눈이 내가 들고 있는 파전에 꽂힌다.


“서비스래.”


그건 그렇고 진짜 잘 먹네.


내가 파전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진짜?”


그녀의 눈이 평소처럼 반짝였다.


“응.”


그녀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아차차!”하며 나의 앞에 어묵탕 하나를 떠다 준다.


“속 아프지? 내가 다 알고 시켰어!”

“너 취했지?”


어묵탕을 받아 서둘러 따뜻한 국물을 몸 안에 밀어 넣었다.


“조금?”


그녀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동자만큼의 치수를 보여준다.


퍽이나.


내가 코웃음 치자 그녀가 따라 웃었다.


“그래도 이렇게 술 마신 거 처음이잖아, 우리.”

“그런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술에 잔뜩 취해 아주 천천히 툭, 떨어졌다가 올라온다.


“난 술 싫어하잖아.”

“알아. 그래서 오늘 이렇게 된 게, 참 다행이야."


그녀가 배시시 웃는다.


"왜?"

“요즘 좀 보고 싶었거든.”

“뭘?”

“네가 뭐에 취해 있는 거.”


기억도 못할 거면서.


단 번에 어묵 국물을 남김없이 들이켰다.


“그때는 정말 예쁘게 웃어줬는데······.”


갈증이 밀려온다. 어묵국물로는 충분하지가 않아 맥주를 하나 더 시켜 가져왔다.

별은 그때도 계속해서 혼자 중얼거렸다. 완전히 테이블 위로 쓰러진 채 맥주잔을 이리저리 굴렸다.


“정말 이름처럼 반짝였는데······.”


내 이름···.


“내 이름은 왜?”

“성운이잖아.”


그건 나야 알지.


“그게 왜,”

“별을 담은 구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우주 공간 속에 들어온 것처럼, 눈앞은 캄캄하고 오직 별. 그녀만 보인다. 근데 이제 그것마저 꺼질 것만 같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빛이 희미해져 간다.

그녀의 말이 전부 과거형이라는 점에서 두려움이 덜컥 목에 걸린다.


“지······.”


조심스럽게.


“지금은?”


아주 조심스럽게 별에게 손을 뻗어본다.

맥주잔을 굴리고 있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지금은? 글쎄에에.”


엎어진 그녀가 나를 올려다본다.


“그때랑은 조금 다른 느낌?"

"어떤 식으로?"

"스스로도 잘 움직여. 충분히. 별이 없어도 고고하게 흐르는 구름같아. 너나 나나. 이제 조금 멀어져도 될 것 같아. 아니, 그래야만 할 것 같아.”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내가 필요 없단 소리야?”


놓쳐버릴 것만 같다.

정말 이 어둠에 홀로 남을 것만 같다.


“으응, 아니.”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살랑거리는 모든 게 희미해져 간다.


“이제는 안 거지. 아니 네가 알려준 거야. 나도 혼자서 그런 빛을 낼 수 있다는 걸.”

“아니, 내가 필요 없냐고.”

“이상해.”


그녀가 나의 손을 뿌리친다.

아. 너무 어두워. 어둠 속에서 그녀의 손길이 느껴진다. 나의 볼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내 눈가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왜 나한테 필요성을 찾고 있어?”


느껴지는데 그 손이 보이질 않아 붙잡을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거. 오늘 우리가 술을 마실 수 있는 거. 네가 알려준 거. 결국 남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는 걸 알려준 네가······.”

“난 네가 필요해.”


내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메아리친다.


“모르겠어.”


무엇을?

나에겐 네가 필요한데.


그녀가 말한다.


“나도 네가 필요해.”


네가 내 행복인데.


“네가 내 행복이야.”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안간힘을 써 어둠을 몰아내고, 간신히 그녀의 팔을 세게 붙잡았다. 완전히 빛을 잃어 이렇게가 아니라면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아파할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

그녀도 그걸 아는지 아무 소리 없이 얼굴을 구길 뿐이었다.


다시 빛나. 내가 발견할 수 있게.

제발.

별처럼 반짝여줘.


“하지만 이건 아니야.”


그녀는 빛나지 않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넌 날 보고 있지 않잖아.”


그녀의 시선이 날카롭게 나를 뽑아간다. 하나 뿐인 젠가 블록이, 넘어지지 않는 내 젠가 블록이 그녀의 말에 하나씩 칸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라는 상자로 감싸놓으면 뭐해. 네가 찾는 행복이 아닌데. 네가 품고 있는 별은 내가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응어리져 있는 그녀의 분노가 커지면 커질수록.


“나한테서 행복을 찾는 게, 네가 원하는 게 아니잖아? 그냥 화풀이를 해, 제발···!”


괴로운 표정이 얼굴에 더 선명해질수록, 내 젠가는 너무도 뽑기 쉬워진다.


“숨긴다고 숨겨지는 줄 알아? 글 쓰는 게 그렇게나 좋았으면서, 그게 현실이면서! 왜 꿈이라고 현실에 등을 돌려.”


모조리 뽑혀나간다. 꽁꽁 감춰놨던 젠가 블록들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에 의해서 뽑혀나가기 시작했다.


“난 네 행복이지만, 너도 내 행복이지만. 네가 지금 얻으려는 행복은 오로지 내 행복을 뽑아가는 거야. 알아?”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나는 무너져 일어나지 못한다.


“갈래.”


붙잡을 수도 없다.

그녀가 떠나는 소리가 들린다. 나를 이 어둠에 남겨두고··· 잘도 간다.

술이 확 깨고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 술기운이라 믿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녀 또한 술기운에 한 말이라며 다독였다. 다음 날, 제발 다시 웃으며 그때의 일을 완전히 잊은 채로 대화를 나눴으면 싶었다.


작가의말

벌써 다음 화가 완결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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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 21.01.12 17 0 20쪽
28 28. 21.01.11 22 0 15쪽
27 27. 21.01.06 15 0 19쪽
26 26. 21.01.05 16 0 20쪽
25 25. 21.01.04 18 0 15쪽
24 24. 20.12.30 18 0 14쪽
23 23. 20.12.29 19 0 14쪽
22 22. 20.12.28 17 0 20쪽
21 21. 20.12.23 17 0 14쪽
20 20. 20.12.22 18 0 19쪽
19 19. 20.12.11 17 0 18쪽
18 18. 20.12.09 17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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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20.10.13 3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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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20.10.07 21 0 14쪽
6 6. 20.10.06 19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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