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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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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9.20 16:37
최근연재일 :
2021.01.19 20:0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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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4,498

작성
21.01.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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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27.

DUMMY

얼떨떨한 아버지의 표정. 남아 있는 두 개의 꼬치를 포장하는 직원. 그걸 받아드는 내 손. 차를 타고 떠나는 아버지. 그리고 내 집 앞.


언제 흘렸는지도 모르는 눈물들이 바짝 말라 눈 주위를 따갑게 했다.

불을 끄고, 이불까지 덮어 완전히 어둠 속에 있다. 하지만 그걸로 부족하다. 더욱 어두운 곳. 어두침침하고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그곳으로 나는 몸을 더 파고든다. 이불을 당기고 몸을 구부려 어떻게든 그 속으로 들어가려 애쓴다.


완전히 어둠에 갇혀서 생각하고 싶었다. 가만히 어떻게 꿈에서 깨어나야 할지 생각해보고, 그 후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본다. 하지만 내가 너무 어둠 속 깊숙이 들어와 버렸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는다. 머리마저 어둠에 파고들어 갑갑한 칠흑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소설 속에 비운의 주인공처럼. 그래, 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나는 난관에 부딪힌 셈이다.


걔들은 어떻게 극복했더라.


아무런 생각도 품지 못하는 머릿속에서 유일하게 소설에 관련된 생각만큼은 선명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선명한 기억이 나를 더욱더 침잠시킨다.


“배드엔딩.”


그래, 걔들은 전부 배드 엔딩이었지. 결국에 난관을 극복하지 못해 죽어가는 현실적인 주인공. 어느새 나는 그들과 닮아 있었다. 나를 닮은 주인공이 아닌, 내가 닮은 주인공. 나도 그들처럼 죽어갈 것이다.


알아주는 이 없이. 이 어둠 속에서.


갑자기 빛기둥 하나가 내 눈을 강타했다. 빛은 침대에 가벼운 지진을 동반했다. 어둠이 뒤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빛기둥을 바라봤다. 빛은 나의 얼굴에, 눈에, 그리고 생각에 파고들어 왔다. 그러자 지금이 아니면, 저 빛은 다시 솟구쳐 오르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난 서둘러 핸드폰, 아니 그 빛을 붙든다.

빛줄기 속에 담긴 한별이라는 이름이 가득 찬 별모양 이모티콘에 답답하게 끼어있었다.


“여, 여보세요? 성운이 핸드폰 맞죠?”


내 이름을 확인하고 걸었을 전화일 텐데 그녀는 나에게 그리 물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성운아?”


난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은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늘 어땠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그녀는 그걸 알고 있다는 듯 곧바로 혼자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지하 카페에 있었어. 타블릿 가져와서 만화 좀 그려봤다?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어.”


내용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질문을 애써 눌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녀는 참아낸 내 질문을 들은 것처럼 얘기를 이어나갔다.


“내용은 저번에 내가 작문하던 거. 그거 기억나? 두 별이 서로 젠가 하는 거.”


알아. 알고 있어. 그거면 충분히 재미있을 거야.


“저번에 네가 재밌다 했으니까··· 그래도 보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겠지?”


많을 거야, 분명. 내 소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봐줄 거야.


“나중엔 내가 실력이 조금 더 붙으면, 네 소설도 그려줄까?”


그럴 필요 없어.


“왜? 별로야? 지금은 좀 그래도 나중엔 네가 빌어도 안 그려줄 건데?”


······.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다양해서 담을 수가 없다. 기껏 들어왔던 꽃들이 피었고, 보드라운 촉감을 가졌다.


“오늘 네가 좋아하는 날씨였어.”


기껏 들어왔던 어둠은 어느새 빛으로 가득해졌는지,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내 눈은 아직 어둠에 익숙해지려면 한참 먼데도 그랬다.


“네가 좋아하는 날씨··· 나도 좋아하는 거 알지?”


꽃이 피고,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진다. 그건 이불도 그랬고,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 정처 없이 돌아다녔어. 너처럼 영감을 얻을까 해서.”


너무도 부드럽고, 한없이 의지해도 될 것만 같은 감촉이었다.


“생각 없이 돌아다니는데, 네가 고백하는 곳에 있는 거 있지? 그때 네 고백 진짜 웃겼는데······. 비록 그땐 거짓말투성이긴 했지만.”


이대로 난 꿈에서 깰 거라는 걸 알았다.

생각이 든다. 꿈에서 깨면 무엇을 해야 할까.


“만약 그때 네가 그곳에 오지 않았다면. 만약 네가 그런 고백을 하지 않았다면 말이야. 내가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면········· 우린 만날 수 있었을까?”


꿈에서 깨어나면 난······


“널 만나고 싶어.”

“정말?”


그녀의 목소리가 촉촉했다.


“응.”


그녀의 슬픔이 조잡한 기계를 통과해서 들려온다. 간신히 헐떡이는 눈물을 참으며 그녀는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이젠 우연으로 만나지 않아도 되네?”


만남은 우연이었어도, 내가 꿈에서 깨어나도, 변하지 않는 것.


“지금 어디야?”

“나······ 지금”


그녀의 대답을 들으며 어둠에서 빠져나온다. 나는 꿈에서 깨어난다. 어둠에서 빠져나와도 세상은 계속 어둠이었지만, 내 손에 꽉 쥐어진 이 빛과 함께라면 개의치 않았다.


변하지 않는 것.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선다. 내가 좋아하는 날씨는 이미 지나가 없지만, 상관없다. 변하지 않는 것이 계속해서 변하지 않도록. 변하더라도 그게 발전이도록.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했지만, 그 어둠을 밝혀주는 별들은 많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이 가깝지만, 바라보면 아득하게 먼 그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 * * *



“삼 분 지각!”


그녀가 두둑한 치킨 다리를 들고 나에게 외쳤다.


“진짜 빨리 뛰어온 거야. 그리고 솔직히 오 분은 오바지.”

“이상한 라임 맞추지 마! 어쨌든 닭다리는 전부 내꺼~”

“그래 마음대로 먹어라.”


내가 그녀의 앞에 앉았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우울했어?”

“얘기가 잘 안 됐어.”


내가 잘 튀겨진 닭 날개를 집으며 답한다.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며, 어렵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런 그녀의 입에 손에 들고 있는 닭다리를 손수 넣어 준다.


“걱정하지 마. 솔직히 아버지 말씀이 틀리진 않더라고. 그래서 타협을 본 거지. 조금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어떻게 하려고?”


아직도 걱정스러운 얼굴이 남아있다. 이 걱정을 어서 날려버리고 싶다.


“저번에 말한 대로 요번 공모전까지만 도전하기로.”

“실패하면 끝?”


뜨악하는 표정을 짓는다.

오늘따라 그녀는 나를 위로해주려고 애쓰느라 행동이 과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취업하고 돈 벌면서 쓰려고.”

“취업?”

“응. 솔직히 대기업이런 곳 말고, 중소기업 쪽으로. 적당히 돈 벌 수 있는 정도.”

“그래?”


그녀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는지, 조금 실망스러운 눈치였다.


“그래도 글 쓰는 걸 관두지 않아서 다행이다.” “응. 그건 관둘 수 없지. 그래서 말인데, 나 좀 도와줘.”

“응?”


도와달라는 말이 그녀의 흥미를 확 끄는 데 성공했다.


“나 취업 준비 같은 거 하나도 안 해봤거든. 웃기게.”

“으응.”


그녀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웃기지 않아.”

“아니 들어봐.”


내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취업 준비를 한 적이 없으니까, 별, 네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공부하는 법이라던가, 이런 거 잘 알잖아?”

“응, 잘 알지. 근데 너무 공모전에 떨어질 생각인 거 아니야?”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조금 어색한 웃음을 지어버리고 만다.


“아무래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임해야하지 않겠어? 아무것도 준비 안하고 떨어져버리면 그대로 추락하는 거지만, 적어도 낙하산 하나는 차고 있어야지.”

“그건 그렇지만, 네 소설 분명 재밌을 거야. 그렇지?”


그녀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나는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로 답했다.


“그렇겠지?”

“왜 의문문이야?”

“확신은 있는데, 역시 자신은 없어서. 봐주는 사람은 있어도, 많이 봐주진 않으니까. 그게 불안하지, 아무래도. 결국 글 쓰는 사람은 수십만이 넘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거잖아?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인지도는 중요하니까.”


그녀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다. 나를 이해하려는 듯, 길게 뻗은 속눈썹이 잠시 파르르 떨린다.

이윽고 뜬 눈에는 읽어낼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난 네 소설 좋아해. 그거면 안 돼?”

“······어?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런 의미면 안 되는 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이렇게까지 그녀의 말이 이해가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미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녀는 숨을 크게 내뱉었다.


“소설 쓰는 거 누군가 좋아해 준다면, 그걸로 성공한 거 아닌가 싶어서.”

“그거로는 공모전에서 상을 탈 수는 없어.”

“꼭 공모전이어야 해?”

“그게 약속이었으니까. 난 이 공모전이 끝나면 이제 당분간 글은 안 쓸 거야.”


그녀는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네가 왜 그렇게 타협을 봤는지 모르겠어. 글 쓰는 거······ 너한테 꼭 필요한 거잖아. 글이랑 떨어질 수 있어? 글 안 쓰고 행복할 수 있어? 내가 봐온 김성운은 그렇게 못 해.”


너무 정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을 도저히 마주할 수가 없다. 그저 멍하니 그녀의 눈에서 도망쳐 애꿎은 치킨을 씹고 다음에 씹어 먹을 치킨을 찾을 뿐이다.


“꼭 남의 눈치를 봐야해? 네가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랑 네가 좋아하면 그만이야. 네가 취업하는 걸로 행복하다면, 나도 그래그래 할 수 있어. 근데, 아니잖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난······. 내 손에 쥐어진 이 빛을. 변하지 않는 별, 너를 놓아야 해. 난 그럴 수 없어. 그러면 나는 더 이상 이 현실과 어둠을 버틸 수 없어.


“응? 아니잖아, 성운아.”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니. 나 그거면 행복할 것 같아. 그래도 적당히 돈 벌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사고 싶은 걸, 사는 거. 그거면 나 행복해.”

“진심이야?”


그녀가 또렷하게 바라본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 애썼다. 조금 얼굴이 구겨졌을 테지만,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진심이야.”


울음을 참느라 몰려오는 숨을 힘겹게 내뱉으며 그녀를 확신시켰다.


“정말로.”


할 말이 많아 보였던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또렷하고 정확했던 시선이 꼬리를 내렸다. 그녀는 무엇인가를 막아내듯 질근 입술을 깨물었다.


“알았어. 네가 그렇다면, 나도 도와줄게. 응원할게.”

“고마워.”


그녀가 갑자기 치킨을 뜯기 시작했다.

다리고 뭐고 거침없이 흡입하던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방긋 웃어준다.


“너 내가 엄청 공부시킬 거야. 알겠어? 너 내가 취업하고 꼭 글 쓰게 만든다.”

“알았어.”


그녀는. 별은 참 신기한 사람이다.

그녀가 웃으면, 나는 따라 웃을 수밖에 없다. 거울처럼 그대로.


“그냥 중소기업이면 글도 못 쓸 테니까! 넌 반드시 이름 난 기업으로 들어간다. 알겠어?”

“스파르타식 교육?”

“맞아! 넌 죽었다, 이제.”


변하지 않는 사람.


“그 전에!”


그녀가 손끝을 확 뻗어 내 볼을 눌렀다. 기름으로 미끌미끌한 손가락이 내 얼굴에 미끄러진다.


“글부터 제대로 쓸 것! 공모전은 진심으로!!”

“알겠어. 나도 포기는 안 해.”

“응! 당연하지.”


그녀가 나에게 치킨을 건넨다. 아직 먹지 않은 닭다리였다.


“먹어도 돼?”

“응.”


그걸 받아 손에 쥐는 걸 빌미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고마워.”



* * * *



매미는 시간을 고이 간직한 곤충이다. 단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은 시간의 결정체를 품고 있다가 때가 나무를 기어오른다. 자신이 간직했던 수많은 시간들을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온 결정체가 세상에 퍼트린다.


그러면 우린 그들이 품어준 시간을 부여받으며 여름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인간보다 세상이 더 뜨겁게 열정을 불태우는 계절에 이제 인간들도 열정을 불태워 다시 세상보다 뜨거워지도록, 매미가 시간을 토해내며 격려한다.


“매앰, 매앰, 매앰~”

“갑자기 뭐야?”


별의 막지 않은 입이 한가득 웃음을 품고 나에게 묻는다.


“매미가 신기하잖아.”


계절만큼 가벼워진 그녀와 나의 옷차림이 때마침 불어오는 단비 같은 바람에 하늘거린다. 우리는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걸어간다.


“여름 좋아해?”


그녀가 묻는다.


“딱히 싫어하지는 않아.”

“난 싫어해.”


그녀가 딱 잘라 말하자 나는 호기심이 일어 “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잠시 뒷짐을 쥐고 샌들 밖으로 튀어나온 조그마한 자신의 발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우선 더워,”

“그리고?”

“옷이 너무 하늘하늘 거려.”

“끝?”

“마지막으로는······.”


나는 턱 끝에 저절로 맺힌 땀방울을 닦았다.


“세상이 나보다 더 열정적인 거 같아서 싫어.”

“마지막은 좀 특별하네.”

“그렇지. 아, 도착했다.”


그녀가 내 손을 부여잡으며 달려 나간다. 몸이 아릴 정도의 더위에도 그녀의 손만큼은 시원했다.


“어서 오세요.”


그녀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가게에서는 그런 인사말보다 먼저 바닥을 채우고 있는 파릇파릇한 잔디를 구경해야 한다. 푹신푹신한 잔디를 몇 번 밟고 들어갔다면, 그 다음엔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름 모를 꽃들과 그 중심에 곧게 솟아있는 나무를 목에서 우두둑 소리가 날 정도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종업원의 얼굴을 바라보고, 인사에 답할 수 있다.


“안녕하세요.”

“많이 더우신가요?”


종업원이 그렇게 말하자 거짓말처럼 주변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실내 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뇨. 소문대로 엄청 시원하네요?”

“그렇죠? 자연풍은 아니지만, 주변 인테리어 때문에 자연풍처럼 느껴지시지 않나요?”


별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업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품은 채 우리에게 메뉴판를 거냈다.


“음료는 무엇으로 드시겠어요?”

“둘 다 아메리카노요.”


별이 말했다. 그녀가 살짝 나와 눈을 마주해 동의를 구한다.


“다른 건 필요 없으시고요?”

“음······. 디저트 뭐 먹을래?”


이건 상의가 필요했는지 그녀가 그리 물었다.


“케이크 하나 먹을까?”

“그래.”


별이 손가락으로 앙증맞은 글씨체로 쓰여진 당근 케익을 가리켰다.


“이걸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종업원은 일일이 우리의 주문을 말하며 주문을 확인한다.


“자리를 안내해 드릴게요. 가면서 궁금하신 사항은 언제든 물어보시면 되요.”

“감사합니다.”


별과 나는 동시에 그렇게 말하며 종업원의 뒤를 따랐다.


파릇파릇한 잔디와 끝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꽃들이 시선을 자꾸만 빼앗어 갔다.


“이거 진짠가요?”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내가 물었다.


“아뇨. 사장님께서 직접 만드신 거예요. 저희 사장님이 조화 만드는 걸 직업으로 하고 계시다나 봐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가끔 사장님이 보냈다고 새로운 조화들이 오거든요.”

“진짜 같아요.”

“그렇죠? 저도 처음 여기서 일하게 됐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종업원은 “3”이라고 쓰인 방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가 예약하신 삼 번 방입니다. 참고로 저희 가게는 이 방이 마지막 방입니다.”

“그렇게 많지 않네요?”

“그렇죠. 사실 엄청 좁은데, 그림이랑 조화 때문에 넓어 보이는 게 커요.”


종업원은 싱긋 웃으며 방문을 열었다. 테이블이 하나. 군데군데 장식된 조화들과 바닥의 잔디가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방이었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새장과 함께 종이로 정교하게 만든 앵무새가 앉아 있었다. 나무로 직접 만든 테이블의 위로는 작은 창가에서 내려오는 뜨거운 여름의 햇볕이 내려왔다.


“더 궁금한 건 없으신가요?

“몇 시까지 있으면 되죠?”


별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지금부터 두 시간이요. 나가시기 오 분 전에 제가 미리 노크를 할 예정이에요.”

“감사합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문이 닫혔다.

작은 창 너머로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 매미소리가 선사하는 뜨거운 바람은 조화의 틈 속에 숨어 있는 에어컨에게 밀려 나간다.


“이런 데는 언제 찾아봤어?”

“시간이야 널널하지. 너랑 있을 때도 그렇고 집에서도 틈틈이 찾아봤어. 왜, 별로야?”


나는 손사래를 친다.


“아니, 아니. 매번 이렇게 좋은 곳을 찾아내는 게 시간해서.”


그녀가 입술을 오므리고 내 말의 무게를 재본다. 별 무게 없다는 것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금방 판별이 나고, 오므려진 입은 다시 벌어진다.


“관심을 안 줘서 그렇지, 조금만 검색해보면 너도 찾을 수 있을 걸?”

“그럼 다음에는 내가 찾은 곳으로 가 볼까?”


그녀가 싱긋 웃는다.


“아니, 괜찮아.”

“왜? 공모전 때문에?”


올리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건 아니야. 그 이유는 좀 작고, 사실 큰 이유는 내가 현장 조사를 하고 싶어서야.”


그때 방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별은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에게 기다리라는 신호를 준다.


“네~”


그녀가 나를 앉혀두고 문을 열어 음료를 들고 왔다.


“글이랑 다르게 만화는 확실히 그리고 싶어지더라고? 그래서 신기하고 예쁘고, 특이한 공간을 찾아서 기록해 보고 있어.”

“나랑 있을 땐······. 평소랑 같았잖아."

“응. 너 오기 전에 미리 와서 기록했으니까. 너랑 있을 땐, 너한테 집중하고 싶었어.”


그래서 그때, 먼저 와 있었구나···.


“난 전혀 몰랐어.”

“내가 말하지 않았잖아? 그래도 오늘은 나도 미리 오지 못했어. 여긴 미리 오면 안 되겠더라고.”

“하긴······”


분위기도 그렇고, 그녀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간다. 그녀는 은은한 미소를 이유 없이 나에게 보내준다.

나는 그 미소에 더 할 말이 없어져서 그녀를 따라 아메리카노를 가져와 마셨다. 그녀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뼉을 쳤다.


“맞다, 여기 보드게임도 있어!”

“그래?”


그녀는 자리에 일어나서 조화들 틈에 숨겨진 상자를 용케도 발견해서 뒤적이기 시작한다.


“무슨 게임할까? 웬만한 거는 다 있다더라!”


어떻게 발견했는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나를 신경 쓰며 그녀가 말했다.

게임이라. 보드게임하면 역시···.


“젠가?”

“역시 젠가지?”


우린 동시에 말했고, 그녀의 손에는 이미 젠가가 들려있었다. 그 기막힌 우연에 그녀도, 나도 매미들의 울음보다 더 크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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